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12년의 여름 이야기(10)>
◎ 1년 후
오늘 7월 15일은 남편이 치근낭 수술을 위해 아산 병원에 입원한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담당 의사를 만나니 이식한 뼈가 잘 자랐다고 한다. 다행히 치근낭도 재발 할 기미가 없으니 1년 후에나 와서 검사 받으라 한다.
작년에 남편이 입원하였을 때 어머님이 걱정하실까 봐 여행을 갔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늘 함께 있던 아드님의 부재를 힘들어 하시고 수상하게 생각 하시더니, 마음의 근심이 몸으로 왔는지,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닷새쯤 지나서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진지를 못 잡수시고, 급기야는 폐렴에 낙상까지 겹쳐 병원 신세를 지시게 된 것이 무섭게 뜨거웠던 1년 전 여름, 바로 이맘 때 우리 가정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간단하게 생각했던 치과 수술이 예상과 달리 한 달여간의 입원과 금식으로 체중이 10kg 이상 빠지고, 회복하기까지도 무척 힘들었던 남편은 다행히 예전의 건강을 되찾았는데, 어머님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시다. 지금은 송우리 요양원에서 같이 운영하고 있는 평내 요양원으로 옮겨와 계시다.
집으로 모시지 못하는 마음이 죄송하고 무거운 것은 여전하지만, 아직까지 집에 계셨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때까지가 우리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의 한계였었던 것 같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아시고 어머님과 떨어져 있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일 어머님께 다녀오고 2주가 되도록 아직 찾아뵙지 못하고 있다. 몸 상태도 안 좋았었고 지난 주 부터 장맛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서였다. 내가 못가는 동안은 시동생을 시켜 찾아뵙게 하고 있다.
요 며칠 비가 정말 무섭게 온다.
어제 잠깐 한강으로 나가 보니 북한강 땜의 방류로 강폭도 넓어지고 수위도 높아져 있었고, 스티로폼 등 각 종 부유물이 흙탕물이 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 창 밖 너머 멀리 바라보아도 강물이 많이 불었음을 알겠다.
이렇게 큰 비와 곧 이어 올 폭염 속에 이 여름도 지나갈 것이다.
내년 여름에는 또 어떻게 지난 1년을 추억 하게 될 것인지...
-어머님은 그 이후로 1년, 또 1년, 이렇게 6년을 요양원에서 계시다가 2018년 6월 4일에 108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요양원에 계신 동안 많은 사람들이 먼저 갔다. 어머님의 사위, 시동생들과 동서들, 당질들...어머님은 이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원망을 하셨다.
나는 ‘4대가 함께 살면서’라는 글에서 부모의 장수는 자식에게도 축복이라는 말을 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되는가? 처음 폐렴에 걸리셨던 102세에 돌아가셨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꼼작 못하고 침대에 누어서 6년, 그 긴 세월을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지내신 어머님은 연옥의 시간을 미리 바치고 가신 것이겠지만, 그 고통을 해결해 드리지 못하고 지켜보는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