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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범우의 집
5. 벌교가는 길
낙안읍성에서 민박을 한 다음날 아침, 식사가 문제였다. 7시에 기상했는데 식사는 8시 이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하는 기다리지 말고 우선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그들은 7시 20쯤 민박집을 떠나려고 했다.
“유자차 들고 가셔요.”
주인 아주머니가 차 쟁반을 들고 툇마루로 나왔다.
“저희가 재배한 무농약 유자예요.”
성문 밖으로 나온 일행은 혹시나 일찍 아침식사 되는 집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없었다. 경서가 다리를 절었다. 그는 어제 너무 빨리 걸어서 그런지 무리한 것 같았다. 15킬로미터 이상을 걸으려면 평소에 걷기를 많이 해야 한다. 경서가 벌교까지 버스를 타려고 했다. 마침 벌교행 버스가 왔다. 운전기사에게 배차 간격을 물으니 40분이라고 했다.
“출발부터 그러지 말고 좀 걷다가 정 못 걷겠으면 그때 타게나.”
미하가 평소에 안하던 권고를 했다. 그는 원래 순례에 처음 온 사람에게는 힘들면 차타고 가라고 권하는 편이다. 그러면 순례자들은 대체로 ‘네가 염장 지르는 소리 하는구나. 나도 오기가 있다고.’라는 표정을 짓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날은 다리를 저는 것을 뻔히 보고도 더 걸으라 하니 평소의 그 답지 않고 이상하다.
아침 식사 되는 집이 없어 별수 없이 벌교 쪽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앞장 선 미하가 문을 여는 식당(남도사또밥상)을 발견했다. 순례자들은 어제 저녁 보다 훨씬 꼬막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같은 값으로 먹을 수 있어 만족했다. 식사를 마치자 경서가 허벅지 통증을 호소했다. 제포가 그를 빈 방으로 안내하더니 스프레이를 뿌려 주었다. 한산은 식당 온수기의 물을 보온병에 담았다. 그는 늘 순레자를 위해 커피를 자원 봉사한다.
8시 20분 쯤 출발하니 곧 낙안 뜰이 눈앞에 넓게 펼쳐졌다. 조정래길로 명명된 857번 지방도가 너른 벌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낙안 향교를 지나니 밭고랑의 푸른색이 봄을 알리고 있었다.
“여기 이 푸른 잎은 무엇일까?”
“봄보리일 거야.”
제포가 알려주었다. 미하는 미심적어 농군에게 확인했다.
“보리가 맞는다네.”
“사람, 참. 못 믿기는...”
제포가 농부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 비닐하우스 안에는 무얼 심었나요?”
“오이요.”
“다른 하우스도 모두 오인가요?”
“낙안은 오이가 유명합니다. 5월에 출하할 거요.”
농부는 6개월쯤 키워야 상품으로 출하할 수 있다고 했다.
너른 벌판 한 가운데 덩그러니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조그만 집들이 오밀조밀 마을을 이루는 모습에 익숙한 눈에는 생경한 경치였다.
9시 좀 지나 이곡리에 이르니 마을 할머니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서가 물었다.
“벌교까지 얼마 남았나요?”
“십리는 가야하니 버스 타고 가요. 버스가 곧 올 것이구만.”
“십리라면 걸을만하네요.”
미하는 내심 걱정이 되어 후미를 자처했다. 경서의 20미터 쯤 뒤를 천천히 걸었다. 그가 출발 전에 위성지도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조정래문학관 관람을 포함하여 벌교역까지 10킬로는 더 걸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걱정 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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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태백산맥의 환상 속으로
10시 가까이 되어 봉림리 벌교천에 이르렀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은 정자에서 후미를 기다렸다. 그들은 근처에서 <김범우의 집>을 답사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 김범우는 대지주의 둘째 아들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악덕 대지주와 작인들의 갈등을 전개했다. 작가는 김범우의 부친 만을 양심적인 대지주로 묘사하고 있다.
초등학생 조정래는 이 집 막내아들과 아래채에서 자주 놀았다. 이 집의 주인은 실제로 대지주였고 김 씨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에 영향을 받았는지, 이 집을 김범우의 집으로 묘사했다. 이 집은 겹 안채, 사랑채, 넓은 장독대, 돼지우리가 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높고 길게 쌓은 축대가 지주의 금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벌교천 양변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었다. 순례자들은 홍교(흔히 횡갯다리로 부름)를 건너 서편을 걸었다. 홍교(虹橋)는 무지개 모양의 구조를 가진 다리이다. 인천의 홍예문(虹譽門)도 그렇다. 미하는 어느새 태백산맥의 환상에 빠져 들어갔다. 일제 때 식민지 지식인은 좌익이 많았다. 형 염상진은 공부 많이 하고 좌익혁명으로 조선의 독립을 이루려고 한데 비해, 동생 염상구는 공부 안 시켜주어 주먹세계에 들어가 우두머리가 되어 해방 후에는 우익의 앞장을 섰다.
“나는 소설에서 염상구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야. 작가도 염상구를 좋아했을 거 같아.”
“나는 옛날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나.”
제포가 소설에 관심이 많음을 알고 미하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염상구는 깡패두목이야. 욕을 걸지게 하는데 벌교사투리를 써야 제 맛이지. 남자 굶은 조갑지가 도굿대(연장, 절구공이)보고 아가리 짝짝 벌리는디... 외서댁 솔찬은 것이... 니노지 속맛은 꼬막 씹는 맛이라...”
“그 소설이 벌교 꼬막을 유명하게 만들었나보다.”
“꼬막은 원래 순천 신성리 앞바다 갯벌에서 전국의 7할을 생산했데. 지난번 신성리 왜성 순례할 때 들은 얘기야. 그런데 간척지로 만들어 공단이 들어서는 바람에 그곳 주먹들이 다 벌교로 갔다는 구나.”
“벌교 가서 주먹자랑 말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왔나?”
“그 말은 일본 놈 때린 데서 나왔다고 벌교 사람들은 항변해.”
홍교를 뒤로하고 1킬로 쯤 남행하면 소화다리가 나온다. 1936년(소화6년) 철근콩크리트로 건설한 다리인데 부용교가 이름이지만 소화다리로 더 유명하다. 일제 때 낙안 벌에서 농사지은 곡식을 공출하면 이 다리를 건너 기차역과 포구로 갔다.
북한의 좌익은 해방 후 소련군정의 비호 하에 공산혁명을 했다. 좌익은 지주, 친일, 부르조아를 정식 재판 없이 손가락 재판, 인민재판으로 처단하고,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여 토지는 무상분배했다. 소설에서 남한의 작인(소작인)들도 북한과 같은 무상분배를 기대했다. 제주 4.3사건과 여순 사건 이후 윤 부자네 작인들의 살인 사건이 이 다리에서 일어났고, 구빨(6.25전 빨치산), 신빨과 토벌대 사이에 번갈아 일어난 양민 학살도 이 다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난간이 있지만 당시에는 난간이 없어 총살하면 쓰러져 갯벌로 떨어졌기에 갯물이 핏빛으로 물든 곳이다.
7. 태백산맥문학관
소화다리를 북으로 건너 동쪽으로 1킬로미터쯤 가서 벌교상고를 지나면 벌교버스터미널 동북쪽 회정리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수봉과 경서는 문학관 답사를 생략하고 벌교천을 따라 곧장 철교까지 내려갔다. 문학관은 월요일에 휴관한다. 순례자들은 내부의 전시물을 보지 못했지만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휴관 날이지만 관광버스가 몇 대 주차되어 있었다. 제포는 번쩍번쩍 빛나는 장식을 많이 한 정복 경찰들이 많은 것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들은 새로 임관한 경찰이었다.
“난 우리 순례자들을 호송하려고 마중 온 경찰인가 했지. 하하하.”
소설에서 제석산 자락에 현부자집이 있다. 실제로 박씨 문중 소유의 대 저택이 여기에 있는 집이다. 소설은 이 집을 모델로 현부자집을 묘사하고 있다. 술도가 정사장의 아들 정하섭이 이 집 아래채에 사는 무당 딸 소화를 사랑한다. 신분을 초월한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과 같은 설정이다. 정하섭도 좌익 지식인으로서 여기가 활동거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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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꼬막정식과 석화구이
천천히 쉬면서 태백산맥문학관 위의 <현부자집>을 둘러본 순례자들은 철교를 향해 내려갔다. 그 사이 미하는 버스터미널에 가서 서울행 고속버스 시간을 알아보았다.
“매일 아침 9시에 강남터미널행 1대만 있습니다.”
“순천 가는 버스는 자주 있나요?”
“네, 20분마다 배차합니다.”
미하는 순천에서 기차로 상경해야함을 알았다. 철교가 보이는 곳에 이르러 인송과 나 여사는 부용교를 건너려고 진입했다. 그런데 미하가 철교로 가자고 해서 청호와 제포 등 5명은 철교를 건넜다.
“마치 소래다리 건너는 것 같구나.”
“옛날 소래 다리는 가운데 이런 철판 없었어. 아래가 다 내려다 보였다고.”
“그리고 침목 사이도 더 넓었고. 잘못 디디면 미끄러져서 사람이 빠질 수 있었지.”
제포는 레일 밖의 침목을 걸었다. 옛날의 소래다리 보다 더 위험한 철교를 건너는 용기를 보이는 듯 했다.
“위험해. 이리 와. 여기 인도가 있잖아.”
미하가 재촉했다.
“사진 찍어 줄 테니 이리 와라.”
미하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그때서야 제포가 안전한 대피로로 들어섰다. 그것은 선로 작업하다가 기차가 들어오면 대피하는 갓길이다.
그들은 철교를 건너도 막혀있어 철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벌교역까지 철로를 걸었다. 기차라도 오면 위험한 것이다. 승강장에 올라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순례자들은 벌교역 앞 서북쪽에 있는 우체국 모퉁이에서 북쪽으로 30미터쯤에 있는 식당( 고려꼬막한정식)에 들어갔다. 수봉은 수산 시장 노점상에게 석화를 한 부대 샀다. 사면 삶아주는 식당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얼른 샀다. 식당 주인은 석화를 깨끗이 씻어 삶아서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내놓았다. 순례자들은 안주 삼아 먹고 맛으로도 먹었다. 한 사람당 10개는 좋이 돌아갔을 것이다. 식당은 매상이 덜 올라도 석화 사 들고 오는 손님이 추가되므로 기꺼이 서비스하는 것 같았다. 굴을 맛나게 먹은 순례자들은 막상 푸짐한 꼬막정식을 받아도 주인의 인심에 감동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꼬막을 남겼다.
9. 서두른 귀경길: 뛰어야 벼룩
순천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 시간을 알아본 검암이 출발을 서둘렀다. 벌교의 분위기를 더 즐기려는 일행이 5명이므로 반씩 갈린 것이다. 남은 사람은 수산 시장을 둘러보러 들어갔다. 오늘은 마침 벌교 장날이란다. 제포는 무의식적으로 벌교천변까지 갔다. 조용한 커피숍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소설의 장면을 구상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장구경을 마친 일행이 낭만을 즐기자는데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도저히 이제는 더 못 먹겠다. 너무 많이 먹었어. 커피도 못 마셔.”
미하가 극구 주장했다. 벌교장은 오전에 마감이다.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벌교역전의 버스정거장에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탔다.
“앞선 팀은 기차를 탔겠지?”
“그럼, 30분이나 먼저 갔는데.”
순천역에 먼저 도착한 검암 일행은 2시10분차를 탈 수 없었다. 그들은 빵을 사서 나중에 기차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후발대가 순천역에 도착했다. 그들은 3시차 표를 샀다. 혹시나 선발대가 못 가고 있는지 승강장을 둘러보았는데 선발대는 안 보였다.
“앞차로 갔구나.”
기차가 출발했다. 미하는 회계보고를 문자로 보냈다.
<수입 회비600,000, 지출 628,500, 추최측 지원28,500. 지출 내역: 23일 순천조식 82,000, 택시 25,500, 낙안 석식 121,000, 야식 18,000, 읍성민박150,000, (굴값 15,000은 수봉이 계산 불포함)>
출발 후 40분 쯤 지나 미하는 수봉의 문자를 받았다.
“아직 탑승 못했지요?”
“남원 지났음. 2시 58분차.”
수봉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것들이 같은 차에 탔단 말인가? 남아서 뭔가 대단한 재미라도 볼 것 같더니만...”
선발대는 7호차에 타고 후발대는 1호차에 탔기에 승강장에서 못 만난 것이다.
나 여사가 와인을 가져왔다고 했다. 후발대는 식당차에서 마시려고 4호차로 갔다. 식당 칸이 없었다. 승무원에게 물으니 정비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객차에서 양파 와인을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나여사표 하우스 와인에 블루베리쵸콜릿 안주가 침샘을 자극했다.
“선발대 만나면 뭐라고 약 올릴까?”
“약 올리기는...볼만한 것이 없어서 택시타고 쫓아 왔다고 하자.”
“약 오르면 지는 거야. 그러나 남을 화나게 한다고 내가 이기는 건 아냐.”
“분노는 독약을 자기가 마시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거래요.”
노 작가가 하루의 마지막을 명언으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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