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8. 1. 9. 21:32
부산 비석마을[서구 아미동]
공동 묘지위에 삶의 터가되다.
부산시 서구 아미동...이곳은 국제시장과 부산대학병원을 끼고 있어서 부산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가봤을 곳이다.
아미동 2가의 산복도로변의 비석마을은 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 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마을을 꾸렸고, 그 이전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이곳은 1910년 한일합병 후 일본인들이 조선 수탈의 목적으로 거대한 군사시설 매축(埋築)과 철도창 및 부산역 준공과 함께 발전소를 건립하게 되자 따라서 이곳은 대규모의 일본인들이 남포동과 광복동에 군락을 만들어 거주하면서 소위 국제시장상권이 이뤄지게 되고 가까운 곳에 그들의 공동묘지가 있게된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은 조상의 무덤을 버리고 귀국하게 되자 방치하게 되었는데 6.25 동란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남쪽 부산으로 몰려와 당시 수용인구 40만의 부산이 200만으로 갑자기 증가하게 됨으로 피난민들은 이 공동무덤에서 주거지로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의 처절한 당시 삶의 모습들이 생생히 담긴 이곳 공동묘지 터에 조성된 아미동 비석마을은 근대에 이러러 이곳 마을을 역사 탐방관광지로 새롭게 정비를 함으로서 최근 사진 동호회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메고 많이 찾게 되어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먼리서 바라 본 부산시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전경.
▲묘지 위에 집이 지어져있다.
▲위의 확대 사진
▲비석 위에 건물이 축조되어있는 집.
▲묘의 상석이 가스통 받침대로 놓여있다.
▲건축물 밖으로 조금 나와있는 이 비석은 LPG 가스통 밭침대로 요긴하게 자리잡고 있다.
▲옛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산자들의 주거 공간으로 바뀐 이곳 놀이터 계단이 비석으로 조성되 있다.
▲묘지의 비석과 상석들이 주택의 축대로 사용된 곳입니다.
▲문향이 있는 묘지석이 축대로 사용되어 있다.
▲비석이 주택의 지대 밑에 뭍혀있다.
▲어느집 담에 반쯤 묻혀있는 비석이다.반세기가 넘도록 개발없이 원형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아미동
비석 마을이다.
▲묘의 상석으로 보이는 위에 불상이 놓여있다.
▲이 집의 축대에도 묘지의 여러 비석이 보인다.
일본인들이 조상의 묘를 버리고 귀국하는 바람에 그들 조상의 묘가 이른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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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려군(덩리쥔)이 부른 일본어 판-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1985. 12.15 동경 연창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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