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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노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떠난 자들의 이야기, 두 번째 남은 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공원 조성(현재 논의가 진행 중임) 이후의 이야기로 나누어 작업이 진행되며, 이 작업은 그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이 작업은 부활의 노래 중 첫 번째 이야기인 떠난 자들의 이야기로 1970년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의 묘소를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떠난 지 10년 아니 30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묘소는 언제나 새로운 힘으로 다가오는 공간이요, 결의와 각오를 다지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은 현재 광주 망월동, 마석 모란공원, 양산 솥발산공원 등 전국 40여 곳의 묘역에 170여 명이 안장되어 있으며, 나머지 분들은 화장되어 묘역이 없는 상태이기에 우선은 묘역이 확인된 분들부터 촬영하였고 묘역이 없는 분들은 추모비나 그들의 흔적들을 촬영하였다. 또한 이 작업 속에서도 죽음의 유형을 나누어 작업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타살의 경우이며, 박종철, 이한열 열사 같은 분들로 구 안기부의 공권력에 의해 그리고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살해당한 분들이 해당되며, 두 번째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는 분신.할복 그리고 투신 자살로 항거했던 경우이며, 전태일, 김상진, 조성만 열사 같은 분들이 해당된다. 세 번째는 위의 경우는 아니지만 한 생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길에서 고문 후유증 그리고 병이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며 김남주 시인, 김양무 선생님, 이오순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정권 또 자본의 비열한 폭력 앞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신 분들로 최종길, 신호수, 정경식, 이철규 열사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내가 죽지 않았음을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안타까운 죽음이 없기를 바라고, 열사.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이며, 또한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삶의 각 현장에서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들이 그렇게도 외쳤던 참 민주세상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램을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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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 광주 망월동
하재완, 1974년 4월 9일 인민혁명당 재건단체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강경대, 1991년 4월 26일 백골단의 폭력진압에 의해 사망
노수석, 1996년 3월 29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
김상진, 1975년 4월 11일 서울농대에서 열린 자유성토대회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할복자결
김종태, 1980년 6월 9일 노동3권 보장과 광주학살 의분을 호소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박영진, 1986년 3월 17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인
부당 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고 외치며 분신
윤용하, 1991년 5월 10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5월 12일 사망
조정식, 1984년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
1989년 5월 24일 영전기계 근무 중 산재로 운명
박현민, 숭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1년 미등록제적생 복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다
과로로 쓰러져 4월 28일 40여일 간의 투병 끝에 운명
최종길,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1973년 10월 19일 유럽간첩단 수사협조를 요청 받고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우종원,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5년 10월 11일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
신호수, 1986년 6월 11일 형사들에 의해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으며,
6월 19일 전남 여천군 대미산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
박창수, 1991년 2월 제3자 개입금지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후, 5월 6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이내창,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1989년 8월 15일
거문도 앞바다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
문승필, 1992년 10월 14일 행방불명 후 11월 2일 광주보훈병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
김준배, 1997년 9월 15일 수배 도중 경찰의 과잉 검거작전을 피하려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2001년 봄, 광주 망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