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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내 멋대로의 삶
한여름이 되면서, 사람들의 휴가철이라 그러기도 하겠지만... 방문객이 계속 '夢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로는 손님들과 함께 하느라 자신의 일(기록을 포함해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는데... 그건, 기록 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마치 이가 빠진 듯, 군데군데 기록이 없는 부분도 자주 보이고 있는데... 시간을 쪼개 일상을 기록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던 것이다.
# 손님들이 떠난 뒤...
습도가 높은 날입니다.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몸이 끈적끈적하고 기분도 별로 좋질 않습니다.
어제 두 차례에 걸쳐 도착했던 열세 명의 제자들은(아홉 제자에 네 명의 처와 여자친구), 하룻밤을 지새고... 넉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서울로들 돌아갔습니다.
녀석들은 내가 전에 교직에 있을 때의 '미술반' 선후배 제자들인데,
그렇게 힘들게 내려왔다가 바쁘게 돌아가는 걸 보며... 조금 안타깝기도 했고 섭섭한 생각도 들었답니다.
그들은, 내가 여기로 이사올 때 아무 것도 해 온 것이 없었다며(?)... 봉투 하나를 놓고 갔는데요,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뭔가 선물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돈 봉투를 놓고 간 적은 없었는데......
게다가 쌀을 비롯한(그렇잖아도 요즘엔 쌀에 벌레가 생기는 등, 쌀 처리가 골치 아프기만 한데) 자신들이 먹을 것들을 잔뜩 싸가지고 왔었기에, 나에게 사례를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아마 녀석들 딴에는, 내가 아무런 수입도 없이 시골생활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가 봅니다.
그래서 나는 그 봉투를 받아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래도 받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엉겁결에 받긴 했습니다만, 그들이 돌아간 뒤까지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답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주말을 보냈던 나는, 잠이 부족하여... 저녁 무렵에야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에겐 컴퓨터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돌아가는 길에, 한 녀석이... 내 컴퓨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뜯어갔기 때문입니다.
내 컴퓨터의 사양이 너무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여기엔 프로그램이 없어서... 서울에 가져간 뒤 이것저것 맞춰 조립하고 새로운 프로그램도 설치한 뒤, 택배거나 그 사이 누군가가 내려온다면 인편에 컴퓨터를 보낼 거라면서요.
그러면, '夢想?' 생활을 한 이래 여태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스캐너와 Mp3 음악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에... 긍정적인 자세로 기다리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갑자기 컴퓨터가 없어지다 보니, 뭐... 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오니, 뭔가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함에... 하모니카를 불었는데도, 시간이 남아도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라 내린 비에 가지가 찢겨진 코스모스를 끈으로 묶어주고, 집안에 남아있던 쓰레기를 정리했는데도 어쩐지 시간이 남아도는 기분이드라구요.
이런 여유를 즐기기 위해,
'아예 컴퓨터를 끊어버릴까?' 하는 객기를 부리려고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TV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컴퓨터 없이는 못 살 것 같으니까요.
7 . 20
'서울에 살 때는, 어차피 혼자 사는 공간이다 보니... 팬티만 입고 있어도 되었는데, 여긴 그럴 수도 없고." 하면서 기로는,
'이런 밤을 어떻게 보낸다지? 더구나 컴퓨터가 없으니, 정말 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빵꾸난 기분이네......' 하면서 평상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밖은 나았다.
그리고 시끌벅쩍 대던 산장집 원두막의 손님들도 갔는지 조용하기만 했다.
'모기만 없으면, 여기가 천국인데......' 하면서 잠시 눕기로 했는데,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퍽 시원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선지 모기도 없는 것 같았고, 아무도 지나는 사람이 없는 시골 마을이라... 남들 눈치 볼 일도 없어선지, 언뜻...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보니, 이제야 아홉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로는,
'이상하네? 실컷 낮잠도 잤었는데, 이렇게 자꾸만 잠이 오다니......' 하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가? 아니면, 내 몸이 피곤하다는 뜻일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밤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어찌나 요란한지, 잠을 설치게까지 했다.
그래서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컴퓨터가 없으니... 일하기도 애매하기만 했다.
그런 비는 오전 내내 내렸다.
그러다가 빗줄기가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끝내는... 안개비까지 내리다가, 갰다.
그러면서 해가 나오기에, 기로는 바로 산장집에 못을 얻으러 갔는데,
"장씨, 마침 잘 왔네! 지난번에 토지신고헌 것이... 속달로 왔는디, 군청에 좀 가야 허긌는디... 같이 가 줄텨?" 하기에,
"그러지요. 뭐." 하고는, 박 만석과 바로 트럭에 올라 임실 군청으로 향했다.
비가 갠 들녘은 짙은 녹색으로 한층 푸르렀고, 호수엔 물이 가득 차있어... 깨끗하기 그지 없었다.
'강진'을 지나 '임실 읍'으로 들어가는 들녘은, 어찌나 짙푸른지... 정말, 여름의 절정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러다가 덜컥 가을이 오면 어쩐다지요? 저 푸른 색이 노오랗게 변하는......" 기로는 마치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여름이 깊어가면 갈수록 가을에 가까워지는 거니까. 그렇지만 툭하면 나오는 소리이기도 했는데,
"그렁게 말여..." 하고 박 만석도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었다.
군청에서 일을 마친 박 만석은,
"우리, 음료수라도 한 잔 마시고 가까?" 하고 물었는데,
"그러시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걸 안 마시잖습니까? 그러니, 혼자 드세요." 했는데,
"장씨 사줄라고 헌 건디, 나 혼자 마시라고?" 하더니, "그러믄, 그냥 가자고!" 해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강진'에 닿자 갑자기 박 만석이,
"그럼,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가자고!" 하면서 기로에게 천원 짜리 두 장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로는 거기 수퍼에 들러 아이스콘을 사와, 두 사람은 아이스콘을 먹으며 둔터니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이 고갯길은 언제 봐도 정감이 느껴지기는 한데, 옛날 사람들은... 이 고개를 오르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자,
"이렇게 차로 달링게 금방이지, 전에는... 얼마나 먼 길이었다고......"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박 만석이 대답을 하자,
"허긴, 제가 뭘 안다고......" 했는데,
또, 운암다리를 건너면서는,
다리에서 바라다 뵈는 '둔터니' 마을을 보며,
"저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사는 것도 복이지요." 하고 있었다.
그 말 역시, 기로의 입에선... 가끔 나오는 소리였다.
그러자 박 만석은,
"그려?" 하고, 새삼스럽다는 듯 말끝을 높였다.
그렇지만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그냥 하는 소리였을 뿐이다.
산장에 도착한 뒤,
"저, 못 좀 주세요." 하고 기로가 말하자,
"아차, 그렇지!" 하더니, "그려, 일로 따라와 봐..." 하며 앞장을 서던 박 만석은,
"장씨, 그냥 보낼 순 없으니..." 하고 혼잣말처럼 하더니, "혜숙 엄마! 뭐 좀 없어?"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로가,
"에이, 그러지 마세요!" 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박 만석을 말렸는데도,
부엌 쪽에선 어느새,
"알았어요. 수박 있어요, 수박!" 해서,
기로는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수박 두어 쪽을 먹고는, 배를 타고 '夢想?'에 돌아왔다.
그런데 격이 비실비실 제 집 안에 누워있었다.
"근데 너는, 왜 이렇게 밥도 안 먹고 비실거리는 거냐?" 하고 나무라며 개 줄을 끌고 나갔다.
그리고 격을 잠깐 풀어놓기로 하고, 자신은 평상에 누웠다.
비 갠 하늘엔 솜 같은 하얀 구름들이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보니, 기로 자신이 누워있는 바로 위에 있는 은행나무의 열매가 제법 굵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은행나무는 알도 굵다. 그러면... 가을에 저 은행을 주워, 형제들에게나 친구들에게도 보내자......' 하고 있었다.
서둘러 저녁을 대충 때운 뒤, 기로는 격을 데리고 배를 탔다.
호수 중간까지 천천히 노를 저어 갔다가, 노 젓기를 멈추고... 멍청히 그 상태를 즐겼다.
배는 잔잔한 물결에 약간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호수에 떠 있는 것 자체로만도 괜찮았다.
그런데 돌아와서도 기로는 졸리는 기분이었다.
'근데, 왜 이리 잠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졸려고 하네......' 하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것 역시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가 내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가 새삼스럽게 부각되는 기분이네......' 하면서, 드로잉이라도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지만, 졸음은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그래서 잠깐 밖에 나왔다가, 호수 다리 있는 쪽에 까페촌의 네온사인이 호수에 투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드로잉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스케치북과 수채화 빠렛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그리고 마루의 불을 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기로가 전화를 받자,
"기로 형!"하고 부르는 여자는 '차 순애'였다.
"그래, 오랜만이네!" 하자,
"이번엔, 그닥... 오랜만이 아닐 텐데요? 왜, 내 전화를 기다렸단 말이에요? 형답지 않게?" 하면서, 까르르... 웃기까지 한 차 순애는,
기로의 전처 '송 선희'와 대학 미술교육과 동기이자, 송 선희와 거의 라이벌이다시피 기로를 좋아했다가... 끝내 기로와 송 선희의 혼전 임신으로 물러나야만 했던, 사랑의 패배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차 순애는 성격이 굵직굵직하면서 화통했기 때문에, 송 선희와는 관계가 끊어졌지만... 기로와는 결혼 후에도 꾸준하게 좋은 친구(선후배)관계를 유지한 상태로 지내왔고, 나중에 한 재력가와 결혼을 해서 딸 하나를 두고 이혼한 상태로... 지금도 여전히 교직에 근무하고 있는데,
기로가 스페인으로 떠날 때 그리고 그 뒤 이혼을 한 뒤에도 항상 기로를 응원하는 입장을 고수했던 여인이었다. 특히 기로가 '개인전'을 할 때는, 누구보다도 적극 후원까지 해주었던 게 바로 차 순애였는데, 기로의 경제사정을 잘 알던 차 순애는,
"이번 기회에 개인전을 꼭 해야 한다."면서, "이 돈 500을 빚으로 생각하지 말고, 언제라도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기로 형 그림 한 점을 가져가는 걸로 하면 되지 않겠어요?" 하면서, "'빚'이 아닌, 그림을 미리 판매한 '선수금'이라고 여기세요." 라고까지 했던,
어찌 보면 시원시원하면서도 기로에겐 든든한 후원자역할까지를 했던 옛 여인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로는 단 한 시도 그 돈을 '후원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이, 늘... '제일 먼저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며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으로, 얼마 전 '夢想?'에서 그림이 팔리자마자 바로 갚았던 것이다.
그런 차 순애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마음의 병이 심해 그 건강하던 몸에 병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녀에게 졌던 빚을 갚았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게 기로의 자세이자 생각이었다.)
몇 달 전에, 그녀가 기로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아주 친하게 아는 사람의 아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가려고 한다며, 거기에 따른 안내 좀 부탁한다는 얘기를 해왔었는데,
그 전화를 받고서도 기로는, 물론... 안내를 해주긴 했지만, 속 마음은...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그걸 죄책감(?)으로까지 가슴에 두면서 괴로워했었던 것이다. 그게 지난 봄의 얘기였다.
그런데 차 순애의 말로는,
어젯밤 그녀 지인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지인의 아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너무 좋았다면서... 그리고 지인의 아들이 아주 긍정적인 자세로 돌아와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좋고, 그래서... 기로에게 감사의 뜻도 전해달라고 해서, 전화를 걸었다면서,
"그러니, 제가... 기로 형한테 전화를 안 걸고 견디겠어요? 물론, 형은... 여전히 저한테선 도망치려고 안달을 부리지만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 차 선애의 말에 기로는 가슴이 뜨끔하기는 했다.
맞는 말이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서조차도 무뎌지고 싶은 게 기로의 본심이라,
"그런 얘길 자꾸 해서...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 하고 의식적으로 침착한 어조로 말을 하고 있었는데,
기로는 어쩌면 잔인하다싶을 정도로 '차 순애'에게는 어떤 '미련의 끈(빌미)' 같은 걸 주지 않으려 애를 써왔던 것이지만... 뭔가 미안한 감정은 여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누가 뭐래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던 차 순애는, "그건 그렇고... 거기 생활은 견딜만은 한가 보죠?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끄덕없이 지내는 걸 보면? 게다가 그림도 판 걸 보면......" 하며 화제를 바꾸기에,
"오늘도 조금 전에... 호수에 배를 타고 나갔다 돌아왔고, 하모니카까지 불었잖아?" 하자,
"그래요? 허긴, 형은...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이에요. 이런 속세와는 어울리지가 않지......" 하더니, "형이 끝내 내 호의를 무시하고......" 하는데,
"아냐, 내가 어떻게 감히... 순애의 호의를 무시해?" 하고 기로가 말을 막자,
"그런 사람이, 빚이라며... 돈을 갚아요? 그것도 몇 년만에 팔린 그림 값을 받자마자 숨도 안 쉬고? 내가 포악한 빚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다시 본인의 섭섭함을 내뱉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은 없어. 여전히 순애한테 고마우면서도... 그렇지만, 사람간의 돈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지 않아?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좋은 거 아닌가, 우리가 살다 보면?" 하고 에둘러 변명 비슷하게 말을 하자,
"좌우간... 알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내가 형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한두 점을 살 테니, 거기서 지내는 동안 작품 많이 해 두세요. 나중에 거기서 철수할 무렵 쯤에... 그럼, 된 거 아니예요? 하 하 하..." 하고 화통하게 웃으면서는,
이런저런 안부도 묻고 서로의 근황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긴 전화통화였다.
그 전화를 끝내고 나니, 초 저녁에서 자정 가까운 밤이 돼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기로는 자화상 하나를 했다.
얼굴을 반쪽씩 잘라 양 쪽 끝에 배치시킨 조금 특이한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밖에 나가니 격이 난리였다.
그래서 개를 데리고 나갔는데, 아직 여섯 시도 되기 전이었다.
집 뒤켠으로 돌아가는 길에 징검다리식의 돌을 깔아 놓았는데, 많은 비가 몇 번 오더니 그 위로 흙이 쌓여 돌은 숨어버린 상황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무성한 풀들이 걱정스럽게 나 있어서,
'에이, 귀찮긴 하지만... 최소한 스페인 손님이 오기 전에는, 말끔하게 정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실행에 들어갔다.
물론 하루에 다 뽑을 수는 없어서, 며칠 남은 사이에...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뽑아내기로 했다.
그런 뒤, 할머니 집 벽으로 핀 나팔꽃을 보게 되었는데... 드로잉을 하나 하고 싶었다.
역시 망설이다간 아무 것도 못할지 몰라, 바로 화구를 챙겨들고 축대 난간에 앉았다.
그리곤 즉흥적으로 빠르게 나팔꽃을 그려나갔다.
그런데 다 하고 나서 보니, 마치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기로는,
'그래! 이럴 때, 내가 화가인 게 너무 좋은 거지......' 하고 흡족해 했다.
# 산딸기(내 멋대로의 삶)
아침에 호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산딸기가 익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킨 김에... 배를 타고 호수 건너로 가 보았습니다.
그 쪽은 경사가 급하고 돌이 많은, 그래서 뱀도 많다는 곳이라... 만약을 위해서 격을 데리고 갔지요.
얼마 전 두어 번 절벽 쪽으로 가면서 보니, 산딸기 열매가 빨간 색을 드러내 보이긴 했지만 아직 익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빨간 색보다는 검은 색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걸로 보아... 산딸기 철은 철인가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산딸기도 비가 많이 와서 그리 달지는 않을 터였습니다. 올해는 모든 과일들이 비가 많이 내려 맛이 없다고 하거든요......
벌써 2 년 전인가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그 때가 7 월 말에서 8 월 초 정도 였음), 길을 걷다가 그 길에 나던 산딸기를 얼마나 따 먹었던지......
그런 얘기들로 결국 난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쓴 편지’라는 책도 냈으니까, 이 사이트와도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물론 여기 산딸기는, 그 산딸기에 비해선... 크기가 작고 그리 달지도 않았습니다.
올 여름의 햇빛의 양이 적어서거나 우리나라 토종은 스페인의 것보다는 작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요.
아무튼 산딸기는 많이 열려있었습니다.
전에는 물이 많이 빠져있어서, 자갈 비탈을 올라야만 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사이 비가 많이 와,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서... 배를 탄 상태로 앉거나 서서 기슭에 달려있는 열매만 따면 되는 조건으로도 바뀌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산딸기를 따다가, 문득,
'이런, 배 위에서 호수 기슭에 달린 산딸기를 따는 내 모습이... 그림 속의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이 번 일만은 아니지만(여기선 많은 일들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므로), 산딸기를 따먹는 내 모습도 아주 멋진 풍경 속의 한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미쳤던 거지요.
거기다가 검은 개도 배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산딸기 따는 주인을 경호(?)하고 있구요......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현실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답니다.
아,
요즘에, 내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걸 느낍니다.
내 스스로도 행복하고, 최근엔 또 내 주위의 사람들도 나에게서 행복을 전달받는다는 얘기를 몇 번인가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행복 전도사'라는 말이기도 하겠는데요, 정말 남들이 보는 것만큼이나 내 스스로도 행복하거든요.
'내가 언제, 이렇게 행복을 느끼면서 살았던 기억이 있었나?' 싶게, 지금의 내 삶은 너무 행복하거든요.
게다가, 마을 사람들과 사는 것도 좋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벌써부터도 날더러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도, 이곳에서의 내 삶이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뭔가를 준다는 의미이니... 고무적이라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단 여기를 한 번이라도 왔다 간 사람들은, 다시 오고 싶어하고... '언젠간 가리라'며 벼르고 있는, 아직 오지 못한 사람들도 제법 되거든요.
물론 내가 여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먹자고 내려온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시골에 묻혀 작품이나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상황은 변해갔습니다.
글쎄요, '순리'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순리대로 살아가면 될 듯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튼 이곳에 와서, 나는... 스스로도 행복하고 또 삶의 활력도 느낍니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도 또 이웃들과도 좋은 마음과 관계로 살아가고 있으니... 아니 긍정적이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날더러 이곳에서 더 머물기를 요구할 때도 그렇지만, 혼자 생각으로도,
'1 년 살고 가는 걸 조금 연기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모든 건, 내 맘먹기에 달렸지요.
내가 이 집의 주인인 친구에게 조금 더 살겠다고 말하면, 아마 그러라고 할 겁니다.
그 친구도 지금 당장 이 집을 가지고 어떤 변화를 준다는 계획은 없는 상태니까요.
그런데...
나는 한 번 정한 것을 밀고 나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의 삶이 좋다고 자꾸 미적대는 것이 썩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고, 또 내 미래의 삶도 있는 것이니...
글쎄요, 그 ‘내 삶’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몰라도... 뭔가 늘 변화를 찾고 새로움을 쫒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니...
그 길을 가기는 갈 겁니다.
게다가 이미 난,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뭔가를 구상(생각)하고 있기는 하거든요.
(그게 보다 구체적이 될 때, 그때에 정확히 여러분께 밝히겠습니다. 아직은 불확실한 상태니......)
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 겁니다.
기왕에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 맘 내키는 대로 살다가 가려구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니까요.
굳이 강조할 것도 없이, 여기 '夢想?'에 와서 사는 것도...
처음엔, 전혀 현실성 없을 것 같던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현실로 만들어 살고 있잖습니까?
그러면서도 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니, 이게 바로 성공 아니겠습니까?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아니, 이미 어떤 이들은 알아주고도 있습니다.
내 쪽에서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지, 내 주위의 사람들은 이미... 나를 부러워하며 지금의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요즘 자주 보거든요?
아무튼, 내 멋대로 사는 나는 행복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행복한 삶.
그건, 바람직한 거 아닌가요?
7 . 23
기로는 오늘 이불을 널고 걷느라 매우 바빴다.
그 행위를 몇 번 반복했나 모를 정도로, 비가 오면...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들인 뒤, 조금 지나 다시 실낱같은 볕이 나면... 다시 내다 널곤 했다.
그러면서도 후텁지근해서,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에이, 곧 끝나리라던 장마가, 전선이 북상한대나 뭐래나 하면서... 이런 짜증스런 날씨를 만들고 있다는데, 정말... 사람 환장하겠네!' 하는 불평을 하면서, '근데, 올해가 특히 비가 많은 거야, 아니면 내가 호수가에 와서 살아서 그런 거야? 잔뜩 기대를 걸었던 토마토 열매도 시원찮고, 이러다간... 내가 심었던 고추고 깨고, 다 썩어 죽겠네!' 하고도 있었다.
날씨가 그래선지 옥수수도 여물지를 않아,
엊그제 키큰 아저씨가,
"내가 옥수수를 따다 삶아먹으믄서, 장씨헌티 몇 자루라도 갖다 줘야긌다고 생각혔는디... 먹어봉게, 괜스레 갖다 줘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것 같아서... 담으로 미뤘어."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산장할머니네는, 고구마 밭의 언덕이 무너져 내려... 제법 많은 면적이 흙더미 속에 묻혀,
"올, 고구마 농사도... 다 글렀어..." 하실 정도로, 비 피해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까치들까지 열매들을 갉아먹거나 파먹어...
"이래저래 농사짓는 것이... 헛고생이여!" 하고 우울해하시는 모습이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