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포구는 보성군 동쪽에 위치해 있다. 꼬막으로 유명하다.
각설이의 뽕짝소리와 사람들의 분주함이 어우러진 시장골목은 묘한 열기에 휩싸여 있다. 3년째 찾는 포구다.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꼬막축제기간이다. 좌판에는 어김없이 꼬막이 가득하다.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서둘러 시장골목 첫머리에 있는 우리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비빔밥도 할 줄 알았으면 만원 어치만 사라 할 것을. 까먹을 줄만 알았제.’
대접에 꼬막을 까 담아 내밀던 주인이 오히려 양이 적다고 미안해한다. 아스라하니 젊었을 적 미모를 유추하게 하는 여주인의 넉넉함에 꼬막 맛이 더해진다.
건너편에서는 칠순을 넘겼음직한 중절모를 쓴 노인이 음료수 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있다. 그 옆에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얼굴에 새긴 할아버지가 보성녹차막걸리를 대접에 따르고 있다. 자작하는 술잔이 한 순배 돌자 이내 서로 통성명이 이어지고 말동무가 된다. 술값만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와 마음 편히 마시고 갈 수 있는 곳이다. 포구는 그런 곳이다.
“모다 대포리로 가부렀소. 오후에는 많을 것이요.”
묻기는 주인에 물었는데 대답은 막걸리를 마시던 할아버지가 한다. 나도 막걸리 한 병을 빼들었다. 텅 비어 있던 탁자는 주인이 내온 반찬으로 채워졌다. 막걸리가 사발에 채워지고 살짝 대처 양념에 무친 쭈꾸미를 두 노인에게 내밀자 두 노인과 나 사이 탁자도 의미가 없어진다. 인심이란 이런 것이다.
축제라고 해야 먹거리와 노래자랑 빼면 이렇다 할 것이 없다. 축제보다는 벌교시장 골목길과 대포리의 널배타기 구경하는 재미가 으뜸이다. 새꼬막, 참꼬막, 피꼬막이 시장골목을 채우고 간재미, 파래, 붕장어, 꼬럭이 노점 좌판에 올랐다. 모두 여자만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삶 그대로 묻어나야 특산물
벌교는 조선시대까지 낙안군에 속한 작은 갯마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 형세가 만만치 않다. 넓은 낙안평야와 여자만의 무한한 가치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일본인이었다. 시장골목을 지나 소화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용교라 불렀던 다리다. ‘소화 6년’(1931)에 만들어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화다리 아래는 갯물이고 갯바닥에 시체가 질펀하게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해서 더 못 보겠구만이라.’
포구의 갈대밭에 마구 버려진 시체를 묘사한 《태백산맥》의 내용이다. 꼬막축제와 함께 벌교역에서는 좌우익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굿판을 연다. 그런데 썰렁하다. 관광객들에게 벌교의 아픔은 관심이 없다.
지역특산물이라는 것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향사람들 삶의 이력이 그대로 묻어나야 제대로 된 특산물이다. 한두 해 반짝 인기가 있다고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꼬막이 그렇다. ‘벌교꼬막’ 말이다. 수산물 중 처음으로 지리적표시 등록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꼬막의 20여 줄 골골이 벌교사람들의 징하디 징한 삶의 이력이 새겨져 있다.
찬바람이 부용교와 홍교를 돌아 낙안벌로 사라졌다. 찬바람은 겨울소식만 전하는 것은 아니다. 어김없이 꼬막소식을 전한다. 여자만 꼬막의 맛이 들었단다. 이 무렵이면 쫄깃하고 짭쪼름한 맛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 둘 벌교를 찾는다.
포구는 살아있는 그림이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나는 ‘갯벌’이라고 답한다. 널배를 탄 40여 명의 아낙들이 널을 타고 꼬막을 캐는 모습은 숙연하다.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이 이보다 더 아름답겠는가. 갯벌은 화선지요 널배를 탄 아낙들은 붓이었다. 그림은 물때를 기다리며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피운 불이 섬그늘에 연기가 되어 사라질 무렵 시작되었다. 그리고 노을에 반짝이는 섬그늘로 사라질 때 그림은 멈추었다.
남정네들이 꼬막을 씻고 갈무리를 하는 작업선 위에 불이 켜졌다. 벌교포구와 장도를 오가며 소식을 전하는 금정호가 오늘은 꼬막 밭 작업선으로 변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아낙들은 작은 점이 되어 갯벌속으로 사라졌다. 그림은 밀려오는 바다에 잠기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림에 취해 미쳐 집을 찾지 못한 게와 운저리는 어김없이 갈매기들의 만찬 식탁에 올랐다.
만 원짜리 한 장에 천 원짜리 몇 장을 주고 나오려니 미안하다. 식당주인이 뒤통수를 잡는다. 그럼 그렇지 계산을 잘못했겠지. 이거 금방 들어온 것이여 다리 하나 먹어봐. 낙지를 칼로 다지다 하나를 뜯어 입에 넣어준다. 방안에는 등산복 차림의 아줌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낙지를 시킨 사람들이다. 쩍쩍 달라붙은 낙지발을 씹으며 식당을 나온다. 시장골목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비릿한 갯내음이 바람소리에 섞여 이명을 만든다.
김준 / 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녹색의 땅 전남새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