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영상 : https://youtu.be/vxsmb6R-Q7M
제목 : 수건을 벗어야 영광에 이른다.
본문 : 고후 3:12-18
날짜 : 2025. 03. 02 주일오전예배
예전에 본 영화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같은 반 학생이 교실에서 엎드려 자고있는 친구의 안경에 붉은색 매직으로 색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불이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자고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서 깼는데 그의 눈에는 온통 붉게 보여서 불이났는 줄 알고 놀라서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넘어져 안경이 깨지고 맙니다. 그제서야 그 친구는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어렸을 때 봤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는 말이 생각날 때면 꼭 이 영화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붉은 색 안경을 끼고 보면 붉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를 끼고 보면 파랗게 보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무슨 색의 안경을 끼고 보느냐에 따라 그 색은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신앙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성도들은 그릇된 신앙관에 빠져 결국 주님과 멀어진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신앙관을 수건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러한 잘못된 신앙관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인 모세오경의 저자인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한 이후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반대로 수건을 벗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모세와는 정반대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수건으로 그들의 마음을 덮었고, 백성들을 대할 때는 오히려 수건을 벗고 자신들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운데 유대인들처럼 수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러한 수건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 나와 수건을 벗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자만의 수건을 벗어라.
사람은 누구나 자랑하거나 뽐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랑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자랑하거나 뽐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거나 죄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을 자랑하면서 타인을 경멸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자만은 바로 선민사상이었습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타민족에 비해 이방인들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배척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과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한 짐승의 상징인 개로 여겼습니다.
또한 같은 동포임에도 로마의 세금징수원이었던 세리들에 대해서도 배척하며 죄인 취급을 하였고,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자로 여겨 외면하고 배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이러한 죄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저들을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자랑할 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만방에 뽐내며 자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배척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간혹 불신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을 악마시하며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처럼 선민사상이라는 자만의 수건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신념의 수건을 벗어라.
많은 사람들이 신념과 믿음을 착각하고 혼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절대자이신 주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즉, 믿음의 대상이 주님이시며 그 믿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념은 그 대상이 주님과 상관이 없는 사상과 이념, 혹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굳게 지키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신념의 대상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믿음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정치운동을 하는 유튜버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뒤에 큰 십자가를 세워놓고 있었고,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을 하며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사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권력자들이 종교를 자신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종교단체를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러한 신념에 사로잡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신념이라는 수건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자고의 수건을 벗어라.
자고하는 마음은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마음입니다. 이것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마음입니다. 사탄은 천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직분을 맡은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늘 찬양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만해져서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러다 모든 직분을 박탈당하고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사탄이 가장 먼저 타락시킨 사람이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사탄의 꾐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즉 자신들도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고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싸움의 근원을 보면 자고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습니다. 개인 간의 싸움도 결국은 자고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많고, 국가 간의 전쟁도 자고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고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늘 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가운데 늘 주변 사람들과 다투고 분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처럼 자고의 수건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일본은 불법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만의 수건을 쓰고 조선인들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천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신념의 수건을 쓰고 우리 조선인들로 하여금 일왕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를 넘어 조선인들을 강제징용이나 위안부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자고의 수건을 쓰고 스스로 높아져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약탈과 수탈을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결말은 결국 패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항일운동과 삼일절 만세운동을 하며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라의 해방과 독립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까지도 병들게 하고 망치는 수건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나 힘으로는 매우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16절 말씀처럼 언제든지 주님께로 돌아가면 주님께서 그 수건을 벗겨 주십니다. 그리고 18절 말씀처럼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며 변화하여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수건을 벗고 변화하여 주님의 영광에 이르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