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파편들(2) -엄홍길 대장에 관한 추억
2009년 7월부터 이어온 인연.
당시 몇년간은 등산이나 휴먼재단 모임을 통해 종종 안면을 익히곤 했지만 근년엔 내 개인사정도 있어 그와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쨋든 내겐 결코 잊을 수 없는 분. 나 역시 등산을 좋아해서 더욱 그렇다.
2009년 7월 13일 오후 3시. 필자가 <월간 오늘의 한국> 사장 시절 인류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 신화의 주인공, '산악인의 전설' 엄홍길 대장을 1시간 이상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하필 그날은 여성산악인 고미영 대장의 실족 비보가 전해진 다음날이었다. 장충동 엄홍길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핏줄 같았던 동료를 산에 묻은 참혹한 슬픔이 다시금 가슴을 후벼 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달 여 전에 미리 약속한 인터뷰였던 터라 기꺼히 무려 1시간 이상 인터뷰에 응해줬다. 다른 방에는 KBS, MBC 등 유명 방송매체들이 고미영 대장 사망 소식에 대한 엄홍길 대장의 짧은 한마디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히말라야에 38번 도전했고 그 가운데 정상 정복에 성공한 것은 20번. 18번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10명의 동료를 잃었다.
“분명한 건 욕심을 부리거나 평상심, 초심을 잃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게 했어요. 16좌 등정 제가 잘나서? 아닙니다. 기술력, 체력, 정신력 등 완벽한 조건을 갖췄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수많은 성원과 동료들의 희생이 있었고 결국은 산이 저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8,000m급 이상은 히말라야 신이 정상으로 이끌어주고 밀어줘야 가능합니다.”
처음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그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실패가 지금의 그를 만들어냈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지혜도 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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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의 인터뷰 인연으로 나는 그 후 등산모임이나 엄홍길 휴먼재단 행사에서 종종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2012년 3월이던가? 필자가 '나무도 뜨거운 가슴은 있다' 시집 출판 후 그에게 책을 보냈을 때 시집발간을 축하한다면서 전화가 왔다. 내 졸시집 속에는 특히 '그 꽃'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는데 그 시 내용 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엄홍길 대장을 암시하는 싯귀가 있었다. 바로 엄 대장이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몇 번 보았다는 '설연화'라는 꽃을 노래한 시였다.
그 꽃
히말라야 6천미터 고지에서 피어난다는,
눈 속에서 꽃을 피울 때 주변의 눈을
자신의 열기로 녹여버린다는,
어느 산악인은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몇 번 보았다네 그 꽃
어둠을 밝히는 촛불같이 찬란한,
난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눈에 선하네 그 꽃
내 마음 속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언제부터였던가 당신은 내게
한 떨기 눈부신 설연화 雪蓮花
내 하얀 가슴을 녹이며 피어나는,
바로 그 꽃이었네 당신은,
평균 5,000미터가 넘는 곳에서는 아무 것도 자랄 수가 없다. 오직 눈과 바람과 강추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거의 6,000미터 지점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설연화'라는 꽃이다. 꽃봉오리를 닫고 있다가 눈이 내리면 봉오리를 연다는 설연화는 눈속에서 꽃을 피울 때 주변의 눈을 자신의 열기로 녹여버린다고 한다.
엄홍길 씨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동안 몇번 설연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때 마다 함께 안나푸르나를 오르다 먼저 간 지현옥 등 동료 산악인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히말라야 흰 산을 너무도 사랑했던 지현옥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설연화로 다시 피어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가운 땅을 그녀의 온기로 따뜻하게 데우면서 말이다.
엄홍길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그의 애창곡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라는 휘버스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현옥 등 먼저 간 동료들을 가슴에 묻고 심장이 터질 듯 속으로 흐느끼면서...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 사이로 떠오네
떠나가버린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 그 사람
다시 못 올 머나먼 길
떠나갔다네
(후략)
그는 그 '설연화' 에 관해서는 물론, ' 백두산 가는 길' 이란 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007년 7월 중국 단동-집안을 거쳐 서파에서 북파로, 5호경계비-청석봉-백운봉(2,691m)-녹명봉을 넘어 8시간 이상 백두산 종주산행을 했던 기록을 시로 쓴 글이었다. 내가 오른 백두산 산행 코스가 엄홍길 대장이 갔던 루트와 비슷하다면서 통화가 조금 길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 엄홍길 대장은 네팔에 연이은 휴먼스쿨 건립 등으로 더욱 바빠졌고 난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방송이나 신문잡지 등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근황 만 보고 반가워할 뿐이다. 그는 이미 네팔 산간오지마을에 무려 17개에 이르는 휴먼스쿨을 건립했고 병원도 세웠다. 또, 국내적으로는 DMZ평화통일 대장정, 엄홍길배 전국청소년 스포츠클라이밍대회, 산악인유가족 장학사업 등을 이끌어오고 있다. 2023년에는 국내유일의 국제산악영화제인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집행위원장도 맡았다. (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