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지식, 지식의 감동
지식소설은 소설 속에 논쟁적인 지식담론을 담아내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나아가 등장인물간의 갈등 못지않게 담론의 대립을 작품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지식도 진화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건전한 지식에는 대부분 그와 대립하는 지식이 존재한다. 서로 대립하는 이들 지식 쌍은 경쟁하면서 어느 한쪽이 자연도태하지만, 상당수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다. 지식들은 갈등하고 싸우며 승리하거나 패배하고 또 살고 죽는다. 이러한 지식들의 갈등 구조와 진화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소설이 ‘지식소설’이다.”(「작가의 말」에서)
『다니』는 김용규?성규 형제가 『알도와 떠도는 사원』 이후 4년여에 걸친 취재와 토론을 거쳐 완성한 장편 소설이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 침팬지들과 이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여성 과학자가 종(種)을 뛰어넘어 나누는 우정과 사랑이 씨줄로, 제노사이드(동종학살)로 상징되는 인간과 동물의 폭력성에 관한 철학적 분석, 진화론과 사회생물학, 인류학의 다양한 지식이 날줄로 교차하며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수백만 년 진화의 시간을 뛰어넘는 애틋한 교감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제니퍼 모건은 야생에서 침팬지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맡아 탄자니아로 떠난다. 빅토리아 호수로 이어지는 그곳의 나망가 계곡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 숲에는 각각 다른 집단의 침팬지들이 살고 있다. 제니퍼는 이들에게 튀들덤과 튀들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니퍼는 수가 적은 서쪽 숲의 튀들디 침팬지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인간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특히 갓 사춘기가 지난 암컷 침팬지 ‘다니’와는 수화로 거의 완벽할 정도의 대화를 나누면서 특별한 애정을 갖는다. 하지만 환경이나 야생동물 보호는 안중에 없이 오직 개발 이익만 노리는 헨리 웨슬리 경이 동쪽 숲을 벌목하면서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동쪽 숲의 침팬지들은 생존을 위해 서쪽 숲으로 건너와 수가 적은 서쪽 숲 침팬지들을 제노사이드(동종 집단학살)하기 시작한다. 제노사이드로 수컷들은 모두 죽고 암컷들은 튀들덤 집단의 성노예로 전락할 처지였다. 제니퍼의 부모는 중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였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의 집단 광기에 희생되었다. 그 후 미국에 입양된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제니퍼는 침팬지들이 인간의 개발욕에 희생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개발 이익을 함께 보려고 제니퍼에게 등을 돌리고, 갈등하는 사이 다니의 언니 멜을 비롯해 다니 집단의 침팬지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지적 파노라마!
『다니』는 ‘제노사이드’로 대표되는 인간의 폭력성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를 침팬지 집단간의 학살을 통해 되돌아본다. 저자는 제노사이드를 “인간이 가진 폭력성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례”라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는 폭력성을 포함한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보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경요소를 인간생활과 문화형성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는 환경결정론이 대립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영향을 받아 약육강식이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본능주의와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폭력적인 행동이 습득, 강화된다는 행동주의가 논쟁한다. 『사회생물학』을 쓴 에드워드 윌슨의 이론을 웨슬리 경이, 『풀하우스』의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펼치는 논지를 제니퍼가 대변하는 식이다.
저자들은 ‘지식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니』의 내용을 엄밀한 사실에 기초해 썼다. 등장인물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으며, 역사적 사건과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의 이론은 모두 전문가에게 검증을 받았다. 이론이 등장하는 중요한 대목마다 모두 15쪽에 달하는 부가설명을 붙였으며, 책 말미에는 참고문헌까지 소개했다. 소설에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부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생물학의 명저들이 두루 등장하고, 짐바아도 박사의 ‘모의 형무소’ 실험 등 중요한 과학, 사회학 이론이 6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과 철학의 주의주장을 적당히 읽기 쉽게 풀어낸 아류 소설이 아니다. 제니퍼와 웨슬리 경의 갈등, 다니와 나누는 사랑 등이 나망가 계곡의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매우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청소년층부터 인문사회과학자들까지 읽어도 좋은 지적인 파노라마 속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존경과 애정이 녹아 든 감성적이고 따뜻한 소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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