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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34코스
하이면사무소-남일대-진널전망대-노산공원-삼천포대교사거리
20211027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풍요로운 이야기의 꽃
가을 오전의 날씨가 맑다. 햇빛은 반짝이고 햇볕은 따스하다. 10시 15분쯤 고성군 하이면 덕호리 신덕사거리 하이면사무소 쉼터에서 남파랑길 34코스를 출발한다. 남일로를 따라 하이면 중심지를 벗어나 사천 방향으로 향한다. 남쪽으로 로켓포를 쏘아올리는 시설물들이 우뚝 솟은 삼천포화력발전소가 삼천포 경제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처럼 버티고 있다. 봉현천의 덕호교를 마주한다. 봉현천은 석지천을 합류하여 흐르다 사곡천에 합류하여 남일대 코끼리바위 옆 남해 바다로 흘러든다. 봉현천은 사천시와 고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다. 봉현천을 건너 사천시 사등동으로 들어왔다. 1995년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삼천포시 지명이 사천시로 통합된 듯하다. 그럼에도 삼천포 사람들은 삼천포 지명을 사랑하여 지금도 지명 회복운동을 한다는 후문이다.
남일로를 따라 삽재를 넘어 향촌동으로 들어왔다. 향촌동은 삼천포신항 지역까지 아우르고 있으니 남파랑길은 향촌동의 중심 관광지를 통과하고 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들녘에서 코스모스꽃을 담아 각산과 와룡산을 찍으며 길손은 가을의 정취에 자아도취한다. 34코스의 종착지가 되는 삼천포대교사거리 위의 각산이 가깝게 보이지만, 남파랑길은 해안을 돌고돌아서 빙 에둘러 저곳으로 간다. 그 첫 번째 우회의 길은 남일대길, 남일로에서 직진하지 않고 남일대해수욕장 방향으로 꺾어서 남일대길로 접어들어 모례마을로 향한다.
남일대길 모례마을의 벽화는 사천을 홍보하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항공우주박물관, 삼천포대교와 바다케이블카 등 사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들이 벽화를 장식하고 있다. 남일대길에 콩꼬투리를 널어서 또 고구마 꼬맹이들을 잘게 쪼개 펼쳐서 말리는 모습을 만났다. 이 정겨운 풍경에 유년 시절의 외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움이 솟아나면서 가슴이 시리다.
모례마을 옆 남일대해수욕장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남일대 유적비를 만났다. 왜 이곳이 남일대일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의 맑고 푸른 바다와 해안의 백사장 및 주변 절경을 보고 남녘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이라 감탄하여 이곳을 南逸臺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남일대 유적비는 孤雲의 32대 후손 최상화가 뜻을 같이하는 사천시민들의 힘을 모아 2012년 6월 14일 건립하였다고 유적비 안내문에 적혀 있다. 유적비 옆에는 최치원 선생의 좌상과 '범해(泛海)' 시비가 세워져 있다. 漢詩 '범해(泛海)' 번역문을 사진을 찍어와 집에서 살피니 오류가 많다. 사천시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남일대는 어디일까? 남일대해수욕장에서 해안 왼쪽 끝에 코끼리바위라고 불리는 코끼리 형상의 바위가 있는 곳이 남일대인 듯싶다.
남일대해수욕장에서 해안길을 통해 신향항으로 이어지는데, 공사 중이어서 해수욕장 뒤편 언덕길로 우회하여 신향항에 이른다. 우회하는 언덕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니 삼천포항과 목섬, 멀리 남해군의 창선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두 번째 우회길이 기다린다. 만약 신향항에서 우회하여 진널전망대에 이르는 진널 해안산책로를 돌고 싶지 않다면, 신향항에서 그 뒤쪽으로 직진하여 신향마을 앞으로 나가 삼천포신항에 이를 수 있다. 남파랑길은 진널 해안산책로를 빙 돌아 진널전망대를 거쳐 신향마을로 나온다. 진널전망대에서의 조망을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진널전망대 3층에서 조망은 동쪽보다 북서쪽 풍경이 압권이다. 와룡산과 각산, 미세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북쪽 하동의 금오산, 남해군의 창선도, 삼천포창선대교와 삼천포 앞 바다의 씨앗섬, 이두섬, 장구섬, 솔섬 등, 남서쪽의 수우도, 신수도, 추섬 등 그리고 동쪽으로 사량도가 펼쳐진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박재삼의 시 '바닷가 산책'을 음미하는 시간은 행복한 그리움이면서 슬픈 감정이 복받친다. 햇빛 반질한 가을 기분을 되찾아 진널전망대를 떠난다. 전망대에서 걸어가야 할 나머지 길들을 전체적으로 살폈으니 이제는 그 속살을 살피러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신향마을 앞으로 내려왔다. 이곳은 방금 걸었던 신향항 뒤쪽이다. 신향항은 도다리 어업이 풍성한 곳인지 신향마을 표석에는 '도다리의 고장 지늘'이라고 적혀 있다. 신향마을의 옛 이름이 '지늘' 아마도 '진널'로 변한 듯하다. 그래서 진널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삼천포신항 여객터미널 앞에서 삼천포신항 뒷길 '신항만1길'을 따라가며 즐비하게 늘어선 해양관공사업소를 만난다. 지나쳐온그 관공서 이름을 나열하면, 경남항운삼천포하역연락소, 경상남도 항만관리사업소, 마산지방수산해양청 사천해양출장소, 사천세관비지니스센터, 보건복지부 통영검역소, 해양환경공단 마산지사 사천사업소 등이다. 이 관공서들을 지나서 통창동길로 들어서서 통창공원 방향으로 통창동길을 따라가며 5통경로회관을 지나 '동서금동 자원봉사회' 사무실 앞에서 바라보니, 길 건너에 만신집 2곳이 있다. '청송선녀보살' 만신집과 '천수암' 만신집 앞에 만신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현대의 고층빌딩이 우뚝 서 있는 곳에서 인간의 원초적 샤머니즘 신앙의 깃발이 시대를 초월하여 펄럭이는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본향의 그리움처럼 보인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모화, 예기소 강물로 빠져들어가 죽은 그녀가 웃음을 흘리며 높이 솟은 깃발로 펄럭이는 듯하다.
통창공원, 팔포항, 사량도·수우도 여객선 터미널을 지나 삼천포천의 금홍교를 건너서 삼천포팔포 음식특화거리로 들어섰다. 예전에 갯벌이었던 이곳이 일제시대 때 매립되어 지금은 음식특화거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왜 팔포일까? 한내천(삼천포천)이 이곳에 이르러 八자 모양으로 펼쳐져 팔포 또는 팔장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팔포 삼천포천에 다리를 건너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하는 '팔포 십년다리'가 있다. 호기심으로 이 다리를 건너 보았다. 이제 50대가 되었을까?
팔포 십년다리에서 삼천포천과 금홍교, 뒤쪽의 와룡산을 조망하였다. 와룡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삼천포천을 예전에는 한내천이라 일렀으며, 한내천이 하구에서 팔(八)자 형태로 벌어져 바다로 흘러들기에 이곳이 팔포가 되었다. 뒤돌아서서 팔포 하구를 바라보았다. 매립되기 전 八자 모양으로 흘렀을 하구를 상상해 본다. 이 하구를 팔포 앞강이라 이른다고 하는데, 이곳을 배경하여 시인 박재삼(1933~1997)의 빛나는 작품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이 탄생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한내천을 따라 이 팔포 앞까지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팔포 앞강이 노을에 붉게 물들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이라 표현한 것이 절창이다. 삶의 종말은 모든 화합이다. 모든 恨의 울음이 타서 소리를 죽이며 바다에 융합하듯 삶은 그렇게잠드는 것이리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소리 죽은 가을 江을 처음 보것네."(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江' 전문)
팔포 앞강 왼쪽에 목섬이 있다. 한 처녀의 생명 근원의 열정이 떠내려오는 섬을 멈추게 하여 섬은 저 자리에 멈추어서 방풍과 방파로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머리 首, 섬 島, 목섬(首島)이 되었다. 팔포 음식특화거리를 따라가는 길은 팔포 앞강을 따라 목섬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걷는 길이다. 삶의 열정, 세상의 모든 환경적 조건을 극복하는 열정, 삶은 그래야 하리. 목섬 이야기는 꼭 박재삼 시인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인은 질기디 질긴 가난의 삶을 살다 삶을 마쳤다. 시인이 유년에 느꼈을 아득함이 가슴에 밀려온다. 생명의 종말은 모든 생명체가 다른 모든 것들과 융화하는 포용과 조화의 길이라는 시인의 마음이 팔포 앞강을 흘러 바다에 이른다.
팔포 음식특화거리의 끝에서 노산공원 입구와 만난다. 이 거리는 박재삼거리(路)로 명명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곧바로 노산공원으로 올라 박재삼문학관으로 갈 수 있지만, 남파랑길은 왼쪽으로 우회하여 해안뎈 길을 따라 삼천포아가씨像과 물고기像을 보고 팔각전망대에서 한려수도 풍경을 조망하도록 유도한다. 가슴을 다독이며 발길을 재촉한다. 삼천포아가씨 조형물을 순식간에 살피고 팔각전망대에 이르러 물고기像도 마저 살핀다. 한려수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다에는 고기잡이배들이 즐비하다. 바다는 아름다운 풍경을 내보이지만 생존의 현장이다. 아닐까? 생존의 현장이면서도 놀이와 오락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저 배들은 고기잡이업이 아니라 어쩌면 여가활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길손은 떠나야 한다. 걸어야 할 남은 길을 가늠하는데 청널공원의 풍차전망대가 가까이서 손짓한다.
팔각전망대에서 곧바로 노산공원 위쪽으로 올라간다. 반공애국공적비, 박재삼의 '천년의 바람' 시비, 충무공이순신장군像, 최송량의 '삼천포 아리랑' 시비를 거쳐 박재삼문학관에 이른다. 박재삼의 시를 읽기 시작한 것이 20대 초반, 그를 찾아 삼천포를 찾아온 적은 15년 전, 그때는 노산공원에 박재삼문학관이나 호연재는 없었다. 노산공원 아래에 박재삼 시인이 살던 집을 찾아갔었다. 다시 찾아온 노산공원에는 최송량 시비가 세워져 있고, 박재삼문학관이 새로이 건립되었고, 호연재가 복원되었다. 삼천포 문화가 풍성해진 느낌이다. 길손은 문학관 전시실을 2층까지 수박 겉 핥기로 살폈다. 남파랑길을 걷는 도중에, 문학, 미술, 음악 등을 비롯한 기념관을 관람하는 일은 무모하고 야만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술가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까? 그럼에도 예술을 향수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지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불어와서 한 순간에 쓸고가는 바람처럼 문학관을 떠난다. 전시실 전시물들을 사진에 담아왔다고 위로한다. 걸어오는 도중 계속 눈길을 끈 와룡산과 각산을 다시 바라보며 노산공원을 내려왔다.
이제 34코스의 주요지점은 지났을 것이다. 아니다. 삶의 치열한 생활 현장이 앞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목적지 도착시각 때문에 길손의 발길은 급해진다. 목적지를 향해 휙휙 날아간다. 2013년에 준공된 삼천포용궁수산시장, 삼천포전통수산시장, 삼천포수협, 청널공원 풍차전망대 아래, 삼천포수협 소형부두장, 삼천포유람선선착장을 거쳐 대방진굴항 입구에서 머뭇거렸지만 예전에 와보았다는 자위감으로 그냥 지나쳐서 삼천포대교사거리를 향한다. 이렇게 걷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야, 이렇게라도 '걸어서 국토를 순례한다'는 것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지. 회의하면서도 긍정하면서 남파랑길 34코스 끝지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파랑길 34코스 안내도가 없다. 어찌된 일인가?
남파랑길 34코스를 끝내며 박재삼 시인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의 시선집을 찾아서 다시 읽었다. 지난 시절에 그의 작품들을 읽던 느낌이 되살아온다. 시인의 초창기 시 '追憶에서·1', 후반기 시 '日月 속에서'를 여기에 기록한다. 가난의 설움을 표현한 작품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삶이란 일상의 되풀이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움을 찾아야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건 존재들의 긍정적 자세에 가슴 뭉클해진다. '日月 속에서' 작품은 '千年의 바람'을 닮았다.
晋州 장터 생魚物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銀錢만큼 손 안 닿는 恨이던가/ 울 엄매야 울 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晋州 南江 맑다 해도/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박재삼의 '追憶에서·1' 전문)
산은 항상 말이 없고/ 강은 골짜기에 갈수록 소리 내어 흐른다./ 이 두 다른 갈래가/ 그러나 조화를 이루어/ 얼굴이 다르지만 화목한 營爲로/ 나가고 있음을 본다./ 세상이 생기고부터/ 짜증도 안 내고 그런다./ 이 가을 햇빛 속에서/ 단풍빛으로 물든 산은/ 높이 솟아 이마가 한결 빛나고/ 강물은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반짝이는 노릇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없는 듯이 알리나니/ 이 千篇一律로 똑같은/ 쳇바퀴 같은 되풀이의 日月 속에서/ 그러나 언제나 새로움을 열고 있는/ 이 비밀을 못 캔 채/ 나는 드디어 나이 오십을 넘겼다.(박재삼의 '日月 속에서' 전문)
하이파출소는 하이면사무소 옆에 있다. 사천 방향으로 남일로를 따라간다.
일반적으로 '삼천포화력발전소'라 불리는 '한국남동발전(주) 삼천포발전본부' 시설물들이 드높이 솟아 있다.
왼쪽 뒤로 사천의 명산 와룡산이 보인다.
오른쪽 뒤로는 와룡산이 들어온다. 와룡산 아래에는 거대한 와불을 자랑하는 백천사가 있다.
봉현천을 건너 경남 고성군에서 사천시로 들어간다.
위쪽의 석지천은 왼쪽에서 흘러오는 봉현천에 합류한다. 석지천 왼쪽 위 철탑이 있는 마을이 부평마을인 것 같다. 석지천은 봉현천의 지류이며, 석지천은 고성군 하이면에 속하고, 봉현천은 고성군과 사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다. 뒤쪽에 사천의 명산 와룡산이 인상적이다.
고성군 하이면 덕호리에서 봉현천을 건너 사천시 사등동으로 넘어왔다.
위쪽은 사천시 사등동 삽재마을인 듯
사천시환경사업소 입구 위 삽재는 사천시 사등동과 향촌동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삽재를 넘어 사천시 중심지의 한 곳인 향촌동으로 들어간다. 오른쪽 위 사등 버스정류장 옆길은 사천시 향촌동에 위치한 향촌삽재농공단지 입구이다.
도로 오른쪽 표지판에 사천시의 주요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다. 맨 끝에 소개한 다솔사는 봉명산에 있으며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의 창작 계기가 된 곳이다. 이 절에서 김동리는 그의 형을 통해 만해 한용운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들은 이야기들이 '등신불' 창작의 동기를 부여한 것이라 한다.
뒤쪽에 보이는 각산에는 고려시대의 산성과 봉수대가 있으며, 바다케이블카의 상부승강장이 설치되어 있다.
77번 국도 '남일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일대해수욕장 방향의 '남일대길'로 들어선다.
사천의 주요관광지 항공우주박물관을 광고하는 벽화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변에 콩을 말리고 있는 풍경이 정겹다.
쬐그만 고구마들을 잘라서 말리고 있다. 유년 시절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 멈칫, 가슴이 시리다.
삼천포대교와 바다케이블카를 그렸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의 맑고 푸른 바다와 해안의 백사장 및 주변 절경을 보고 남녘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이라 감탄하여 南逸臺라 명명하였다는 유래를 밝히고 있다. 남일대유적비는 2012년 6월 14일 건립되었다.
최치원의 생애와 그의 명시 '제가야산독서당'이 새겨져 있다.
돛 걸어둔 망망한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은 만리로 나아간다.
뗏목을 중국에 보내어 보고/ 약초 캐는 진시황의 아이를 추억하네.
해와 달빛에 어찌 밖이 있고/ 태극 속에 하늘과 땅 있으랴.
지척에 봉래의 신선이 있어/ 나, 이 차에 신선옹을 찾아간다.
위의 번역문과 달리 좀더 명쾌한 번역을 옮긴다.
掛席浮滄海(괘석부창해)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長風萬里通(장풍만리통) 긴 바람이 만 리를 흘러가는구나.
乘槎思漢使(승사사한사) 뗏목을 타던 한나라의 사신이 생각나고
採藥憶秦童(채약억진동) 약초 캐는 진나라 아이가 생각난다.
日月無何外(일월무하외)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乾坤太極中(건곤태극중) 하늘과 땅은 태극 속에 있네.
蓬萊看咫尺(봉래간지척) 봉래산이 가까이 있으니
吾且訪仙翁(오차방선옹) 나는 이제 신선을 찾아간다.
남파랑길은 해안로를 따라 신향항으로 이어지는데 공사 중이라 남일대해수욕장 뒤로 돌아서 신향항으로 내려간다.
신향항으로 돌아가는 도중 남일대해수욕장 뒤 신향길에서 내려보았다. 걸어온 남일대길의 모례마을이 들어온다.
남파랑길은 해안 맞은편 왼쪽 언덕의 뎈으로 올라가서 왼쪽 산둘레를 빙 돌아 중앙 뒤쪽 집들 앞을 통과하여 중앙 맨 뒤쪽 구릉에 있는 진널전망대에 이른다. 이 둘레길을 진널 해안산책로라고 이른다.
진널 해안산책로를 돌고 싶지 않다면 이 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하면 신향마을 입구에 이른다. 남파랑길은 직진하지 않고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 신향마을회관 앞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해안산책로를 빙 돌아 진널전망대를 거쳐 신향마을로 나온다.
아래에 '진널전망대'를 소개하고 있다. 해안산책로에는 주요관광지를 소개하는 이러한 형식의 안내도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남일대해수욕장에서 신향항으로 넘어오는 해안산책로가 보인다. 현재 공사 중이어서 위쪽 산길을 타고 우회하였다.
1999년 1월 7일 3층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어제는/ 가까운 신수도(新樹島) 근방/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오르고 있어/ 열댓 살 적으로 돌아와/ 그리 마음 가려워/ 사랑하는 이여,/ 안으로 홀로 불러 보았고,// 오늘은/ 멀리 창선도(昌善島) 쪽/ 아까운 것 없을 듯 붙붙은 저녁놀에/ 스물몇 살 때의 열기(熱氣)를 다시 얻어/ 이리 흔들리는 혼을 앗기며/ 사랑하는 사람아,/ 입가에 뇌어 보았다.// 사랑은 결국 곱씻어/ 뒷맛이 끊임없이 우러나게 하는/ 내 고향 바닷가 산책이여?
진널전망대 2층 올라가는 1층 벽에 게시되어 있다. 전망대 3층에서 신수도(新樹島)와 창선도(昌善島)를 바라보며 사랑의 뒷맛을 음미하면 그리움과 함께 슬픔이 솟아오른다.
각산 왼쪽 뒤 금오산은 하동 포구에 솟아 있다.
씨앗섬 뒤 왼쪽 섬은 장구섬, 씨앗섬 뒤 오른쪽 섬은 솔섬, 왼쪽에 삐죽 튀어나온 섬은 신수도, 그 뒤 오른쪽 섬은 이두섬
왼쪽 동그마한 섬이 추섬이고 그 뒤 길쭉한 섬은 신수도, 그오른쪽으로 이두섬, 장구섬, 솔섬, 앞에 씨앗섬이 가늠된다.
왼쪽 삼천포화력발전소 뒤쪽에 사량도, 중앙 오른쪽에 수우도가 보인다. 그 뒤의 욕지도와 우미도는 보이지 않는다.
왼쪽에 수우도, 중앙 뒤쪽에 장곶이, 오른쪽에 추섬과 신수도, 장곶이 뒤쪽에 남해군의 미조항은 보이지 않는다.
남파랑길은 신향항에서 해안산책로를 따라 진널전망대로 이어져서 이곳으로 내려오는데, 신향항에서 바로 신향마을로 넘어오면 앞의 신향마을로 나온다.
중앙 뒤쪽 구릉에 진널전망대가 있다.
신항만1길을 따라가며 즐비하게 늘어선 해양관공사업소를 지난다. 경남항운삼천포하역연락소, 경상남도 항만관리사업소, 마산지방수산해양청 사천해양출장소, 사천세관비지니스센터, 보건복지부 통영검역소, 해양환경공단 마산지사 사천사업소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신항로에 들어선 뒤 바로 왼쪽으로 꺾어서 통창동길로 들어선다.
사천시 향촌동에서 동금동으로 들어왔다. 해창이지스3차아파트 빌딩과 경상남도 수산안전기술원 사천지원을 오른편으로 바라보면서 통창동길을 따라 통창공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통창동길을 따라오다 5통경로회관을 지나서 바라본 통창공원. 길 왼편에는 동서금동 자원봉사회 사무실이 있고 길 건너 앞쪽에 만신집 2곳이 있다. 약수간길 뒤의 '청송선녀보살' 만신집과 통창공원 입구의 '천수암' 만신집에 만신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현대의 고층빌딩이 우뚝 서 있는 곳에서 인간의 원초적 샤머니즘 신앙의 깃발이 시대를 초월하여 펄럭인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모화가 웃음을 흘리며 앞에 서있는 듯하다.
통창공원을 지나 통창동길에서 팔포3길로 들어선다.
사량도 카페리호선착장, 삼천포수협 냉장냉동공장, 통영해양경찰서 사천파출소 등이 위치하고 있다. 뒤의 섬은 목섬(首島)
한내천(삼천포천)이 이곳에 이르러 八자 모양으로 펼쳐져 팔포 또는 팔장개라 불리는 곳이다. 금홍교를 건너 왼쪽으로 꺾어 팔포3길에서 목섬길 삼천포팔포 음식특화거리로 들어간다.
목섬길의 팔포 음식특화거리를 끝까지 따라가면 노산공원 입구에 이른다.
다리를 건너면 10년이 젊어진다는 팔포 십년다리 위에서 삼천포천과 금홍교, 뒤쪽의 와룡산과 앞 오른쪽의 통창공원을 조망하였다. 와룡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삼천포천을 예전에는 한내천이라 일렀으며, 한내천이 하구에서 팔(八)자 형태로 벌어져 바다로 흘러들기에 이곳을 팔포 또는 팔장개라 불렀다고 한다.
왼쪽에 목섬, 중앙에 목섬 방파제와 등대, 오른쪽에 팔포 음식특화거리가 보인다. 이 하구를 팔포 앞강이라 이르는 듯. 박재삼(1933~1997)의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은 한내천을 따라서 이 팔포 앞까지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팔포 앞강이 노을에 붉게 물들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이라 표현한 것이라 한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소리 죽은 가을 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江' 전문
남파랑길은 노산공원으로 오르지 않고 왼쪽 뎈 길을 따라 삼천포아가씨 조형물 방향으로 이어진다.
삼천포아가씨 : 반야월/작사, 송운선/작곡, 은방울자매/노래
1.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 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년이요 이년이요/ 돌아와요 네에~ 돌아와요 네에~ 삼천포 내 고향으로
2. 조개껍질 옹기종기 포개놓은 백사장에/ 소꿉장난 하던 시절 잊~었나 님이시여
이 배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마는/ 기다려요 네에~ 기다려요 네에~ 삼천포 아가씨는
3. 꽃 한 송이 꺾어 들고 선창가에 나와 서서/ 님을 싣고 떠난 배는 날마다 기다려도
그 배만은 오건만은 님은 영영 안오시나/ 울고 가요 네에~ 울고가요 네에~ 삼천포아가씨는
목섬 뒤 오른쪽에 진널전망대, 그 뒤쪽으로 삼천포화력발전소의 시설물이 꼭 로켓포처럼 솟아 있다. 박재삼 시인이 쓴 '목섬 이야기'가 흥미롭다.
우리의 바닷마을에 옛날엔 바람난 가시내가 있었다 한다. 바닷바람이 무서웠더란다. 치마 끝에도 이는 바람은 꼭 귀신(鬼神) 소리더란다. 사람들의 눈 흘기는 눈짓보다도 더욱 몸을 휘감고 보채는 바닷바람이었더란다. 무서워 방에 앉아 있을라치면 또한 아쉽기도 한 바람소리였더란다. 그 바람의 한 자락을 잡을락했던지는 모르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를 방문을 차고 머리 헝클어진 채 바다 쪽으로 내닫더란다. 그러나 바람에 얹힌 집채만한 물고래에 무서움 질려 집으로 돌아오곤 하더란다.
바람에 못견디는 그짓 밖에는 아궁이에 한 고래 불 때는 일이 그 전부(全部)였더란다. 부지깽이로 거둔, 불에도 홀리어 눈이 쓰린 욕보던 가시내였더란다.
그런 세월과, 그런 갈증과, 그런 마을에, 바람 기운이 없는 어느날 앞바다를 섬 하나이 흘러오고 있었더란다. 마침, 불 때다 볼 붉은 그 가시내가 부지깽이를 든 채 나와선, 가슴 차도록 섬이라도 안으면 살 길이나 열리리라 믿었던가 한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더란다.
그때부터란다. 우리의 바닷마을의 바람막이 목섬이 동백기름을 바른 머리 태(態)의 숲으로 시집살이 오래오래 살아온단다.
*목섬 : 목섬(首島)은 내 고향 경남 삼천포(慶南三千浦)의 앞바다에 있는 섬
-박재삼(1933~1997)의 '목섬 이야기' 전문
삼천포아가씨 조각상 앞에서 팔각전망대와 물고기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팔각전망대에서의 조망 풍경이 일품이다. 팔각전망대에서 계단을 따라 노산공원의 박재삼 시비와 박재삼문학관으로 이어진다.
상괭이, 참돔, 볼락, 전어의 모습 형상화. 조형물 뒤 왼쪽에 목섬, 멀리 오른쪽 뒤에 사량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물고기 조각상 오른쪽 바위에서 북쪽을 조망한다. 청널공원의 풍차전망대가 보인다. 그리고 삼천대교 위쪽으로 바다케이블카들이 아주 작게 들어온다.
이제 물고기 조각상 위 팔각전망대로 되돌아와서 노산공원의 박재삼시비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千年의 바람' 전문
봄이 오는 한려수도/ 뱃길 삼백 리
동백꽃 피는 사연/ 곳곳에 서려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사랑이 피는/ 사랑섬 건너 오는 새파란 바다
갈매기 두세 마리/ 한가히 나는
노산 끝 신수도엔/ 노래미가 한창인데
와룡산 숨어 피는/ 진달래꽃은/ 피를 토해 붉게 피는 수채화 한 폭
진실로 진실로
세상을 몰라 묻노니
별을 무슨 모양이라 하겠는가
또한 사랑을 무슨 형체라 하겠는가.
-박재삼의 '세상을 몰라 묻노니'에서
박재삼문학관 오른쪽에 박재삼문학관 집필실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 호연재(浩然齋)가 있다.
1770년(조선 영조 46년)에 건립된 학당(서재)으로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짓던 곳이라 한다.
사천시 서금동 노산공원을 내려오면 사천시 선구동으로 이어지고 삼천포 용궁시장 언저리부터는 사천시 동동에 속한다.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을 지나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는 곳에서부터 사천시 서동, 삼천포 전통수산시장으로 이어진다.
삼천포대교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각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들이 움직이고 있다. 오른쪽은 삼천포유람선 선착장
사천시 서동에서 대방동으로 들어와 유람선 선착장 앞 대방길을 따라가면 대방진굴항 입구에 이른다.
곧바른 길은 대방진굴항으로 들어가는 굴항길이고, 오른쪽은 대방사거리와 삼천포대교사거리로 이어지는 대방길이다.
대방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대방사거리를 거쳐 종착지인 삼천포대교사거리에 이른다.
건너편에 대방사 표석과 남파랑길 35코스 안내도가 있다. 산악회 버스가 각산 입구 언덕에 주차해 있다.
남파랑길 34코스 시작점에 33코스 안내도만 설치되어 있고, 그 종점에는 남파랑길 35코스 안내도만 설치되어 있다. 남파랑길 34코스 안내도는 어디에 있을까? 34코스를 걸으면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다음에 진행할 35코스 안내도만 들여다 볼 뿐이고 걸어온 34코스를 돌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