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는 과도기를 거쳐 진행되는 경우가 있고 돌발상황에 따라 갑자기 완결되는 수도 있다.야구에서의 세대교체를 여기에 대입해 보면 주전선수의 노쇠화와 이에 따른 부진은 팀으로 보면 어느 정도 준비기간을 거친다는 점에서 과도기가 포함된 점진형이라고 할 수 있다.이와는 달리 주전선수의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예기치 않았던 선수가 행운을 잡아 단숨에 주전을 꿰차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급진형이다.정규시즌을 ⅓ 정도 소화한 시점에서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2루수’를 뽑으라면 공교롭게도 지난해 월드리즈의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의 알폰소 소리아노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주니어 스파이비가 으뜸이다.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는 소리아노와 스파이비는 세대교체의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만약 애리조나가 9회말 극적인 역전극을 연출하지 못했더라면 이 경기의 히어로는 아마 커트 실링에게 솔로홈런을 날린 소리아노가 됐을 것이다.소리아노는 양키스가 ‘정체불명의 악송구 병’에 걸렸던 처크 노블락(현 캔자스시티)에 이어 루이스 소호라는 과도기를 거쳐 2루수로 키운 선수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소리아노는 일본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뛴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일본 무대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정작 야구의 본고장인 메이저리그에서 빛을 본 경우다.1999년 뉴욕 양키스의 팜시스템에서 출발,지난해부터 주전 2루수가 됐다.올시즌 소리아노의 활약을 보면 앞으로 2∼3년 안에 간판스타 데릭 지터를 제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물론 지터의 경우는 야구 실력 외에 여성팬을 사로잡는 외모나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 소리아노가 이를 뒤집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수치로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소리아노는 한국시간으로 5월29일 현재 아메리칸리그 타격 거의 전 부문에 걸쳐 이름을 올려놓았다.타율 7위(0.322),득점 2위(42),최다안타 1위(75),타점 7위(37)….놀라운 것은 홈런(14)에서도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어 2위에 올라있을 뿐만 아니라 누타수(138) 1위,장타율 3위(0.592)라는 사실이다.소리아노는 아직 메이저리그 1000타석을 채우지도 못했고 6년 동안 네개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낀 지터와 달리 아직 우승반지가 없어 둘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다.
하지만 양키스가 지난해 타석에서 ‘참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소리아노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본 끝에 올해의 달라진 모습을 재탄생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양키스의 의도적으로 간판 2루수로 만든 사례다.소리아노와 키스톤 콤비를 이루고 있는 지터가 스물네살의 소리아노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리아노의 성공은 지난해 포스트시즌부터 예감할 수 있었다.시애틀과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4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고 애리조나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결승타를 날렸으며 7차전에서 실링에게 8회 역전솔로홈런을 날려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양키스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던 애리조나의 스파이비는 스프링캠프에서 주전 2루수 제이 벨의 부상으로 행운을 차지한 케이스다.클럽하우스에 스파이비의 벗은 몸을 보면 보디 빌더를 연상시킨다.가뜩이나 검은 피부에 우람한 근육으로 뭉쳐 단단해 보이는 스파이비는 고등학교 때까지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다.스파이비는 98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애리조나가 1996년 드래프트에서 36라운드에서 지명한 무명의 선수다.하지만 당시 1라운드였던 닉 비어브로트가 지난해 알비 로페스와의 트레이드 때 탬파베이로 옮겼고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 계약금 1000만 달러를 돌파했던 트래비스 리는 현재 필라델피아에서 뛰고 있으니 스파이비는 성공스토리는 또다른 맛이 있다.
27세로 적지않은 나이에 성공을 경험하고 있는 스파이비는 타율 0.328로 내셔널리그 7위 뿐만 아니라 2루타와 3루타,장타수 등에서도 이름을 올렸다.가장 확실한 것은 스파이비가 내셔널리그 타자 가운데 좌완투수를 상대로 가장 강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왼손투수 상대 타율이 무려 0.481이다.당초 벨이 복귀할 때까지 임시로 2루수를 맡길 예정이었던 스파이비가 예기치 않은 성공을 거두자 변덕스러운 봅 브렌리 감독은 스파이비를 4번으로 기용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소리아노와 스파이비의 성공은 자신들의 노력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이밖에도 행운이나 구단의 전략 등 다양한 변수도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