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슨월 등반기(정승권) 위치: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펌)

[pharansan]

 

   레티슨월 등반기                      ( 정승권 )

 확보물이 연달아 빠지고 있음을 감지하며 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왜 안걸리지' 라는 의식은 내눈의 초점이 빠지는 확보물에 맞쳐지며 아주 또렷하게 머리 속에 떠 올려졌다.  
극도로 긴장된 마음은 추락이 길어질 수록 점 점 약해지고 있었고, 내몸이 멈추었을때는 매우 안정된 평온함을 갖게 했다. 왼쪽 팔꿈치에 통증과 로프에 쓸린 오른손목이 쓰라렸다. 8자 매듭으로 묶인 안전벨트 앞 로프에는 야속하게 빠져버린 찌그러진 작은 카퍼헤드, 머리가 없는 끊어진 와이어줄, 믿지 못 할 로스트애로우 나이프 하켄, 머리가 페어버린 조그만 너트가 가지런히 데롱데롱 걸려있었다.

 "형! 괜찮아?"
 "응!"
  민호와 내가 주고 받은 간략한 대화였지만, 우리는 더 이상에 할 말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이 순간 로프에 파동이 일 정도로 강렬하게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주고 받고 있음을 나를 허공에 매단 로프에서 느낄수 있었다.
 "혀-엉! 힘내라!"
   내가 떨어지는 것은 하강하며 보았는지 밑에서 작게 기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위로하려는 기범이의 외침이었지만, 지금 나를 매단 로프에서 느껴지는 만큼이나 강렬할 순 없었다. 그건 단지 그가 내게서 점 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추락을 시작한 지점에 돌아왔때는 중요한 구멍파기드릴 장비가 없어진 걸 알았다. 확보물을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스카이훅만을 위한 구멍파기 드릴을 잃어버린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당장 이곳을 돌파해나가기 위한 방법은 스카이훅 이 외는 어떠한 장비도 사용될 수 없었다. 게다가 빠져버린 카퍼헤드 자리에 빠져버린 카퍼헤드를 재활용으로 다시 설치하였기에 긴장은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조금전 처럼 카퍼헤드가 또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마음속에 요동을 쳤고, 그래서 온몸에 힘이 들어간 매우 부자연 스러워 동작은 장비 찾는 일을 곤욕스럽게 했다.
망치와 함께 걸어놓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 드릴을 허탈감과 아쉬움에 혹시나 하여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이중 기어랙의 장비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확실하게 잃어버렸음을 확인 할 수 있었던건, 민호가 홀백에 남아있는 장비에서도 찾지 못한 후 부터였다. 나는 지금 그 장비의 필요성이 절 대적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미덮잖은 카퍼헤드에 매달려서 잃어버린 드릴에 대한 안타까움을 되뇌이며, 이곳에 사용 될 수 있는 장비를 고안해 내려는 애씀과 잃어버린 장비의 아쉬움에서 벋어나려는 애씀에 집중력만 흐려졌다. 드릴 대용으로 카퍼헤드를 박는 평평한 정이 최선책이라는 점을 생각해 낼수 있을 때 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잘 파지지 않
는 정으로 예리한 훅 자리를 만들 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훅자리와 연속적인 카퍼 헤드 사용은 많은 시간을 걸리게 했으며, A4 구간인 그 지점은 통과 했을 때에는 나를 확보하는 민호 모습이 먼 발치에 보였고, 기범이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김시영부장과 한화정씨와 함께 땅거미가 깔린 엘켑 바닥에 다 내려섰음도 알았다.

 오늘도 포타렛지에서 저녁식사를 다 마칠 때 쯤 김건준씨에게 무전 연락이 왔다. 
 "오늘 등반 어땠어요?"
 "나 떨어진거 봤습니까?"
 "못 봤어요, 떨어질 때 얘기하고 떨어지세요. 그래야 카메라로 잡죠."
 "살벌한 루트라 자주 떨어질 것 같으니 카메라 드리데고 잘 기다려봐요"
 "그래도 이왕이면 싸인을 주세요. 하! 하! 하!"
 "허! 허! 허!..... 내려간 사람들은 어때요."
 "무사히 잘 내려왔습니다."


요세미티 엘켑피탄(이하 엘켑)을 오르자는 제의가 나에게 처음 들어온건 지난 4월 노스페이스의 정상욱 부장님으로 부터 였고, 대신 가장 어려운 루트여야만 했다. 등반계획의 본격적인 진행은 매킨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6월 말, 디지틀 조선의 정용권기자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디지틀 조선의 인터넷 산 싸이트 오픈 때를 맞춘 인터넷 생중계의 이벤트성 등반 계획은 1시간 짜리 방송용 다큐멘터리 촬영도 포함되어있었으며, 삼성생명의 후원을 받아 등반대원 4명과 취재기자 3명으로 구성하기로 계획 했다.
등반대원중에 1명은 이번 등반대의 후원사인 삼성생명의 미국 뉴욕지부장인 김시영씨가 내정되어 현지에서 합류키로 되어 있었고, 취재기자는 월간산 정정현기자, 스포츠조선 송철웅기자, 디지틀조선 김건준PD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대원 2명은 내가 선발해야 했고, 그래서 막강해야할 정예대원 구성은 간단했다. 2명의 대원 중에 1명은 나와 함께 엘켑을 여러번 등반한, 경험 많은 영원한 빅월 파트너 이민호 였고, 다른 한명은 작년 빅월 대회에서 우승한 김명철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거사를 앞두고 한 두개 정도 일이 삐뚤러지지 않으리 없었다. 명철이는 굳게 자신했던 미국 비자가 출발하기 이틀전에 반송되는 황당함을 당하게 되었다. 어쩔수 없이 시급하게 다른 대원으로 교체해야만 했는데, 어려운 A5+의 Reticent Wall 등반을 위한 대원선발의 신중함이 떨어지고, 게다가 떠나기 이틀전 교체할 적당한 대원을 영입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다.
시급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와 2년전 엘켑의 Sea Of Dreams을 등반한 미국 L.A에 사는 기범이에게 대원으로 합류하자는 제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바쁜 미국 생활을 잘 모르고 등반제의를 한다는 건 그에게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는 일이었다. 전화 연락도 잘 되지 않는 그에게 한가닥의 기대로 인터넷 메일만 보내고 전전긍긍하고 있을때에 외국어대학교 산악부 출신인 한화정이라는 여성 대원을 추천 받게 되었다.
가정주부라는 핸디캡을 안고있는 그녀는 모든일에 자신이 있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대학시절 요세미티 암벽
등반의 꿈 이야기들은 그녀가 이번 엘켑등반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원정대는 7명으로 꾸려졌다.
  또 다른 하나의 원정대가 우리를 지원해주기 위해 동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원 가족들의 요세미티 관광 원정대인데,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나와 친구 가족의 요세미티 등반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고, 정정현 기자와 송철웅 기자 가족도 때마침 계획되어 있었다. 이렇게 가족등반대가 꾸려졌고, 인원도 우리 대원들보다 3명이 더 많은 10명이 우리와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합동(?) 원정대의 인원수는 총17명의 대규모 요세미티 원정대가 꾸려지게 되었다.


요세미티 벨리 써니싸이드 캠프장의 고요함은 아이들이 떠들어데는 통에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은 텐트 싸이트를 지정 받은 다음날 부터 이곳 고요함에 잘 적응 되어 졌다.
7월28일, 써니 싸이드 캠프장에 도착한지 이틀이 지난 아침, 뉴욕에서 온 김시영부장이 마지막대원으로 합류했다. 서울에서 인터넷 메일로 인사를 나눈 정도였을 뿐,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 로얄아취스의 작은암벽에서 암벽등반을 하며 적응훈련을 했다. 거구이긴 하지만 20년 전 대학시절부터 암벽등반을 해온 몸이라 움직임이 정확했다. 총각시절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울려놓음직 했을 체구와 준수한 외모는 암벽등반을 대하는 순순한 열정에서 그 모습이 건장한 시골뜨기 촌 머슴 같이 보였다.

새들도 깨어있지 않은 새벽에 텐트를 두둘기며 누가 나를 찾았다.
기범이 였다.
오늘 새벽에 이곳 요세미티 벨리에 도착해 나를 찾았다고 한다. 반가움과 황당함이 함께 찾아들었다. 나는 그가 불쑥 나타나버려 계획된 일이 뒤쭉박쭉이 되어질 상황을 예측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범이가 와 주었으니 등반이 쉽게 풀릴 수 있을 거라는 분명한 예측은 나의 흥을 부추겼다. 그래서 부족한 장비를 기범이가 L.A 남가주 산악회 박경수 형에게 부탁해 지원받기로 하고, 적응시간을 연장하여 총 5명이 등반하기로 등반계획을 바꾸었다.
 
  우리가 Reticent Wall 루트를 오르려고 계획한 이유는 간단했다. 최고 인공등반 난이도를 가진 엘켑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켑에는 A5+ 난이도를 가진 2개의 가장 어려운 루트가 있다. 그 중 하나인 Reticent Wall은 최근에 초등된 루트라 이곳 클라 이머들도 가장 어려운 루트로 인정하고 있었고, 또 하나의  A5+ 루트는 오래전에 초등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등반으로 확보물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을거라는 점을 감안해 조금 쉬울 거라는 평이었다. 이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어쩌면 이벤트성 등반에 맞는 좀 더 쉬운 루트를 택하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도 갖게했다. 하지만 어찌 클라이머의 마음이 상업적일 수 있겠는가 싶었고, 또한 정작 나의 자존심은 Reticent Wall을 벋어날수 없었다.

Reticent Wall의 등반 시작지점은 New Dawn이란 루트를 통하여 7피치 올라선 Lay Lady Ledge에서 부터 였다.
그래서 이 루트의 등반거리는 총 12피치의 비교적 짧은 루트이다. 그러나 New Dawn의 7피치를 포함한다면 정작 등반해야 할 거리는 총 19피치에 이른다. 그래도 등반거리가 엘켑 중앙에 나있는 평균 30피치 정도의 루트들에 비하면 짧은 피치 였다. 그렇다면 이  Reticent Wall의 한 피치 등반거리가 매우 길거라는 판단을 서게했고, 그래서 우리가 준비한  60미터 로프의 길이가 부족함으로 인해서 등반이 매우 힘들어지거나, 어쩌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예측까지 하게되어 그 해결책을 찾아야 만 했다.

 New Dawn은 오래된 루트라 A3구간은 어렵지 않았지만, 다섯명 불량의 식량과 물 그리고 장비의 홀링은 역시 어렵고 힘들었다. 강열한 태양열과 유난히 후덥지근한 더위는 마시는 물의 양을 많게했고, 단지 하룻만의 더위와 갈증에 지친 우리는 포타렛지에서 만나는 서늘한 밤만이 더위와 갈증을 시켜주는 유일한 포근함이었다.
이틀에 걸쳐 등반한 New Dawn 등반의 어려움은 1인 정량의 물만 먹어야 하는 단지 물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Lay Lady Ledge에서의 두 번째 맞는 밤은 지난 포타렛지에서 황홀한 하룻밤의 추억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물통을 입에 대고 들이 마시고 싶은 갈증의 밤이었다.

 "형. 물을 확인해야 겠어요.?"
 등반 이틀째, 그동안 씩씩했던 기범이 말투가 이번엔 자신감 없게 들렸다.
 "물이 어느 정도 남은 것 같으니?"
 "홀백을 다 뒤져 봐야 겠어요."

 Lay Lady Ledge는 거대한 넓이의 테라스 였지만 돌무덤이 여기저기 나있어 옹색했다. 우리 다섯명이 둘러 앉아 물에 대한 대책을 세우며 옹색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준비한 53리터의 물 중에 이틀동안 우리가 마신 물은 23리터였고, 남은건 30리터 였다.
앞으로 5일을 더 등반해야 하는데 거의 반을 마셔버린 것이다. 남은 물의 양으로는 턱없이 모잘랐다. 그리고 내일 부터는 본격적인 Reticent Wall에 등반이 시작되는데, 부족한 물로 조급한 등반이 될 순 없었다.

 "내일 물을 보충하러 내려갔다가 모레 올라오죠."
 "정대장 그러지 말고 내가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가느게 좋을 것 같아요."
 "형. 이렇게 하죠, 내가 김부장님과 화정씨와 함께 내려 갈테니 민호하고 등반하세요, 그러면 남은 물가지고 충분이 두 사람이 등반할 수 있을 거예요."
 "기범이형! 형이 등반하고 내가 내려가겠습니다."
 대장인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대원들에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기범이와 김부장님의 정확한 판단과 계속되는 설득력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내가 내려가는 것은 우리의 등반을 성공시키기 위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경험많은 이기범씨가 내려가 주어야 하강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범아 내려가는 일이 쉽지않을 텐데?"
 나는 기범이에게 나의 결정을 넌즈시 건네는 말투였다.
 "형 내가 누굽니까! 엘켑 하강 전문 가이드 아닙니까!"
 그는 노즈를 자기집 드나들 듯이 했고, 게다가 엘켑타워에서 수없이 하강한 경험이 풍부한 하강 전문 가이드임이 분명함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인공등반에서 볼트길은 쉬어가는 구간임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 루트의 볼트 간격은 너무 멀어 하나 잡기가 하늘에서 별을 딴다고나 할까, 볼트 하나 잡을 때 마다 물 한모금씩 마셔대야 했다. 물론 치터스틱이 있다면 쉽겠지만, 그런거 가지고 다니면 우스운 꼴이라 싫었고, 두 번재 볼트길을 지나고 부터 제발 볼트길만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 뿐이었다. 키가 2미터가 되는 사람이 볼트를 설치했다고 하더래도 다음 볼트를 박을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키가 3미터가 되면 모를까, 그래서 나는 이 루트가 볼트길과 피치 확보용 볼트는 내려오면서 박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기에 이르렀다. 헌데 이보다 더 황당한 문제는 마지막 볼트에서 크랙으로 이어진 거리가 너무 멀고 게다가 아무런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매끈한 바위면 뿐이었다.
이건 아마도 키가 4미터 쯤 되어야만 그 크래속에 손을 벋어 장비를 설치해 넣을 수 있을 거리였다. 그래서 등반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찌그러지는 자존심이 마음속 깊이 움툴게 되었다. 
위쪽 어느 한 곳에 포인트 훅 구멍이 있을 것 같은 찌그러진 자존심에 비롯된 예측만으로 줄사다리의 제일 높은 단을 밟아 갈비뼈가 휘도록 스카이훅을 쥔 손을 뻗쳤지만 그곳에 훅이 닫지 않았다. 다시 손 끝에 훅을 겨우 받쳐들고 밀어올렸더니 예측데로 훅이 걸렸다. 그러나 이것에 체중을 싫기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훅이 흔들리지 않을 엉겨붙은 자세로 살며시 올라가보니 '추락은 신의 뜻데로'라는 장비를 사용해야만 할 바
위 흡집이나 다름없는 드릴로 파놓은 훅 사용의 자리였다.
 이 루트는 인공등반기술의 극치를 나타내게 하려고 극도의 어려운 동작을 위한 너무 인위적으로 만든 루트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했고, 그래서 등반을 해야할 이유와 가치를 점점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짜릿함을 맛본 후에 그래도 한번 더 해보고 싶은 부족한 인간의 소박한 본능은 어쩌랴.
  더위, 갈증, 한시도 풀리지 않는 긴장감에 몹시 시달려서 인지 내 몸의 기가 쇠약해 진 것 느꼈다. 먹히는 건 물밖에 없었다. 하루에 2리터의 물도 부족했다. 포타렛지에 누우면 꼼짝도 하기가 싫었다.

 오늘도 김건준씨에게 무전기로 연락이 왔다.  
 "오늘 등반 어땠어요?"
 "말이 필요 없는 루트 같아요."
 "무슨 뜻이죠?"
 "루트를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아서 등반에 의미를 갖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물도 부족할 것 같고, 그래서 어쩌면 다른 루트로 우회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이대로 써서 올려도 될까요?"
 "그래요. 그리고 루트를 바꾸는 건 내일 더 등반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정대장님이 잘 결정 하시겠지요."
 "그래요. 내일 다시 연락 하죠"
 "....."
 "형 기범인데, 형이야기 다 들었어, 끝까지 밀여 붙여요, 물은 내가 정상에서 써포트 할테 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범이에 간절한 바램은 이해 할 수 있었다. 등반에 의미와 어려움보다는 부족한 물이 가장 큰 문제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Reticent Wall의 등급 표기는 많이 잘못되어 있었다. 등반를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동안 모든 구간의 느낌이 A3 이상이였다. 그런데 왠만한 곳은 등급표기 조차되어있지 않고, 표기되어 있는 구간은 2등급 정도 낮게 표기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웃기는 루트였다.
너트 와이어에 리벳행거를 카라비나로 연결해 테이프로 붙여 빳빳이 세우는 일은 쉽지만, 그 것을 볼트에 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나이프 하켄을 박을 때에 들뜨는 바윗장으로 바로 밑 체중 실린 하켄의 움직임은 소름이 끼쳤다. 스카이훅을 집어 던지며 걸리기 바라는 일은 당혹스러움이 였다. 60미터 로프를 거의 사용했을 때에 빠져나오지 않는 로프는 짜증스러움이었다. 그리고 피치 종료 확보용 볼트에 줄사다리를 걸었을 때 사그러드는 긴장감은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오늘 등반을 마쳐야 할 Wino Tower에 올라 섰을 때 나는 결정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회 할 건지 말아야 할 건지를, 그래서 조금 후면 무전기로 연락 올 김건준씨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정대장님 김시영입니다."
 "김부장님이시군요 예 정승권입니다."
 "컨디션 어떻습니까?"
 "예 아주 좋습니다."
 "오늘 이기범씨하고 화정씨하고 나하고 엘켑 정상에 물을 데포시켜 났습니다."
 "아! 그러셨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6피치중에 가장 어려운 A5+ 구간이 마지막 피치에서 두 번째 피치에 있었 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회 할 수 있는 루트가 있었다.
 "형 기범인데 물이 지금 얼마 남았지?"
 "오리터 쯤 될 것 같다."
 "형 어떻게 할까. 내가 위에서 물을 내려 줄까?"
 "아니야 아직 버틸 수 있고 내일 더 등반을 해 보고 결정 하겠다."

 A4구간을 넘어서는 동안 내 물통에 물은 벌써 바닥이 났다. 그래도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물통을 흔들어됐지만 물에 느낌이 없었다. 그래도 아쉬워 두껑을 열어 입에 대고 물통 꽁무니를 처들었지만 몇 방울의 물이 입속으로 간질럽게 떨어졌다. 나는 지금 수도 꼭지를 입에 물고 원없이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만 간절했다.
 버석버석거리는 입속을 혀로 햘터가며 홀링을 마쳤을 때 장비를 회수하며 쥬마링하는 민호가 발치 밑에 다달았다.

 "민호야 물 좀 있니?"
 "조금 있는데 형 줄건 없지.....이"
민호는 빈정거리며 자신에 물통을 내게 건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형 아까 밑에서 보니까 홀백 밑이 젖어 있는 것 같은데."
 "뭐.....어!"
  앞으로 이틀을 더 가야 하는데 우리에게 남은 물은 2리터밖에 남지 않았다. 쏟아버린 물에 대한 욕심은 갈증만 더욱 부추겼다. 그리고 어느덧 이 루트에 잘 적응되어 졌고, 이제는 등반에 어려움은 문제 될게 없었다. 단지 문제라면 버석거리는 입속과 타는 목마름이었다.
기다렸던 김건준씨 대신 기범이에게 무전기로 연락이 왔다. 

 "형 어때요? 물은 얼마나 있지?"
 "이리터 정도"
 "형 내가 내일 화정씨하고 정상으로 다시 올라 갈께요."
 "그래줬으면 좋겠다."
 "김부장님은 조금전에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김건준씨가 배웅 갔어요"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먼저가서 미안하니 형이 내려오면 말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형수님이 바꺼달라 하네요"
 "응"
 "형 저예요!"
 "여행 많이 했어?"
 "예. 당신 등반 상황이 조금 어렵다고 하던데, 몸은 어때요?"
 "아엠 파인!"
 "안전하게 등반하고 잘 내려요세요. 우진이가 바꿔 달래요"
 "우진이니 아빠야!"
 "아빠 언제 내려와?"
 "두밤만 자면!"
 "빨리 내려와야 돼! 안녕!"

 이 루트를 우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미 이건 나와 민호만의 등반이 아니었 다.  
 남은 2리터의 물로 일정한 2미리 넓이의 30미터 크랙은 물도 장비도 모두 부족했다. 너 트를 망치로 때려박는 치욕적인 장비기술을 그것도 여러번 구사해야 했다. 이 좁고 긴 크랙 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러프 하켄을 아껴야만 했기에 크랙의 바위 모서리를 정으로 깨서 작은 너트를 끼워넣을 수 있는 새로운 등반기술이 부족한 장비에 대한 절박한 심정에서 고안 되어 기뻤다. 하지만 러프 하켄을 모두 사용해 버렸음에도 좁은 크랙을 통과하지 못했다. 몇개 남지않은 카퍼헤드로 이궁리 저궁리하는 동안 밀려드는건 어둠과 지독한 갈증 뿐이었다.

 

"형 기범이예요. 줄내린 위치가 맞아요?"
 무전기에서 구세주 같은 기범이에 목소리가 들렸다.
 "기범아 물 좀 내려라!"
 "형 조금만 기다려요!"
 정상으로 이어지는 10피치 종료지점에 확보할 카라비너 조차 남지 않고 도착했을 때 어두
운 밤 허공에 테이프로 동여맨 물통 한개가 로프에 데롱데롱 매달려서 내 머리위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기범아 스톱!"
 하지만 어두운 밤 허공에 멈쳐진 그 물통은 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손으로 잡을 수 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