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산 길을 걸으면서 사근행궁터로 오는 표시를 발견 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된 것을 걷기가 끝나 후기를쓰다가 발견하여 오늘 이 길을 다시 추적하여 걷는다.
아침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버스에서 내리면서까지 계속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어제 걸었던 모락산 길에서 누락된 사근행궁터를 찾아 골사그내 버스정류장부터 역으로 걷는다.
한 30여분을 걷자 나 온 고천동주민센터 앞쪽으로 삼남길 표시가 되어 있고 사근행궁터를 알리는 표지석을 찾았다.
이제 삼남길 리본을 따라 남으로 방향을 다시 튼다.
고촌동 주민센터 앞에 위치한 사근행궁(肆覲行宮)터
의왕시고천동 272-2번지 고천동주민센터 내에 자리잡고 있는 사근행궁터는 조선조 효도대왕으로 일컫어질만큼 효성이 지극했던 22대 정조가 부왕(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임시 쉬어가던 곳이다.
1760년 사도세자가 온양온천에 행차할때 이곳에서 쉬어간 일이 있었는데 효심이 지극한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서 부왕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화성으로 이장하던 1789년 10월 6일 상여가 이곳에 이르자 마중한 이곳 노인들에게 경기감사로 하여금 쌀을 나누어 주게 하고 행궁을 지으나 이름을 사근행궁(肆覲行宮)이라 한다.
사근행궁터를 출발하여 1번 국도를 가로 질러 죽 오니 의왕시청이 정면으로 보인다.
오기 전 좌측으로 질러가면 쉽게 갈 수도 있것만.... 이리로 길을 튼 것은 아마도 탐방객들의 식수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로 생각이 된다.
시청에서 약 700m정도 진행하다보니 건축물의 모양이 남다르게 특색이 있는 도서관이 나온다. 책마루라는 중앙도서관...
길 가는 도중 만난 꽃 사슴 사육장
고고리 고갯길....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프랑스군의 참전비의 모습. 수원의 지지대 고개에 위치한다.
(위. 아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2시간을 걸어 당도한 프랑스군 참전비 부근 공원에서 의당이 준비한 점심을 먹는다. 이름하여 '골뱅이 너구리 라면 정식'이다.
수원시문화원장,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지낸 심재덕씨가 만든 해우제....
심씨는 자신이 사는 집을 화장실 형태로 짓고 그 안에서 생활하였다. 하늘에서 버면 해우제는 화장실 변기 그 자체의 모습니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가 지금의 형태로 바꾼 시발점이기도 하다...
해우재에 걸맞는 모형물 앞에서... 함께 한 의당과 함께...
황금색 변은 건강함을 상징한다....
제발 이 글을 볼 때는 식사시간이 지난 후였으면 좋겠다....
동장군과 함께 한 의당의 천진난만(?)한 모습
해우재를 벗어 나면 수원의 팔색길 중 6색길이 함께한다...
지난 번에 많은 비로 이곳까지 물이 올라왔나보다.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호천 길로 접어든다.
물 흐름의 낙차
물의 정화를 돕고... 어류의 진로도 확보하기 위함이다...
어느 덧 서호입구에 도착했다.
아침 10시 부터 오후 5시까지... 쉬는 시간 포함하여 약 7시간을 걸어 온 셈이다.
서호천 길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우린 서호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화서역으로 가기로 하고 ......
항미정(杭眉亭)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진흥청을 끼고 서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축만제 쪽으로 가다가 보면, 서호가 시작되는 곳 좌측에 정자 한 기가 서 있다. '항미정(杭眉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이 정자는 조선조 순조 31년인 1831년, 당시 화성유수 박기수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건립한 지 180년이 지난 이 항미정은 현재 수원시 지정 향토유적 제1호이다. 항미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중국시인 소동파의 시구 중 '서호는 항주의 미목 같다'고 읊은 내용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자료제공:e수원뉴스>
서호의 멋드러진 일송(一松)
참새들의 피해를 막고자 논에 그물을 씌어 보호하고 있다.
비록 당초 계획대로 걷지는 못하였지만 나름 원없이 걸어 본 길이다.
이젠 화석역에서부터 시작하여 남으로 수원시 관할인 중복들 길, 화성시 관할인 화성효행 길, 오산시 관할인 독산성 길과 오나리 길, 평택시 관할의 진위고을 길과 소사원 길..... 이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삼남길은 충청남도로 넘어가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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