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프랑스, 1887-1968)
프랑스 출신의 미국 화가
대표적인 다다이스트로 전위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모나리자 얼굴에 수염을 그린 'L.H.O.O.Q'에서 처럼 기존의 가치를 조롱하였고, 레디 메이드를 이용한 '샘'을 통해 일상품과 예술품, 그린다는 의미, 장소 등 여러 가지의 사변적 미술을 이끌어 냈다.
1913년 뉴욕 '아모리 쇼'에 출품했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로드 릴리프', '레프리카'등이 있으며, 자전거 바퀴를 의자 위에 거꾸로 고정시켜 관객이 돌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작품은 후에 '키네트 아트'에 영향을 준다.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미술의 형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미술에 대한 개념 자체에 혁신을 가져온 뒤샹은 20세기 마술에 있어 피카소 만큼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뒤샹의 형제들 모두 예술가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화쥘이아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1907년에는 유머리스트 작가전에 참가하기도 하고 1910년까지 신인상주의, 나비파,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린다.
1908년 작인 사과밭의 빨간 집, 검은 스타킹을 신은 나체의 여인 등이 그 예이다. 퓌토그룹의 토론을 통해 입체주의 원칙을 받아들이게 되나, 1911년 작인 체스를 두는 사람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입체주의 미학에 형태와 공간의 투명성을 첨가시키며, 1911년 작인 사과나무 위에 부는 바람에서처럼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둔다. 1912년 살롱 데 엥데팡당에 출품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로 뒤샹은 고심하고 있던 입체파, 미래파 등 당대의 미술경향에 결별을 고하게 되며 왕과 왕비, 초코렛 분쇄기, 홈통 등의 작품을 계속 발표한다.
1913년 뉴욕의 '아머리 쇼'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출품하여 큰 물의를 빚었다. 같은 해에 최초의 '레디 메이드'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는 자전거 바퀴를 등없는 작은 의자에 고정해 놓은 것으로 그는 이런 일상용품을 '예술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1915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샹은 '샘'을 발표하여 또 한 차례 물의를 일으킨다.
이 때부터 채택된 주석 조각을 유리판에 붙여 만든 유명항 작품 '그녀의 총각들에 의해 벌거벗겨진 신부, 바로 그것...'의 구상에 착수했다. 1923년에 '미완성'인 상태로 이 작품은 완성되었다. 미국에서 뒤샹은 피카비아와 함께 다다운동을 미국에 전파했으며 만레이와 공동으로 '잡지291'을 펴내기도 했다. 1918년에 그의 마지막 회화작품 '너는 나를...'을 완성한 후 회화와 결별했다.
1920년대 초에 움직임을 중시하는 광학적 작품을 발표하고 점차 모든 예술 활동과 손을 떼기 시작한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자들이 활동에 많이 협력하여 1938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초현실주의 전시회의 주요기획자로 1200개의 석탄자루를 매달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