선문촬요13-1 20101003달마관심론-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二十三. 齋 戒 (재계의 뜻)
又 持齋者는 當須會意이나 不達其理徒施虛功이니 齋者薺也이니 所謂勤治身心하여 不令散亂이요 持者는
護也이니 所謂於諸戒行을 如法護持하되 必須禁六情制三毒하며 勤修覺察하여 淸淨身心하여 了如是義를 可名爲齋니라
마땅히 뜻을 알아야 하나 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면 헛수고만 하게 되는 것이니 또 계를 지킨다(持齋) 하는 것은, 재(齋)는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니 이른바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다스려 산란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요, 지(持)는 보호한다는 것이니, 이른바 모든 계행을 법다이 지키되 반드시 六정(情)을 금하고 三독(毒)을 제어하며 깨달음을 살펴 부지런히 닦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이러한 바른 뜻을 밝게 깨달아야 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니라.
二十四. 齋 食 (재식의 뜻)
又持齋者는 食有五種이니 一者는 法喜食이니 所謂 依如來正法하여 歡喜奉行이요 二者는 禪悅食이니 所謂
內外澄寂하여 身心悅樂이요 三者는 念食이니 所謂 常念諸佛하여 心口相應이요 四者는 願食이니 所謂行住坐臥에도 常行善願이요 五者는 解脫食이니 所謂心常淸淨하여 不染世塵하여 持五淨食者가 名爲齋食이니라 若復有人하여 不食如是五種淨食하고 自言持齋하면 無有是處이니라
또 계를 지킨다 (持齋)하는 것은 밥이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희식(法喜食)이니 이른바 여래의 바른 법에 의하여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선열식(禪悅食)이니 이른바 안팎이 밝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이 즐거운 것이요, 셋째는 염식(念食)이니 이른바 항상 부처님들을 생각하여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는 것이요, 넷째는 원식(願食)이니, 이른바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누워서도 항상 바른 서원을 행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해탈식(解脫食)이니, 이른바 마음이 항상 청정하여 세상 번뇌에 물들지 않아 다섯가지 청정함을 지키는 것을 재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二十五. 斷 食 (단식의 이치)
又有斷食言인 斷食者는 斷無明惡業之食인데 若輒觸者는 名爲破齋이니 齋若有破하고 云何?福이리오 世有迷愚하여 不梧斯理하고 身心放逸하여 造諸惡業하며 貪恣欲情하며 不生慙愧하면서 唯斷外食을 自爲持齋하니 何異痴兒 見爛壞死屍하고 稱言有命이리오 必無是處니라
또 음식을 끊는다고 하는 말인 단식은 무명악업(無明惡業)의 음식을 끊는 것이거늘 만약 이것에 저촉되면 재를 깨뜨린 것이라 하는 것이니 재를 만약 깨뜨리고서 어찌 복덕을 얻을 수 있으리오. 세상에 미혹하고 어리석어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함부로 방종하게 하여 온갖 나쁜 업을 지으며 욕정(慾情)을 마음대로 탐내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서 오직 밖으로 음식만을 끊는 것을 스스로 재계를 지킨다 하니 어찌 어리석은 아이가 죽어 썩은 시체를 보고 살아있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과 다르리오. 이것은 반드시 옳지 못한 것이니라.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와 같이 깨끗한 음식을 먹지않고 스스로 계를 지킨다고 말을 하면 이런곳이 있음이 없느니라.
二十六. 禮 拜 (바른 예배)
又禮拜者는 常如法也이니 必須理?內明하고 事相外變이라 理不可捨이나 事有行藏이니 會如是義하면 乃名依法하니라 夫禮者는 敬也이요 拜者伏也이니 所謂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해야 名爲禮拜니라 以恭敬故로 不敢毁傷하고 以屈伏故로 無令縱逸나니 若能惡情 永滅하고 善念恒存하면 雖不現相이라도 常爲禮拜니라 其相者는 則身相也니 欲爲令諸世俗 表謙下心이니 故須屈伏外身하여 現恭敬相이니라 用之則現이요 捨之則藏이니 擧外明內는 性相應也니라
若復不行理法하고 唯執外相하면 內則迷故로 縱於貪嗔癡하여 常爲惡念하며 外則空顯身相으로를 何名禮拜리오
無慙於聖故로 ?凡이니 不免輪墮이니라 豈成功德이리오 旣無所得이니 云何求道니라
또 예배(禮拜)라 하는 것은 항상 법답게 한다는 뜻이니, 반드시 진리의 바탕은 안으로 밝고 일의 겉모습은 변하는 것이라 진리(理)는 버리지 못하나 일(事)은 드러난 것과 숨은 것(변화)이 있으니, 이와 같은 바른 이치를 알면 비로소 법에 의지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니 무릇 예(禮)라 하는 것은 공경이며, 절(拜) 하는 것은 조복한다는 것이니, 이른바 참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하여 예배라 하는 것이니라.
공경함으로써 헐뜯지 아니하고, 굴복되었음으로써 방종함이 없게 되나니, 만약 능히 악한 뜻을 영원히 멸하고 착한 생각이 항상 이어져 있으면 비록 겉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항상 예배하는 것이니라.
그 보이는 것은 몸짓인 것이니 모든 세속인으로 하여금 하심 함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겉으로 몸을 굽혀 공경하는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니라.
작용하면 나타나는 것이요, 버리면(捨) 감추어지나니, 밖으로 움직(절)여 안이 밝아져서 성품과 모습이 응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뒤집혀서 법다운 이치로 행하지 않고 오직 겉모습의 예배(절)만을 집착한다면 안으로는 미혹하게 되므로 탐욕과 화로 어리석게 되어 항상 나쁜 생각을 지으면서 겉으로는 공허한 겉모습만을 드러내는 짓을 어찌 예배라 하리오. 성인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으로 범부를 속이는 것이니 반드시 윤회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어찌 공덕을 이루리오. 이미 얻을 바가 없거늘 어찌 도를 구한다고 하리오
二十七. 洗 浴 (목욕의 참뜻)
又問曰하되 如溫室經云하되 說洗浴衆僧 得福無量이니 此則憑何事法이 功德始成 若有觀心해도 可相應不인가
答曰하되 洗浴衆僧者는 非說世間有爲事也이니 世尊堂爾爲諸弟子하여 說溫室經하여 欲令受持洗浴之法이니 是故로 假諸世事하여 譬喩眞宗하여 隱說七事 供養功德이니라
其七事者는 一者는 淨水요 二者는 燃火요 三者는 ?豆요 四者는 楊枝이며 五者는 淨灰요 六者는 蘇膏며 七者는 內衣니라 擧此七事喩於七法하여 一切衆生이 用此七法하여 沐浴莊嚴하면 能除三毒하고 無明垢穢니라 其七法者는
一者는 法戒이니 洗溫참?非하여 猶如淨水 去諸塵垢이요
二者는 智慧이니 觀察內外하되 猶如燃火 能溫淨水며
三者는 分別이니 揀棄諸惡이 猶如?豆가 能淨垢?이요 四者는 眞實이니 斷諸妄語가 猶如楊枝 能消口氣이며
五者는 正信이니 決意無慮가 猶如淨灰摩身 能?諸風이요 六者는 調息이니 軟伏諸剛强하기를 猶如?膏 通潤皮膚며 七者는 ?愧이니 悔諸惡業을 猶如內衣 遮蔽醜形이니라 以上七事가 ?是經中에 秘密之藏이나 如來當爾爲諸 大乘利根者說이니 非爲小乘智淺下劣者凡夫 所說以니 今人이 無能梧解니라
또 묻기를 “온실경(溫室?浴衆僧經)에 이르기를 ‘여러 스님들을 목욕시켜 주면 한량없는 복을 누린다’ 설하셨으니,
이 어떤 일을 법으로 의지하는 것이 공덕을 비로써 성취할 수 있나이까? 만약 마음을 관하는 것만으로는 상응(相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답해 이르기를 “스님들을 목욕시킨다 하는 것은 세간의 함이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니, 세존께서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온실경’을 설하시어 목욕하는 법을 받아지니게 하신 것이니 이는 세상 일(事)을 빌려서 참종지(眞宗)와 비유하여 일곱 가지 일로 공양공덕을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 일곱 가지라 하는 것은 첫째는 맑은 물이요, 둘째는 불을 피우는 일이요, 셋째는 비누(?豆)요, 넷째는 버드나무 칫솔(楊枝)이요, 다섯째는 맑은 재(淨灰)요, 여섯째는 우유 기름이요, 일곱째는 속옷이니라.
이 일곱가지를 들어서 일곱가지 법을 비유하여 일체 중생들이 이 일곱 가지 법을 써서 목욕하고 장엄하면 능히 三독무명의 때(垢)를 벗길 수 있는 것이니라.
일곱가지 법이라 하는 것은 첫째는 법과 계율이니 잘못된 허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씻기를 마치 맑은 물로 모든 더러움을 씻는 것과 같은 일이요, 둘째는 지혜이니 안팎을 관찰하기를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이 능히 맑은 물을 데우는 것과 같은 것이며, 셋째는 분별(分別)이니 모든 악을 가려버리는 것이 마치 비누로 능히 때를 제거하는 것 같은 것이요, 넷째는 진실(眞實)이니 온갖 거짓말을 끊는 것이 마치 버드나무로 칫솔질로 능히 입안을 깨끗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다섯째는 바른 믿음이니 뜻을 결정코 헛됨이 없게 하는 것이 마치 맑은 재로 몸을 문질러 모든 풍병을 능히 물리치는 것과 같은 것이요, 여섯째는 호흡의 조절이니 모든 굳은 습기를 조복받기를 마치 우유기름이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일곱째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니 모든 나쁜 업을 뉘우치기를 마치 속옷이 추한 알몸을 가리는 것 같은 것이니라.
이 상의 일이 곧 경 가운데 비밀스럽게 감춰진 것이거늘 여래께서 여러 대승의 근기가 예리한 이를 상대로 설하신 것이니 소승의 지혜가 얕고 근기가 하열한 범부에게 설한 것이 아니니 요즘 사람들이 능히 깨달을 수 없을 뿐인 것이니라.
其溫室者는 則身是也이니 所以然智慧火로 溫淨戒湯하여 沐浴身中 眞如佛性하되 受持七法하여 以自莊嚴니라
當時比丘는 聰明利智하여 皆悟聖意하여 如說修行하여
功德成就해서 俱登聖果이나 今時衆生은 愚痴鈍根이라
莫測斯事하고 將世間水하여 洗質碍身하며 自言依敎하니 豈非誤也리오 且眞如佛性은 非是凡形이니 煩惱塵垢는 本來無相거늘 豈可將碍水하여 洗無明身인가 事不相應거늘 云何悟道리오 若言碍身 得淸淨者하면 常觀하라 此身은 本因貪欲하여 不淨所生이라 臭穢??하여 內外充塞하라 若洗此身하여 求於淨者면 猶如洗泥 終無得淨이니 如此驗之로 明知外洗 非佛說也니라
온실(溫室)이라 하는 것은 곧 몸인 것이니, 이른바 지혜의 불로써 계율의 탕을 맑고 따뜻이 데워서 몸 가운데의 진여·불성을 목욕하기를 일곱 가지를 지녀 스스로 장엄하여야 하는 것이니라.
그때의 비구들은 총명하고 지혜가 날카로워 모두가 성인의 뜻을 깨달아 말씀대로 수행하여 공덕을 성취해서 구족한 성과를 증득하여 거룩한 지위에 올랐으나 지금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둔한 근기라 이러한 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세간의 물을 가져 육신의 때를 씻으면서 스스로 가르침에 의하노라 말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리오.
그리고 진여인 불성은 곧 범상한 형체가 아니니 번뇌의 때는 본래 모습이 없거늘 어찌 물을 가져 무명의 몸을 씻으리오. 사리가 맞지 않거늘 어찌 도를 깨달았다 하리오.
만약 육신이 깨끗함을 얻었다고 말하려면 항상 관찰하기를 ‘이 몸은 본래 탐욕으로 인하여 깨끗지 못한 것으로 생긴 것이어서 악취와 때와 똥이 뒤섞여 안팎에 가득하다’하라.
만약 이 몸을 씻어서 깨끗이 하기를 바란다면 마치 진흙을 씻어도 끝내 맑아질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증험으로 씻으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