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歸去來辭
내게 시간을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지느러미가 주어진다면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 삼백팔십 일번지
호적등본 속의 긴 주소 같은 강물을 따라 달려가고 싶네
달려가 막혀버린 시간의 아궁이를 털어 군불을 피우고
신평장 가신 守자 彬자 우리 할아버지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싶네
술취한 할아버지 손에 들려올 소금 절인 갈치 한 마리를 기다리고 싶네
할머니는 새벽마다 떨어진 알밤 몇 알을 주워 잠든 나를 깨우고
작은 양팔을 펼치며 더 작은 어린 새가슴을 내밀며 만나고 싶은
흐드러지게 떨어진 감꽃을 헤아리며 시작하던 이슬처럼 맑은 아침과
마당 가득 찾아오던 고추잠자리들이 노을보다 붉게 타던 저녁이여
밤이면 젊은 할머니의 늘어진 젖을 막내고모 몰래 훔쳐 만지며
벚꽃이 아름답다는 먼 도시에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죽은 여동생을 그리워하고 싶네
호롱불 아래 할아버지 늦도록 춘향뎐을 읽으시고
밤이면 박꽃처럼 피어나는 고모들 목소리 높여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다는 그 노래 부를 때마다
어린 마음의 두레박에 가득 담긴 슬픔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쏟아져
에미소가 팔려간 어린 송아지 같은 두 눈을 하고 그 별빛을 담았네
그런 밤이면 오줌잠에 깨어 괜한 잠투정으로 멀리 있는 어머니를 찾고
불매야불매야 할머니의 따뜻한 자장가 가락이 눈꺼풀을 덮어야 잠이 들던
아랫목 이불 속의 온기 같은, 그 온기 속의 편안한 잠과 같은 그곳으로
유년의 강으로 모천회귀하는 한 마리 은어가 되어 돌아가고 싶네
돌아가 할아버지의 손자가 되어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저물 무렵 사립문 밖에 서서 그들이 내 이름 길게 불러주었듯이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 이 세상으로 불러 다시 옛집을 이루고 싶네
사라지지 않는 세상의 영원한 집 한 채 이루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