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그동안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지만, 이 읽기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기>는 말 그대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기록된 의도 그대로 읽어보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경읽기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이 글이 교회를 세우는 데 덕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고자 마음먹고 시도하는 이유는 먼저 나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한 인생여정이요, 둘째는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이 글을 다시 연재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확신에 찬 한 마디를 던지자, 여자가 그 나무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단순히 눈길이 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은 사실 여자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는 수 많은 나무의 실과들이 지천인데 굳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뱀의 말을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동안 왜 이 나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의아해할 정도였습니다.
창세기 2:9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 나는 모든 나무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었습니다.
창세기 2:9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every tree that is pleasant to the sight, and good for food)
창세기 3:6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하나님의 말씀과 여자의 말!
뭐가 달라졌을까요?
한글번역에서는 '모든'이라는 단어가 빠져서 아마 보이시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라고 하셨는데, 여자의 말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그" 나무라고 하고 있다는 것, 보이십니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여자는 이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것에만 꽂힌 것입니다. 다른 모든 먹음지도 하고 보암직도 한 나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에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한 마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 한 나무로 보였던 것입니다. 뱀의 말은 통했습니다. 뱀의 유혹은 적중했습니다. 여자의 마음을, 여자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제 뱀의 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여자가 하는,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장면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그 정체는 그저 사람을 속이는 역할만 할 뿐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강제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뱀의 간교함입니다. 그러므로 뱀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선택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요...
마침내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불순종이요, 죄의 현장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요, 가장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노아의 홍수보다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보다도, 20세기 1,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큰 사건이자 뼈아픈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로마서 5:6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요?
첫째는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변개의 사건이 여자의 마음에서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 책임은 남편에게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당사자는 남자였고, 그가 여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知)에 대한 사랑" 이거 뭘까요? 바로 철학입니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앎에 대한 갈구함이 있습니다. 뱀은 이것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고, 들추어낸 것입니다.
철학의 영어 명칭 'Philosophy'(필로소피)는 고대 그리스어 필레인(Φιλειν, 사랑하다)과 소피아(σοφία, 지혜)의 합성어로써 직역하면 '지혜를 사랑한다'이다.(철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철학자들만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단순한 앎 그 자체가 아닙니다.
잠언 1:20~23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지혜는 인격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를 향한 사랑을 뱀은 단순한 '앎'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선과 악을 아는 것(know)이 지혜(wisdom)가 아닙니다. 세상의 근본,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knowledge)일 뿐입니다. 지혜는 하나님 자신이요, 그분께만 진정한 앎이 존재합니다.
여자가 뱀에게 속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다하더라고 남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었더라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그가 여자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이후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때에 남자가 머리로서 몸의 행동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인류는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찬란한 인류문명을 이룩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희생도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픔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 이 모든 것은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의 씨앗, 첫 사람 아담의 선택이 없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