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영영한 인과의 이치는 때가 되면 수확한다.
원기 101년 명절대재 개식사는 ‘인과의 이치는 때가 되면 수확한다.’입니다.
작년에는 ‘행복한 제자로 거듭나길 심축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행복한 이남현 불제자로 거듭나겠습니다. 교도님 모두 자기 법명으로 대치하면 됩니다. 자가 행복발전소 가동하시길 축복합니다. 하였다. 복짓는 기쁨으로 살겠습니다. 나눔의 기쁨이 충만한 서이리교당으로 거듭나자 하였다.
일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명절대재를 맞이했는데.... ‘이남현 당신! 행복한 나 날 이었습니까?’ 라고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복짓는 기쁨으로 살아왔는가? 나눔의 기쁨이 충만한 서이리교당 교도이었는가? 성찰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000님! 행복한 인생이었는가? 일상에서 감사합니다.’하고 저녁 심고 모셨는가?
이쯤하고 오늘 개식사 ‘인과의 이치는 때가 되면 수확한다.’는 사연을 말씀하려 합니다. 지난 11월 16일 수요일 ~ 18일 금요일 남중지구 늙은 교무 5인이 강원도 설악산 인근으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영어 – 스토리 탤링]
제가 54세때 서울 가락교당 재직시 정기훈련을 이수할 때 현 익산 금마교당 윤타원 최운주 교무님과 한 단원 이었는데[14년전 당시는 충남 보령 선교소 재직] 훈련 나면서 복 종자 한 뭉치를 심었습니다. 14년 세월이 흘러 지어논 복종자가 자라고 커서 때가 무르익어 이번 졸업여행 하면서 이를 수확한 것입니다.
인과보응 실제[팩트] 이야기입니다.
익산 금마교당 윤타원 최운주 교무님은 7년 ~ 8년 후배시라 금번 졸업여행 대상자가 아님, 익산 남중교당 순타원 교무님이 당사자 인데 11월 15일 화요일 저녁에 교도님 열반으로 순타원 교무님이 대타로 천거 하였 다며, 11월 15일 화요일 저녁 10시경 졸업여행을 주선한 익산 문화교당 보산 최경도 교무에게 통보 받음.
14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훈련 첫날은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윤타원 최운주 교무가 충남 보령 선교소에 부임하여 기도한 사연을 말하는데 단원 모두가 울었다.[보령- 극소수로 교도로 출발, 연원 교당-> 군산교당]
윤타원 최운주 교무가 충남 보령선교소에 부임 하기전에 예타원 전이창 종사와 향타원 박은국 종사님 말씀 받들었다.
“부임하면 유주,무주 고혼 천도 축원을 해라, 스승님 말씀 받들어 충남 보령 봉황산에 올라 100일 기도한 내용, 삼천배 하고나니 무릅에 혈흔이 배였다.”하였다.
‘일백 골절이 다 힘이 쓰이고, 일천 정성이 다 사무쳐야 되나니라.’ 악도중생을 제도할 능력과 백천사마라도 귀순시킬 능력까지 있을 것이다.[대종경 교의품 16장]
그날 밤 제가 영몽을 꾸었다. 바닷물이 빠진 해수욕장 같은 회갈색의 금모래 밭을 거닐고 있는데 2보 ~ 3보 앞에서 금모래 밭을 빠르게 헤치며 나가는 신비한 물체를 발견하고 쫓아가 물체를 덥쳤는데 손에 잡힌 신비한 물체 이게 봉황이었다. 꿈 속이지만 봉황의 신비로운 모습이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다.
‘부리, 벼슬[선홍색], 눈, 머리 전체가 여명에 떠오른 찬란한 햇 빛 같았고, 석양 노을 빛 같은 신비롭고 찬연한 붉은 금 빛 일색이었다, 깃털은 신비롭고 영롱하고 화려한 붉은 금 빛 발광체 이었다. 두발을 내가 잡았는데 발목 전체가 찬연한 누런 금 빛 용비늘 이었고, 발톱도 부리부리하고 화려한 누런 금 빛 용 발톱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봉황 꿈을 말하니 한 동지가 “형님! 오늘 외박하셔야 하겠다.”한다. “봉황 꿈은 왕조시대에는 원손을 잉태하는 태몽이고 우리 불가에는 불보살을 잉태하는 태몽이라”하면서 농을 한다.
“나는 허공 법계의 견성 인가로 직감. 이 꿈을 팔아야 하겠다.”하고 “충남 보령 윤타원 최운주 교무에게 내가 교무님 기도 원력에 보은 할 것이라”했다.
훈련을 마치고 버스에 승차하고 보니 윤타원 최운주 교무가 있어 “나를 따라오시라.”하고 원광대학교의과대학 병원 앞에서 내려 원광새마을금고 내 통장에서 백만원을 인출해 드리면서 봉황 꿈을 팔았다. 서울 가락교당에 복귀한 2개월 후 교도 두분과 함께 충남 보령교당을 방문하였다. 8개월 쯤 지난 이듬해 봄, 서울 가락교당 남자 부회장님이 열반하였다, 이분은 경기도 성남, 판교지역에 상당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가족은 보통급 교도 였다. 서울 가락교당 신축시 매일 현장 감독을 한 분이었는데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2개월 만에 열반한 것입니다.[서울 가락교당 천산 교도회장께 지난해 훈련시의 봉황 꿈 말씀하고 부회장님 천도재비를 충남 보령교당 신축 기초금으로 그리기로 사전에 합의]하여 4.7 천도재, 종재에 충남 보령교당 신축 봉불식에 서울 가락교당 교도가 대형버스로 참여 일천만원을 올렸다.[도합 : 이천만원 복을 지은 것임.]
졸업여행 출발하는 차내에서 14년 전의 인연 작복 스토리 탤링을 한 것입니다.
“한 교구에 살면서 황산 이남현 교무님 3년간 병치레 했다는 소식을 왜 나는 몰랐냐.”며 법사님 건강 회복하신 기념으로 윤타원 최운주 교무께서 졸업여행 경비 일체를 헌공하였고, 졸업여행 한 선배님 회식비도 윤타원 최운주 교무가 기부하여 기쁘고 즐거운 졸업여행이 되었다.
14년전 파종한 복종자가 무르익어 때가 되니 당사자 황산 이남현 교무가 수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