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왜?’라는 물음을 던져본다면, 그냥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으니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내가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나 지금까지 어떤 생각과 행동들을 많이 했고,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왔는지, 그 동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하면 안 돼! ~ 해야 해!’라는 강압적인 양육방식으로 가끔 협박까지 당하며 성장했고, ‘다른 집 애들은 잘만 되던데~’라는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자기개념은 이제 내 안의 목소리가 되어 나의 자아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희생하며 살아온 불쌍한 우리 엄마. 엄마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엄마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나는 내 자아를 성장시킬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딸’이라는 이유로 미역국도 먹지 않았던 엄마에게 나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고, 아픈 남동생에게 밀려 온전한 인정과 지지, 돌봄을 받지 못했던 어렸을 적의 내가 지금 현재의 가정에서도 나를 돌봐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을 무의식적 양육자로 여기면서 원가족 내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반복적으로 재경험하고 있었다.
‘아, 내가 원가족 내에서 길들여진 패턴으로,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다보니 결국 내가 힘들어하는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었구나.’
나는 힘들고 외롭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정작 내 자신을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돌멩이를 맞으면서도 ‘난 그래도 되지’라고도 생각했다.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상담은 이런 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여긴 내 모습들도 그 순간 나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갑질을 당한 을일뿐이었다.
내가 진정한 나로서 수용되어지고, 인정받는 경험. 이것이 상담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힘이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가 변하기로 선택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직 어렵다. 그 동안 못해본 것인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이 또한 당연한 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인데, 남편에게는 벌써 변화가 느껴진다.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고맙고,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서 더 용기가 난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그대로다. 밉고 서운한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고, 내가 나를 지키려 엄마를 밀어낼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 또한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갑을 죽이지 않는 선에서 예쁜 을질을 계속해야 한다.’ 상담자의 이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나를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나는 계속 예쁜 을질을 시도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