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여 일하라
셋째로,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금 사도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칼빈이나 제롬같은 분은 도적질의 습관이 에베소 성도 중 어떤 사람들에게 실제로 있었던 죄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거듭날 때는 영적으로 갓난 어린 아이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옛날 습관이나 행실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제부터는 어린 아이가 되지 말라, 이제부터는 이방인들이 행하는 그러한 옛 사람은 벗어 버리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다시 도둑질하지 말라”는 권면은 좁은 의미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도적질은 아니하였다 해도 넓은 의미로는 게을러서 남의 도움만을 바란다 든가, 노력하지 않고 어떤 대가만을 기대하는 행위들이 포함된다고 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놀고 먹는 사람을 팔자 편한 사람이라 하는데 그것은 불한당(不汗黨), 즉 땀 흘리지 않고 먹는 무리라는 뜻입니다.
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3:10)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도둑질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합니다. “수고하여” 라는 “엘가조마이”는 매우 강조적인 말로 힘 자라는데 까지 피곤하도록 일하라는 뜻입니다. 즉 일의 신성함을 의미합니다. 일하지 않고 먹는 것은 도둑질이나 같다는 뜻이 됩니다.
이점은 목회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문제인데, 형편이 어려운 형제가 있습니다. 끼니를 끓이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한번 두번 구제의 손을 뻐칩니다. 그런데 가족들 가운데는 노동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핑계 저 핑게로 일하려 하지를 않습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분수없이 써 버립니다.
지금 사도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교회의 일치를 말씀하는 문맥에서 하는 권면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대접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서로 사랑하고 섬길 때 참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내세워 편안하고 좋은 조건의 일터만을 물색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적게 일하고 가장 많이 얻는 것, 이것이 축복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내것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이냐”는 식으로 과소비에 물들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주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맡은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기독교인들은 일의 귀중성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라 불신자보다 몇 배나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일하는 데도 눈가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손을 부지런히 놀려서 생산해 내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여 그 소중한 일부를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세 번째 권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