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낙성대역에서 무당골까지
서울대 입구다 낙성대다 하면 40여년 전의 봉천동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지금의 봉천동을 가보면 너무나 크게 변한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1969년 4월에 서울에 와서 지금까지
계속 45년을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69년 겨울 사촌 누나가 봉천동에 산다고
해서 노량진역전에서 요금이 10원인 입석버스를 타고가다 봉천극장 앞에 내려서
봉천동 모습을 보니 능선을 이룬 반원모양의 타원형인 동네였고
지붕에 루핑을 씌운 판자집 촌이었으며 물어물어 사촌 누님을
찾아가니 지금 서울대학교가 들어선 계곡의 움막촌에 살고 있었는데 그 정경이
너무나 안돼보여서 누님과 함께 통곡과 같은 울음을 터트렸던 아린 기억이
떠올라 그 자리가 어딘가하고 살펴보고 헤아려봐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잘 살아보자는 기치아래 개발시대가 시작되던 그 때 동숭동의 서울대생들이
도포자락에 갓을 쓰고 단봇짐에 지팡이를 짚는 그야말로 죽장망혜(竹杖芒鞋)
단봇짐을 한 꼴로 대모가 일곤 해서 세간에 회자(膾炙)되곤 하다가 얼마 안지나서
사촌누님이 살던 계곡위에 골프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 서울대가 들온다고 해서
봉천동 온동네의 민심이 찬, 반으로 엇갈려 들썩거리곤 했었지요.
오늘 제가 담아온 풍경은 유실물건(遺失物件)을 찾는 관계로
낙성대역에서 무당골까지 입니다.
산유화(山有花)
이재호:작곡
남인수:노래
1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피네
봄이 오면 새가 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만은 님은 어이 못 오시는가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2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지네
꽃은 지면 피련만은 내 마음은 언제 피나
가는 봄이 무심하냐 지는 꽃이 무심하더냐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2014-01-2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