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곳은 깎아지른 암벽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 있고 사람 살지 않는 섬이어야 한다
천길 아래 성난 파도 밀려와 으르렁거리고
모진 바람조차 휘감아 나가야 한다
구름 지나다 간간이 떨구어 주는 몇 개의 물방울
은혜되어 눈물 흘리는 곳이어야 한다
고깃배 지나가면 한나절 무심히 앉아 있던 물새떼들
놀라서 아우성치고 허겁지겁하는 이름없고 외진 섬에서
이그러지고 구부러지고 휘어진 나의 등뼈로
허공에 받치고 있는 하늘보다 더 푸르게 지킨 나의 청솔은
뿌리가 물려 준 지켜야 할 가문의 고고함이었다
산굼부리 억새숲은 이별에 익숙하다
문복주
산굼부리 억새숲은 이별에 익숙하다
이별 뒤엔 바보같이 눈물 따라 다닌다
이별이 슬픈 것은 그가 떠나서가 아니다
바람이 불면
산굼부리 억새숲 전체가 일어서서 흐느끼듯
그를 위하여 불렀던 내 모든 기쁨의 노래
아우성쳐 나를 울리기 때문이다
산굼부리 억새숲은 내가 불렀던 나의 노래들을
바람으로 간직하고
내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날이면
한 곡씩 풀어 놓는다
뜨거운 불을 움푹 파인 저 가슴 깊이 간직해 놓고
억새만 무성히 길러
바람 속 홀로 흐느끼는 너의 이별
나도 이제사 너의 이별이 눈물만이 아닌 것을 알겠다
이별이란 누구인가를 떠나 보내고 나서
아픔의 깊이로 파인 가슴의 웅덩이에
얼만큼의 진실이 고이는가를 확인하는
행복의 저울대임을
산굼부리 억새숲은 내게 가르쳐 준다
무엇이 지나가는가
문복주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강물이 지나가고
라일락 꽃잎 책갈피에 꽂았던
추억과 꿈도 지나가고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시간도
흘러흘러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다 지나가고 남은 것은 없다
사랑이라 불렀던 사랑은 어디로 가고
증오라 불렀던 증오는 어디로 갔는가
돌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강물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추억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우리의 곁을 지나간 것은
존재가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생각해 보면
지나간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인 것을
목금木琴타는 숲
문복주
밥 김치 얼음물 과일 돗자리 시집 몇 권 준비해 두거라
휴일 오면 다시 가리라
한라산 깊은 계곡 우리만이 알고 있는 숲
그 곳 가서
눈 시리도록 하늘 보다 새소리 바람소리 듣다 잠들고
산노루 발자국 소리에 놀라 깨어나리라
내 옆 풀잎으로 누워 가는 숨결로 잠들어 있는 그대 보리라
시집도 잠들어 있는 사이 뜨거운 입술 가지리라
청초한 눈물의 풀꽃들 피어나는 울울한 숲
그대의 가슴에 있기에 나는 숲에 누우면 행복하다
아프던 가슴 낫고 새로운 꿈도 꿀 수 있다
밥 김치 얼음물 과일 돗자리 시집 몇 권 준비해 두거라
휴일 오면 다시 가리라
섬은 아름답다
섬은 외롭다
멀리서 바라보는 섬은 더 외롭다
사람조차 살지 않고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섬은 더욱 외롭다
생각하면
섬은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보는 섬은 더 아름답다
사람조차 살지 않고
그 누구도 닿지 수 없는 섬은 더욱 아름답다
죽음같은 사랑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섬으로
나는 남고 싶다
목금木琴타는 우리의 숲으로 꿈꾸러 가리라
문복주
평면은 공간을 알 수 없다
살아온 날들의 슬픈 칼이 날아와 살점을 뚝 뚝 한 점씩
베어가고 남은 상처 밑둥 옹이져
지금은 굳은 살들이 등이며 팔뚝이며 허벅지에
남아 몸은 더 이상 황홀한 감정을
불같은 성감대를 갖지 못한다
굳은 살이 박힌 사이로 푸르게 강이 흐르지만
지나가는 것들이 남아 있는 것들의 내밀한
치욕이나 궂은 날이면 시작되는 곰팡이류의 무성한
일과성 통증을 어찌 다 기억할 수 있으랴
벽을 허물고 빛을 일으키는 순간에 마지막
묵시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목울대 누르는 생의 반란
절망에 떨어져 보지 않은 평면은
공간을 알 수 없다
번개를 타고
문복주
아들아, 준비가 다 되었거든 번개를 타고 우주로 떠나자
우주의 산과 숲,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더없는 추억과 기쁨이 되리라
아들아, 지난여름 철원 민통선 울창한 숲에서
금강 초롱꽃 만난 기쁨을 기억하고 있느냐
외설악 깊은 계곡 맑은 물에서 열목어 발견했던 기쁨을 기억하고 있느냐
우리가 우주 어디에선가 만나게 될 생명을 생각하면
우주여행은 기쁨에 가득 차는구나
지구외 지적생명의 탐사 일정표를 잘 갖추어 놓거라
별자리표와 우주 전파 망원경과 파이어니어에 실려 보냈던
우주인에게 보내는 메시지 금속판과 지구인의 인사와 음악을 녹음한
황금 레코드도 잊지 말거라
아들아,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백조자리 타우별과 에리다누스강자리 입실론 별에서
너는 놀라운 생명을 만나게 될지 어찌 알겠느냐
30만 개의 별이 모인 구상성단 M13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생명을 생각해보면 가슴 뛰지 않느냐
아들아, 가자.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번개를 타고.
우주 탐험가
문복주
‘우박이다.’라는 말을 우주로 듣고
졸다가 깨어나 휘둥이는 나를 보고 마누라는
치유가 곤란한 중증의 망상가라고
몰아치고 아들 놈은 아빠가 대단한 우주 과학자이며
우주탐험대장이라고
동네 꼬마 녀석들에게 자랑스럽게 외치고 돌아 다니는
망상가와 과학자라는 엄청난 틈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우주와 우박, 우산, 우거지, 우물, 우루사는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 너른 우주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우주의 꿈을 꾸고 있다
별의 죽음
문복주
독수리 문장 멧벼슬 위에 빛나던 금빛 권좌의 별이여
나일의 강변에서 이천년을 울며 기다리던 유다의 별이여
에뜨왈르 광장 무명용사의 죽음 위에 새겨진 별이여
양떼와 목동마저 아늑하게 잠들게 하던 사막의 별이여
헤르쿨레스, 작은여우, 마차부자리를 그리며 잠들던 별이여
너의 이름으로 불의를 향하여 총을 쏘던 가슴에 빛나는 별이여
어둠의 벌판, 눈물 끝에 부서지며 아롱거리던 외로운 별이여
여름밤 꿈과 낭만으로 이슬 젖어 내리던 내 유년의 별이여
은하열차를 타고 우주를 달려 너를 찾아가던 신비의 별이여
이제는 인간의 머리와 가슴에 뜨지 않는 죽음의 별이여 !
별하나의 추억과 별하나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잊혀진 별이여
아, 우리의 별들, 운명들 !
위험한 항해
문복주
삶 어딘가에 숨어 있는 커다란 위험이
운명이란 이름으로 나타나 강줄기를 바꾸듯
저 세계의 탐험은 제우스의 신탁과 같아서
우리의 운명을 알수 없게 바꿔 놓으려 하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오지에서 꽃잎보다도
더 쉽게 떨어져 지고만 사람들을 기억하지
무명無明의 바다를 건넌다는 건 정말 위험한 항해야
그러나 운명으로 선택된 사람들은 ‘왜 나인가 ?’를 묻지 않아
운명이란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그 운명 속으로 들어가
신화를 남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
황금 양털을 찾아가는 이아손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딧세우스처럼
운명을 싣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건
희망과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용감한 자의 몫이지
어둠의 바다에는 알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
마지막 남은 미지의 세계여,
기다려라. 꽃잎을 떨어뜨리며 우리가 간다
나사NASA
문복주
머리에 나사가 몇 개씩 빠져 정신 빠진 계산을 하고 세상을 망치로 두들겨 쓸모 없는 깡통을 만들어 하늘로 던지는 미친놈들이 있다. 전파 망원경 궤도에 올려놓고 우주상의 개미 분포를 살피고 갈릴레오를 목성에 보내 외계가 인류의 두개골 크기에 미친 영향을 알아 보고, ‘알파’ 기지를 건설하여 날으는 양탄자를 취항시키고, 노동자를 월면공장으로 파견시켜 광맥을 찾고, 화성에 고층 아파트촌을 세워 분양한다는 술취한 놈들.
나사가 빠진 놈들은 나사가 빠져 있어 한없이 무섭다. 누가 저 놈들의 헐겁은 머리에 나사를 더 빼어버리거나 꼭꼭 죄어다오. 그러나 삶이 도무지 재미없어 지랄같을 때 놈들이 한없이 부러워 협잡을 꿈꾸며 나는 미친 듯이 외친다. 누가 나의 머리에서 나를 죄고 있는 이 더럽고 냄새나는 일상의 녹슨 나사를 빼다오. 녹슬은 나사를 빼다오.
화이트홀*
문복주
언제 이 벌레구멍을 벗어 나는가
이 구멍 벗어나도
세상에 덧없는 구멍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는 벌레구멍을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지만
나의 모습 찌그러지고 망가지고 뭉게진들
벌레의 삶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느리게 마치 죽어 있는 듯이 기어간들
벌레의 하루살이 일생에서 길거나 짧은 시간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이 벌레구멍에 들어오면 공간과 시간이 무너지고
세상이 갖고 있는 법칙과 관념은 깨졌다
허우적거리며 꿈틀거리며 죽음의 벌레구멍을 기며
나는 흰나방의 날개를 생각했다
내 생의 어둠이 가지고 있는 인과율因果律
어둠의 구멍 그 너머에 부활이 있다는 믿음을 굳게 붙잡았다
시간의 대칭성을 깨고 미래로 과거로
고통과 아픔과 이별이 없는 곳으로 갈수 있다는 믿음은
벌레구멍을 기어가면 갈수록 커졌다
얼마만큼의 길을 더듬거리며 또 기어가야 하는가
내가 비록 절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둠의 끝까지 다달았을 때
어둠은 삼켰던 빛과 나를 사정없이 토해냈다
불가사의하게도 나는 화이트홀의 열린 우주에 와 있었다
벌레구멍을 깊게 들여다보면 오, 놀라운 신세계가 시작되었다 !
*화이트홀:블랙홀의 대칭 개념으로 벌레구멍이란 뜻을 가진 웜홀로 연결된 빛의 출구
이끼 낀 탑
문복주
산행 길 오르다 보면
누군가 올려놓은 작은 돌들
무엇을 기원했을까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그네의 손에 슬몃 올려놓고
그네를 바라보면
어느 덧 산그늘 드리워진
내 고전의 탑
푸릇푸릇 이끼로 단아한데
나,
평생 고즈녘한 곳에
산사山寺 하나 짓고 싶네
잔설 희끗희끗 남은 그네의 탑
서성이는 그림자로
남았으면
차마 좋겠네
태왁*
문복주
어멍은 바다를 펼쳐 놓고
평생을 애오라지 날렵한 물새로 춤추도다
국가대표보다 더 나은 무명의 수중 발레가로다
관객은 없지만 일류의 돌고래 쇼를 하는도다
자맥질하여 들어간 바다 이승보다 더 좋았는가
물 위로 나오면 태왁 가슴에 안고
아름다운 휘파람새 소리 내도다
호이_ 호이_
푸른하늘로 스미는 숨비소리** 너무 아름다워
톨 미역 성게 소라 오분자기 전복 낙지
물 속에서 줄줄이 나와 함께 춤추도다
우리 어멍 바당에서 한 평생 물질하여
물려 준 유산 너무 크고 많도다
저 너른 바당 다 남겨 주고 모자랐는지
억센 바람도 다 모아 주고 갔도다
그 중 소중한 유품은 둥근 공 태왁이었느니
부초浮草와 같이 흔들리면서
내 삶 굳게 붙들어 준 한바다의 부표浮標
*잠녀가 물질할 때 붙들고 쉴 수 있는 공모양의 기구.
**잠녀가 물 속에서 나와 숨을 쉴 때 나는 소리.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문복주
내가 은적해 온 이곳은 화엄사나 해인사 보다 더 고결한 선승들이
밤낮으로 화두를 깨우치고 있다
머리통에 여러 개 쇠막대기를 박아 늘 깨어있는 김씨가 법고를 울리면
나는 일어나 공양을 한다
온몸 뒤틀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휠체어에서 몇 달째 장좌불와하며
내게 스티븐 호킹의 신화를 설법하고
오대양을 뱃속에 담고 출렁이는 양씨는 고통이 정점에 이르면
정신 잃고 독경을 외며 비겁한 내 어깨에 죽비를 내려친다
야, 이년아! 씨팔 년아, 나 죽기를 하루에 백 번씩 비는 죽일 년아!
다리나 팔 하나쯤은 서슴없이 자르고
콩팥, 골수, 췌장도 나누는 그들 사이를 서성이며
언제 나는 저 법문을 지나 화엄에 이를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창가 쪽은 허전하다 못해 황홀하다
한나절 내내 침대에 앉아 어제 그녀가 가져온 제주수선화의
목을 댕강댕강 자르고 짓이기고 부수다가 쓰레기통에 쓸어 넣는다
꽃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반역
고통과 신음이 사리로 남는 소멸만이 꿈인 여기서는
그들이 아름다운 꽃이다
성스런 경전이다
인간 게놈 선언
문복주
유네스코가 인간 게놈 선언을 채택했다
인간 게놈과 인권보호에 관한 국제선언이다
‘인간은 모두 개놈이다’를 유네스코가 국제적으로 선언한 건가?
개놈 같은 인간에게도 인권이 있느니 보호해주자는 이야기인가
게놈이란?
‘키, 피부색 등을 결정하는 유전물질 디엔에이DNA를 담은 염색체 세트’다
게놈을 서당개 삼 년으로 배운 개놈들이 돈을 벌기 위해
30억 개 특정 유전자 위치를 파악하고
유전자 기능과 순서, 염기쌍 순서를 마구잡이로 바꿀지 모른다는
위협감에 게놈 선언이 서둘러 나왔다
똥개 같은 놈들이
인간의 지능, 성격, 수명, 질병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뽑아
개당 백만 원 씩 덤핑으로 팔아 넘길지 모른다
나도 유전자 조작으로 복제양 ‘돌리’나 천만 마리 만들어 목장주나 돼볼까
내 유전자나 뽑아 복제아들 1억 명 만들어 게놈왕국이나 만들어 볼까
이제 인간은 게놈에 밀려 개놈들에게 치일 날이 멀지 않았다
지구는 컹컹 개 짖는 소리로 개벽되고 게놈에게 물릴 날이 멀지 않았다
이 개 같은 세상에 대하여 유네스코는
인간 게놈 선언을 미리 미리 해두어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지만
개놈들에게는 개소리 일 뿐이다
찔레꽃
문복주
제주 오뉴월 중산간 오름은 찔레꽃 무더기. 장미 만 가시 있는 줄 알았더니 찔레꽃 온몸이 가시다. 가시가 있어 아름다운 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찔레꽃 찔레꽃. 장사익은 비틀거린다. 찔레꽃 향기가 슬픈 게 아니라 가시로 꽃 피우는 찔레꽃이 슬프다. 아니 찔레꽃이 아니라 찔레꽃 하얀 사랑이 슬픈 것이다. 못다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찔레꽃 얼마나 슬픈 꽃인가를 보기만 해도 알기에 찔레꽃 찔레꽃 가시 찔리며 피흘린다.
라라라라
문복주
나 같은 꽃 하나 진들
꽃 또 피는 걸
왜 나는 지기 서러워 오늘까지 슬프기만 했을까
어머니 소리 없이 흐느낄 때마다
꽃으로는 절대
다시 피어나지 않으리라
무슨 악연으로 만나
업보의 늪에 허우적거리며
서로에게 빚을 갚는가
자신이 꽃인지 조차 모르고
온 몸 가시 돋운 채 웅크려 신음하는
죽음 같은 멜로디
라라라라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 다시 만나지 말아요
당신만의 삶을 살고 당신만의 아름다운 사랑
찾아가세요
아아, 아니예요
우리 연인으로 만나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때는 우리 정말 아름답게 만나요
지상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나의 간절한 노래
라라라라
복제인간‧1
문복주
그래, 네 아비 함자가 무어냐?
모른다고?
네 어미는?
모른다고?
네 자란 고향은 어디냐?
모른다고?
그럼 도대체 너는 뉘집 자식이냐
어디서 생겨났단 말이냐?
모른다고?
에끼, 이놈! 썩 물렀거라!
이런 상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이 놈을 당장 끌어가지 못하겠느냐!
복제인간‧2
문복주
그래, 네 아비 함자가 무어냐?
네로 알렉산드르 나폴레옹 빌 게이츠 경입니다
네 어미는?
잭클린 마더 테레사 다이애나 황진이입니다
네 자란 고향은 어디냐?
세계생명공학유전자연구센타입니다
아이구, 각하! 죄송합니다
대 명문가의 아드님인 줄 미처 몰라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괜찮소. 나는 그 명문가의 일억삼천사번째 아들이니까
여름날의 투신
- 번지점프
문복주
제주 탑동 해안가 여름밤은
젊은 놈들 이유 없이 매일
투신 자살한다
한 명 죽어도 신문에 날 일인데
요즘 젊은것들
줄줄이 허공에서 추락한다
우리 늙은 것들 죽지 못해 겨우 사는데
사는 것 개뿔 알지 못하는 젊은것들
살아보지도 않고 뭐 할 짓 없어
생명 갖고 장난하나
그런데 앗!
다시 튕겨 오르는 죽음
사지 펴고 비명 지르며
새처럼 하늘 날아다니는 무서운 놈들
요즘 젊은 놈은 죽음까지라도 찾아 가
살아있다 살아있다 외치며
즐거워 낄낄거린다
붉은 흙 마을 사람들
문복주
붉은흙 마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몇 번 사람을 보냈으나 도중에서 길을 잃거나 병으로 쓰러져 돌아오지 않았다.
바이킹*이 간신히 마을에 닿아 사람들을 만나려 하였으나
빗장문을 걸어 잠근 그들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외부의 낯선 사람에게 어찌 쉽게 경계의 눈빛을 풀겠는가.
나는 21년 후 1997년에 다시 패스파인더**를 보냈다.
4억9천7백만km를 7개월 동안 밤길 걸어가는 대장정이었다.
캄캄하여 무서웠으나 충직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
가까스로 붉은흙 마을 가까운 숲에 다다를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 본 붉은흙 마을은 나무가 없어 황량했지만
다른 마을에 비하면 훨씬 아름다웠다.
칼데스 화구를 낀 거대한 오림포스산 아래로 아마조니스 평원이 펼쳐지고
마리넬리스 협곡으로 안개가 드문드문 피어올랐으며 그 사이에 강도 흐르는 듯 하였다.
패스파인더는 마지막 죽음의 폭포 속을 헤쳤고, 절벽을 타고 내려 가 마침내 세 번째로 붉은흙 마을에 닿았다
그러나 붉은흙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빗장을 걸고 어딘가에 숨어
낯선 방문자를 틈 사이로 내다보고만 있었다.
패스파인더는 안주머니에서 주인의 편지가 든 소저너***를 꺼냈다.
집집마다 굳게 닫혀져 있는 대문을 두드리며 주인의 편지 소저너를 틈마다 넣고 주인의 인사를 정중하게 대신했다.
오랜 동안 가까운 이웃간에 살면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뜨거운 인사드리오니 부디 양해하시고 서로 격의 없는 대화와 왕래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나는 패스파인더가 감격과 감동에 부들부들 떨며
‘주인님! 붉은흙 마을 사람들이 소저너의 편지를 읽더니 마침내 문을 열고 나와 나를 맞이하여 안으로 들라 하였습니다.’라고 전해 올 그의 목소리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녹색 사람이 나타날 것인가?
문을 굳게 잠그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 들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화성에 착륙한 첫 번째 탐사선
**화성에 착륙한 세 번째 탐사선
***패스파인더에 실려 화성에 간 탐사 이동 로봇
찾아가 주세요
문복주
우리는 가끔 이곳에서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립니다
때로는 안경, 칫솔, 런닝, 양말,
심지어 팬티까지
우째 그런 일이,
그러나 까맣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용기와 순정이
우리를 살맛 나게 합니다
아직까지 살아도
내가 누구인지 조차 몰라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답답한 하루
팬티가 무엇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가릴 곳 없다 생각하고
벗은 채 뛰고 있을 당신이 부럽습니다
작은 꽃
문복주
내 여자 키 작다
손이며 옷이며 가방이며
젖가슴도 손안에 들어와
벗어나지 않는
저만한 아주 작은 꽃
화장실에 들어가면
치약 묻혀진 칫솔 놓여 있고
나오면 상큼한 팬티와 런닝
문가에 켜져 있고
흰 수건 들고 부끄럽게 서 있는
방을 들락날락 거릴 때
앞을 가로막으며
나와 춤추려고?
나랑 입 맞추려고?
나를 위한 시 쓰려고?
골든벨 울리는
하나 같이 작은 몸짓에
나는 그저 자자!
외친다
향기로운 풀꽃 숲에서 잠잔다
다리 하나 들어 여자의 허벅지에
올려놓고
팔 하나쯤은 미안스러워 괴어 놓고
꽃이 다치지 않기 바라며
꽃받침으로 기뻐 잠이 드는 여름날의 산골
부처도 할 수 없이
문복주
눈 안의 부처
눈 밖의 부처
휘휘 바람 일구어
오체투지 백팔배 한다
문수보살 관음보살 사이에 끼인
아미타불
됐다. 이놈아,
이젠 제발 그만 하거라
자꾸 도망가려 한다
저 눔의 부처
무심한 눈으로
귀만 커다래 가지고
자비도 개뿔 아니면서 히죽이는 입으로
네 놈 안에 법이 있느니라 외치는
좋아요. 좋아
삼천 배 삼천 날을 할 테니
귀찮으면 업을 녹이세요
연을 끊든지
약사여래 움켜 쥔 저 약단지
아예 바닥에 떨구시든지
둥둥둥 법고도 두두득 목어도
딩딩딩 범종도 치니
삼라만상이 아우성
이거 하루라도 편할 날 있어야지
밤잠 설친 부처
할 수 없이 가운데 토막 쓱 잘라 던진다
이 놈아, 다시는 오지 마라
그럼 그렇지
옛부터 내려오는 빌고 비는
어미 치성
이기는 부처 보았느냐
등신불 이기는 부처 보았느냐
귀하의 예금을 돌려드립니다
문복주
안녕하십니까?
저와 관계를 맺고 예금 계좌를 개설하시어 저를 항상 이용하여 주신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귀하께서 늘 사랑해 주신 덕분에 이번에 승진되어 저 세상으로 발령 받아 전출 가게 되었습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을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전출이라 귀하의 예금을 미처 처리하지 못한 바 제반 절차를 거쳐 환급 대상 예금을 돌려드리고자 하오니 계좌를 확인하여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혹 애증이나 물질의 불편 부당한 사항이 있다면 후임 대리자 아들과 상담하여 주시고 그래도 해결하기 곤란한 사항이 있다면 직접 저의 세상을 방문하여 주시면 성의껏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거래가 없어 휴면예금으로 처리되신 분이라도 작은 추억을 귀하의 소중한 재산이라 생각하여 돌려드리고자 하오니 해당 거래통장과 도장 신분증을 가지고 오셔서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깨끗하게 살자. 자유롭게 살자. 즐겁게 살자. 믿음으로 살자. 사랑하며 살자. 라는 운영방침 아래 각종 사업에 투자하였습니다만 적잖은 손실도 발생했습니다. 맡겨주신 예금을 잘 관리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다음 기회가 온다면 꼭 꿈이 맑고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귀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아 래
1. 정리기일:전출 전
2. 환급 대상 예금
동백꽃 진 자리
문복주
구질구질 추하게 늙지 말기를
자연에의 회귀가 아름다움이라면
스러지는 것 모두 꽃이 되겠지
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아름답기를
푸른 잎 사철 화려하진 않았지만
한 생으로 피워 낸 붉은 뜻 보고서야
꽃이 왜 피었는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
사는 것 소중했다면
앉은자리 그대로 발 밑에 놓아
통채로 지는 순절
돌아가는 길
동백꽃 진 자리로 남아
기쁨으로 가는
자연 그대로의 회귀였으면
좋겠어
작전상 후퇴
문복주
2004년 12월 4일
현대시 송년회
경복궁역에 내려 7번 출구로 나와
베르린 호프를 찾는다
굳게 닫힌 어둠의 홍화문 무서워 되돌아서고
한국일보 요즘 통신사업에 손댔나 철탑만 높고
알지 못할 거대한 은폐물들
임금 산다는 동네인데도 길 물어 볼 개새끼조차 없다
독일 탱크처럼 허허벌판 무지의 서울을 쓸고 나간다
세종문화회관을 밀어버리고
건너편 정보통신부, 동아일보사를 초토화한다
무전통신으로 에스오예스 알았어 찾아보지
청진동 해장국도 무교동 낙지도 이순신 장군도 무찌르지만
베르린 호프는 도대체 이 서울 어디에 있는가
서울놈들은 진짜 무식한 촌놈들
자기 동네도 이처럼 모를 수 있을까
전경도, 학생도, 슈퍼 아줌마도, 경찰도, 심지어 구청 당직놈도
점심도 거르고 온 내장에서 계곡물만 흘러가고
다시 에스오예스. 총무, 잘 쳐 먹고 잘 살아라
나 지리산으로 돌아간다
서울에 오니 믿을게 돈 밖에 없다
하필 저 놈에 교보문고는 왜 보이나
시인이라며 평생 쓴 내 시집 한 권도 꽂혀있지 않는 붉은 방카
내년엔 기필코 네 놈 가랑지에 오줌을 갈기리라
이 몸 두 시간의 전투로 너무 피곤하고 배고파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빌어먹을 현대시여 안뇽, 웃겼던 2004년이여 안뇽
우포늪에서
문복주
강이 아니라 이제는 할 수 없으니
늪에 살 수 밖에 없다고
시와 자연과 사람 주제로
우포 비 내리는 밤에 시인들 모여 메마른 장마를 걱정한다
강연을 하고 맞인사 하고 술 한 잔 두 잔 늪에 빠지며
불편한 시대에 아직 기적처럼 남아 있는 나의 뿌리를 알 수 없어
화장실을 자주 기웃거리는데
습지의 지렁이들, 날짐승들, 꽃뱀들
비가 오니 오, 원초의 몸을 비비꼬며
노래하는 그리운 것들
쥬라기니, 중생대니, 신석기니 바이오 시대니
통하지 않는 언어로 저마다 낄낄거리는데
원초에 원초를 건너 습지에 기생하는 나는
땅의 지진과 잡음에 흔들리고 무서워
잠 못 자고 기어 나와 기어이 88고속국도를 달린다
날벌레들 차창에 몸을 박는다
이해해다오
지금 내가 돌아가는 것은 나도 살고 싶기 때문이란다
늪에서는 생이라 믿었던 것들이 일순 죽음이 된단다
이해해다오
지금 내가 돌아가는 것은 나의 사랑을 위한 것이란다
늪에서는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일순 돌이키지 못하는
증오가 된단다
우포에 다달아 젖은 늪지를 서성일 때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너의 젖은 그 얼굴
거기 있었다
왜 너는 먼저 와서 우포 습지에 있었을까
캄캄한 밤 세시의 88고속국도
나는 달려간다
늘 젖어있던 원초의 사랑 이제야 알겠다
아름다운 사랑은 원초의 생명이라는 것을
변이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다
함양감사 되어
문복주
그 옛날 함양감사
삼천리 부임길 울며
귀양 가던 함양 땅
이제 나 스스로 함양감사 되어
산 넘어 물 건너 함양 땅에 가네
한밭 지나 무주라
구천동 지나 덕유라
지리산 능선 굽어굽어 들수록
빠져드는 속리俗離의 황홀경이여
얼마 만에 내 길 접어드는가
숨쉴 수조차 없던 세상 버리고
내 사람 함께 찾아가는
함양 땅은
벌써 용추고 상림이고 병곡이네
천년이 모자라면 만 년이라도
살고 지기 위하여
어명으로 찾아드네
퇴수정退修亭*
문복주
술 한잔 마시고
퇴수정 너럭바위에 누웠다
물에 쓸린 소나무 뿌리며
바람에 깎인 가지며
세월을 버려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들
박치기*가
세상을 버리고 오자
산천이
지금까지 기뻐하고 있다
나도
한껏 무너지려
술 한잔 다시 따른다
지이산智異山
계곡 물소리 크다
*조선 후기 박치기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지리산 계곡에 이 정자를 짓고 살았다.
무너지지 않는 고가古家
문복주
나, 그를 본 적 없고
그, 나를 만난 적 없지만
오백 년 전
용추계곡 발 담그고
시문 할 때
산수가 답하던
한 뜻
느낄 수 있다니
세월은 인간보다 깊이 흐른다
오늘 만나 뵈는
지극한 자존
무엇
가지고 버리는 것 아니라
느낄 수 있다니
인간은 더 깊은 세월을 산다
천대의 집을 짓고
천대의 글을 지어
무너지지 않는 살가운 고가에서
오늘 나는 자유롭다
정의와 역사와 희생과 사랑과
마지막 도도 모르는
놈들의 상판대기에 도장을 찍고 나와
일두 고가를 찾아 가는 함양 땅은
살아 살아 모든 것이 피는
붉은 꽃들 뿐
나는 일급수에만 살라고
놓아 둔 일두어一蠹魚*인가
누대를 내려온 충효의 솟을 대문을 지나
누구도 더럽히지 않는 상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정여창의 호 일두(一蠹)에 고기 어(魚). 용추폭포 상류에 고기를 살게 했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오도悟道재를 넘으며
문복주
달 이끌리는 대로[引月] 가면
산들은 재갈재갈 작은 천을 내놓고[山內]
말이 하늘을 닿을 듯 달리는[摩天] 산하에 닿으면
그대, 반쯤은 땡중 된거다
물이라 건너지 못하고
산이라 넘을 수 없다면
그대, 소리 따라 걸어라
한 세월 모자른 듯 걷다 보면
오도재에 닿기도 하려니와
청매 조오선사
길의 끝 갔다 왜 다시 돌아 왔을까
슬픔이 왜 아름다움이 될까
미움이 왜 그리움이 될까
비오는 날 오도재를 넘어
그대의 쓸쓸하고 아름다운 산
찾아 간다
<시인수첩>
폭풍 속으로
문복주
1. 폭풍 속으로
제주는 바람의 길목이라 태풍이 자주 지나간다. 섬이 폭풍권에 들면 차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폭풍을 맞으러 가는 것이다.
그 동안 기만했던 거짓의 것들에 반성한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한라산 동인들은 여름이 오면 탑동 거리에서 야외 시화전을 하고, 시낭송을 하고, 겨울이면 그 동안 습작한 글을 모아 동인 시집을 펴낸다. 이 두 번의 일은 폭풍 속으로 가는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어줍잖은 글을 내보이며 왜 우리는 궂이 폭풍 속으로 가는 것일까.
글은 혼자 쓰고 혼자 즐길 수 있지만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글은 얼마나 쓸쓸하고 무의미할까.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바람 쐬러 나온 우리의 아이들이, 연인들이 우연히 시 한 구절을 읽고 감동에 젖을 수 있다면 좋겠다. 보잘 것 없는 글이라도 열과 성을 다하여 만든 동인지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문학이 죽지 않고 우리의 주변에 살아 있다니 하며 그 옛날의 추억과 사랑으로 잠시 돌아가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2. 한 무더기 풀꽃을 꺾어 보내며
셔츠 윗주머니에 손가락 넣다 가시 찔렸네
부서진 들찔레꽃
어느 산길에서 꺾었을까
옷주머니 이 쪽 저 쪽
세월 지나 나타나는
마른 꽃잎들
꿈꾸는 담팔수 잎 아직 붉어
가만히 꺼내 책상 위에 놓아두는데
그 날의 숲 푸르게 푸르게 살아와
풀물 들어가는
내 마음 비밀의 장원
- '마른 꽃잎' 전문
어느 날 나는 옷을 갈아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다 날카로운 어떤 것에 찔려 통증을 느끼고 피 맺힌 손가락을 살펴야 했다. 주머니엔 바짝 마른 찔레나무가지와 몇 개의 마른 꽃잎들이 부서져 내렸다. 내 주머니에서는 마른 풀잎이나 꽃잎들이 자주 나온다. 나는 산이나 들을 헤매 다니며 예쁜 풀꽃이나 작은 나무들을 보면 그 꽃잎을 따서 입에 물고 내려오거나, 짐짓 머리나 귀밑머리, 윗주머니에 꽂고 돌아오며 생의 언저리에서 나는 풋풋한 풀내음을 한껏 즐기고 음미한다. 풀꽃마다 모양새와 꽃색이 달랐으며 꽃향기 또한 달라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즐거움은 형용할 수 없는 감미로움을 주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만나지는 사람에게 ‘자, 이 꽃을 받아요. 꽃의 아름다움을 드려요.’ 라고 말하며 꽃을 건네준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아하고 웃는다. 때로 시집이나 책 속에 꽂아 두기도 한다. 오랜 세월 잊혀진 후에 그 꽃잎들은 발견되고 다시 기쁨이 찾아온다.
시는 내 마음 비밀의 장원을 산책하면서 꺾어 온 꽃잎과 같다. 간혹 내가 쓴 시들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시를 쓰지 못하여 부끄러움이 있게 마련이지만 나는 문학을 좋아하는 충실한 독자가 되어 그 시에 심취해 읽어 내려간다. 그러면 갑자기 무력했던 생은 푸릇푸릇 생기를 띠고 짙은 녹음이 깔리며 기억의 먼 시간을 달려가 그 날의 숲이 푸르게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 곳엔 나만의 사랑이었던 소녀가 웃고 있었다.
시는 시궁창 같은나의 삶에 던져진 꽃이었다. 나의 삶에 문학이라는 장원이 없었다면 나의 삶은 저 폴 발레리가 쓴 '해변의 묘지'이거나 엘리엇이 쓴 '황무지'였으리라. 이 세상에 시가 우리의 삶에 향기를 던져주는 꽃과 같은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왜 모르는 것일까? 그러므로 나의 삶이 더 더욱 절망적일 때 나는 시를 쓴다. 시쓰기는 이제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나는 시를 쓰면서 즐거움을 갖는다. 시쓰기가 괴로움이거나, 고통스러워야 한다면 문학은 우리 삶에 또 하나의 짐일 뿐이다. 나는 시쓰기가 고통에서 희망이 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동반하는 구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엉겅퀴를 보라. 가시나무 끈끈이주걱을 보라. 앙증맞은 보랏빛 혹은 자줏빛 노랗고 빨간 작은 풀의 꽃들을 보라. 풀의 이슬을 보라. 그 꽃들은 작지만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게 얼마나 의지있게 얼마나 의미있게 흙을 딛고 일어나 바람에 흔들리며 허공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를 오랜 시간 살펴 본 사람들은 알리라. 시는 큰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대하여, 큰 기쁨이 아니라 작은 슬픔을,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하여 그 존재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찾아 돌려주는 것이다. 삶에서 잊혀져 가는 것들이나, 슬픔의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그 존재가 가지고 잇는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어야 한다. 작은 풀꽃처럼 아름다운 생명과 향기를 발견하여 기쁨으로 오래도록 바라보고 즐기고 간직하는 태도야말로 시 쓰는 사람이 지녀야 할 관조의 자세라 할 것이다. 우리가 쓴 시 한 편 한 편은 들풀이며 들꽃이다.
직장인들이 모여 아름다운 시쓰기를 해 온 한라산문학 동인은 저마다 한라산 오름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산행하여 꺾은 풀곷으로 마음의 장원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라산 글동산은 화려하지 않으며 명예로운 관이 씌어져 잇지는 않지만 질긴 풀뿌리 생명이 있다. 들풀과 풀꽃으로 피어나 제주의 오름을 이름없이 지키고 있다. 설사 시든 꽃잎으로 진다하더라도 꽃잎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은 여전히 그 안에 푸른 엽록소로, 민들레 꽃씨로 남아 먼 훗날의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다. 그대에게 한무더기 풀꽃을 꺾어 보낸다.
3. 바다같은 글 한 편 쓰고 싶다
문학행사가 끝나고 식사겸 반주 한잔을 걸치고 나온 우리는 그대로 헤어지기 서운했는지 거리에 어정어정거리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 때는 누군가가 나서서 은근히 자기를 붙들어 주기를 내심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한 잔 더하지’하며 옆 사람을 붙잡자 줄줄이 따라 나선다.
마침 단란주점은 손님이 없어 홀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아가씨도 두어 명 곁에 앉아 술을 따랐다. 얼마 쯤 지나 누군가가 ‘개똥 같은 문학 얘기 집어치우고 노래나 하지.’라고 외쳤고, 우리는 ‘그래, 문학은 이제 개똥이 되었어. 이 시대에 문학이 설 자리가 어디 있는가. 노래나 하지.’하며 하나 둘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러 앞으로 나갔다. 줄곧 한마디 없이 녜, 아니오만 하며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시골 색시 같던 아가씨가 잠시 실례하겠다며 자리를 떴고 홀 앞으로 나갔다. 음향기기를 만지고 마이크를 매만지고 홀의 조명등을 조정하고 야광등을 켜더니 낭낭하게 말했다. “우리집을 찾아주신 손님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더니 얏! 소리와 함께 음악이 쾅쾅 울려 퍼지고 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환희와 열광의 무대로 바뀌는 것이었다. 수줍어 나긋나긋하던 아가씨가 어디에서 그와 같은 용기가 숨어 있었을까. 그녀의 관능적인 춤이, 능란한 챔버린 율동이, 야성의 소리가 우리의 정신을 앗아 갔고 관능과 감성으로 엉크러진 홀 안은 마침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지니고 있던 체면과 거드름과 위선을 하나씩 벗어 버리고 리듬에 따라 문어의 몸체로 흐느적거리며 열대어가 되어 허공을 둥 둥 떠다녔다.
자기의 직업에 충실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달인의 경지에 당당하게 서서 유연히 흔드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지는 나를 느꼈다.
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 얼만큼의 긍지를 가지는 것일까. 혼신으로 온몸을 던져 한 편의 글을 얼마나 당당하게 써보았단 말인가. 일년에 글 몇 편 쓰지 못해 질질 매면서 시인이네 하며 칭송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 아닐 수 없다.
냇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강물은 소리 내며 흐르지 않는다. 문학이란 소리 내며 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란 흩어지면 살고 모이면 죽는다. 문학이란 자신이 하는 것이며 홀로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아주 꺼져버릴지 모르는 문학의 불씨를 간신히 보듬고 영혼에 불을 지핀다. 내가 글에 대한 철저한 프로 의식이 없이 글에 바친 고통 없이 어찌 저 아가씨와 같이 남의 혼을 빼낼 수 있단 말인가. 저 아가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후 저 경지에 서서 누가 뭐라 생각하던 당당히 즐거이 춤과 노래를 읊는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환희로 글을 쓸 때 그 글이 날을 울리고 기쁨을 주고 위로하며 감동을 준다. 그렇지 않은 글은 기술의 글일 것이다. 나는 속살깊이 흘러가는 강물. 아니 늘 출렁이는 생명이 잇는 바다같은 글을 평생에 한 편 쓰고 싶다.
<시인연구>
상상력을 쫒아온 질곡의 삶
송 상
근대 이후 귀납법과 연역법 같은 진리탐구방법은 인류에게 상당한 지식의 확충과 발명을 낳게 하여 물질적인 풍요와 생활의 편의를 가져오게 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 소시민에게는 生의 껍질, 즉 현상적 삶만 부풀려온 것이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은 아니다. 물론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에 의한 성찰이 있었으나, 일상에서 우리 소시민이 ‘실존의 문제’에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것은 문학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우리의 생生은 데카르트Descartes, R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같은 고정적이고 경화된 生이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처럼,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데카르트 전제의 반리反理이다. 즉 실존 문제를 가장 잘 대변하여 그려내는 것이 문학인 것이다.
이 문학의 장르 중에서 시詩를 통해 실존을 찾아 헤매는 ‘미친자’가 있다. 문복주 시인이다. 이제 시인의 시세계詩世界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어 마음껏 유영遊泳하며 그의 삶을 엿보기로 하자
30여 편의 詩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연혁이다. ‘이별과 방황의 삶→ 섬으로의 도피와 안주→ 우주에서의 황홀감→ 관조觀照에 대한 동경→ 둥지 튼 지리산 자락’의 구슬로 꿰차고 있다.
1. 이별과 방황의 삶
'산굼부리 억새 숲은 이별에 익숙하다'는 이 소시집의 출발점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바로 시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이별을 하고 찾은 산굼부리는 억새가 물결치고 있었다. 그 물결침은 시인의 감정을 흐느낌으로 환기시켰고 자신도 모르게 눈가로 손이 간 것이다.
산굼부리 억새 숲은 이별에 익숙하다/ 이별 뒤엔 바보같이 눈물 따라 다닌다/ 이별이 슬픈 것은 그가 떠나서가 아니다/ 바람이 불면/ 산굼부리 억새 숲 전체가 일어서서 흐느끼듯/ 바람이 불면 /그를 위하여 불렀던 모든 기쁨의 노래/ 아우성쳐 나를 울리기 때문이다/ 산굼부리 억새 숲은 내가 불렀던 나의 노래들을/ 바람으로 간직하고/ 내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날이면/ 한 곡씩 풀어 놓는다/ 뜨거운 불을 움푹 파인 저 가슴 깊이 간직해 놓고/ 억새만 무성히 길러/ 바람 속 홀로 흐느끼는 너의 이별/ 나도 이제사 너의 이별이 눈물만이 아닌 것을 알겠다/ 이별이란 누구인가를 떠나 보내고 나서/ 아픔의 깊이로 파인 가슴의 웅덩이에/ 얼만큼의 진실이 고이는가를 확인하는/ 행복의 저울대임을/ 산굼부리 억새 숲은 내게 가르쳐 준다.
- '산굼부리 억새 숲은 이별에 익숙하다' 전문
이 시의 주제는 흔한 이별의 아픔이다. 시인은 이 흔한 이별을 산굼부리 억새에 카메라 앵글로 들이댔다. 시인의 고뇌는 이별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이별에 익숙한 체 하지만 이별의 고뇌에 ‘미친 듯’이 갈기 날리다가, 때론 ‘한 곡씩’ 풀어내며 방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이별과 방황은 퇴폐적이지 않다. 이별은 시인에게 고뇌를 주지만 ‘진실’을 ‘확인’해 준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질기게 땅을 붙잡은 억새의 생명력이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육체이지만 깡다구로 견디는 인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이별을 한 단계 승화된 자아의 지층으로 쌓아 놓는다.
이런 이별의 승화는 '무엇이 지나가는가'에서도 나타난다.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강물이 지나가고/ 라일락 꽃잎 책갈피에 꽂았던/ 추억과 꿈도 지나가고/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시간도/ 흘러흘러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다 지나가고 남은 것은 없다// //사랑이라 불렀던 사랑은 어디로 가고/ 증오라 불렀던 증오는 어디로 갔는가/ 돌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강물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추억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우리의 곁을 지나간 것은/ 존재가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생각해 보면/ 지나간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인 것을
- '무엇이 지나가는가' 전문
‘바람이 지나가고 (...) 추억과 꿈도 지나가고/ 흘러 흘러 우린 곁을 지나갔다 (...) 다 지나가고 남은 것은 없다//’ 1연에서 시인은 ‘지나가고’, ‘지나갔다’와 같은 동사를 반복하여 썼다. 이는 시인의 삶이 수동적임을 의미할까? 텍스트의 의미로 보면 분명 그렇다. 하지만 시인의 의도는 시간에 대한 순응적인 담담한 묘사를 통해 오히려 실존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으로 승화시키려 한 것이다. 이는 2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랑은 어디로 가고 (...) 증오는 어디로 갔는가 (...) 강물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추억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지나간 것은/ 존재가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여기서도 ‘가고’, ‘갔는가’, ‘견디지 못하고’ 같은 동사의 반복성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직시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 한계성은 시간의 흐름 안에 있다. 그렇다고 시인은 흐르는 시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인이 겪었던 이별과 지나간 모든 것들을 ‘존재가 가지는 아름다움’으로 한 층 더 높이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별은 과거의 기억이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방황을 계속했다면 시인의 詩들은 시들었을 것이다. 시인의 방황은 섬에 닻을 내리면서 과거로 돌린다.
2. 섬으로의 도피와 안주
이별과 방황은 시인의 욕망이 표출된 행위이다. 시인은 일부러 현실의 진흙탕에서 더럽히며 자학한다. 그렇게 방황하던 어느 날 습관처럼 스쳐 지나던 섬이 시인에게 와락 달려드는 것을 분명히 본다. 홀연 시인은 존재의 본질이란 ‘욕망을 태울 때가 아니라 희망을 태울 때’라는 것을 깨닫고, 섬을 찾아 떠난다.
섬은 외롭다/ 멀리서 바라보는 섬은 더 외롭다/ 사람조차 살지 않고/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섬은 더욱 외롭다// // 생각하면/ 섬은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보는 섬은 더 아름답다/ 사람조차 살지 않고/ 그 누구도 닿을 수없는 섬은 더욱 아름답다// //죽음 같은 사랑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섬으로/ 나는 남고 싶다
- '섬은 아름답다' 전문
시인이 찾은 섬은 (...) 외롭다/ 사람조차 살지 않고/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섬/ 이다. 시인은 자신과 흡사한 섬에 파묻혀 지나온 시간을 더듬는다. 문득 ‘섬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섬이지만 /죽음 같은 사랑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섬/ 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바로 죽음 같은 사랑을 체험했고 그 곳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섬에서 살며 섬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시인은 섬에서 절벽의 소나무를 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깎아지른 암벽들이다/ 허공에 받치고 있는 하늘보다 더 푸르게 지킨 나의 청솔은 (... 가문의 고고함이었다//
- '적벽송赤壁松' 일부
성난 파도에, 칼바람에 ‘일그러지고 구부러지고 휘어진 나의 등뼈’ 같은 소나무처럼, 이별의 방황에서 벗어나 ‘고고함’으로 남고 싶은 시인의 의지가 드러나 있다. 섬에서 어느 정도 평안을 회복한 시인은 차분히 자신을 되새기나, 내면에선 정적이고 평면적인 섬에서 벗어날 꿈을 꾸기 시작한다. 허공에서 응시하는 자신의 모습, 허공에서 바라보는 현실, 우주에서의 무한한 자유, 드디어 시인은 섬을 떠나 우주로의 유영을 결심한다.
3. 우주에서의 황홀감
우주로의 여행은 새로운 앵글로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인의 의도적 행위이다. 그로 인해 시인은 마음껏 시적 상상력을 우주로 쏘아 올리게 되었으며, 자신의 연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아들아, 준비가 다 되었거든 번개를 타고 우주로 떠나자/ 우주의 산과 숲,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더 없는 추억과 기쁨이 되리라/ 아들아, 지난 여름 철원 민통선 울창한 숲에서/ 금강초롱 꽃 만난 기쁨을 기억하고 있느냐/ 외설악 깊은 계곡 맑은 물에서/ 열목어 발견했던 기쁨을 기억하고 있느냐/ 우리가 우주 어디에선가 만나게 될 생명을 생각하면/ 우주여행은 기쁨에 가득 차구나/ 지구 외 지적 생명의 탐사 일정표를 잘 갖추어 놓거라/ 별자리 표와 우주 전파 망원경과 파이어니어에/ 실어 보냈던/ 우주인에게 보내는 메시지 금속판과/ 지구인의 인사와 음악을 녹음한 황금 레코드도 잊지 말거라/ 아들아,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백조자리 타우 별과 에리다누스강 자리 입실론 별에서/ 너는 놀라운 생명을 만나게 될지 어찌 알겠느냐/ 30만 개의 별이 모인 구상성단 M13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생명을 생각해보면 가슴 뛰지 않느냐/ 아들아, 가자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번개를 타고
- '번개를 타고' 전문
‘번개를 타고’는 동적이고 공간적이다. 번개는 언제 어디서 치는지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시인이 섬에서의 안주와 평안에서 탈출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의 상상력은 정적이고 평면적인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의 우주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는 ‘금강초롱’ ‘열목어’ 같은 지구적 친환경적 신념을 강조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이러한 시인의 신념은 그의 시 '나사NASA'와 '복제인간'에서 과학의 역기능에 대한 비판과 자연 친화적 태도로 재구성되어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그는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한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생명을 생각해보면 가슴 뛰지 않느냐/고 외친다. 우주여행은 시인에게 벅찬 기쁨을 준다. 시인의 가슴은 더할 나위 없이 쿵쿵 뛰며 아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가자,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번개를 타고/라며 들볶는다. 이처럼 ‘우주’는 시인에게 새롭게 발견한 시의 생명력이다. ‘우주’가 없었더라면 시인은 다른 것을 찾아 아직도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은 우주여행을 만만하게 보지 않고 있다. 그의 시 '위험한 항해'를 살펴보자.
삶 어딘가에 숨어 있는 커다란 위험이/ 운명이란 이름으로 나타나 강줄기를 바꾸듯/ 저 세계의 탐험은 제우스의 신탁과 같아서/ 우리의 운명을 알수 없게 바꿔 놓으려 하지 (...) 운명이란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그 운명 속으로 들어가/ 신화를 남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 (...) 오딧세우스처럼/ 운명을 싣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건/ 희망과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용감한 자의 몫이지 (...) 마지막 남은 미지의 세계여,/ 기다려라. 꽃잎을 떨어뜨리며 우리가 간다
- '위험한 항해' 일부
삶 어딘가에 숨어 있는 커다란 위험이 무명無明의 바다를 건넌다는 건 정말 위험한 항해야/ 새로운 것을 향하는 것은 시인에게도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운명을 거스르지 않는다./ 운명이란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이 그 운명 속으로 들어가/ 신화를 남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사실이다. 어찌 우리가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가? 그 거스른다는 행위가 또 하나의 운명인 것을, 시인은 이를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을 싣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건/ 희망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용감한 자의 몫이지/에서 ‘운명을 싣고’라는 구절도 시인이 감행한 우주여행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운명에 순응하고 있다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4. 관조觀照에 대한 동경
우주여행으로 마음껏 새로운 상상력과 시세계詩世界를 펼치던 시인은 지구로 되돌아온다. 시인은 땅을 딛고 선 채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마도 우주에서의 황홀감을 지상에서 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물녘에 시인은 산으로 발을 옮긴다.
산행 길 오르다 보면/ 누군가 올려놓은 작은 돌들/ 무엇을 기원했을까/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그대의 손에 슬몃 올려놓고/ 그대를 바라보면/ 어느덧 산그늘 드리워진/ 내 고전의 탑/ 푸릇푸릇 이끼로 단아한데/ 나,/ 평생 고즈녘한 곳에/ 산사山寺 하나 짓고 싶네/ 잔설 희끗희끗 남은 그대의 탑/ 서성이는 그림자로 남았으면/ 차마 좋겠네
- '이끼 낀 탑' 전문
우주가 시인에게 자연의 호흡에 따르는 경지를 주었는지, 시인은 이전과 다른 삶의 태도를 보인다. 관조적觀照的 삶이다.(~적的이라 쓴 이유는 관조觀照의 삶에 가까워지려는 시인의 순수한 몸부림이라는 뜻으로 여겨주기 바람) ‘작은 돌들/ 무엇을 기원했을까’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는 좁쌀 방울만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지구에서도 작은 돌 놓으며 기원하는 누군가가 있음이 새삼 시인의 가슴에 묻었던 사람처럼 밀려온다. 너무나 크고 넓은 세계를 유영하다 돌아온 시인에게 작은 돌들은 또 하나의 다른 우주임을 알게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쌓여진 ‘고전의 탑’ ‘푸릇푸릇 이끼로 단아한’ 그 우주의 주인이 바로 시인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그 탑이기를 거부한다. /잔설 희끗희끗 남은 그대의 탑/ 서성이는 그림자로/ 남았으면/ 차마 좋겠네/ 그림자로 남기를 바라는 시인의 태도는 아마 욕망으로 넘치는 현세에서 벗어난 관조의 태도를 견지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아니면 현실의 삶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그림자처럼 빛을 따라 방향을 바꾸는 자연의 순리에 의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인의 관조적 태도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도 드러난다.
내가 은적해 온 이곳은 화엄사나 해인사보다 더 고결한 선승들이/ 밤낮으로 화두를 깨우치고 있다/ 머리통에 (...) 언제 나는 저 법문을 지나 화엄에 이를 수 있을까 (...) 오늘 아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창가 쪽은 허전하다 못해 황홀하다/ 한나절 내내 침대에 앉아 어제 그녀가 가져온 수선화의/ 목을 댕강댕강 자르고. (...) 꽃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반역 (...) 신음이 사리로 남는 소멸만이 꿈인 여기서는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일부
법문法門에 이르는 방법은 경론과 참선이다. 시인은 법문의 초입初入조차 못하는 자신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쌓은 저 언덕 너머 피안의 세계를 꿈꾼다. 그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꿈속에서 함께 화엄에 만발한 꽃을 장식하던 ‘뻐꾸기가 날아간 창가’에 시선이 꽂힌다. 순간 꿈속에서의 황홀감과 현실에서의 허전함이 교차한다. 시인은 허전함을 ‘그녀가 가져온 수선화’를 ‘꽃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반역’이라 외치며 ‘목을 댕강댕강 자르며’ 달래려 한다. 아마 자신의 업보를 벗기지 못하는 것이 증오스러워 채찍질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인은 또 다시 화엄을 꿈꾼다. 날이 새면 뻔히 깨질 줄 알면서도 ‘고통과 신음이 사리舍利로 남는 소멸’의 관조 세계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5. 둥지 튼 지리산 자락
법문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던 시인은 홀연 제주에서의 모든 것과 결별을 하고 지리산 자락으로 날아가 숨어버린다. 본래 시인은 인천 출신이다. 제주에서 삶을 꾸려 근 20여 년을 살았다. 그는 제주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의 시집 '꿈꾸는 섬', '제주 수선화'는 모두 제주의 풍경을 바탕으로 제주인의 삶을 아름답고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멍은 바다를 펼쳐 놓고/ 평생을 애오라지 날렵한 물새로 춤추도다/ 국가대표보다 더 나은 무명의 수중 발레가로다/ 관객은 없지만 일류의 돌고래 쇼를 하는도다/ 자맥질하여 들어간 바다 이승보다 더 좋았는가/ 물 위로 나오면 태왁 가슴에 안고/ 아름다운 휘파람새 소리 내도다/ 호이_ 호이_/ 푸른하늘로 스미는 숨비소리 너무 아름다워/ 톨 미역 성게 소라 오분자기 전복 낙지/ 물 속에서 줄줄이 나와 함께 춤추도다/ 우리 어멍 바당에서 한 평생 물질하여/ 물려 준 유산 너무 크고 많도다/ 저 너른 바당 다 남겨 주고 모자랐는지/ 억센 바람도 다 모아 주고 갔도다/ 그 중 소중한 유품은 둥근 공 태왁이었느니/ 부초浮草와 같이 흔들리면서/ 내 삶 굳게 붙들어 준 한바다의 부표浮標
- '태왁 전문
'태왁'은 잠녀들의 생명줄이다. 세찬 파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면서, 가계를 꾸리는 도구이다. /부초浮草와 같이 흔들리면서/ 내 삶을 굳게 붙들어 준 한바다의 부표浮漂/ 잠녀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덩그마니 홀로 흔들리는 부표, 그 ‘태왁’을 보며 ‘흔들리는 것이 삶을 굳게 지키는 비결’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흔들림’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흘러가는 것이며, 불안한 것이다. 어떻게 삶을 굳게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시인은 ‘태왁’의 이런 이미지들을 제주의 어머니와 연결하여 역경의 삶을 이겨내는 부표로 승화시켰다. 그래놓고서 자신의 ‘흔들림’도 역경의 삶을 이겨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내비치고 있다.
이런 그가 제주에서의 모든 것과 결별하고 떠난다 하니, 누가 황당하지 않겠는가? 우리들 대부분은 친숙하고 낯익은 것과의 결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의 결별이 더욱 섬뜩하고 비장하다. 그런데 어째서 지리산 자락으로 날아갔을까? 마음 한 구석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렸는데 '귀하의 예금을 돌려드립니다 '보았을 때, 비로소 그의 흉곽을 엿 볼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제주에서의 삶에 대해 짙은 아쉬움과 회한에 몸서리치고 있다. /귀하께서 늘 사랑해 주신 덕분에 (...) 갑작스런 전출이라 (...) 환급 대상 예금을 돌려드리고자 (...) 우리를 당혹하게 해 놓은 것을 갑작스러운 전출이라고 해놓고, 그와의 / 애증이나 물질의 불편부당 (...) 관계는 연락하라 한다. 그리고는 / 귀하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라고 약을 올린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비고란 화두는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고민은 늘 그가 치열하게 추구해온 상상력의 고갈을 두려워 해왔음을 인정한 것이리라.
제주를 떠난 후, 그는 또 다른 상상력으로 자신의 시세계를 넓히고 있다. 그가 안주한 함양군의 지리산 자락은 자연과 역사의 보물지대이다. 이런 곳에 둥지를 틀었으니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있을 것이다. 새벽이면 냇가가 버둥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이름 모를 풀꽃들의 눈웃음, '퇴수정', '무너지지 않은 고가','오도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술 한잔 마시고/ 퇴수정 너럭바위에 누웠다// // 물에 쓸린 소나무 뿌리며/ 바람에 깎인 가지며/ 세월을 버려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들// // 박치기가/ 세상을 버리고 오자/ 산천이 지금까지 기뻐하고 있다// // 나도/ 한껏 무너지려/ 술 한잔 다시 따른다// // 지이산智異山/ 계곡 물소리 크다//
- '퇴수정退修亭' 전문
“박치기가 세상을 버리고 오자/ 산천이 기뻐하고 있다” 이 구절을 통해 얼마나 시인은 탈출을 꿈꾸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회환과 아쉬움의 제주에서 탈출한 것은, 시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 소재의 고갈이며, 경화된 상상력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일지 모를 자신의 생을 자연에 묻혀 자연과 합치되는 그 곳에서 마음껏 자유를 느끼며, 차원 높은 상상력을 소유하기 위해 새롭게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튼 것이다. 이제 우린 그를 지켜볼 뿐이다.
언어가 시의 몸이라면 시적 상상력은 시의 기혈氣血이다. 아무리 몸이 강단해도 피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문복주 시인은 시에 기혈을 불어넣기 위해 삶의 피사체를 다양한 앵글로 포착한다. 그리하여 한 작품이 나올 즈음엔 시인의 진이 다 빠져나가 버린다. 이러한 시인의 습작 행위는 시가 바로 자기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고, 생명의 원천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치열한 이유이기도 하다.
끝으로 문복주 시인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적 향수享受가 일어나거든’ 하는 아우성이 인연을 맺는 사람마다 갖고 가기를 멀리서나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