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 1: 16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만국 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
1]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 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본 절은 모든 동사를 2인칭으로 사용한다.
앞에서 줄곧 사용된 2인칭 대명사는 모두 에돔에게 적용되며 단수였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너희가...마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티헴'(*)은 2인칭 복수형으로 독특하게 '유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C. E. Armerding).
그렇지만 에돔에 관한 예언을 하다가 갑작스레 유다를 언급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또한 70인 역에서도 이를 단수로 번역하여 에돔을 가리키는 것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냈다.
한편, '마신다'는 비유적인 표현은 주로 심판이나 수치를 겪을 것을 의미한다.
* 합 2: 15-16 – 15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6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받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리라.
유다를 그와 같은 심판의 으뜸되는 희생양으로 언급하는 예레미야서에서도 나타난다.
* 렘 25: 17, 18, 28, 29 – 17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18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28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렘 49: 12-13 –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도 반드시 마시겠거든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너는 반드시 마시리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보스라가 놀램과 치욕거리와 황폐함과 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그 모든 성읍이 영원히 황폐하리라. 하시니라.
마시는 것은 도락(道樂, dissipation)과 흥청망청 지내는 생활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에돔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점령하여 축하주를 드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 뒤에 곧바로 심판의 잔을 마시게 되리라는 사실을 언급하여 에돔이 추구하던 쾌락의 허무성과 심판의 심각성을 강하게 대조한다.
2] 징계의 효과 (옵 1:15-16) / 한성진 목사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이 시간에는 “징계의 효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 나라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약 여덟 가지로 경고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형제 나라 이스라엘에 함부로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돔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얼까요?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지요.
우리도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육체의 경영을 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경건의 비결이요 시작입니다.
본문에서 징계의 효과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합니다.
15절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문자적으로 벌은 벌입니다.
벌은 원래 두려운 것이죠. 벌이 두렵지 않다면 벌이 아니죠. 그런데 에돔 사람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에게 한 것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무법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벌 받을 두려운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한 모든 나라들이 벌을 받게 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상징적으로도 중요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동의 모든 나라들과 중국 러시아까지 합세해서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합니다.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미국이 재제를 가하고 이스라엘이 핵 기지를 폭격하게 되면 결코 두 나라만의 전쟁이 아닐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위기에 봉착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날 것이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크게 패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징계란 사랑의 매입니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픕니다. 매는 아파야 합니다.
매가 아프지않으면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 12: 5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라” 징계를 경히 여기면 더 큰 매를 맞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이 교사 두려운 줄 모른다고 합니다.
인권법이라는 허울 좋은 법 때문에 초등학생들도 정치운동 할 수 있고 교사를 고발할 수 있고 동성애를 해도 얻어듣지 않으며 성도덕이 붕괴되고 버릇이 없어도 그들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보호겠습니까?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할래? 그러자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무총리상 준대도 싫다. 사춘기가 일찍 온 아이들이 담배·욕설은 예사고 학교폭력·왕따는 위험수위에 도달했는데 징계할 수 없답니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사립학교에서조차 종교교육도 맘대로 할 수 없는,,, 대한민국호는 과연 어디로 가는지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징계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악해서 매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 때부터 방종입니다.
그러나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임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히 12: 9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징계의 효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2) 자신의 믿음과 행위를 돌아보게 합니다.
15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에돔에게는 벌입니다. 에돔에게 벌을 내리시되 에돔이 행한 그대로 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많이 했으면 많이 적게 했으면 적게, 이는 이대로 눈은 눈대로 행한 대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 12)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개역 성경에서 대강령이라 했는데 요약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은혜일 뿐 아니라 내가 뿌린 씨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징계임과 동시에 내가 뿌린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에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철저한 보응을 의미합니다.
팔은 없어도 살지만 머리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한 예언은 완전한 사탄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에돔은 그걸 모르고 날뛰었습니다.
이처럼 징계를 받을 때 돌아보아야 합니다.
징계의 이유를 모르면 값비산 수업료가 효과가 없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모두 19명의 자녀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19명을 하나같이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한 번은 수산나가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바구니에 넣어 선반 위에 올려놓았지요. 그런데 요한 웨슬리는 더 먹고 싶은 욕심에 의자를 놓고서 어머니 몰래 선반 위에 있는 사과를 꺼내어 훔쳐 먹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서는 요한 웨슬리를 불러다가 따끔하게 혼내었습니다.
맞은 자리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나중에 요한 웨슬리는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만일 그때 내가 어머님께로부터 실컷 매를 맞고 혼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가 왜 징계를 받았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왜 내가 징계를 받는가?
여러 잘못으로 옵니다.
히 12: 12-13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피곤한 손”은 봉사의 손을 말합니다.
꾀만 부리지 말고 더 주를 위해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사명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는 더 기도하라는 말이고요. 즉 하나님 경외하는 생활 잘하라는 말입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는 말씀은 말씀대로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자신의 믿음과 행위를 꼭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쳐야 합니다.
(3) 온전한 신앙을 획득하도록 합니다.
16절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하나님의 성산이 어디입니까? 시온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속담에“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말이 있지요.
이처럼 에돔이 하나님의 성산인 시온에서 승리에 도취되어 주연을 베풀고 먹고 마셨지만 너희들은 만국인에게 그것도 항상 그 뿐 아니라 다 마시고 온전히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상에 잔재조차 남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에돔은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열방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해서 1000년 동안 나라도 없이 떠돌게 하고 짓밟고 공격했지만 이스라엘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징계는 우리에게 옛사람의 잔재조차 완전히 청산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낮추고 낮추고 더 낮추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외하고 또 경외하고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물론 지상에서 완전하다는 건 아닙니다. 완전토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불과 같은 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 1: 7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롬 5: 3-4에도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바울같이 위대한 사도도 평생 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스스로 높이고 교만할까 봐. 그래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붙여주셨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쿡쿡 찌릅니다. 조금만 느슨하면 몸과 맘이 상할 일이 생깁니다.
이처럼 징계는 우리 안이 조그만 악의 잔재라도 남지 않게 하시려는 완전 장치입니다.
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잘못해도 놔두시는 것 좋아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생자요 버린 자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을 훈련하고 계십니다. 모두 훈련하고 있는 것을 기억합시다.
징계의 효과는 하나님 두려운 줄 알게 하여 경건한 삶을 주며, 자기의 믿음과 행위와 사명을 돌아보며, 그리고 조그만 악의 잔재라도 남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깨닫고 낙심하지 말고 더 복종하여 하나님 더 잘 공경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