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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모듬 원문보기 글쓴이: 산거북이
오랫동안 좋은 산행기 계속 올려주시는데 쐬주 한잔도 나누지 못하고...... 알량한 잡문하나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김 에 산모듬님께 정중히 올리나이다.
<비온 뒷 산>
2006. 05. 07.
홀로
눈물.
많은 비바람에 적셔지고 흔들린 뒤에 깨어난 아침 치고는 산은 그리 흐트러진 모습은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다시듣기를 즐기는 "세상의 모든 음악" 후두염으로 며칠 쉰 김미숙의 목소리는 여전히 허스키하다.
그저 음악이 홀로 흐르도록 버려두고 내 정신에 몰두하고 있는데 사연 하나가 음악과 함께 심장을 찌른다. 전신의 핏줄을 따라 전기자극과 같은 고통이 번지고, 그 고통스런 열감은 눈 주위로 몰려와 눈시울이 붉어지고 물방울이 맺힌다.
나나무스꾸리의 "사랑의 기쁨"을 신청합니다. 오늘은 그이의 생일입니다. 같이 퇴근을 하면서 이 시간을 통해서도 즐겨 듣던 음악입니다.
그이가 이 세상을 떠난지 첫 번 째 생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같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잔잔히 울려오는 나나무스꾸리의 사랑의 기쁨......>
아......! 아픔이여..... 모든 사랑과 헌신과 기쁨이 종국에는 저 노래처럼 가슴 아리도록 슬퍼야하는 이유를 새삼 느끼게 한다.
길은 이미 갔던 곳을 쉬이 선택할 수도 있고 남들이 가지 않았던 곳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이미 다녔던 길이라도 좀 더 이른 새벽이나 폭우 후에나 밤 중에는 전혀 다른 길일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선택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되어지는 것이다.
쉬운 길도 내 능력과 건강과 형편에 따라서 한정없이 어려울 수 있다.
산행은 게임이 아니다. 산행은 경쟁이 아닐 수가 많다. 홀로 하는 산행은 유일한 경쟁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평탄한 곳에서 우리는 때로 안주할 수 있다.
좀 더 고된 목표를 향해 육신과 능력을 채찍질 할 수 있지만 그 평온함에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의 음성이 귀를 간지럽힌다.
상승은 나를 더 나은 자리로 끌고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낮은 위치에서 우리는 좀더 행복하고 넓은 시야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더 높히 더 멀리 가야한다는 당위성을 선택하는 이유는 때로 집착일 수 있고 때론 자학일 수 있지만 더 없은 자기애(自己愛), -그 누구보다 좋고 그 무엇보다 좋은-, 때문이다. 그렇게 가는 내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낙화루(落花淚)......
고도 낮은 곳의 철쭉꽃은 붉거나 연분홍이거나 하얗게..... 스러졌다. 남은 것들은 빗물에 젖어 그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저렇게 맺힌 눈물의 무게를 종내에는 이기지 못하고 맥없이 낙화한다.
그래도 남은 마지막 꽃술들이 잉태와 번식의 본분에 충실하게 마지막 눈물을 맺고 있다.
붉은 종자의 종말 하얀 종자의 영원한 별리.
꽃의 생명은 일회성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본체인 꽃나무의 생명력을 감안한다면 수십년동안이라도 수십번을 윤회하는 셈이다.
그 꽃나무는 종자는 특정한 한그루만이 표현은 아니다. 종과, 나아가 속을 다 아우르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이라는 생명체도 꽃잎이나 나뭇잎과 같은 유한성과 반복성 속에 있음을 간파한다면, 그 속절없는 별리와 종말도 큰 나무의 몸체와 뿌리에 닿아있는 "본성"을 자각함으로써......
마침내 우주에 이르는 "현생의 몸" 아닌 "본성"을 깨칠 수 있다하였는데.
그래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젊은 아낙의 슬픈 별리의 사연에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그 고통은 누가 어루어 줄 수 있는가.
때로 모든 것이 멈추어져야 한다. 나와 세상의 모든 것을 멈추어 보라.
그러면 거기에는 나의 호흡과 깊은 명상만이 남을 것이다.
산 중 쉼터 의자에 박힌 신문의 잉크에 넋을 잃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나는 대개 그런 따위에 정신을 팔면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의자는. 의자일 뿐이다.
-너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이 지껄이고 있다. 그 내면의 지껄임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지껄이는 것을 그만두면 즉석에서 세상이 통채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삶의 모퉁이마다에서 갈망하고 갈망하였지만 결국, 인자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
대신, 산중 의자가 내게로 다가와 잠시 "노오란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길은 다시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급한 경사로 이어진다. 정상능선에 오르는 지름길이지만 당연히 가장 가파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일 것이다.
고도 500 에 이르는 정상능선 근처에 다다르니 하늘의 문이 열리듯 햇살이 비추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가파른 산길에 비에 젖은 꽃빛이 요란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가슴으로 흘리는 세상의 모든 눈물이 마침내 이렇게 아름다워지이다.....
능선 아래에 도착하니 자주 보았던 평범하던 2봉 아래의 암괴가 비어 젖어 더욱 멋지게 보인다.
세상의 보통 남자들...... 나처럼 허하고 유하고 약한 보통의 남자들...... 화려한 등극이 비록 아닐지라도 그들이 가끔 노고의 땀이나 슬픔의 눈물에 흠씬 젖을 때에도 저 암괴처럼 더욱 선연히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산정에는 철쭉의 기세가 꺽이지 않았다. 비에 흠뻑 젖은 봄산을 배경으로 그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색감을 여지없이 뿜어 댄다.
낙화루의 철쭉들이 얼마전 그랬듯이......
바위 틈의 진달래의 분위기와 달리 당당한 철쭉꽃의 웃음.
건강하고 요염한 성적 매력.
운무가 밀려오고 구봉산 쪽 등산로의 드문드문한 서너명의 산님들이 운무에 잠긴다.
오늘은 간이벤치용 의자를 준비하여 늘어지게 산정 휴식을 취한다.
운무가 세번 몰아치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내 가슴의 눈물도 드디어 말라 있었다. 철쭉 꽃빛도 방자한 웃음 아닌 볼그레한 미소로 보였다.
또한 산색(山色)은 더욱 싱그러웠다.
엄광산 정상(504m)에서 꽃마을방향으로 내려 약수터에서 동아대로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와 내원정사로 향하였다.
제를 올리는 대적광전 한쪽 모퉁이에서 마음을 내려 놓고 모든 별리에 가슴 아린 님들을 위해 기도 올렸다.
나는 과연 나와, 나의 인연들과 아름다운 이별할 준비를 하며 살고 있는가?
도반과 함께하는 절 뜨락에 오늘 처음으로 맨 햇살이 비추인다.
<부산의 엄광산을 가야2동 가야공원에서 정상으로 올라, 내원정사 거쳐 산정 쪽으로 하산하였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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