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록(百丈錄)
『백장록(百丈錄)』은 백장회해선사(百丈懷海禪師)의 어록(語錄)이다.
백장회해(百丈懷海)는 지난 호에 살펴본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이다.
마조도일의 삼대사(三大士)라 일컬어지는 백장회해(百丈懷海) 남전보원(南泉普願)
서당지장(西堂智藏)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마조의 선법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일찍이 마조와의 사이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백장의 행동은 후세에
‘백장(百丈)의 대기(大機) 황벽(黃檗)의 대용(大用)’이라는 말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다.
특히 백장 선사의 설법을 모은 『백장회해선사어록(百丈懷海禪師語錄)』
1권은 『속장경(續藏經)』에 수록되어 있다.
달리 『사가어록(四家語錄)』 권2에는
『홍주백장산대지선사어록(洪州百丈山大智禪師語錄)』으로 불리고,
『사가어록(四家語錄)』 권3에는 『백장광록(百丈廣錄)』으로,
그리고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백장회해선사(百丈懷海禪師) 및
그 『광록(廣錄)』이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전당문(全唐文)』 권446에 있는 진(陳)의
「당홍주백장산고회해선사탑명(唐洪州百丈山故懷海禪師塔銘)」에 의하면
백장의 어록은 그 제자인 신행범운(神行梵雲)이 편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느 것도 편자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 본문에 대해서는 『조당집(祖堂集)』 권14, 『전등록(傳燈錄)』
권6, 『종경록(宗鏡錄)』 권5, 19, 78, 98,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권상(卷上),
『광등록(廣燈錄)』 권8 등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가 있다.
이제 여기에서는 가장 시대가 이른 것으로 보이는 『조당집』에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내용
問 如何是大乘入道頓悟法 師答曰 汝先歇諸緣休息萬事 善與不善世間一切諸法 皆放却
莫記憶 莫緣念 放捨身心 齡其自在 心如木石 口無所辯 心無所行 心地若空慧日自現 猶如雲開
日出相似 俱歇一切攀緣 貪瞋愛取 垢淨情盡 對五欲八風 不被見聞覺知所縛 不被諸境惑
自然具足神通妙用 是解脫人
어떤 사람이 물었다.
“대승으로 깨침에 들어가는 돈오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백장이 말했다.
“그대는 우선 모든 반연을 그치고 만사를 휴식하여라.
그리고 선한 것이랑 선하지 않는 것이랑 모두 세간의 일체를 다 내버려두어라.
그리하여 그런 것들에 대하여 조금도 연연해하지 말고 미련을 두지도 말아라.
이와 같이 그대의 몸과 마음까지도 내버려 두어 자유롭게 하여라.
이런 때가 되면 비로소 몸은 목석과 같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입은 일체의 분별을 가리지 않게 되며, 마음은 일체의 분별사식이 없어진다.
그리하여 마음은 허공과 같이 확연해져 지혜의 태양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마치 구름이 걷히고 나면 태양이 밝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탐욕과 진에와 애착 등 일체의 반연을 그쳐 더럽다 청정하다는 생각을 없애고 나면
설령 오욕(五欲)과 팔풍(八風)을 마주하더라도 보고 들으며 깨치고 아는〔見聞覺知〕
일체의 정신적인 작용에 있어서 속박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모든 대상경계를 대하더라도 그것에 미혹하지 않고 신통과 묘용을 구비하게 되어
해탈한 사람과 같다.
對一切境 心無靜亂 不攝不散 透一切聲色 無有滯 名爲道人 但不被一切善惡垢淨
有爲世間福智拘繫 卽名爲佛慧 是非好醜 是理非理 諸知見總盡 不被繫縛
處處自在名爲初發心菩薩 更登佛地
또한 일체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조금도 고요하거나 어지러움이 없어
안으로 거두어들이지도 않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으며,
일체의 소리와 색에 대해서도 걸림이 없으면 이를 일컬어 도인이라 한다.
또한 일체의 선과 악과 더러움과 청정함, 세간의 유위적인 복과 지혜에 구속되지 않으면
그것을 부처의 지혜라 한다. 또한 옳고 그름과 깨끗하고 추악함과 옳은 도리와 그른 도리 등의
모든 알음알이를 벗어나 다시는
가는 곳마다 얽매임이 없으면 그것을 초발심 보살이 곧 부처의 지위에 올랐다고 말한다.
一切諸法 本不自言 空不自言 色亦不言 是非垢淨 亦無心繫縛人 但人自虛妄計著
作若干種解 起若干種知見 若垢淨心盡 不住繫縛 不住解脫 無一切有爲無爲解 平等心量處於生死
其心自在 畢竟不與虛幻塵勞 蘊界生死諸入和合 逈然無寄 一切不拘 去留無 往來生死 如門開合相似
일체의 제법은 본래부터 스스로 공하다는 것도 말하지 않고, 스스로
색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옳다 그르다 더럽다 청정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일체제법은 무심하여 사람들을 구속함이 없는데도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허망하게 분별심에 얽혀 갖가지 알음알이와
갖가지 소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만약 더럽다 청정하다는 분별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구속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이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일체의 유위와 무위의 알음알이도 없어진
평등심으로 생과 사를 대한다면 그 마음이
자유자재하여 필경에 허깨비와 환(幻)과 같은 5온과 18계 등의
모든 세계의 뒤섞임으로부터 아득하게 벗어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의지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아 가고
머무름에 자유롭게 되어 생과 사를 왕래함에 걸림이 없어 마치
자기 집의 문을 여닫는 것과 같이 된다.
若遇種種苦樂 不稱意事 心無退屈 不念名聞衣食 不貪一切功德利益 不與世法之所滯
心雖親受苦樂 不干於懷 粗食接命 補衣寒暑 兀兀如愚如聾相似 稍有相親分 於生死中廣學知解
求福求智 於理無益 却被知解境風漂 却歸生死海裏
만약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인하여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마주치게 되어도
그로부터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고,
명예와 의식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일체의 공덕과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하고, 세간법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록 친애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것을 괴로움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뜻을
내지 말아야 하고, 거친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며,
옷은 더위와 추위를 막을 정도만 하고, 올올하게 마치 바보와 같고
귀머거리와 같이 하여 길이 수행해 나아가야 비로소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 있다. 생과 사에 있어서는 널리 배우고 많은 것을 알아
복을 구하고 지혜를 찾더라도 궁극에는 진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알음알이 경계에서 오는 분별의 바람으로 인하여 생사의
바닷 속에 깊이 휩쓸려버리고 만다.
佛是無求人 求之卽乖 理是無求理 求之卽失 若取於無求 復同於有求 此法無實無虛 若能一生
心如木石相似 不爲陰界五欲八風之所漂溺 卽生死因斷 去住自由
不爲一切有爲因果所縛他時還與無縛身同利物 以無縛心應一切 以無縛慧解一切縛 亦能應病與藥
부처라는 것은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하려 하면 도리에 어긋나고 만다.
이와 같이 구함이 없는 도리를 구하려 하면 곧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구함이 없는 것에 집착하게 되면 도리어 구하는 것과 같아지고 만다.
이처럼 진리는 실(實)도 아니고 허(虛)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생 동안 마음이 마음을 목석과 같이 하여 5음과 18계와 오욕과 팔풍 등에
들뜨거나 휩쓸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생사의 굴레를 끊어 가고
머무름에 자유자재하여 모든 유위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나아가서
걸림없는 자유로운 몸으로는 중생과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이익을 줄 수가 있다.
또한 걸림없는 마음으로는 모든 것에 대응하면서도 걸림없는 지혜로 중생의 일체 속박을 풀고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해 줄 수가 있다.”
問 如今受戒 身口淸淨 已具諸善 得解脫否 師答曰 少分解脫 未得心解脫
未得一切解脫 問 云何是心解脫 師答曰 不求佛 不求知解 垢淨情盡 亦不守此無求爲是亦不住盡處
亦不畏地獄縛 不愛天堂樂 一切法不拘 始名爲解脫無 卽身心及一切 皆名解脫 汝莫言
有少分戒 善將爲便了 有恒沙無漏戒定慧門 都未涉一毫在 努力猛作早與莫待耳聾眼暗 頭白面皺
老苦及身 眼中流淚 心中장惶 未有去處 到與摩時 整理脚手不得 縱有福智多聞 都不相救
爲心眼未開 唯緣念諸境 不知返照 復不見道 一生所有惡業悉現於前 或 或怖 六道五蘊現前 盡見嚴好
舍宅舟舡車轝 光明顯赫爲縱自心貪愛 所見悉變爲好境 隨所見重處受生 都無自由分 龍畜良賤 亦總未定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지금 계를 받아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면 모든 선을 갖추어 해탈할 수가 있습니까?”
백장이 말했다.
“조금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의 해탈은 얻지 못하고 일체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다시 물었다.
“그러면 마음의 해탈이란 무엇입니까?”
백장이 말했다.
“부처도 구함이 없고, 알음알이도 구함이 없어 더럽다든가 청정하다는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 또한 다시는 그것을 지키려는 것도 없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다 버렸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또한 지옥의 결박이라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천당의 즐거움이라 해도 즐거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리하여 일체법에 구속되는 바가 없어야 비로소 그것을 해탈이라 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과 일체에 걸림이 없어야 진정으로 해탈이라 말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작은 계행이나 선행으로 곧 해탈을 얻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설령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계(戒)와 정(定)과 혜(慧)의 법문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털끝만치도 해탈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열심히 힘써 노력하라.
귀 먹고 눈이 어두우며 머리가 하얗고 얼굴이 쭈글쭈글할 때까지 미루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늙어서 괴로움이 몸을 덮쳐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어 달리 의지할 바가 없어지고 만다.
이러한 시절이 되면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어 설사 복과 지혜가 있고
다문(多聞)했다 하더라도 도무지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다.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고
오직 경계의 대상에 마음이 쏠려 반조할 줄도 몰라 다시는 도를 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일생 동안 지은 악업이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진다.
혹 반가운 모습으로 혹은 두려운 모습으로 6도(道)와 5온(蘊)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집이나 배나 수레로 보여 광명이 찬란하게 빛나
마음이 온통 그것에 탐착된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모두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나타난 그것을 따라 거듭 생을 받는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 경계에 끄달린 것으로서
자유가 없어 용이 될지 짐승이 될지 양민이 될지 천민이 될지 알 수가 없다.”
問 如何得自由 師答如今對五欲八風 情無取捨 垢淨俱亡 如日月在空 不緣而照 心如木石
亦如香象截流而過 更無疑滯 此人大堂地獄 不能攝也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어찌하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까?”
백장이 말했다.
“이제 오욕과 팔풍을 마주해서도 마음에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더러움과 청정함이 모두 없어져 태양과 달이 허공에 걸려 있는 것처럼
무엇에도 걸림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또한 마음이 목석과 같고
큰 코끼리가 물을 거슬러 건너가듯이 다시는 걸림이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글· 현각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