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한국천주교 서울 순례길 2코스(1)
(가회동성당∼약현성당, 2023년 1월 29일)
瓦也 정유순
“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당시 헌법제판소장의 목소리가 전국을 강타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천주교 서울 순례길 2코스의 첫 출발지인 가회동성당으로 가는 골목에 대통령을 탄핵했던 헌법제판소가 있다. 헌법제판소는 ‘한 국가 내에서 최고의 실정법 규범인 헌법에 관한 분쟁이나 의의(疑義)를 사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특별재판소다.
<헌법제판소>
헌법제판소 뒤뜰에는 수령 600년이 넘는 백송이 있다. 재동은 1453년 수양대군의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단종(端宗)을 보필하던 중신들을 참살하여 그 흘린 피가 내를 이루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재를 긁어 나와 유혈낭자한 길바닥을 덮었다는 뜻에서 잿골, 즉 齋洞(재동)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또한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역 홍영식(洪英植)의 노륙(孥戮)을 거쳐 대통령의 탄핵까지 묵묵히 지켜보았던 역사의 산 증인이 바로 이 천연기념물(제8호)로 지정된 백송(白松)이다.
<재동 백송>
가회동 성당 1층 전시실에는 로마교황청이 원본 보관 중인 황사영백서 영인본이 눈길을 끈다.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는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당시 베이징[北京]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청원서로, 길이 62㎝, 너비 38㎝의 흰 비단에다 썼기 때문에 ‘백서(帛書)’라고 하며, 122행 13,384자나 되는 방대한 내용을 한문으로 깨알같이 작은 붓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황사영백서 영인본>
백서의 내용은 1785년(정조 9) 이후의 교회의 사정과 박해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한 다음, 신유박해의 상세한 전개과정과 순교자들의 간단한 약전(略傳)을 적었다. 그리고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자수와 그의 죽음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끝으로, 폐허가 된 조선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경기도 양주의 황사영 묘 - 네이버캡쳐>
즉, 종주국인 청나라 황제에게 청하여 조선도 서양인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것을 요청하였고, 아니면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과 군대 5∼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이 글을 본 조정에서는 아연실색하여 관련자들을 즉각 처형함과 동시에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한층 더 강화하였다. 백서 원본은 교황청에 보관중이다.
<황사영 묘비 - 네이버캡쳐>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의 세례명은 알렉시오, 자는 덕소(德紹), 본관은 창원이며, 서울 아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1790년(정조 14) 16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정약용의 맏형인 약현(若鉉)의 사위다. 1791년 그의 처고모부인 이승훈(李承薰)에게 교리서를 얻어 보고 천주교를 믿기 시작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舟論)으로 피신하다 <황사영백서>사건으로 음력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되었고, 가족은 모두 귀양 가게 되었다.
<황사영 묘 석등 - 네이버캡쳐>
가회동성당이 있는 마을을 북촌(北村)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남촌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어, 조선인 중심의 거주지역은 북촌, 일본인 중심의 거주지역은 남촌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북촌골목>
가회동성당에서 광화문 쪽으로 가는 길목에는 북촌의 대표적 가옥인 <백인제가옥>이 있다. 이 기옥은 윤보선 가옥과 함께 서울 북촌을 대표하는 근대 한옥으로 1913년 6월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압록강의 곰솔[黑松]로 지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북촌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지 위에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을 접목해 지은 당시 최고급 한옥이다. 한상룡은 이 가옥을 1935년 개성 출신 언론인 최선익에게 넘겼다.
<백인제가옥 대문>
최선익은 이곳에서 1935년부터 거주하다 1944년에는 백병원 설립자이자 당시 외과수술의 대가였던 백인제(白麟濟, 1899년∼미상)의 소유가 됐는데, 한옥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1968년부터는 백인제의 부인이 원형을 거의 보존하며 이 집에 살아오다 2009년 서울시가 가옥을 매입하였으며,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제22호)로 지정되었다. 백인제는 한국전쟁 중 납북된 후 생사를 모른다고 한다.
<백인제가옥 사랑채>
<백인제가옥 안채>
북촌로5길을 따라 화동으로 넘어가면 백인제가옥과 담장을 맞대고 있는 정독도서관이다. 정독도서관(正讀圖書館)은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1977년 1월에 개관하여 49만 여권의 장서와 16,300여 점의 비도서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부설 서울교육사료관에는 12,000여점의 교육사료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공공도서관이다. 그리고 서울시민에게 교양ㆍ학습 등을 지원하고 있다. 도서관 기본업무 외에도 매월 작가초청 강연회와 사진전, 독서회, 인형극, 음악회, 댄스공연 등의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독도서관>
<서울교육박물관>
참고로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한 경기고등학교는 1900년 10월 3일 관립중학교로 개교하여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1921년)를 거쳐 경기공립중학교(1938년)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51년 교육법에 따라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로 분리되었으나, 중학교는 학교평준화 계획에 따라 폐교(1968년)했다. 교훈은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며, 교목은 은행나무, 교화는 개나리다.
<경기고 이전기념비>
경복궁 동문 쪽으로 내려오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원래 이 자리는 조선시대에는 종친부가 있었던 자리였고, 해방 후에는 한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력을 휘둘렀던 보안사와 구 수도국군병원이 있던 자리였는데, 두 기관이 모두 이전하고 2013년에 들어섰으며, 미술관 뒤편으로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이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인 정독도서관으로 1981년에 이전했던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우물터는 1984년에 발견하여 복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종친부는 왕가의 족친(族親) 관계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하나로, 역대 선왕(先王)의 어보(御譜)와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였다. 종친부는 최고 왕족들의 사무를 처리하던 경근당과 고위관리들의 집무처인 옥첩당, 하급 낭인들의 집무지인 이승당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승당은 일제 때 경성의전을 신축하면서 뜯겨 나갔고, 경근당과 옥첩당만 현존한다. 종친의 정원은 두지 않았으나 대군(大君)·군(君)·영종정경(領宗正卿)·판종정경(判宗正卿:정2품) 등 품계를 두었다.
<경근당 - 종친부>
경복궁교차로 동십자각 옆으로 하여 시복(諡福)터가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나온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한 곳이다. 시복미사를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것은 한국교회의 중추적인 초기인물들이 옥고를 치루고 순교한 형조 터, 우포도청 터, 의금부 터, 서소문성지 등이 광화문 인근에 위치해 있는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당시 시복미사에는 천주교 신자 20여만 명이 참석했다.
<광화문 - 네이버캡쳐>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터>
정부광화문청사 앞의 세종로 거리는 조선의 관청 육조(六曹)가 있었던 곳으로 형조도 세종문화회관 부근에 있었다. 형조(刑曹)는 재판·법 집행·노비를 담당하는 관청이다. 천주교 초기신자들이 형조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특히 명례방(중구 명동)의 김범우(金範禹, 1751∼1787) 토마스 집에서 예배를 보던 이승훈과 정약용 형제들이 포졸들에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되어 왔으나, 양반신분인 사람들은 즉시 풀려났고 중인신분인 김범우는 혹독한 고문후유증으로 1년 만에 죽음으로써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가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형조 터>
https://blog.naver.com/waya555/223001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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