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산
곡성 초악산[697.1m]-원효계곡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괴소리
[글.사진: 김희순 / 광주샛별산악회장]
화강암이 빚어낸 자연 미인
원효골 계곡은 다양한 모양의 폭포 전시장
‘초악산’일까 ‘최악산’일까?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 있는 ‘초악산’은 지도와 책자 등에는 ‘최악산’으로 기록돼 있는 반면 인근 주민들은 ‘초악산(鷦岳山)으로 부른다. 이 때문에 산악인들조차 어느 지명이 맞는지 혼란스러워 한다. 곡성 최고의 악산이다 라고 해서 최악산(最岳山)으로 부른다는 설도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1/50,000 지도와 각종 기관의 책자에는 ‘최악산’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삼기면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정동균 (52.삼기면사무소)씨는 어렸을 적부터 줄곧 초악산으로 부르며 자라왔다고 증언한다. 언제부터 최악산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초곡(焦谷)마을, 학다리골 등 새와 관련된 지명이 많고 초악산의 초(鷦)가 텃새인 뱁새 초(焦)를 사용한다는 것을 근거로 주장한다. 삼기면(三岐面) 주민들은 ‘www.삼기카페’를 중심으로 ‘초악산’ 옛 이름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곡성 톨게이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암산이 초악산이다. 짙푸른 나무 숲 사이로 굵은 암봉들이 뾰족 뾰족 솟아 있고 멀리서 보면 허옇게 드러난 절벽 지대가 ‘배 바위’다. 산 모양새가 한 눈에 봐도 까칠하다. 간혹, 곡성 동악산(736.8m) 남북 종주를 위한 출발점 코스로 이용하기도 한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좌측으로 100m 부근에 ‘괴소리’ 마을 표지석이 있다. 초악산 오르는 길은 원등리 맹이골에 있는 다선사에서 오르는 것과 삼거리 도로변 괴티재에서 오를 수도 있으나, 다양한 표정의 암릉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괴소제(槐所堤) 저수지 방면을 권한다. 승용차로 괴소리 2구 마을회관 앞에 주차하고 (대형버스는 진입 불가) 뒷길로 올라서면 바로 괴소제 저수지가 나온다. 산행 초입은 둑을 가로 질러 올라서면 된다. 초악산 등산로 전 구간에 이정표가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으므로 중간 중간에 메달려 있는 산행 리본을 참고해야 한다.
소나무 숲길을 완만하게 30여분 오르면서부터 슬랩구간과 암릉 사이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바위 틈새로 몸을 좌우로 비척거리며 빠져 나올 때 쯤이면 거대한 남봉(南峯) 암릉벽이 눈을 가로막는다. 겸재의 진경산수화처럼 미끈한 바위지대 매력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마치 치마 사이로 살짝 드러나 있는 미인의 늘씬한 다리를 훔쳐보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남봉 오르기 직전에 있는 무당바위 조망은 매우 역동적이다. 가슴이 확 트이게 쭉 뻗은 25번 고속도로를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차량들 모습에서 힘차게 박동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곳곳에 촛불을 켜고 치성 드린 무속인의 흔적이 많다.
# 한 폭 동양화 같은 남봉 화강암반 지대
남봉 정상은 화강암반이 잘 발달된 지형이다. 대체로 화강암지대는 오랜 풍화와 절리작용에 의해 거석(巨石)의 구성이나 모양이 다양하다. 한 폭 동양화 같은 판상 절리대 일대는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있어 경치 또한 으뜸이다. 암릉지대를 벗어 나면서 부터는 소나무, 굴참나무, 철쭉 등 잡목나무 능선 길이다. 길이 푹 꺼졌다 다시 차고 오르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1시간을 더 가다보면 왕관바위가 있다. 우뚝 솟아있는 장닭 벼슬처럼, 혹은 불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신라 왕관처럼 도도한 암릉 군(群)이 도열해 있다. 사방이 트여 있어 화순 백아산, 남원 문덕, 고리봉, 지리산 능선까지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이곳을 초악산의 실질적인 정상으로 봐도 된다. 물론, 10여분 이상 땅바닥만 열심히 살피면서 가다보면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애매한 지점에 있다. 왕관바위 사이를 스릴있게 통과할 수도 있고 우회하는 길도 있다. 대장봉(744m) 까지는 1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바위 경사면에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듯한 커다란 거북이 바위를 볼 수도 있다. 대장봉에서 동쪽으로 형제봉(758.5m) 방향 급경사 내리막 중간 지점에 배넘어재와 형제봉 삼거리가 있다. 그곳에 잡풀로 가득한 커다란 공터가 헬기장이다.
원효골은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된다. 원효골의 숨은 비경은 곡성 토박이조차도 잘 모르는 곳이다. 동물의 길은 있어도 사람의 길은 없었던 곳이다. 지금도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야생의 눈높이로 낮춰 보면 생동하는 숲의 생명들이 보인다. 물가에는 삵의 배변과 여러 종류 동물 흔적이 활발하다.
야성이 살아 있는 곳이기에 단독산행 보다는 최소한 4인 이상 그룹산행을 하기 바란다. 인간은 단지 숲길을 잠시 이용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이곳이 많은 발길로 순백의 처녀성을 점차 잃어 갈까봐 감춰 두고 싶은 곳이다.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불편하다 싶을 정도로 잡목이 우거지고 습지도 있지만 그곳만 통과하면 길이 선명하다. 선두에 가고 있던 일행 중 한명이 기겁을 하며 소리친다. 말벌에 쏘였다는 것이다. 여러 번 다녔던 길이지만 지금껏 없었던 일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길옆 작은 나무에 말벌이 집단으로 살고 있다. 공격하는 벌들을 스프레이로 분사한 뒤 약간 우회해서 진행하였다. 마른계곡을 따라 20여분만 내려가면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는 계곡과 만나게 된다.
# 원효골 계곡은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계곡
초악산 산행의 포인트는 이곳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봐도 좋을듯하다. 계곡을 따라서 완만하게 계속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암반계류가 빚어내는 걸작품들을 하나씩 보는 즐거움이 크다. 소(沼)도 넓고 깊다. 낙차가 큰 폭포에서부터 3단층을 이루는 폭포, 와폭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폭포 전시장이 따로 없다. 약 1km에 걸쳐 계곡이 기다랗게 발달되어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원시림과 협곡 양쪽 층암절벽이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막고 있었던 것일까. 하류로 내려 갈수록 산길이 분명하다. 계곡을 갈지자로 건너기를 여러번...선명하던 길이 검은 암반지점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길 찾는 방법은 두가지. 계곡물이 흐르지 않을 경우는 검은 암반 아래로 내려가 계곡을 건너면 된다. 하지만 물의 수량이 많을 경우, 언덕 위로 30m 정도 가다 우측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계곡 건너편에 다시 길을 만날 수 있다. 계곡 좌우를 바짝 따라 붙으면 넓은 길이 있다. 원효골은 암반층이기 때문에 물이 고이지 않는 평소에는 마른 계곡이다 . 그러나 비가 온 뒤라면 멀리 도로변에서도 볼수 있는 100여m 높이의 거대한 폭포도 나타난다.
하산지점에 흉하게 방치된 채석장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채석장 우측에서 지계곡을 통해 형제봉을 감싸면서 원효골로 하산하는 산행코스도 있지만 길을 잘 아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원효골은 동막골이라고도 부른다. .
원효골이라는 지명은 도림사와 길상암을 창건한 원효대사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도림사 관련 자료에는 ‘원효골에서 설법했다’라는 대목이 자주 보인다. 하류 쪽 바위 곳곳에는 해서체 각자가 새겨져 있다. 곡성읍 관계자는 구한말 독립지사들이 항일의지와 관련하여 바위에 새겼다라고 말한다.
원효계곡은 동악사, 도림사, 청류동 계곡과 청계동 사수폭포 계곡과 더불어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피서지로 입소문 나고 있다. 산행 후 피로를 풀어 주었던 녹주 맥반석 찜질방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대형 주차장이 있어 이곳을 이용하면 좋다. 근처에 음식을 먹을수 있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곡성읍내까지 가야한다.
*산행길잡이
-괴소리2구-괴소제-무당바위-남봉-왕관바위-대장봉-헬기장-원효골-채석장-녹주맥반석 (약5시40분)
-다선사-암릉-남봉-왕관바위-갈림길-맹이골-다선사 (약3시30분)
*교 통
KTX 이용시 용산역에서 곡성까지 직접 가는 기차는 없으므로 익산에서 환승해야 한다. 3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새마을호 이용시 용산역에서 곡성역까지는 약 3시간 58분 소요되며 시간은 대략 1시간마다 있다. 버스를 이용할 시에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곡성까지 하루 1회 운행(15:00)하는 버스가 있으며 요금은 21,100원이고 3시간 45분 소요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남부터미널에서 남원을 거쳐 곡성으로 가는 방법과 광주를 거쳐 곡성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숙식(지역번호 061)
섬진강변이나 곡성 기차역 주변에 잘 곳과 먹을 곳이 밀집되어 있다. 모심정 한옥식 민박(362-7447) 도림사 주차장 부근 동악산장(363-3537) 숙박가능. [별천지가든]은 섬진강의 명물 참게장 백반으로 꽤 유명한 집이다. 1인 1만원(362-8746). 오일장 시장 내에 있는 [옛날밥집] 백반은 남도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4,000원. 반찬이 13-14가지 나온다.(363-3049)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시장순대국밥]도 5,000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푸짐하고 맛있는 집이다.
*볼거리
동악산 남쪽에 있는 도림사(道林寺)는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특히 절 앞에 흐르는 청류동 계곡의 암반계곡의 풍경은 남도의 으뜸으로 친다. 시인 묵객들의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다. 곡성역 주변에 있는 오일장은 3일, 8일에 열리며 주말이면 전국에서 5천 명 이상 찾는 시골장터다. 섬진강 기차마을의 1960년대 증기기관차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13km 추억의 기차여행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