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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좋은글 스크랩 12지신상
원욱 스님 추천 0 조회 104 14.04.13 08: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2지신상

 

쥐[子]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 [巳]

말 [午]

양 [未]

잔나비[申]

닭 [酉]

개 [戌]

돼지[亥]

12지신 상 남한산성 조각공원


*** 십이지의 역사와 의미 ***


한국의 십이지상은 중국적 내용에 불교적 표현을 빌어서 불교 건축물이 아닌 능묘에서 나타나다가 불교적 건축물로 이행하여 갔고, 시대적으로도 일시적인 유행사조로 그친 것이 아니라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고, 현재는 띠동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신(四神)과 십이지상(十二支像)에 대한 사상은 역사기록상으로 한족(漢族)에게서 발생하였음은
일반화된 견해다.
처음엔 십이지가 별의 모양을 모방하여 다만 뉴(?)로서 표현되고 또 시간적인 관념에 의하여
12개월의 부호로서 쓰였으나 그 후 그것은 방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어 십이지를 지상의 방위에
배당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것이 기년(紀年)에 응용되어 정리된 것은 기원 전후였다.
중국에서 갑을병정(甲乙丙丁) 등의 십간(十干, 天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 등의 (十二支, 地支)의 글자를 아래위로 맞추어 날짜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3천년 전부터이다.
그것은 갑골문에 丙子, 癸未, 乙亥, 丁丑 등의 글자들이 보임으로써 알 수 있다.
그러나 십간과 십이지를 배합하여 60갑자가 합성된 것은 상당히 연대가 지난 뒤에 성립되었다.
이것을 가지고 연대로 표기한 것은 약 2천년전, 한대(漢代)인 기원전 105년 丙子年부터 시작되었다.


십이지가 다시 동물로 상징되어 자를 쥐, 축을 소, 인을 호랑이 등 동물을 배정시킨 것은 2세기경인 후한(後漢)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이런 동물로서의 표현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경(漢鏡)에서이다.
그 후 오행가(五行家)들이 십간과 십이지에다 金木水火土의 오행을 붙이고 상생상극(相生相剋)의
방법 등을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배열하여 인생의 운명은 물론 세상의 안위까지 점치는 법을 만들어 냈다.

그 후 긴 공백기간을 거쳐 당대(唐代)의 종이나 부장품으로서 용(俑)의 형태로 나타난다.
십이지가 다시 수수인신상(獸首人身像)으로 변모하는 것은 당(唐) 중기로서 신라의 십이지상의 발생시기와 견주어 전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동시적이다.


이것이 다시 갑주(甲?)를 입고 신장(神將)으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신라가 처음이고 능묘의 바깥 수호신[외호(外護)]으로서 부조(浮彫)의 형태로 대규모로 나타난다.
동시에 불교 건조물에 수수인신(獸首人身)의 형태이지만 특이한 도무상(跳舞像)으로 돌연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새로운 변모, 즉 신장으로서의 십이지상, 도무상으로서의 십이지상은 오직 신라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문화현상이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이것은 다시 동물의 탈을 벗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冠)에 축소되어
잔존하는데, 다시 묘내(墓內)의 석관에 음각되거나 내벽의 벽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어쨌든 통일신라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십이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십이지상은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친 거의 같은 시기의 것으로 능묘 십이지 호석, 능묘의 주변, 석실 내부의 시상 주변, 화장골호 주변 등 여러 방법으로 배치하였다.
그러나 사자의 주변이라는 기본적 배치방법은 변함 없다.


둘째, 십이지의 복장은 통일신라에서 창안된 무복, 문복과 더불어 중국풍의 문복 십이지용의 유행도 병행하고 있다.


셋째, 십이지상의 재료는 화강암, 납석, 청동, 니토(泥土) 등 매우 다양하다.


넷째, 십이지상은 시간신과 방위신으로 8-9세기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고, 그것이 그 이후 한국 능묘제도의 신앙적 핵심을 이룬다.


다섯째, 십이지상이 조형적으로는 쇠퇴되나, 사상과 신앙은 약화되었다고 볼 수 없고 십이지 신앙이 대중화되었다.



십이지의 사상과 신앙은 현재 띠동물로서 가장 많이 전승되고 있다.

십이지는 시간과 방위를 나타내는 시간신과 방위신으로 나타나면서 불교와 결부된다.
불화(佛畵)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약사여래 권속으로서 십이지 신장으로 표현된다.
점술가들은 각각 시간과 방위에서 오는 사기(邪氣)는 그 시간과 방위를 맡은 12지의 동물이 막고
물리친다고 믿었으며, 불가(佛家)에서는 그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불보살과 신중이 물리친다고
믿었다.



십이지의 띠동물 순서가 정해진 사연은 쥐가 십이지의 첫자리가 된 설화에서 엿볼 수 있다.

옛날,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이에, 그 선발 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으로부터 그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각 짐승들은 기뻐하며 저마다 빨리 도착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
그 중에서도 소가 가장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각 동물들의 이런 행위를 지켜보던 쥐가 도저히 작고 미약한 자기로서는 먼저 도달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그 중 제일 열심인 소등에 붙어 있었다.

정월 초하루가 되어 동물들이 앞다투어 달려왔는데, 소가 가장 부지런하여 제일 먼저 도착하였으나,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뛰어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하였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초가 되면 누구나 올해는 무슨 띠의 해이며, 그 해의 수호 동물(守護 動物)이라 할 수 있는
십이지의 띠동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豫占)하려고 했다. 또한 그 해에 태어난 아이의 운명과 성격을 띠동물과 묶어서 해석하려는 풍속도 있어 왔다.


새로운 띠동물을 대하면서 그 짐승의 외형, 성격, 습성 등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새해를 설계하고 나름대로 희망에 찬 꿈과 이상을 품는다. 이러한 것을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근거가 없는 일이지만 다만 세상이 시끄럽고 개인의 미래 생활이 불안하여 해가 바뀔 때마다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 모른다.


물론 이들 12지의 띠동물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각각의 띠동물로부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대로 한 해의 운수를 예견하려 했고, 나아가서 생활 교훈과 행동 원리까지 얻었다는 사실은 여러 풍속과 문헌, 유물,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십이지 띠동물의 접근 방법 모색 ***


십이지 띠동물의 접근 방식은 공시적? 통시적 접근과 민속모형?과학모형의 두 가지 기본 방법으로 한국 문화에 나타난 십이지 띠동물의 상징성을 구명해 보고자 한다.


오늘의 민속은 한민족의 일상생활 문화가 역사적으로 누적되고, 사회적으로 중층되면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한 민속소(民俗素)를 분석하는데는 고고 유물과 유적, 벽화, 문헌 기록 등을 통한 통시적 접근으로 그것과 관련된 민속의 유래와 변화가 밝혀질 것이고, 공시적 접근을 통해 현재의 생활
속에서 그것이 가지는 기능과 의미가 온전하게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동물들은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꿈에서라도 나타나면 재수 없다고 여겨진다. 반면에 일상생활에서 귀엽지도 않고 이롭지도 않은 동물이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된다.
이러한 의식은 그 동물의 외모나 실제 일상생활에 있어서 해롭거나 이로운 점을 떠나서 각 민족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


일상에서 가장 친근하고 충성스러운 개가 꿈에 나타나면 '개꿈'으로 치부한다.
그런가하면 외형으로 보아 전혀 흉물스럽지 않은 노루를 특히 장사하는 집에서는 불길한 동물로
인식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의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통시적이면서 공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두 번째 시각인 민속모형?과학모형의 접근인데 뱀의 혀 날름거림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뱀의 혀는 가늘고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으며, 미각의 감각 기관은 없고 후각세포만 있다.
즉 뱀이 혀를 날름거림은 먹이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활동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징과 습성이 과학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학모형은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각 민족의 문화나 관념 체계에 따라서 불변의 과학모형은 각기 다른 민속모형으로 나타난다.
즉 뱀은 유혹, 사탄, 여자, 이간질 등의 민속모형으로 인식되었다.
과학모형이 어느 민족이나 문화 속에서 변함 없는 자연 과학적 분석 체계(analytical system)라면, 민속모형은 하나의 사실(fact, 과학모형)을 각 사회마다 민족마다 그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되고 해석되는 것이다.




*** 12지 띠동물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과 태도 ***



(1) 쥐[子]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쥐에 대한 관념은 다양하게 나타난다.'영리하다' '재빠르다' '머리가 좋다'라는 일반적인 관념 외에 어떤 재앙이나 농사의 풍흉, 뱃길의 사고를 예견해 주는 영물로 인식하기도 했으며 이와 상반되게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동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구차하고 하찮은 존재를 비유하는 의미로 쓰였다. 쥐는 때때로 고양이와는 대조적으로 약자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약자는 영리하며 천성이 착하나 구차하게 가난하다.

강자는 무식하고 덩치가 크고 많은 재력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서 쥐의 이미지는 약자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민담 속에서 은혜를 갚은 쥐나 사람의 출세를 도운 쥐 이야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쥐 이야기 등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쥐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신성성(神聖性)과 예지성(豫知性) :
무덤의 수호신, 사금갑조, 상자일의 근신, 뱃길의 안전과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는 마을 수호신(해안도서 지방), 서도신사(鼠島神祠), 물과 불의 근원을 알려준 영물, 고대 아테네 신전에서는 쥐에게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② 다산성(多産性) :
쥐는 생물학적으로 왕성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복장을 지키는 동물,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좋다.

③ 근면함(勤勉)과 재물(財物)?부(富)의 상징 :
쥐는 어느 곳이나 민첩하게 드나들 수 있는 강한 활동력을 가지고 있다.
상자일 풍속이나 쥐불놀이, 쥐와 관련된 주문이나 풍속에서 풍작 기원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쥐 또는 아들의 뜻을 가진 子는 '계속하다, 작다, 불어나다'라는 핵심적인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쥐의 활동력을 비유해서 집안에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일을 '쥐바람쐬기'라고도 부른다.
쥐의 민첩성은 자연스럽게 근면성을 연상시켰고, 이렇게 연관된 개념으로 쥐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쥐가 근면과 부의 상징이라는 인식은 속담뿐만 아니라 여러 민담을 통해서도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혼쥐이야기'다. 근면함이 결국은 부(富)라는 행운의 열쇠가 되었다는 인식이다.

④ 지혜의 정보체와 현명함 :
물과 불의 기원을 미륵에게 가르쳐 주었는가 하면 어려운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는 정보체로서 역할을 해 왔다.
'황금구슬찾기' 등 민담 속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영리한 동물로 묘사된다. 또한 속담에는 약삭빠르고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을 가리켜 '약기는 생쥐' '얼굴에 생쥐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라고 표현했다.

⑤ 귀여움 :
새앙쥐는 귀엽고 현명함의 상징으로, 세익스피어나 메어 등의 작품에서 표현되었다.
또 이솝우화 등에서는 영리하고 약한 자의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 최근 쥐는 동요, 동화, 만화(미키마우스, 톰과 제리)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여 오히려 고양이를 괴롭힌다.



쥐는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부정한 동물로 배척 당하기도 했다.

① 부정함 :
쥐가 손톱, 발톱을 먹고 그 주인으로 변신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요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예로부터 곡간에 쌓아 둔 곡식들을 훔쳐 가지고 땀흘려 농사 지은 곡식을 망쳐 놓았다. 농사가 생활의 중심이던 조상들은 쥐의 피해를 많이 겪었고 그렇기 때문에 쥐는 농사일을 망치는 해악을 가져오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상자일, 쥐불놀이 등에서 쥐를 퇴치하는 다양한 풍속이 전해진다.

② 작고 왜소하고 하찮음 :
우리 속담에서 쥐는 하찮은 것, 왜소한 것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많다.

③ 도둑?탐욕 :
쥐가 가지는 근면성이 부정적인 면으로 여겨지면 근면성은 탐욕의 이미지로 바뀌어 진다.
쥐는 간신, 수탈자, 부도덕으로 관념화되었다.

④ 야행성?재앙 :
쥐가 병을 옮긴다.

⑤ 정적 :
'쥐죽은듯하다'라는 옛말에서 알 수 있듯이 쥐가 소리내지 않고 다니는 동물이라는 데서 쥐는 정적의 표상이 된다.


쥐에 대한 관념을 부정과 긍정이라는 이분법적 결론으로 도출해 내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한국 문화 속에 쥐에 대한 관념은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조상들은 각 띠동물에 대한 관념과 상징을 각기 독특하게 부여하고 해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2) 소[丑]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한 해이다. 소띠 해는 을축(乙丑), 정축(丁丑), 신축(辛丑), 계축(癸丑)의 순으로 육십갑자에서 순환한다. 십이지의 소(丑)는 방향으로는 북북동, 시간적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농경 사회인 우리 민족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일하는 짐승으로 부와 재산, 힘을 상징한다.
소를 위하는 세시풍속과 놀이에서도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농사의 주역으로 풍부한 노동력, 힘을 의미한다.

제주도 삼성혈 신화, 고구려 고분 벽화 등에서는 소가 농사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해에는 풍년을 기원하며, 가을에는 한 해 동안 고된 농사일에 대한 위로와 풍년을 가져오게 한데 대한 감사로 소에 대한 각종 풍속과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신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고대 사회부터 소는 주로 제천의식의 제의용이나 순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초기의 풍습은 고려, 조선까지 이어져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에서 소를 제물로 바쳤다.

장사하는 집이나 일반 여염집 대문에 소고삐나 소뼈를 걸어 두고 악귀의 침입을 막았다.
외양간에도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렇게 했다.
제사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신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해 소의 희생을 바치는데 그 희생의 힘으로도 나쁜 악귀를 물리치는 축귀의 힘이 있었다고 믿었다. 국가의 큰제사나 의례 때, 마을의 별신굿이나 장승제에서 소가 희생의 제물로 쓰였고, 소뼈, 소고삐 등은 잡귀를 쫓는 부적이었다.
소는 부를 불러오고 화를 막아주는 존재였다.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소같이 벌어서''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서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의 의우도, 의우총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는 소의 우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근면함과 묵묵함은 유유자적의 여유와 한가로운 대인(大人), 은자(隱者)의 마음이라는 이미지를 수반한다. 소의 모습에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으며, 순박한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롭고 자적한 느낌을 갖게 한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으로서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 한가함, 평화로움의 정서이다.


한국 문화에 나타난 소의 모습은 고집 세고 어리석은 측면도 있지만, 풍요, 부, 길조, 의로움, 자애, 여유 등으로 축약된다.

① 농사신으로서 부?풍요?힘의 상징

② 희생?제물?축귀의 상징

③ 순박?근면?우직?충직의 상징

④ 유유자적의 여유?한가함?평화로움의 상징

⑤ 고집?어리석음?아둔함의 대명사




3) 범[寅]


① 신화 :
단군신화(조급, 패배)의 범은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원했으나, 조급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고려 태조의 5대조 '호경이야기'에서 범은 영웅들의 보호자이자 양육자이며 국조(國祖)의 조력자이다.

② 무속(산신, 산신의 심부름꾼) :
범 숭배 신앙은 산악 숭배 사상과 융합되어 범이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를 상징한다.
각 지역에서 신봉하는 산신을 모신 산신당의 산신도에는 범이 그려져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신수(神獸)로 인식되었다. 그런가 하면 영일 강사리 범굿에서는 범에게 물려 죽은 넋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쇠머리를 뒷산에 묻는 의식을 치른다.

③ 벽사 :
병귀나 사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범그림, 범호자 부적).

④ 권세 관직 군대의 상징 :
호랑이의 용맹성은 군대를 상징한다(백호, 맹호 부대)

⑤ 보은 :
호랑이는 인간의 효행에 감동하여 인간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는다.
불교의 산신각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나 산신으로 모셔져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고 있다.

⑥ 까치 호랑이 그림 :
가장 흔한 호랑이 그림은 까치 호랑이 그림이다. 여기서 소나무는 장수를, 까치는 기쁨을, 범은 보은을 상징한다.




4) 토끼[卯]

① 문화 영웅적 속임수의 명수 :
호랑이를 속이는 토끼, 자라를 속이는 이야기에서 토끼는 체구가 크고 힘은 강하나 우둔한 동물들에게 저항하는 의롭고, 꾀 많은 동물 구실을 도맡아 한다.

② 달 = 여성 = 토끼 :
달의 이칭은 토월(兎月)인데, 달 속의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달의 이지러짐과 만월의 주기는 여성의 생리 현상과 동일하다.
달의 차가움이 음(陰)과의 관계 등으로 연상되어 토끼는 여성 원리에 속하는 동물이다.

③ 꾀쟁이[智者], 재빠름, 소심함(놀란 토끼) :
일반적으로 토끼는 꾀보 꾀쟁이 재빠름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놀란 토끼 같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토끼의 소심함과 경망함, 겁쟁이를 이르기도 한다.

④ 충성 불로장생 :
토끼는 민첩한 특성 때문에 심부름꾼이나 전령 등의 역할을 자주 맡는다. 이러한 역할은 유교적인 측면에서 충성스러운 동물로 나타난다. 민간 설화에서 옥토끼는 달에 살면서 떡을 찧거나 불사약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토끼는 도교적으로 장생불사를 표상한다.

⑤ 속신 :
언청이(임산부가 토끼고기를 먹으면 언청이를 낳는다) 상묘일(토끼날 여자가 남의 집 여자나 나무
그릇을 집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⑥ 유물?유적 그림 :
뒷다리가 튼튼해 잘 뛰므로 나쁜 기운으로부터 잘 달아 날 수 있고, 윗입술이 갈라져 여음(女陰)을
나타내니 다산을 할 것이고, 털빛이 희니 백옥 같은 선녀의 아름다움이 있다(벽사 다산 아름다움).
불로장생 약을 찧고 있는 토끼와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뚜꺼비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이들은 달의 정령(精靈)이다.
고려청자투각칠보향로는 둥근 달을 칠보문으로 투각하고 연꽃으로 받친 향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받침 다리를 토끼로 만든 것은 '토끼 같은 자식새끼'라는 말처럼 부부애와 자손의 기원을 나타낸다. 조선 시대 민화에서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찧는 토끼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방아찧기로 부부애를 은유한 것이다.

⑦ 각국의 풍속 :
달 장생불사 민첩(중국), 영리함 교활함(일본)




5) 용[辰]

① 물의 신 :
용은 못이나 강, 바다와 같은 물 속에 살며,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용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용은 물의 신이면서 우사의 성격도 지닌다.

② 시조의 어버이 :
신화 속의 수신인 용과 혼인을 통해 국조(國祖), 군주, 씨족조(氏族祖) 등 귀인의 어버이로 나타난다. 석탈해는 용성국 왕과 적녀국 왕녀 간의 소생이고,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과 용녀의 소행인 용건의 아들이다.
백제 무왕인 서동은 어머니가 과부로 서울 남지변에 살던 중에 그 연못의 지룡과 교통하여 출생하였고, 후백제 시조 견훤은 광주 북촌의 부잣집 딸이 구렁이와 교혼하여 낳았다고 한다.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은 용의 후예라고 하는 씨족의 시조 신화로서 나타난다.

③ 호국 호법의 신 :
용은 수신으로 호법신 또는 호국신의 역할을 한다. 삼국유사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

④ 제왕(임금) 왕권 :
천후(天候)를 다스림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농경 문화권에서 군왕과 용은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그래서 군왕과 관련되는 사물이나 비범한 인물에게까지 용은 상징적으로 작용한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 임금의 평상은 용상, 임금의 옷은 곤룡포, 임금의 즉위는 용비(龍飛)로 나타낸 것이 그것이다.

⑤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 :
용은 민간신앙에서 비를 가져오는 우사이고,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며, 사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착한 신이다.
농경 민족인 우리에게 물은 생명처럼 소중하므로 가뭄이 심할 때에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고,
어로를 생업으로 삼는 어촌에서는 용왕굿이나 용왕제를 지내며 배의 무사와 풍어, 마을의 평안 등을 기원한다.

⑥ 천지조화 상서 풍운조화 :
용은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용은 뭇 동물이 가진 최상의 무기를 갖추고 있으며, 구름과 비를 만들고, 땅과 하늘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믿어져 왔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아지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를 덮을 수 있을 만큼 커질 수 있으며,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용은 대체로, 짙은 안개와 비를 동반하면서 구름에 쌓여 움직인다.




6) 뱀 [巳]


뱀(巳)은 12지의 여섯 번째로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정사(丁巳), 신사(辛巳) 등 5번 순행한다. 뱀(巳)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4월에 해당한다.

뱀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땅에 가장 많이 몸을 대고 살기에 땅과 밀접하며 냉혈동물이고, 독을 품고 있어 두렵다.

그런가 하면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이시미)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체계가 있다. 뱀의 범주에는 이무기, 구렁이, 뱀이 다 포함된다.

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 없이 발밑을 스윽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촉감,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길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돼 버린 뱀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 재생(再生), 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 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뱀은 치료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서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킨다는 스태미너의 심벌로 간주돼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배지는 십자가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한편 뱀은 민간의료의 약용으로도 쓰인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구렁이, 칠점사, 독사, 독뱀 등이다. 뱀은 정력강장 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하강작용을 하며, 일체의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뱀허물도 중요한 약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 권제4(蛇條4) 등에서도 뱀 허물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뱀허물이 정창, 모든 상처에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태(胞衣)가 나오지 않을 때, 경풍(驚風) 등이 쓰인다고 했다.

[과학모형]

가. 형상(形狀)

① 몸이 가늘고 길다
② 비늘로 싸여 있다.
③ 몸의 이동은 네다리가 없기 때문에 몸을 구부려 곡선의 정점에 힘을 주어 끌어 당겨 구불구불하게 진행한다.


나. 눈 혀 귀 코

① 눈까풀이 없고 가까운 것을 잘 본다.
② 혀가 가늘고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다. 미각은 없다.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냄새로서 먹이를 탐지하려는 것이다.
③ 귀는 퇴화되어 겉귀가 전혀 없으며 가운데 귀도 1개 의 뼈만 있어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지면을 통한 진동에는 매우 민감하다.
④ 후각이 발달함


다. 독(毒) 식성(食性)

① 독니[毒牙]가 있다(신경에 작용하는 것, 혈액이나 국부조직을 파괴하는 것, 복합적인 것)
② 곤충이나 척추동물을 먹는다 (이빨, 독, 목으로 감아서).


라. 허물

① 뱀의 몸은 비늘로 싸여 있지만 이들 비늘은 1개씩 떨어지지 않는 연결된 피부로 되어 있다.
② 표피의 바깥 층이 오래되면 눈의 부분까지 포함하여 표피 전부를 뒤집어 허물 갈이를 한다.


라. 동면

① 추울 때 동면하고 따뜻할 때 활동한다.
② 겨울 동안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봄에 다시 살아 난다.


마. 다산성

① 난생 난태생으로 한 번에 100여 마리씩 부화한다.
② 수컷은 주머니 모양의 생식기가 2개 있다.




[민속모형 (民俗模型)]

가. 형상(形狀)

① 상사일에 긴 물건(실, 머리카락, 밧줄, 새끼)을 만지지 않는다.
② 상사일에 '巳不遠行': 멀리 가지 않는다(蛇足).
③ 정월 보름 뱀과 비슷한 형상(썩은 새끼, 진대)을 만들어 뱀치기, 배지지, 진대끌기 등을 한다.
④ 징그럽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사악하다


나. 눈 혀 귀 코

① 날카롭다. 차갑다. 매섭다.
② 유혹, 여자, 말조심
③ 지혜롭고 상황판단을 잘하는 동물로 인식


다. 독(毒) 식성(食性)

① 날카롭다.
② 무섭다. 두렵다.
③ 뱀에 손가락질하거나 맨발로 밟으면 썩는다.


라.허물

① 변신(뱀서방 이야기, 인간의 원혼이 뱀으로 변신)
② 민간 의료의 약재[巳脫皮]
③ 자기 혁신의 본보기[뱀허물 벗기]


마.동면

① 재생(무덤 속의 벽화, 토우로 넣음)
② 지신(地神)
③ 사자(死者)의 영혼
④ 끈질긴 생명력(일시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죽였을 때 다시 살아나 반드시 복수한다)
⑤ 악업(惡業)


바.다산성

① 양기[陽氣-지구력과 정기]
② 생산신[多産神] → 재신[財神-업신]
③ 민간의료[생식, 탕, 술]

7) 말 [午]

말(午)은 12지의 일곱 번째 동물로서 경오(庚午), 임오(壬午), 갑오(甲午) , 병오(丙午), 무오(戊午) 등으로 순행하며, 시각으로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방향으로는 정남(正南), 달로는 음력 5월에 해당한다

말은 십이지의 일곱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방위로는 남, 달[月]로는 음력 오월에 해당한다.

말의 이미지는 박력과 생동감으로 수렴된다.
외모로 보아 말은 싱싱한 생동감, 뛰어난 순발력, 탄력있는 근육,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 기름진 모발, 각질의 말굽과 거친 숨소리를 가지고 있어 강인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말은 고래로 원시 미술, 고분 미술, 토기, 토우, 벽화 등에 나타나고, 설화, 속담, 시가 등의 구비되는 이야기, 민속 신앙, 연희 등 민속 문화에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사기》의 기록으로 기원전 위만조선에도 말의 수가 상당했고, 기마(騎馬)의 습속, 말이 전투에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삼국지》동이전의 기록으로 보면 부여에는 명마(名馬)와 과하마(果下馬)라는 두 종류의 말이 있었고, 예나 부여에서는 말을 재산으로 간주했고, 동옥저에는 말의 수가 적었다는 사실, 삼한 지역은 모두 우마가 있었으나 마한은 말을 타지 못한 반면에 변한, 진한은 말을 탔다는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청동으로 만든 말 모양 부적이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되었는데, 크기가 3cm로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먼 옛날부터 말을 액막이와 행운을 부르는 상징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날개 달린 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부적을 퇴액진복부(退厄進福符), 신마부(神馬符)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위의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신라, 가야에는 말 그림, 말 모양의 고분 출토 유물이 발견되고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각종 말 그림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자로서 피장자의 영혼이 타고 저 세상으로 가는 동물로 이해된다. 말이 그려진 토기, 토우, 벽화는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장(意匠)과 사상은 다 같은 것이다. 즉 피장자의 영혼이 말을 타고 저 세상으로 가도록 드리는 공헌적 부장(供獻的 副葬)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비 설화나 문헌 설화에서 말은 신성한 동물,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알아 볼 줄 아는 영물 또는 신모(神母)이며, 미래에 대한 예언자적 구실을 한다.
특히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말은 모두 신령스러운 동물로 되어 있다.
금와왕, 혁거세, 주몽 등 국조(國祖)가 태어날 때 서상(瑞祥)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든지,
백제가 망할 때 말이 나타나 흉조를 예시해 준다든지 모두 신이한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혁거세신화와 천마도의 백마(白馬)는 최고 지위의 거주(居住)인 조상신이 타는 말로 인식되었고,
후대에 내려오면서 고대 소설, 시조, 민요 등에서는 신랑 소년 애인 선구자 장수 등이 타고 오는
동물이 되었다.

세시 풍속에서는 말을 육축(六畜)의 하나로 인식하고, 정월 상오일, 시월 말날에 특별히 말을 위해
제물을 차리고 고사를 지냈다.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의 동제당에 마상(馬像)이나, 마도(馬圖)가
마을 수호신으로, 혹은 동신이 타고 다니는 승용 동물로 모셔지고 있다.

동제당에 봉안된 말은 마을 수호신인 동신이 타고 다니라고 봉안하는 경우, 호환(虎患)과 관련되어 호환을 퇴치하기 위해서 봉안되는 경우, 솥공장이나 옹기 공장이 잘되도록 기원하기 위한 제물로 봉안하는 경우, 말에 대한 순수한 숭배 관념에서 봉안되는 경우 등이 있다.


민속놀이에서도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격구, 마상제, 윷놀이 등이 그 예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말의 이용은 단순히 실용 혹은 수렵 및 간단한 경제적 단계에서 정복과 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이용 단계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전 역사를 통해 말은 농경, 수공업의 원료, 군마, 교통 통신의 역마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근자에는 제주도 일부와 민속촌 관광지와 경마장을 제외하고는 말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실제 말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 중층 되면서 형성되어 온 말의 이미지와 관념은 또 다른 형태, 즉 현대 기업 상표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말에 대한 표현 양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 유물, 설화, 신앙, 놀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말에 대해서 느끼는 관념은 어느 정도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말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은 '신성한 동물''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어, 신성한 존재,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알아볼 줄 아는 영물 예언자적 존재, 죽은 사람의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 신랑 선구자 등 희망을 가져다주는 인물들이 타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8) 양 [未]

양띠해는 기미(己未), 신미(辛未), 계미(癸未), 을미(乙未), 정미(丁未), 등 육십갑자에서 순행한다. 양(未) 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양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수렴된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 생활을 하면서도 동료간의 우위 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 또한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서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기도 하다. 목양(牧羊)이 깊이 토착화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한(三韓)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고, 일본의《日本書紀》에 기록에 보면 "법왕(法王) 1년(599년) 7월에 백제에서 낙타 한 마리, 나귀 한 마리, 양 두 마리,
흰꿩 한 마리를, 헌덕왕(憲德王) 12년(820년)에는 신라에서 검은 수양 두 마리, 흰양 네 마리, 산양 두 마리, 거위 한 마리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던 양이 삼한 시대부터 국가간 외교에서 중요한 공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해 들어 첫 양날을 상미일(上未日)이라고 한다.

첫 양날에 특기할 만한 민속은 찾기 힘드나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양이 방정맞고 경솔하여 해안 지방에서는 이날 출항을 삼가는 곳도 있다.
경거망동하면 바다에 나가 해난을 만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하여 환자라도 약을 먹지 않는다. 이날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제외하고는 양은 온순한 짐승이기 때문에 이날 무슨 일을 해도 해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정월에 하는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에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이 바로 양에 해당한다.


천성이 약한 탓에(착한 탓에)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면서 오직 쫓기고 희생되어야 하는 양은 설화, 꿈, 속담 등에서도 언제나 유순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통한다.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에 양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꿈을 깨었다. 이 꿈 이야기를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하리라는 해몽을 했다. 즉 한자의 '羊'에서 양의 뿔에 해당하는 ' '획과 양의 꼬리에 해당하는 곤 '?'획을 떼고 나면 "王"자만 남게 되어 곧 임금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이태조(李太祖)가 조선을 건국하매 양꿈은 길몽으로 해석되었다. 지금까지도 양꿈에 대한 해몽은 희생, 제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으로 해석한다.
이런 연유는 목축 민족에게는 양이 재산의 척도가 되고, 제단에 바치는 희생물이었고 양의 성품이 티 없이 온순해 착한 사람으로 의미하게 되고, 기독교 문화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양과 관련하여
종교인의 상징이 된다.

우리 민족은 양과 염소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염소의 수컷에는 턱수염이 있다. 수염이라는 것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게만 있는 것이고,
염소의 성격이 또한 온화하고 온순하여 옛날이야기나 동화 속에서 염소는 주로 인심 좋은 할아버지로 묘사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양이 늑대, 호랑이에게 쫓기고 잡아먹히는 대상이 대거나, 이들 동물과 대조를 이루어 착한 동물로 이야기된다.

양은 언제나 희생의 상징이었다.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속죄양(贖罪羊) 일 것이다. 성격이 순박하여 양하면 평화를 연상한다. 겁먹은 듯한 순한 눈망울과 복슬복슬한 털에 덮인 양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평화와 안락의 상징으로 충분하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된다'라는 말이 있다.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서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교 :
음력 봄 2월과 가을 8월의 첫 丁日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대제에서 조(俎;도마)
위에 담는 희생으로 양머리[羊腥]를 사용한다. 양머리는 유교의 대표적인 희생물이다. 동양에서 양은 일찍부터 영험스러운 동물[靈獸]로 알려졌다.
소, 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여왔고 고기의 맛이나 질도 그만큼 좋은 상위권의 동물이었다.


고대 동양에서는 소는 소의 솥[牛鼎], 돼지는 돼지의 솥[豕鼎], 양은 양의 솥[羊鼎]에 각각 삶아서 제물(희생)로 썼으며, 각 솥은 독특한 장식이 있었다.
양을 중히 여기는 생각은 세월에 따라 聖獸의 경지로까지 끌어 올렸으며 먹고 버린 뼈까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시하는 영물로 간주되었고 고이고이 간직하기도 했다.
양의 가죽옷은 제후나 대부 등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만 입을 수 있는데 논어의 이른바 염소 가죽옷에 검은 관을 썼다는 '羔裳玄冠'이 바로 그것이다.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늙은 아비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양의 모습에서 효를 상징하기도 한다.

상형 문자인 양(羊)이 생기게 되자, 羊은 인간의 모든 기쁨을 포괄하는 글자가 되어 '좋은 것' 또는 '상서로운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양의 생김새에서 딴 상형 문자인 양(羊)은 맛있음,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등의 의미로 이어진다. 즉 큰양[大羊]이란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 의[義] 자가 된다. 양이란 상형문자에서도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움[美]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인식했던 것이다.

크게 좋고 상서롭다'는 것을 요즘처럼 '大吉祥'이라 쓰지 않고 '大吉羊'이라 썼으며, '모든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의 '壁除不祥'을 '壁除不羊'으로 썼던 기록이 《博古圖漢十二辰鑑》이나 《漢元嘉刀銘》 등에 남아 있다.

양은 서양의 정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동물이다.
초원 위에 흰 구름의 형상을 수놓으며 몰려가는 양떼의 풍경은 가장 서양적인 전원의 목가를 낳았고,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받쳐 온 성경에서 양이야기는 무려 500번 이상이나 인용된다.
고대 이스라엘인의 생활에서 양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의(祭儀)의 필수품이었고, 양의 머릿수가 곧 재산을 뜻했다. 또한 양고기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이 동방박사들에게
인도했다는 것도 양의 상징적 기능을 말해 준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이스라엘이나 서양에서 양을 제물로 삼는 번제(燔祭)가 없어진 것은 예수와 양이 동일시된 성서의 유산이다.

이처럼 기독교 문화에서 양은 선량한 사람이나 성직자를 상징해 왔으며, 일상생활에서 소나 말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고대의 수메르인이나 이집트인들을 비롯 그리스, 로마, 게르만 민족도 양을 신의 신성수(神聖獸)로 생각했으며, 유목민족에게 양은 특히 뇌우(雷雨)의 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사용 동물로 여겨졌다. 고대 로마에서는 양은 미래를 점치는 동물로 활용했다.

따라서 서양인들은 양을 가리켜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희생하고자 태어난 동물로서 높은 경지의 도덕성과 생생한 진실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양피(羊皮)는 고급 피혁으로 장갑, 구두, 잠바, 책표지 등에 쓰이고 양모(羊毛)는 보온력이 높고 질겨 고급 양복지, 솜 대용으로 두루 쓰이는 모직물의 주원료가 된다.
양유(羊乳)는 우유에 비해 단백질, 지방, 회분이 풍부해 허약체질인 사람에게 좋다. 이처럼 양은 털, 고기, 뼈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일상생활에 이용되는 유익한 동물이다.


회화에서는 공민왕(恭愍王)의 {二羊}과 작자 미상의 {山羊} 그림이 있고 도자기로는 원주 법천리
고분서 출토된 '靑瓷羊' 등이 있다.
우리의 옛 조각이나 그림에서 양을 그린 작품은 드물다. 그러나 일단 우리 앞에 나타난 양의 모습은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은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와 정의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9) 잔나비[申]


원숭이해는 임신(壬申), 갑신(甲申), 병신(丙申), 무신(戊申) , 경신(庚申) 등 다섯 번으로, 12지의 아홉 번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이 닮은 모습,
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통일 신라 시대부터 등장하는 12지신상의 원숭이는 무덤의 호석이나 탑상(塔像), 부도(浮稻), 불구(佛具) 등에서, 머리는 원숭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몸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무기를 손에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2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를 담당하는 시간신(時間神)이며 방위신(方位神)으로, 이 시간과 이 방향으로 들어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자와 백자에서도 원숭이의 생생한 모습이 보인다. 인장의 꼭지, 연적, 수적, 서체(緖締), 작은 항아리, 걸상 등에서 그릇의 모양이 원숭이의 형상을 띠고 있거나 장식 문양으로 원숭이가 나온다.
청자나 청동으로 만든 원숭이꼭지도장[猿形印章]은 쭈그리고 앉거나, 긴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혹은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를 하고 있다.




10) 닭 [酉]

닭(酉)는 12지의 열 번째 동물로서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기유(己酉), 신유(辛酉) 등으로 순행하며 시각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月)로는 음력 8월, 방향으로는 서(西)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에 해당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黎明)을 알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들여졌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 신앙도 그 여명을 하는 주력 때문일 것이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에서는 믿고 있었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흔히 칭송된다.

즉 닭의 벼슬(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닭은 여명,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태양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의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이 있기도 하다. 장닭이 훼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 신비로운 영물로 간주한다. 닭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양상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속신화나 건국신화에서 닭 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 본풀이 서두에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개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알지 신화에서는 호공이 밤에 월성을 지나가다가 나무에 황금 궤가 걸려있고 그 밑에서 흰 닭이 울었는데, 그 황금 궤 안에서 동자가 나왔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성을 김씨라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를 통치할 인물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 닭의 울음소리는 빛의 상징으로서, 자연 상태의 사회에서 국가적 체계를 갖춘 단계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시보로서 닭소리는 고전소설 심청전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 !”
심청이가 뱃사공에게 팔려가기로 약속한 날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탄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닭소리는 새벽, 즉 날의 밝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11) 개 [戌]

개띠 해는 육갑(六甲) 가운데 갑술(甲戌), 병술(丙戌), 무술(戊戌), 경술(庚戌), 임술(壬戌) 등으로 순행한다. 십이지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戌)는 시간으로는 오후 7시에서 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 달(月)로는 음력 9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개(戌)는 이 방향과 이 시각에 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동물신(動物神)이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동물 가운데 가장 흔히 접할 수 있고, 인간과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동물은 개이다. 개는 그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사람을 잘 따르며, 개는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또 자기의 세력 범위 안에서는 대단한 용맹성을 보인다. 특히 주인에게는 충성심을 가지며, 그 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 경계심을 갖는다. 아주 오랜 시기를 같이 살아온 개는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헌신하는 충복의 상징이다. 특히 설화에 나타나는 의견(義犬)은 충성과 의리를 갖춘 우호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을 한다.

의견 설화와 의견 동상, 의견 무덤 등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전국에서 전승된다. 그런가 하면 서당개, 맹견, 못된 개, 미운 개, 저질 개, 똥개, 천덕꾸러기 개는 비천함의 상징으로 우리 속담이나 험구(욕)에 많이 나타난다. 동물 가운데 개만큼 우리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개살구, 개맨드라미 등 명칭 앞에 ‘개’ 가 붙으면 비천하고 격이 낮은 사물이 된다.

예로부터 개는 집 지키기, 사냥, 맹인 안내, 수호신 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흰 개는 전염병, 병도깨비, 잡귀를 물리치는 등 벽사 능력뿐만 아니라, 집안에 좋은 일이 있게 하고, 미리 재난을 경고하고 예방해 준다고 믿어 왔다.『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의 멸망에 앞서 사비성의 개들이 왕궁을 향해 슬피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이 난다 하여 개를 팔아 버리는 습속이 있다. 또, 개가 이유 없이 땅을 파면 무덤을 파는 암시라 하여 개를 없애고, 집안이 무사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고 근신하면서 불행에 대비한다.

무속신화, 저승설화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환생(還生)하여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길을 안내해 주는 동물이 하얀 강아지이다. 이처럼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옛 그림에서도 개 그림이 많이 나온다. 동양에서는 그림을 문자의 의미로 바꾸어 그리는 경우가 흔하다. 개가 그려진 그림을 보면 나무 아래에 있는 개 그림이 많다. 이암의 화조구자도와 모견도, 김두량의 흑구도 등이 그 예인데, 나무(樹) 아래에 그려진 개는 바로 집을 잘 지켜 도둑막음을 상징한다. 개는 ‘戌’(개 술)이고, 나무는 ‘樹’(나무 수)이다.
‘戌’은 ‘戍’(지킬 수)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戍’는 ‘守’(지킬 수)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樹’와도 음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된다. 즉 “戌戍樹守”로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개의 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써 도둑을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일종의 주술적 속신(呪術的 俗信)은 시대를 거슬려 올라가 고구려 각저총의 전실과 현실의 통로 왼편 벽면에도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개 그림을 그려 놓았다.

사람들은 주인에게 보은할 줄 알고 영리한 개를 사랑하고 즐겨 기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흔히 천한 것을 비유할 때 개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개는 아무리 영리해도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밖에서 자야하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 사람보다는 낮고 천하게 대접받는다. 개에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으니 의로운 동물이라는 칭찬과 천하다고 얕잡아 취급하는 양면이 있다. 즉, 개에 대한 민속 모형은 충복과 비천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12) 돼지[亥]

돼지해는 육십갑자에서 을해(乙亥), 정해(丁亥), 기해(己亥), 신해(辛亥), 계해(癸亥) 등 다섯 번 든다. 돼지(亥)는 12지의 열두 번째 동물이다. 해시(亥時)는 오후 9시에서 11시, 해월(亥月)로는 음력 10월이며, 해방(亥方)은 북서북(北西北)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시간신(時間神)이자 방위신(方位神)에 해당한다.


‘돼지’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도 있고, 흔히 뚱뚱한 사람을 보고 ‘뚱돼지’라고도 하며, 귀엽게 ‘꽃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는 십이지의 마지막 동물이며, ‘돼지고기는 새우젓과 같이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 고사를 지낼 때는 돼지머리를 상 위에 올려놓고 장사가 잘되기를 빈다.
돼지와 관련된 민속은 참으로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천년 전에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돼지는 신화(神話)에서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동물, 제의(祭儀)의 희생(犧牲), 길상(吉祥)으로 재산(財産)

이나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을 상징한다.
그런 반면에 속담에서 대부분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는 모순적 양가성(矛盾的 兩價性)을 지닌 띠동물이다.

가축으로서의 돼지의 용도는 고기와 지방을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한 신성한 제물(祭物)이었다.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祭典)의 희생으로 쓰여진 동물이다. 제전에서 돼지를 쓰는
풍속은 멀리 고구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전승되는 역사 깊은 민속이다. 고구려 때는 하늘에 제물로 바치는 돼지를 교시(郊豕)라고 해서 특별히 관리를 두어 길렀고, 고려 때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이 서해용왕에게서 돼지를 선물 받았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멧돼지를 납향(臘享)의 제물로 썼다. 오늘날 무당의 큰 굿이나 집안의 고사, 마을 공동체 신앙에서도 돼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다. 돼지는 이처럼 제전에서 신성한 제물이었기 때문에 돼지 자체가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유리왕은 도망가는 돼지(郊豕)를 뒤쫓다가 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에 이르러 산수가 깊고 험한 것을 보고 나라의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산상왕은 아들이 없었는데, 달아나는 교시를 쫓아 가다가 한 처녀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고, 그 처녀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부여에서도 돼지가 벼슬이름으로 있다. 이처럼 고구려와 고려는 돼지의 도움으로 도읍지를 발견하고, 왕의 후손을 얻었다. 이는 돼지 자체에 신통력이 있고,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인 동시에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使者)의 모습의 신통력을 지닌다. 이러한 관념은 다시 돼지를 상서로운 길상의 동물로 표출한다. 우리의 고대 출토유물, 문헌이나 고전문학에서 돼지는 상서로운 징조로 많이 나타난다. 민속에서는 돼지는 재산이나 복의 근원이며, 집안의 수호신이라는 관념이 강화된다. 돼지꿈이 길몽으로 해석하고, 장사꾼들이 정월 상해일에 문을 열며, 돼지그림을 부적처럼 거는 풍속 등은 모두 이러한 관념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런 긍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돼지는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설화에는 돼지가 탐욕스러운 지하국의 괴물로 등장한다. 속담에서는 돼지의 탐욕스러운 성정 즉, 욕심, 지저분함, 돼지의 목청, 어리석음, 게으른 성격을 비유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부정적 관념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성서에서는 종교적 금기, 악마의 의도와 유혹의 상징으로까지 진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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