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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 <조선시대>- 제13대 명종, 12세에 등극 문정왕후 수렴청정, |
문정왕후의 수렴청정과 윤원형의 득세 명종은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8년 동안 모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으로 왕권을 대신하게 되자 조정의 대세는 윤원형 일파에게 돌아갔다.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친동생으로 1537년(중종32년) 김안로가 실각한 뒤 등용된 인물이었다. 그는 중종 시대부터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 일파와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윤임 일파를 대윤,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고 했다.
| 소윤파의 대윤파 제거 인종 즉위 당시에는 한 때 대윤파가 득세하여 이언적 등 사림 세력을 등용하 여 기세를 떨쳤으나, 명종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사태는 반전되었다. 윤원형은 명종이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윤임 세력의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윤원형은 윤임이 중종의 여덟 째 아들 봉성군에게 왕위를 옮기려 했다고 무고하는 한편, 인종이 죽을 당시에는 윤임이 성종의 셋째 아들 계성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그리고 이를 구실 삼아 문정왕후에게 이들의 숙청을 강청하여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사사케하고, 이들의 일가와 그 일파인 사림 세력들을 유배시켰다. 명종 즉위년인 1545년에 일어난 이 사건이 을사사화이다. 을사사화로 조정을 장악한 윤원형은 미처 제거하 지 못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양재역 벽서 사건'을 일으 킨다. 이 사건으로 윤원형을 탄핵하여 삭직시킨 바있는 송인수, 윤임 집안과 혼인 관계에 있던 이약수 등이 사사 되고, 이언적, 백인걸 등 사림 세력 20여 명은 유배되었다. 또한 윤원형은 자신의 애첩 정난정을 궁중에 들여보내 중종의 아들 봉성군을 역모와 연루되었다고 무고하여 사사시키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도 많은 인물들을 희생시켰다. 윤원형 일파가 이렇게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자 이른바 '외척 전횡 시대'가 도래했고 , 이 때부터 명종은 그들의 횡포에 시달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 윤원형의 악행 윤원형은 막상 권력을 독점하게 되자 그동안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친형 윤원로를 유배 시켜 사사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애첩 정난정과 공모하여 정실부인 김씨를 독살하고 노비 출신인 그녀를 정경부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또한 정난정은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부를 축적하였다. 이 때문에 윤원형의 집에는 뇌물이 폭주하여, 한성 내에 집이 15채나 됐으며 남의 노예와 전장을 빼앗 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고, 죽고 사는 것이 그의 손에 달렸다 는 말이 오갈 지경이었다.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은 정난정의 자녀들과 다투어 혼인줄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난정은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병조판서 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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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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