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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6장 24~26절, 누가복음 6장38절, 요한복음 13장 12~17절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4~26절, 새번역>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장 38절, 새번역>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요한복음 13장 12~17절, 새번역>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날 때 자주 쓰여지는 그림(짤)이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과 글이, 뜻 밖의 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소명을 통해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받아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뜻 밖의 상황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명'부터 '뜻 밖의 사명'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보통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하면, 대부분 '전도'나 '복음 전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새번역>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 새번역>
맞습니다. 전도와 복음 전파는 너무도 중요한 사명입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것만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나님의 사명이 전도나 복음전파만이라고 오해하는 제자들 때문에 오히려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대표되는 이기적인 기독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도와 복음 전파라는 이름 아래에서 '사랑'없이 행해지는 모든 이기적인 태도들은 이미 많은 이들의 등을 돌렸고, 손가락질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전도와 복음 전파 이전에 생각지도 못한 전혀 뜻 밖의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뜻 밖의 사명 1. 기준과 가치를 역전시키는 사명!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 새번역>
'자기 부인과 십자가' 이 두 가지는 제자가 되려하는 이들의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누구나 자기애와 편안한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표현되어지는 기준과 가치를 역전시키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변해야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6절, 새번역>
온 세상을 얻고자 무던히도 노력하는 이 세대의 풍조를 본 받지 말고, 더 중요한 기준과 가치인 '생명'을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제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얻고자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라가던 우리의 발걸음을 역전시켜 '하늘'의 것을 얻고자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완전히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뜻 밖의 사명 첫번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준과 가치가 더 중요하십니까? 제자라면!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역전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인생 최고의 가치있는 결정을 하시길 소망합니다.
뜻 밖의 사명 2. 주라! 그래야 채울 수 있다! 주는 자가 되는 사명!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장 38절, 새번역>
누가복음 6장에는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주옥같은 말씀들이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라!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 너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한 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뺨도 내밀기! 겉 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도 주기! 그리고 불물율인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 남을 심판하지 않기! 남을 정죄하기 않기! 등등'
그리고 이 말씀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구절이 바로 6장 38절입니다. 주라! 남에게 주어라! 그런데 이 놀랍도록 위대한 말씀을 여기까지만 읽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는' 삶에 오히려 더 인색해 집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엄청난 축복에 대해서는 자꾸 외면하려고 합니다. 남에게 주어라! 이 말 뒤에 나오는 '채우심의 약속'을 믿어내는 이들이, 바로 제자입니다. 주는 자가 되는 것, 이 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제자들은 '주는'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 '주어야 채워지는' 삶을 가진 존재입니다. 흔히들 채워야 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무던히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만족을 모르기에 채우기만 하지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라도 꺼내서 주면 부족을 느낄까봐 전전긍긍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그 무엇이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주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면, 그 다음에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정말 '뜻 밖의 비법'입니다. 이 뜻 밖의 비법을 깨달은 이가 바로 제자입니다. 제자는 다른 이의 부족함을 보고 주는 존재라면, 하나님은 그 제자들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사명과 채움의 비결, 뜻 밖의 사명입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새번역>
너의 손에 선을 행할 힘이 있거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주저하지 말고 선을 행하여라. <잠언 3장 27절, 새번역>
매해 연말이 되면 이런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 사진에 있는 편지를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런 분들이 진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몇년간 계속해서 기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부할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이 채우셨다고 믿습니다. 이 익명의 기부천사는 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은 그 익명의 기부천사를 채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 해 연말에도 이런 익명의 기부천사의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가 줄 때, 하나님은 채우십니다.
뜻 밖의 사명 3. 진짜 선생이 되더라도 종(보냄을 받은 자)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사명!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요한복음 13장 12절, 새번역>
여전히 저는 예수님이 이런 행동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충격입니다. 약한 종이나 어린 종들이 하던 행동을 예수님이 직접 하시다니! 그것도 직접 겉옷을 벗으시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 앞에 앉으셔서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언제나 저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목사가 뭐라고, 대접받는 것에만 익숙해졌고, 교만해졌는지 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행동에 당황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질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예,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답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3~15절, 새번역>
진짜 제자라면,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라면, 그리고 앞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면, 무엇이든 말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떤 행동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바로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는 종이 되는 것이라는 뜻 밖의 사명까지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위 이 '겸손'의 사명을 허락하시면서 먼저 '서로'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 서로부터, 아직 하나가 되지 못한 제자들 서로에게 먼저 이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한 종이 되기 이 전에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는 가정을 소홀히 한다거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등한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부터,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제자의 사명은 결코 퍼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룟 유다를 포함한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발을 씻겨주며, 서로를 섬기며, 먼저 서로를 향한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번역>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종'이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신분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종이 되어 수많은 이들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생이라는 존칭을 받더라도, 우리 스스로는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선생이 되더라도, 우린 그저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 일뿐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요한복음 13장 16~17절, 새번역>
예수님을 주인으로, 선생으로 모시는 우리의 신부은 이미 '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가르치고 전해야 할 그 누군가를 만나게 되더라도 결코 나의 신분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에게 내가 선생이라 불릴지라도 여전히 나의 신분은 종이다'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것이 사명입니다. 내가 부모가 되더라도 나의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내가 '자녀'인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뜻 밖의 사명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을 누리는 제자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소명과 사명, 세번째 시간을 통하여 '뜻 밖의 사명 3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뜻 밖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은 너무도 핵심이 되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들 위에 전도나 복음전파의 사명이 더해진다면 정말 '금상첨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말씀을 더 깊게 묵상하게 만드는 한 구절을 나누며 칼럼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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