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지런히 바람새친구 카페에 드나들면서
문득 바람새친구 카페에서의 제 활동기록을 보니,
'총 방문일 335회 |총 게시물 99개 |총 댓글 428개'로 나오네요.
이러한 수치면 어느 정도 수준의 활동인지는 잘 가늠이 안 되지만
어쨌든 게시물 100번째를 채우고 싶어 자판을 두들깁니다.
며칠 전 TV에서 하춘화 50주년기념공연 실황을 보았습니다.
MBC 창사 기념공연이기도 했지요.
MBC와 하춘화씨 활동은 서로 동갑내기(?)로
하춘화씨가 TV에 첫 출연한 것도 MBC의 '쇼 반세기'를 통해서였습니다. 중3 때였죠.

'호반에서 만난 사람'으로 시작되는 이 공연은
마침 작곡가 박춘석 평전評傳을 한창 집필 중인 제 입장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공연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세종문회회관에서의 본 공연도 봤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하춘화 여섯 살 때 데뷔음반 재킷을 처음 인터넷에 소개한 것은 저였던 것 같습니다...요.
바로 바람새를 통해서였죠.

당시 '추억의 사진첩' 코너에
'누구일까요?', 이런 제목으로 퀴즈를 겸해 올렸던 기억이 새삼스럽군요.
단박에 맞췄던 분이 '나힘세'...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한은혜님이었던 기억도...
'눈을 보니 지금과 똑같다'는 의견과 함께.
이번에는 하춘화의 첫 영화주제가 음반을 공개합니다.
하춘화씨도, 그의 부친도 전혀 기억을 못했던 이 음반은
이후 컬러복사를 해서 하춘화씨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수송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는군요.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하춘화씨 부녀와 뒤늦게 친해졌고
그 때문에 KBS 9시뉴스 인터뷰 촬영도 제 사무실에서 하게 되습니다.
허나, 제 인터뷰는 빠졌습니다.
하춘화씨 관련 주변인물 인터뷰를 뒤늦게 JP가 수락했기 때문입니다.
JP는 5.16 이후 ‘예그린악단’을 창설하는 등 대중문화인들과의 교감이 남달랐던 인물입니다.
특히 JP가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내는 기회였기 때문에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특종이었던 셈이겠지요.
하춘화씨에게 JP와의 인연을 들어봤습니다.
"지난 93년, 일본 오부찌 수상이 내한했을 때부터였어요.
당시 한일감정이 극도로 나빴던 만큼 여러 가지 복잡한 현안이 많았는데 방문일정 중 한 시간짜리 제 공연 관람이 있었지요.
함께 노래도 부르고 분위기가 매우 좋았어요. 때문에 다음날 중요한 회담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그래서 '가요외교'라는 기사까지 앞다투어 신문에 났죠. 오부찌 수상을 제 공연에 초청한 분이 바로 JP였고
그래서 총리공관으로 식사초청을 받기도 했어요. 노래로 이러한 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지요."

각설하고,
자신의 50주년 기념공연인 '하춘화 50 리사이틀'을 펼치는 하춘화의 무대는 땀,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매우 행복해보였습니다.
"30~40년 무대에 섰다면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 50년이면 그야말로 무대에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난다."는
MC 이상벽씨의 익살스런 멘트가 아니더라도
무대에서 그가 펼쳐 보인 관록과 열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의 부제는
'하춘화 노래 50년으로 본 한국가요 80년사'였습니다.
고복수의 '타향살이'에서 티아라의 'Bo Peep Bo Peep'까지,
가요에서 팝, 그리고 2000년대 아이돌그룹의 댄스곡을 거쳐 민요까지...
이 날 무대에 동시에 올라왔던 인원이 자그마치 350명,
노래는 총 50곡 중 무려 모두 42곡을 혼자 부르더군요.
'노래하는 인형'에서 대한민국 '가요계의 산 증인'으로 우뚝 선 하춘화씨를 보며
한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하춘화씨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못하고 스케줄대로 움직였다면 이제부터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최초, 최연소'.. 이러한 기록 위주로 활동했다면 앞으로는 '최고, 최고령'... 이러한 기록에 도전해보겠노라고...
'70대에 70주년 공연, 80대에 80주년 공연'... 이러한 꿈도 실제로 가능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보다 분명해진만큼 그녀에겐 열심히 할 일이 여전히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 부러웠습니다.
이번 공연 수익금 역시 다문화 가정을 돕는 일에 모두 기증했더군요.
얼마 전 그가 출간한 자서전 제목은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부친이 늘 곁에서 지금도 매니저처럼 돌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친은 컴퓨터를 배워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고
어느덧 90세임에도 최근소식을 직접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녀의 꿈이 계속 이루어지길 빌면서...
이전에 썼던 글, 함께 찾아 올립니다.
그냥 참고 삼아 보시길...

어디에 뒀더라,
부시럭, 부시럭...
첫댓글 박선배님께서 올리신 '누구일까'시리즈 참 재밌었어요. 그런데 그 사진이 웹에 처음으로 올라왔던거네요.
사실 당시 바람새홈에서 님들이 스캔해서 올리던 사진들은 대부분 웹에 처음 올라온 것들이었을거예요.
그땐 다들 참 열정적이었잖아요..
답을 빤히 알면서도 너나 없이 힌트만 계속 나열하며 빙빙 돌리던, 당시 '너스레'가 그립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볼까유?
ㅎㅎ부시럭거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립니다~~나이 들어감에 예전에 익숙했던 곡들에 대한
추억이 참 많습니다..좋은 가수 맘속에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것 같습니다..고맙습니다^^
유행가를 모아 두니 우리가 살아온 시절의 소중한 역사가 되더군요.
엄마로 나온 여자가 이경희님인가요? 제가 어려서부터 하춘화를 좋아했답니다. 호반에서 만난 사람을 가장 맛갈스럽게 부른 가수가 하춘화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했고요.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무대를 소화하는 하춘화, 젊어서의 그녀가 무용단을 거느리고 춤을 추면 그 어떤 무용수보다 훨씬 춤을 잘춰서 감탄했답니다.무용단들 속에 섞어놔도 그녀만 보일 정도로 뛰어난 춤솜씨였지요. 최근에 보니까 관리도 잘하셔서 여전히 젊고 아름답기까지 하더군요. 예능프로에서도 그녀의 성실성과 인성이 돋보이고, 편안하고 맑게 나이들어가시는 걸 느꼈답니다.
'호반에서 만난 사람'을 '쎄드무비'로, '하춘화'를 '나팔꽃'으로, '예능프로'를 '바람새'로 바꾸니 또 하나의 완벽한 문장이 되는군요.^^
옛바람새에서 대뷔앨범 올려놓으셨던것 기억납니다...^^
노래까지 올려 놓으셔서 듣고 목소리가 어른 목소릴때와 틀리네...하고 생각했던것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건전노래 올리셨을때 그 내용이 참 반가왔었어요.
하늘에 태양은 젊어서 좋다~~이노래가 언급이 되어 있었거든요....
여기엔 없다는......^^;;
이따금씩 anna님의 기억력에 놀라곤 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젊은 별들의 합창'에 대한 글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어떻게 썼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한때나마 제겐 소중한 글이었는데 어느덧 바람새가 문닫는 동시에 모두 사라졌군요.
비록 그때그때 두서없이 썼던 글이었지만 그 글들이 생각날 때마다 옛 바람새가 그립습니다.
그때도 전석환님에 대한 건전노래에 대한 이야기 였었고..후에 이곳에서 같은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내용이 많이 빠져있고 무척 짧아져서 이상하네..다른데서 봤었나 잠시 헷갈렸었어요.
그러면 그때 그많은 이야기들이 바람같이 사라진거란 말씀인가요....?
아이고 아까워라....ㅠㅠㅠㅠㅠㅠ
가끔씩 이런 광고를 내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지요.. "바람새에 올려져 있던 글들을 찾습니다."...라고. ^^
박성서님 글을 읽고 나면 참 대단혀!!!! 하는 말만 나옵니다. 힘드시겠지만 계속 부탁 드립니다. 그때 부산에 오셔서 벙개를 때렸는데 귀국전 약속 때문에........ 참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번개는 박재호님, 장윤석님과 셋이서 딱 두 시간 정도만 머물렀습니다.
술맛이 제대로 느껴질 즈음 제가 일어나야 해서 스스로 무색해진 번개였습니다.
다음 기회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