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6:1-11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계획을 말씀하시는 하나님(1-5)
가나안 첫 성 여리고가 눈앞입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업었다고 말합니다. 이미 여호수아 2장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정탐꾼을 보냈고, 거기에서 만난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알고, 여리고 성 전체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려준 바 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펴신 팔로 애굽을 굴복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이기도록 인도하셨음을 본다면, 자기들 또한 그런 상황에 놓이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살 궁리를 모색해야 했을 텐데, 성문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능력을 의지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지나온 다른 곳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성이었습니다. 소소한 공격으로는 무너뜨릴 재간이 없을 거라 판단한 듯 보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 성을 주시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이 성 앞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어지는 2절이 이러합니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굳게 닫힌 여리고 성의 방비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를 이스라엘의 손이 이미 넘겨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눈 앞에 두고 이미 그 여리고를 주셨다고 말씀하시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쓸데없이 불안한 생각으로 고민하지 않게 하려는 뜻입니다. 자기들의 힘으로는 쟁취할 수 없는 승리를 맛보게 하여,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도록 만들려는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전쟁은 지금부터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나안 사람들과 싸운 사람들은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 완성하셨으나 그 과정은 이스라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걸 내어맡기고 자신은 손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게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시며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로운 선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겉으로는 우리가 쟁취한 것처럼 보이는 것 때문에 우쭐하거나 자기 능력을 과신해서는 안되며, 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물답게 여기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여 얻은 것을, 처음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감사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자기 능력으로 얻은 것인 양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것으로 감사하는 일상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3-5)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하나님께서 확고하게 승리의 약속을 주신 다음에, 주신 그 승리의 방법은 다소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이 매일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침묵하면서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며 큰 소리로 외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게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장난 같아 보이는 이런 방법으로 굳게 빗장 걸린 성이 넘어진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상해보이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의 여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면, 이스라엘은 여리고를 무너지는 것을 시작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나 순종하지 못하면 어떤 미래가 그려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많은 백성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가운데, 6일 동안 매일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도는 일, 마지막 7일째에 일곱 바퀴를 도는 동안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함성을 지르라는 명령에 따라 있는 힘껏 함성을 지르는 것까지, 이 모든 명령을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받은 지도자로, 그 스스로가 말씀에 온전히 순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설득되지 않는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하느냐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6-11)
(6-7)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도자가 중요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우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역과 봉사팀에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고, 팀장과 교사와 부모의 자리에 있다면, 타인에게 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 반추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은혜의 통로로서, 다른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가 크든 작든,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갑니다. 적어도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게 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곁에 두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도 지체하지 않습니다. 이들 또한 들은 즉시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오를 정비하여 여리고 성을 돌기 시작합니다.
(8-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제사장 일곱이 하나님의 보좌인 언약궤 앞에 서서 하나님의 현현을 알리고, 무장한 자들이 궤를 감싼 형태로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습니다. 하루 돌고, 이틀 돌 때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결국 여리고 성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역설로 가득합니다. 상식적으로 이 부분만 말이 안되는 게 아닙니다. 요단 강을 건넌 다음에, 강 바닥에 있었던 길갈의 열두 돌을 세우고 이스라엘이 한 일이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한 일입니다. 할례를 행하면, 회복되는 며칠 동안은 전투력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런 전략으로 창세기에서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족속을 모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들 가운데 순종하는 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을 나락으로 인도하시는 게 아니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만드십니다.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을 주시는 게 아니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라,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아직 차지하지도 않은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고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세상을 사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며 순종할 때, 그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이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결과로서의 평화가 있습니다. 세상 논리로는 말이 안되는 이 역설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는 것, 좋습니다, 지적인 동의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으로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내 삶을 재료 삼아서!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하루 돌고 왔는데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아직 열두 바퀴를 더 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도래하기까지, 우리는 묵묵히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품고 삼키며 살다가다보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하루 돌고, 이틀 돌았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다고 불평만 해서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물이 끓으려고 해도 임계점인 100도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당장의 조급함을 버리고 진득하게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려는 태도를 구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의 삶을 이어가시는 복된 하루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 앞에 우리를 세워주셔서 발의 등불 삼을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처럼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그에 맞게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늘 주시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 따르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진정한 형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여리고 성이 당장 무너지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 따르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네 손에 넘겨주셨다는 표현과 아직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은 현실의 괴리를 내가 이해하는 신앙 언어로 표현해보세요.
2.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말씀하신 바를 정리해보세요.
3. 전쟁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나는 세상을 사는 방식과 다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까?
4.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달한 여호수아를 보면서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작성: 이창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