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틴토레토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집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천을 염색하는 장인이었고,
틴토레토는 어린 염색공이라는 뜻의 별명을 자기 이름처럼 사용했다.
그는 부친의 염색 일을 이어받다가 그림을 배우게 되는데,
그 시기나 그의 스승에 관해서는 불분명하다.
전기 작가 카를로 리돌피(Carlo Ridolfi 1594-1698)에 따르면,
틴토레토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색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역동적인 구성에 인물의 과장된 동작과 극적인 빛의 사용으로
미켈란젤로나 티치아노와 구분되었다.
급하고 짧은 필치로 그림의 마무리가 부족하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거친 붓 터치로 칭송받았다.
16세기에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르네상스 화가 중에서 완전한 본토박이는
틴토레토 밖에 없었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를 거의 떠나지 않았고,
작품생활도 베네치아에서만 주로 했다.
틴토레토의 베네치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틴토레토의 꿈은 베네치아의 모든 주요 건물에 자기 작품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작품 수주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공개 입찰의 경우 화가 조합의 규율을 어기고
최저가를 재출하여 주문을 싹쓸이 하는 것은 예사였고,
주문자가 원할 경우 다른 사람의 화풍으로도 그려주는 조건을
서슴없이 포함시키기도 했으며,
필요한 경우, 자신의 작품을 뇌물로 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네치아의 화가 조합의 본산이자 자신이 회원으로 속해 있기도 한
산 로코 스쿠올라(Scuola Grande di San Rocco)의 위원장실의 천장화 공개 입찰시,
관례를 깨고 이미 완성된 유화를 제출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1565년에 그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이 위원장실의 거대한 벽에 그려진 틴토레토의 최고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70여명의 군상들이 펼치고 있는
골고타 언덕의 파노라마를 담고 있다.
이 장면에서도 빠른 붓 터치와 인물들의 과장된 형태와 몸짓을 찾아볼 수 있다.
틴토레토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사선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비시켜 극적인 효과로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바사리의 비판대로 “틴토레토는 내적 구도와 엄격한 판단 대신에
즉흥성과 과감성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에 틴토레토가 베네치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바사리와 평가와
우리가 틴토레토에게 가진 편견을 단번에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70여명의 군상들이 펼치는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는
틴토레토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미술적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의 경건한 신앙심이 깊이 묻어난다.
그림에서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자연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틴토레토는 사람의 아들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자체에서
영광스럽게 발하는 초자연적인 빛으로 등장인물들의 극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그림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가로가 12m가 넘는 대작의 중앙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고,
그의 시선은 예수님의 오른쪽 대각선 위치에 ‘선한 죄수’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
루카복음을 보면 이 죄수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땅에서 들어 올려져”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하신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을 자신에게 이끌어
그를 아버지께로 인도할 것이다.
그림 전체구성에서 예수님을 가운데에 두고 정신없이 혼잡스럽지만
양쪽에 죄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세우려는 그룹과
오른쪽 아래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두고 제비뽑기하는 그룹,
멀리서 말을 타고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룹,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혼절한 그룹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두 죄수의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은 물리적인 힘을 보여주고,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기하여 나누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관심에 집중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은 영적 지향의 몸짓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영광에,
마음이 각각 다른 이들을 모두 참여시키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모든 이에게 가르치고,
그분께 순종할 수 있게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하도록 이끄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