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3808
3월26일[성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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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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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7lpHyFXMd0
[예수회 김동일 안드레아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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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꿰뚫고 있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당신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기며 배신할 것인지? 누가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할 것인지? 누가 당신 홀로 체포 당하실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을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 제가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었다면, 즉시 노발대발했을 것입니다. 급한 성격에 제자들을 총집합시켰을 것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제자들을 일렬로 쭉 세워놓고 일장 훈시를 했을 것입니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대며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 혹독한 배신감과 고독함, 그로 인한 극도의 산란함 속에서도 철저하게도 제자들의 배신을 함구하십니다. 결정적인 배신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제자들이 계속 캐물었지만, 끝끝내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그런 태도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쉽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서 각 개인의 자유의지를 철저하게 존중해주신다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고. 당신을 철저하게도 배신하고 죽음의 길을 가는 것조차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고?
실수도 하고 방황도 하면서 변화되고 성장하는 존재가 인간이니, 스스로 잘못을 인식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이시니, 그런 배신의 기회조차도 제자들에게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영원하신 하느님,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에 비해 우리 인간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지극히 가벼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제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기세였지만,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잇속과 안위만을 궁리합니다. 어제 금강석보다 더 굳은 신념으로 결심하였지만, 오늘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너무나도 나약한 우리 인간 존재 곁으로 사탄의 강력하고도 집요한 유혹은 끝도 없이 계속됩니다. 우리의 취약함 부분을 거듭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어제의 대단한 결심을 오늘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제 당당한 주님의 제자였지만, 오늘은 배신의 참담함에 눈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서든 주님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비록 오늘 죄와 배신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고개를 주님께로 돌리며 그분의 크신 자비를 구하는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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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rdTJWUu0J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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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연옥에라도 들어가는 사람의 수준은?>
초나라 장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신하들과 더불어 연회를 베풀고 있었는데 낮에 시작한 파티가 밤이 깊도록 계속되자 연회석엔 무수한 촛불들을 밝혀 놓았습니다. 이렇게 연회의 흥취가 무르익고 있을 때였습니다. 왕은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허희라는 여인에게 여기 참석한 신하들에게 술 한 잔씩 따라드리라고 했습니다. 왕의 특별한 호의였습니다.
한참 허희가 술을 부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조리 꺼져버리자 연회석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누가 허희의 가냘픈 허리를 감아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허희는 순간적으로 그 사람의 갓끈을 끊어 쥐고 몸을 뺀 다음 왕에게로 달려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왕은 불을 켜려는 시종들의 동작을 제지하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군신 간의 허물없는 즐거움을 위하여 마련한 자리니 경들은 지금부터 거추장스러운 갓끈을 모조리 끊어 팽개치고 마음껏 술을 들자고 권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갓끈을 끊어버리고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봉을 자청한 당교라는 장수의 특별한 지략으로 예기치 못한 전과를 올리자 왕은 그에게 특별한 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미 왕으로부터 한없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더 이상 상을 받을 수 없다며 그 옛날 연회 석상에서 허희의 허리를 안은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군주나 보스의 자세여야 할 것입니다. 자칫 나에게 유익이 될 사람을 너무 엄하게 판단하여 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희망이 없는 유다와 같은 존재가 되면 끊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너무 높이 잡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구역 판공을 하며 면담하는데, 의외로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 모르는데 성당에서 상처받아서 냉담한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고해성사 때 상처받아 냉담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거의 사제의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고해소까지 들어왔다면 이미 큰 용기를 낸 것이고 상처를 드러낸 상태이기에 아주 작은 질책에도 기겁하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자신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처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는 지옥-연옥-천국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사실 첫영성체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속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제야 연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연옥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죄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50보 도망간 사람이 100보 도망간 사람을 탓할 수 있을까요? 연옥의 상태를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야 지옥에서 비로소 연옥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래야 타인에게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한 중년 신사분이 찾아와서 아픔을 호소하였습니다. 이 분은 사회에서 성공하고 존경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보복한 아들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아 손이 부들부들 떨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분은 아직 아버지 될 자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녀의 기준을 너무 높이 잡아놓아서 자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도 자녀와 같이 성장하는 중입니다. 이분은 자녀에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너무 주었고 사실 죽은 자녀에게 오히려 용서를 청해야 하는 상황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연옥, 아니면 지옥 수준에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신자들에게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히브 12,4)라고 말합니다. 아직 천국에 오를 수준이 안되었다는 뜻입니다.
천국에 오르려면 그리스도처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순교할 당시가 직 천당에 오를 수준이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잘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도망쳐 보니 자신도 별거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땅에서의 40년간의 도피 생활, 그것이 그의 연옥이었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의 하느님을 만나 소명으로 죽기 전까지. 작은 죄를 많이 짓는 것이나 큰 죄를 하나 짓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연옥에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