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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일 [ 12월 28일 / 일 / 캄보디아 프놈펜 관광 ]
호텔에서 아침식사후에 툭툭을 빌려 ... 먼저 킬링필드로 향한다.
청아익(Choeung Ek)[킬링필드] 지역은 크메르 루즈군에 의한 대학살의 만행이 이루어진 곳이다.
약 1만 7천여명을 매장하였으며, 이들을 매장할 때 총알도 아까워 작대기와 농기구 등으로 학대를 하며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이후 이곳의 만행이 영화화되며, 킬링필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고,
말 그대로 '살인의 대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곳은 8천구가 넘는 시체를 한 번에 던지듯이 넣고 매장을 한 곳이다.
청아익 근처의 불탑에는 그 때 희생된 희생자들의 수천여개의 두개골들이 가득 차있다.
킬링필드는 프놈펜 남서쪽 15Km 지점에 위치하며 그곳에는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추모 위령탑과 그곳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발굴 전시 해 놓았다.
킬링필드의 추모 위령탑이다
그 위령탑에는 수천개의 유골이 봉안되어 있다
친구, 동료, 하물며 가족끼리도
자기가 살기위해 죽어야 하는 잔혹사의 역사를 말해 주는 곳이다
두 시간여 킬링필드를 돌아보고 ... 프놈펜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에는 왕궁과 박물관으로
날씨도 좋고 ... 풍광도 멋지고 ... 파노라마로 찍어 봅니다
4년전에도 이렇게 날씨가 좋았는데
12월 이곳에 날씨는
정말로 환상적
인곳
...
..
.
프놈펜 왕궁은 캄보디아에 있는 궁정의 복합단지이다. 캄보디아 왕국 때의 건물로서 크메르 어로 하면
"Preah Barom Reachea Vaeng Chaktomuk"라고 한다.
1866년 지어진 이후 캄보디아의 왕이 줄곧 머물렀다.
궁전은 노로돔 왕국이 수도를 오동에서 프놈펜으로 옮기면서 1800년대 중반 때에 완성되었다.
사실은 반테이 케브(Banteay Kev)라고 불리는 성채 위에 지어졌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메콩 강의 서쪽 강둑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성곽을 따라 3개의 주요 단지로 나뉜다.
북쪽에는 은으로 된 탑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크메르 궁전이
중앙에는 왕좌의 회당(The Throne hall)이 위치하고 있다.
궁정의 건물은 여러 번 재건축되었으며 1960년 후반에 다시 지어졌다.
크메르 어로 하면 "Preah Thineang Dheva Vinnichay" 이며
그대로 옮기면 진리를 내리는 신성한 장소라는 의미이다.
왕의 측근과 주요 인사가 머물렀으며 그들이 업무를 보기도 하였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종교/왕가 의식을 위해 쓰이고 있다.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왕좌의 회당은 왕의 흉상을 전시해놓고 있다.
궁전 북쪽 단지에 있는 탑이다. 왕궁의 사찰 형태를 띠고 있으며
대개는 "Preah Vihear Preah Keo Morakot"라고 부르거나 "Wat Preah Keo"라고 부른다.
건물 내부에는 수많은 국보가 있으며 금과 보석으로 된 불상이 대부분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7세기에 만들어진 수정 불상으로 캄보디아의 에메랄드 불상이라고 부른다.
크메르 궁이란 크메르 왕을 위한 궁이다. 왕의 거처로 쓰여왔다.
다른 건물과 여러 벽을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왕좌의 회당 바로 옆에 있다.
월광의 전각이란 찬 차야 전각(Chan Chhaya Pavilion)을 일컫는 말로서 사방으로 열린 전각이다.
크메르 전통 무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까지도 이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전체 궁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두 시간여 왕궁 이곳 저곳을 돌아본후
어제밤에 산책 하였든 메콩강변 광장을 둘러보고
프놈펜 국립박물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있다. 1917년 프랑스의 그롤리에(G. Groslier, 1891~1945)의 플랜에 의해 착공,
1920년에 완성. 구왕궁의 북쪽 옆에는 주칠(朱漆) 회반죽을 한 전통적양식의 건물,
대진열관과 안뜰에 면한 세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5세기 말부터 14세기 말까지의 석조상 ∙ 브론즈 상, 유적의 부분(박공 ∙ 인중방 ∙ 벽면부조 등),
석비(石碑), 도기류, 금세공 등 수천점을 진열하고,
특히 앙코르 기의 조각류가 걸출하다. 그외에 19, 20세기 왕실의 일용품, 악기 등도 전시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놈펜 국립박물관 [Musée National de Phnom-Penh]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두시간여 프놈펜 국립박물관을 둘러보고
호텔 1층 레스토랑에서 맛나게 저녁을 해결하고
오늘 밤도 야시장으로 향한다
야시장에는 과일, 의류 등 각종 물품과 먹거리가 주를 이루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나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제 8 일 [ 12월 29일 / 월 /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시엠립으로 이동 ]
오늘은 온종일 시엠립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조금 늦게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으로 픽업온 미니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이동하여
프놈펜을 출발하여 시엠립으로 향한다
시엠립으로 가는 풍광은 대부분 이런 시골풍경이다
한창 포장공사가 진행중이라 먼지가 풀풀 날이는 곳도 있고
일부는 포장이 완료되어 신나게 달리는 곳도 있지만
시엠립까지 6~7시간은 달려야 한다.
메콩강을 따라 톤레삽으로 갈까도 생각하였지만
베트남으로 넘어올때 ... 메콩강 투어를 하였기에
버스로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하여 ... 저녁을 해결하고 ... 호텔앞 연못에서 이놈들과 한참 놀다
꿈나라로
제 9 일 [ 12월 30일 / 화 / 시엠립 앙코르 와트등 관광 ]
아침 8시에 뚝뚝을 타고, 앙코르왓으로 향하는데 ... 정말로 차량이 많다
4년전 왔을때는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중국사람과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기에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매표소에서 3일짜리 티켓을 사서 ... 먼저 앙코르 와트으로 향한다
앙코르 와트
앙코르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基)의 탑(塔)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參拜路)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사당탑(中央祠堂塔)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은 입체적이고 중앙은 약간 높다.
회랑의 높이는 제1회랑(215×187m)이 4m, 제2회랑(115×100m)이 12m, 제3회랑(60×60m)이 25m이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須彌山)은 돌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쌓아놓았으며,
높이 59m의 중앙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四角錐)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 사원의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장식(石彫裝飾) 등 모든 면에서 앙코르왕조의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장(全長) 760m에 이르는 제1회랑벽(回廊壁)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형한 샘물[泉水],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주랑(柱廊)과 탑 등은 뛰어난 구조물이다.
조형에서는 하늘의 무희(舞姬) 아프사라스, 여러 개의 머리를 마치 부채처럼 치켜든 커다란 뱀,
창문·기둥의 장식조각 등이 돋보인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그때부터 다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전화(戰禍)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대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완전한 복구는 어려운 상태이다.
1982년 집계를 보면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파괴되었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점이 도난·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1983년 이 유적지의 복원을 위해 조사단의 파견을 캄보디아 당국에 통보한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코르와트 [Angkor Wat] (두산백과)
3일 일정으로 이곳을 돌아볼 예정이지만 ... 정말 이곳 석조 건축물은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인간에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니 신에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현대에도 만들수 없는 석조 건축물을 1,000여년전에 건축했다는 것이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는 곳이다
천년전에 조각해 놓은 조각상을 몰지각한 여행자들이
정말 우리 모두가 보존해야 하는 것인데
참 이상한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4년전에 이곳에 와서 일주일간 이곳을 천천히 둘어 보았는데
그때와 별로 변한것도 없고 ... 더 정비가 된 것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 ... 외에는
그리고, 이렇게 돈벌이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전장 700여 미터의 회랑에 새겨진 조각은
1,000년전에 새긴 것이 아니라
방금 새긴 것처럼 선명하고, 섬세하며 ...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같이 여겨진다
오전내 앙코르 와트 관광후에 옆 레스토랑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에는 먼저 앙코르 톰으로 향한다
앙코르톰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로, 앙코르와트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11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운 것으로 앙코르 유적 중 유일한 불교 건축물이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km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높이 8m의 성벽과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앙코르톰을 둘러싼 4면의 성곽은 히말라야 산맥(우주를 둘러싼 벽)을 의미하며,
해자는 대해(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크메르인의 미소’라 부르는 온화한 표정의 사면체 불상이 곳곳에 세워 있다.
목조 건물은 이제 찾아볼 수 없으며 석조 건물만 남아 있다.
다른 유적과 달리 성곽 안에 여러 유적이 모여 있는 단지를 형성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동서남북 4개 대문과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승리의 문' 등 모두 5개 성문이 있는데,
현재 여행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성문은 남대문뿐이다.
남대문을 따라 숲이 무성한 길을 들어서면 바이욘 사원과 바푸온 사원, 왕궁, 피미야나까스,
코끼리 테라스, 리어왕의 테라스 등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코르톰 [Angkor Thom]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비록, 세월에 흔적인지? 나무들이 역사유적지를 감싸고 ... 있는데
그 크기가 정말로 크다
코끼리 테라스까지 보고 ...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온종일 이곳 저곳을 관광한다
코끼리 테라스
앙코르 제국의 왕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대를 맞이하던 곳이다.
피미아나카스(Phimeanakas) 궁전에 이어져 있다.
바푸욘 입구에서 라이왕의 테라스에 이르기 전까지 350m의 길이로 길게 늘어선 벽면에
코끼리 모양의 부조가 연달아 새겨져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계단의 한쪽에는 머리가 세 개인 코끼리신 에라완이 긴 코로 연꽃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 테라스 부근에 '승리의 문'이 있는데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이곳을 통해 들어와
왕에게 보고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끼리테라스 [Terrace of the Elephants] (두산백과)
첫댓글 사람들이 너무많네,,,,,,관광지라,,,
2014년 연말과 2015년 연초라 사람이 가장 많은 최성수기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