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서 ‘청계천연가’ 부르다 김연아는 지난 3월, 벌써 세 번째로 청계천 무대에서 그의 노래 ‘청계천연가’를 가지고 대중과 만났다. 첫 공연은 2006년 12월에 했고 지난 1월에 두 번째 무대가 있었다. 그 어떤 노래보다 그가 사랑한다는 ‘청계천연가’는 그의 삶과도 닮은꼴이다. 노래의 ‘청계천’이 김연아의 삶 속에 공존했던 서울시민의 삶과 같은 빛깔이었기 때문일까.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성을 가로지르며 흘렀던 청계천은 일본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고통을 서울시민과 함께 겪은 당사자다. 반세기의 고통이 그치자 청계천은 생활오수와 쓰레기를 떠안고 악취를 풍기는 처참한 모습이 된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땅에 떨어진 나라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 땀 흘렸던 그 시절,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진행된 복개공사로 인해 청계천은 60~7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의 대명사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채 20년도 못돼 21세기의 도시패러다임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퇴물로 지탄을 받다가 ‘도시와 자연과 사람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다시 한 번 뼈를 깎는 아픔을 참듯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하천의 모습을 회복해 시민에게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기뻐하듯 김연아의 ‘청계천연가’도 흥겹기만 하다.
비록 세간에서는 청계천 복원 찬반론에 대해 갑론을박이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에게 있어 청계천 복원은 물이 다시 흐른다는 개념 이외 그 어떤 다른 이념은 없다. 그의 노래 가사에 있듯 그저 ‘사랑의 물길 연 청계천 쉼터, 물총새 날고 피라미 노는 버들잎 산책길 자화자 얼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계천연가’는 2006년 당시 ‘청계천’이라는 정치적 이슈의 여파에 휘말리면서 예정돼 있었던 방송이나 행사의 공연이 취소되는 아픔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끝을 보는 열정의 소유자 김연아는 ‘청계천연가’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부르고 있다. 그가 이루고 싶은 그 소박한 꿈을 위해 힘차게 청계천 무대에서 목청을 높여 부를 것이다. ‘지화자 얼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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