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지능 트레이닝
성희는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손과 발이 저절로 박자에 맞춰 움직일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성희에게는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축구실력이 뛰어난 영재는 운동장에만 두면 펄펄 날아다닌다. 그러나 영재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평소 행동이 산만하고 어수선하다는 것이다. 엄마를 능가하는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예현이는 학교에서 너무 조용해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해 걱정이고, 반대로 무척 사교적이어서 친구가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는 민찬은 너무 착해서 자신의 일보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더 열심이어서 부모님의 걱정을 사고 있다.
아이의 강점지능을 살려 약점지능을 보완하는 것이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EBS에서는 다중지능 이론가의 도움을 받아 6개월간 실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아이들의 다중지능 트레이닝에 앞서 부모를 대상으로 1차 상담에 들어갔다. 아이의 다중지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부모가 다중지능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2차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부모들은 아이들의 뇌가 지닌 고유한 파일, 즉 강점과 약점지능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기초로 6개월 동안 다중지능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트레닝을 진행했다.
윤옥인 서울 서일초등학교 교사, 한국다중지능교육학회 부회장, 황순희 서울 아주초등학교 교사, 한국다중지능교육학회 이사, 김영자 광성드림초등학교 교장, 한국 다중지능교육학회 회장, 윤옥균 광성 드림초등학교 교사, 한국다중지능교육연구회 연구원 등 네 명의 전문가는 실험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아이들의 강점과 약점지능의 특성에 대해 코칭을 했다.
영재의 경우 신체운동지능이 강점인 반면 사물을 구성하고 기획하는 공간지능이 약점으로 나왔다. 스스로도 운동을 좋아하는 대신 그림 그리기는 어려워하면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좋아하는 소재를 가지고 가족이 함께 벽에 장식을 하며 집을 꾸며 보거나 그림을 그려보라는 트레이닝 과제를 주었다. 그러나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다. 일단 아이의 반응을 지켜 보며 천천히 행동을 유도해 보기로 했다.
성희의 경우 음악지능과 자연친화지능이 강점인 반면 언어지능이 약점이었다. 아이는 상담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기는 하지만, 친구들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한다고 했다. 부과된 첫 번째 과제는 노랫말 바꿔 부르기, 음악지능이 높은 강점을 이용해 어휘력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자연친화지능이 높은 것을 활용해 강아지와 함께 계속 대화를 하게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말문을 트이게 하려는 것이다.
예현의 경우 공간지능이 강점으로 나왔지만, 인간친화지능이 최대 약점이었다. 예현이는 친구를 잘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 놓았다. 우선 사물의 배치나 색감에 민감한 공간지능을 사람들이 많은 공간과 접목했다. 박물관에서 다양한 사물을 체험하면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넓히는 것이 예현의 과제였다.
민찬의 경우 너무 착하다는 것이 흠이었다. 인간 친화지능에서 강점을 나타낸 반면 자기이해지능에서는 약점을 보였다. 친구를 도와주는게 재미있다는 민찬은 용돈의 많은 부분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쓰고 있었다. 민찬이의 문제는 자신의 욕구가 너무 억제되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취미를 적어보게 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들여 적어놓을 것을 확인해보니, 그마저 모두 가족을 돕는 일이었다.
전문가들이 아이의 특성에 맞게 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지만 아이들은 상당기간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트레이능은 계속되었다. 중간평가를 통해 본 아이들은 많은 행동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변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데까지는 도달한 상태다.
영재의 경우 여러 트렝이닝 방법 중에 사진 찍기에 관심을 보였다 신체운동지능에 강점이 있는 영재는 사진촬영을 통해 공간지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산만함이 완전히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영재는 이제 뭔가를 하고 싶다거나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성희는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트레이닝을 받는 중이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일기를 쓰는 데 표현하는 단어가 많아지고 길이도 좀더 길어졌다는 점이다.
예현이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퍼즐놀이와 꾸미기를 통해 인간친화지능을 강화시키려고 했다.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예현은 그간의 테스트를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끝까지 해보겠다고 의지를 표현했다.
민찬의 경우 가족회의를 직접 이끌어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비하면 자신을 표현하는 부분이 많이 발전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트레이닝 기간 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먼저 변화를 보였다는 점이다. 예현 엄마는 아이가 친구와 싸우거나 다툼이 있을 때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부터 지적했다. 그렇게해야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다음에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태도가 오히려 아이의 대인관계만 위축되게 만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성희 아빠는 자신이 생각했던 아이의 장점이나 약점이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다 보니 조금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아이를 살펴볼때는 부모의 선입관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영재 엄마 또한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의 변화를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고, 영재에게 맞는 양육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민찬이 아빠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아이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것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레이닝 이전의 양육방법이 부모의 기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트레이닝을 거치는 동안 부모들의 시선은 아이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니 전혀 다른 아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레퍼드 박사의 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무엇이 결여됐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더불어 부모는 아이가 갖고 있는 능력에 무조건 긍정을 해주어야 한다.
서번트 신드롬인 리안이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일수 있었던 것도 장애보다는 능력에 관심을 보였던 엄마 덕분이었다. 부모의 긍정은 서번트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아주 강력한 요소이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부모의 변화는 아이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6개월간 트레이능을 받은 네 아이를 다시 찾아가 보았다.
영재의 경우 색감에 둔하고 구성도 단조로웠던 그림이 6개월 만에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멋진 가족 앨범도 만들었다. 언어지능이 취약해 일기장의 반도 채우지 못했던 성희는 어느 날부터 일기 내용이 점점 길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삼십 쪽에 달하는 창작동화 한 편을 만들어낼 정도가 되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 늘 집에만 있던 예현이는 꾸미기를 좋아하고 색감에 민감한 공간지능을 자극해 주자 한결 자신감 있는 소녀로 변했고, 친구 관계에도 이를 적용하게 되었다. 민찬이는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져서 목록을 적어 하나씩 실천하는 중이다.
강점지능을 통해 약점지능을 계발해주니 아이들은 6개월 만에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살펴보게 된다. 어떤 부모도 아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못하는 것만 보면서 "얘는 뭘 해도 안 돼"라고 규정하면, 아이는 부모의 말대로 자신감 없고 늘 실패하는 인생을 살기 쉽다. 반면 강점지능을 살려 아이의 재능을 이끌어낸다면,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교육학자인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의 교육법과도 유사하다. 부모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이 교육법은 끊임없이 아이의 잠재된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아이의 성장에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진정한 부모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참다운 부모가 되는 첫걸음은 바로 아이를 그들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