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스케이터 시마다 마오 쇼트입니다.
곡은 관념적 표현이고,
무대 위 인물에 비유할 수 있고, 사람의 내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무대 위 인물의 연기는
사람의 희망과 절망을 매개로 한 인과가 없는 image를 그렸고,
인과에 의한 뜻을 느낄 수 없습니다.
즉 감동을 주는 형상이 없습니다.
청각을 통해서 사람의 내면으로 다가옵니다.
피겨 프로그램 속 character를 창조하려면,
사람의 외면, 즉 무대 위 (인물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필요하고, 감각적 skater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시마다 마오 skating을 보면,
그 느낌이 꿈결/환상/초월적이라기보다 일상/사실/현실적인데,
이것은 실제의 세계, 즉 사람의 외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감각적 표현입니다.
skating을 통한 무대 위 배우의 연기는
감동을 주는 형상이 없는 image에 부합하는 story로 볼 수 있고,
당연,
인과에 의한 정서의 흐름은 느낄 수 없습니다
시각을 통해서 사람의 외면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의 내면과 외면을 가진 하나의 존재,
피겨 프로그램 상에서만 존재하는 character를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창조한 character가 남기는 무대 위 마음과 무대 위 reality는
각각 청각과 시각을 통해서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즉 곡과 skating이 잘 어우러지는 performance임을 알 수 있고,
이와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조화가 아닌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창조한 character가 별다른 뜻이 없고,
이에 부합해서 별다른 정서의 흐름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상이 없는 character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형상이 있는 character의 결과는 어떨까?
신지아 쇼트 The giving의 형상은 상념이고,
갈등 혹은 고뇌, 그리고 인간미가 일말의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곡의 형상 유무가 이 같은 차이의 출발이고,
안무가와 스케이터가 고민을 더 하더라도, 이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부연으로,
여기서 만약 곡이 감각적인 표현이라면?
즉 감각적인 곡과 감각적인 skating의 조합이라면 어떨까?
이것은 사람의 외면만 둘 다가오는 것으로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질감을 느낄 수 있고,
안무가와 스케이터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감각적인 곡이 형상마저 뚜렷하고 강렬하다면, 소위 명곡이라면,
이는 안무가와 스케이터에게 재난 수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 예입니다.
곡과 skating의 조화를 위해서,
소위 이질감을 덜기 위해서,
안무가와 스케이터가 힘쓴 고민과 수고로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엿볼 수 있습니다.
피겨를 오래 본 분들 혹은 조예가 있는 분들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역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키히라 리카양은 곡과 동일한 근본이고,
곡과 마찬가지로 skating도 자기 근본을 뚜렷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관념적인 곡을 택하고 그 형상마저 뚜렷하고 강렬하다면, 소위 명곡이라면,
오히려 고민과 수고로움은 덜면서도 masterpiece가 나올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