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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경재 의원 탈락,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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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인천 서강화을 이경재 의원이 탈락하고, 인천 중.동.옹진에 공천을 신청했던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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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서강화을 공천 이규민[?]
제 생각을 적어보기 이전에,
저라는 사람에 대한 소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 이름은 한자로 李圭敏입니다.
1949년 6월 23일에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동아일보사 화정평화재단 상임이사 겸
동 재단의 21C 평화연구소장 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1956년부터 6년간 인천 송림초등학교에 재학했으며,
1965년에 인천중학교를 졸업,
1968년에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같은해 연세대학교에 진학, 화학을 전공하여 1975년 학사학위를 획득했고,
재학시절 학생회장을 지냈습니다.
육군으로 만기전역 하였고,
1969년 3월부터 1972년 2월까지 복무하였습니다.
1976년 1월 동아일보사 사회부의 정치부 방송국 기자로 재직하였으며,
1980년 8월 신군부에 의한 강제 해직으로 동아일보사를 퇴직했습니다.
1981년 4월 대우그룹에 입사하였으며, 기획실-비서실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88년 2월, 동아일보사에 복직하게 되었으며 경제부 차장을 지냈습니다.
1995년에는 미국(뉴욕) 특파원으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4월에는 동아일보사 경제담당 논설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99년 2월에 경제부장이 됩니다.
2000년 5월에 다시 경제담당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02년 5월에는 논설위원실장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2003년 동사 편집국장, 2005년 4월 대기자(칼럼니스트)로 활동하였으며,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동아일보에 '이규민 칼럼'을 집필하였습니다.
1999년~2002년은 정부추천으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사외이사를,
2003년~2004년에는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2005년부터 역시 정부추천으로 국무총리실 복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2006년부터 LG 상남언론재단의 이사를, 역시 2006년도부터 대우건설 사외이사,
2007년 8월부터 한국 시장경제포럼 이사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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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경제부장을 거쳐 경제 대기자에 이르기까지 전 인생을 언론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논설실장, 편직국장을 역임하며 '100년 정권'을 장담하던 반미좌파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을 제창, 정권교체의 밑거름 조성에 기여했다는 찬사도 받았습니다.
이런 이규민에게 주변에서는 '이제는 훈수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경제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새 역사 창조에 앞장설 것을 권유했습니다.
많은 고심 끝에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고향의 경제재건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하자'는 심정으로 나섰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 지역 간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과 인천의 발전을 위한 경쟁력 있는 국회의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경제기자 20년, 대기업 경력 8년의 축적된 역량과 정계, 관계, 재계에 두루 뻗어있는 이규민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곧, 우리 지역발전을 위한 경쟁력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인천이 배출한 경제통, 이규민이 우리지역을 기필코 다시 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