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17-5:8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시스라가 이끄는 철 병거 구백 대를 격파합니다. 오늘 본문은 혼비백산하여 도망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비참한 최후와 주력 군대를 잃은 가나안 왕 야빈의 멸망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드보라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시스라가 헤벨의 집으로 피신함(17-20)
17.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하나님의 개입으로 시스라의 철 병거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시스라는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합니다. 간신히 목숨만 건진 그는 야엘의 장막에 이르게 됩니다. 야엘의 장막은 그가 섬기는 왕, 야빈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헤벨의 아내가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시스라를 환대합니다. 불안에 싸여 있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우유를 주어 그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줍니다. 시스라는 자신을 향한 호의에 헤벨의 집을 향한 경계의 마음을 풀게 됩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를 살해함(21-22)
21.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시스라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야엘은 장막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망이로 내려쳤습니다. 장막 말뚝은 그의 관자놀이를 관통하였고 그는 죽게 되었습니다. 야벨은 우호적 관계에 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다소 잔인하게 느껴지는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잔인하게 죽인 장면이 아니라 야엘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머물러야 합니다. 시스라가 헤벨의 집으로 향한 것은 헤벨이 자신의 왕 야빈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자신을 도와 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야엘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를 맞이하며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남편 헤벨 때문이었습니다. 헤벨이 야빈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헤벨은 겐 족속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겐 족속은 다름 아닌 모세의 장인인 호밥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 혈연 관계에 있는 족속이었습니다.
야엘은 가문의 흥망을 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야빈인가? 아니면 이스라엘인가?, 세상적 인간 관계인가?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과의 관계인가? 이 선택에서 야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시스라를 죽이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세상을 사이에 두고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때 우리 선택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이유는 세속적 욕망이 아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겨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됨을 기억한다면 세속적 욕망을 위한 선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시스라를 뒤쫓던 바락도 야엘의 장막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야엘에 의해 죽어 있는 시스라를 보게 됩니다. 시스라의 죽음을 목격한 바락의 마음은 적군의 장수가 죽었다는 안도와 기쁨이 아닌 후회와 아쉬움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적장의 생명을 취하는 것은 장수에게 가장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바락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도 가장 큰 영광은 야엘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바락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사사기 4장 7절에서 9절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 시스라를...바락의 손에 넘겨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바락의 반응은 기쁨과 설렘이 아닌 망설임과 주저함이었습니다. 바락은 드보라에게 당신이 가면 갈 것이고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바락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무려 이십 년 동안 압제당하며 학습된 무기력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락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서 바락은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고 시스라는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매사에 성급함보다는 신중함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짐으로 죄의 길에서 돌이킬 것을 요구하실 때, 주님의 길로 행하도록 책망하실 때 우리는 주저하거나 망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여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속히 돌이켜 주님의 말씀 앞에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상황 속에서 넉넉히 이겨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야빈의 멸망(23-24)
23.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가나안 왕 야빈은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학대했지만 그가 믿고 의지하던 철 병거 구백 대를 잃게되자 그는 더 이상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이스라엘에 의해 진멸 당하게 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에 의해 진멸 당한 것은 드보라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락이 싸움을 잘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불리했던 이스라엘이 야빈의 철 병거에 맞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승리가 부와 명예, 지식과 인간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승리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령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과 고통일지라도 우리의 삶의 방향을 주님께 돌이키면 우리를 억압하는 야빈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위엄을 송축함(5:1-3)
1.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드보라와 이스라엘은 무려 이십 년간 자신들을 압제하던 야빈과 그의 군대가 멸절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합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더불어 그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으니 큰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주님을 찬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이 듣고, 부르며 오래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잃어버리면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베풀 주신 은혜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삶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상 왕들과 통치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나라들을 향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닌 온 세상의 참 주인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위엄을 송축함2(4-5)
4.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드보라는 과거 출애굽 시기 광야 40년 여정 가운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을 회상하며 현재의 도우심을 찬양합니다. 세일과 에돔은 광야 여정 40년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 기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주셨습니다.
이어지는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다”는 표현은 비가 많이 내린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광야 40년 여정 중에는 비와 연결된 사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이스라엘과 시스라와의 싸움이 있었던 기손강 전투와 연결된 표현으로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땅이 진흙과 같이되어 철 병거가 무용지물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드보라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압제 당하던 암담한 상황 묘사(6-8)
6.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이스라엘이 당했던 암담한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야빈에 의해 고통 당하던 시기에 대로는 비었고,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습니다. 이는 법질서가 유지되지 않아 약탈과 폭행이 성행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현실적 이익에 따라 가나안의 우상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인해 전쟁의 재앙이 도래했지만 적군에 대항할 무기조차 없는 참담한 상황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이 한순간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릴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 말고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주님을 굳게 붙드는 은총의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세속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느라 고통 가운데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깨닫고 주님을 부를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세속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구원의 주님, 승리의 주님만을 의지하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은총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야엘은 가문의 흥망을 놓고 야빈(세상)과의 관계 또는 이스라엘(하나님)과의 관계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만일 나에게 야엘과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2. 시스라를 넘겨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락은 주저하며 드보라와의 동행을 요구합니다. 바락은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이고,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는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떠해야 할지 묵상해 봅시다.
3. 이스라엘이 야빈으로부터 억압당하게 된 이유와 야빈의 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야빈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은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앞으로의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정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