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앞에 닥친 식량위기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농업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듣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농업행정가의 관점에서 들어봤다.
송용섭 전 김포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인터뷰를 통해 “김포는 우리 농업·농촌 문제를 다 가지고 있었다”고 진단하면서 “‘이제부터 김포는 농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농민·시민·공무원이 함께 갈 수 있는 지향점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또 “농민의 농업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업으로 가고 있다”고 내다봤다.
송용섭 전 소장은 2010년 10월 18일 인사교류를 통해 농촌진흥청에서 김포시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발령받았으며, 2년간 업무를 마치고 지난 10월 18일 다시 농촌진흥청으로 복귀했다.
인터뷰는 11월 29일 오후 4시경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서 진행했다.
<유정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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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섭 전 김포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독자들에게 소개를 해달라.
김포시의 인사교류 요청으로 2010년 10월 18일부터 2년간 김포시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10월 18일에 농촌진흥청으로 복귀했으니 딱 만 2년이다.
김포에 가기 전에는 농진청에서 기술연수과장, 지도개발과장으로 근무했었다. 현재는 농진청(녹색미래전략팀)에서 농업·농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 기획을 맡고 있다.
대학에서 농촌사회지도를 전공했고 농민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 인사교류가 이뤄지나.
인사교류는 중앙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교류를 통해 양 측 사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생겼다.
18년 전 지도관으로 충주농업기술센터, 충북농업기술원에서 각 2년 씩 근무한 것을 바탕으로 농진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김포시장의 요청으로 인사교류가 이뤄졌다.
농민단체 간, 농민단체와 공무원 간 융합이 잘 안되고, 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발령받기 1주일 전에 김포시 농정과와 기술센터가 통합되는 등 구심점이 필요하다거나 일부분 조직관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 것도 인사교류의 배경이 됐다고 본다.
-김포에서 본 농업은 어땠나.
모든 농업·농촌 문제가 김포에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농민단체장이 “김포사람들은 눈이 옆에 달려있다”고 해서 이유를 들어보니 “농사보다 옆의 땅 값 오르나 안 오르나 보느냐고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개발제한구역 해제나 아파트 단지 등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임차농 비율이 높았다.
또 남양주나 고양과는 다르게 신선채소 하우스 농가들이 없다는 것도 의아했다. 벼농사도 관행적인 기술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농업행정가로 어떤 역할을 했나.
첫 번째로 ‘다시 농업을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김포는 농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농민들이 땅값에 신경 쓰는 게 아니고 농사로 소득을 창출할 방법을 같이 찾으면서 농업의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다.
공무원 인식도 바뀌어야했다. 김포가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려면 농업과 농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농민에게는 “김포농업 현실은 우물 안 개구리 형국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러면서 김포농업이 타 지역에 비해 5년에서 10년 뒤처져있다고 말했다. 소득원도 다양하지 못하고 작목 도입이나 기술도 뒤쳐져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김포시장을 단장으로 해서 김포시의회 부의장, 기자단, 시공무원, 농업기술센터 공무원, 각 농민단체 회장, 품목별 회장 등 35명으로 전국 선진지 견학단을 구성했다. 아마 지자체 자체적으로 민관이 협력해서 전국으로 견학을 다닌 건 처음일 것이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2박3일 동안 전국을 다녔다.
견학을 통해 농업직 공무원, 농민단체, 기술센터 지도직이 하나의 지향점으로 같이 갈 수 있도록 계획했고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농촌 같은 도시, 도시 같은 농촌’이라는 비전을 세웠다. 더럽고 힘들고 불편한 농촌이 아니라 수도권과 가까이 있으니 쾌적하고 편리하고 안락한 농촌을 만들자고 했다. 그런 김포시가 되면 도농이 상생하고 거기서 농민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시민들 삶의 질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모임이던지 농민들이 있으면 찾아가려 앞장섰다. 12월에 20개 읍·면을 찾아다니며 농업이 희망이라고 새해 농업인 실용교육을 했다. 또 야간교육으로 친환경 채소 재배기술교육도 했다. 한여름에 했는데 김포시내 농협 회의장이 꽉 들어찼다. 실제로 친환경 재배농가가 많이 늘어났다.
-반응이 특별히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지역이 있었나.
남원은 기술센터에서 미꾸라지 양식 기술을 알려주고 치어(稚魚)를 농가에게 보급하고 있었다. 지역 주 소득원과 연관해서 기술센터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추어탕용 시래기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농민들이 추어탕 가게에 공급하고 있었다.
문경 오미자 가공센터에서는 농가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창업보육센터 성격으로 농민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농진청 식물공장, 원주 도시농업체험관, 화성 야생화 식물원, 충주사과연구소 등이 생각난다.
-농업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까.
최근 열린 토론회나 세미나를 통해서 느낀 점은 김포에서 느낀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농민의 농업이었다면 이제는 국민과 함께하는 농업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김포도 마찬가지다. 올해 김포시농업기술센터 50주년 행사를 했다. 그러면서 농민과 함께한 50년, 시민과 함께할 50년 이라는 방향을 내걸었다. 행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농업인 중심 사업에서 이제는 시민들로 파고드는 사업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김포로 보면, 김포시민 27만 명 중 김포농업인구는 8%인 2만 명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농민이 농업을 외쳐도 8%의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농산물의 최종 수혜자는 92% 시민이다. 시민들이 농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도농상생을 위해 협력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농업이 돼야한다고 본다.
또 농업은 힘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꼈다.
김포중학교 김포여자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농업체험 교육프로그램 1년 과정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상자텃밭과 빈 땅을 이용해서 배추, 상추, 감자 등을 심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 농업체험활동 시간만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 오면 자고 말도 안하던 학생이 친구와 선생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얼굴을 들고 생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가회에서 담당교사가 ‘어떻게 저 학생이 저렇게 변화할 수 있지’라고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이게 농업의 힘이라고 본다.
장애우 노동자들이 일하는 김포밀알보호작업장에서는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시민, 학생, 기업을 대상으로 농업프로그램을 하고 반응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른다. 그런 행복감이라면 농업이 줄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결국은 국민의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약 6% 약 300만 명의 농민인데 작은 목소리다. 울림이 있으려면 국민들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파주북소리 축제에 가서 신영복 선생의 ‘변방을 찾아서’라는 강의를 들었다. 변방이 곧 중심이 된다는 내용으로 들었다. ‘그 변방이 농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농업과 농촌하면 힘들고 더럽고 지저분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농업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본다. 이미 농업이 시대의 중심에 와 있다.
향후계획은.
현장에서 해보니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교육을 통해 농민과 시민의 의식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됐다. 충분히 가능하다.
앞으로 교육을 통해 현장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
농민에게는 농업기술을 포함해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시민들도 도시농업 등 여러 형태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
농민과 시민 그리고 행정이 만나는 현장이라는 접점에서 농업에 대한 이야기, 밥상주권, 식량위기, 농업이 왜 중요한가 등을 알려나가겠다.
현장에 있지 않으면 제도를 기획한다고 해도 변화가 있는지 알기 쉽지 않다. 현장은 반응이 있다. 2년 간 했던 시도를 농민분들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여주셨고 또 농민분들도 동참해주셨다.
김포에서의 2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