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하 강해(54) 2024. 1. 3
아벨성의 지혜로운 여인
사무엘하 20:14-26
<아마사를 죽인 요압>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윗은 한때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책임자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하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기한을 3일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마사가 기일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다윗은 ‘아비새’를 불러 속히 세바를 추적하라고 명령합니다. 출정이 더 늦어지면 세바가 든든한 성읍들을 점령하게 되고, 그러면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한을 지키지 못한 아마사는 아비새가 이끄는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 기브온에 먼저 도착해 아마사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비새와 함께 출정했던 요압이 인사하는 척 그에게 다가가면서 허리에 찬 칼을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듯 다가가면서, 왼손으로 숨겨둔 칼을 꺼내 아마사의 배를 찔러 죽입니다. 아마사는 단번에 죽고 맙니다.
요압이 이런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예전 아마사의 손에 죽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고, 자신의 군대장관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분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그의 행동은 다윗에 대한 항의의 행동입니다.
아마사를 죽인 요압은 군대의 주도권을 쥐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러 출발합니다.
<세바 반란군의 동향>
그러면 반란을 일으킨 세바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14절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세바가 모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로 두루 다니다가,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지역에 터를 잡았습니다. 아벨은 이스라엘의 최북쪽에 있는 납달리 지파 내의 한 요새화된 성읍이고, 벧마아가는 아람에 속한 마아가 왕국의 도시이면서 아벨과 매우 가까이 있었을 것입니다. 흔히 ‘아벨 벧마아가’로 두 성읍을 붙여서 부르기도 헸습니다(20:15; 왕상 15:20; 왕하 15:29). 베림 역시 아벨 주변일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요압의 포위>
세바가 아벨 성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요압은 그곳까지 추격하여 성을 포위합니다.
15절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세바가 아벨 성문을 닫자 요압은 토성을 쌓아 성벽을 하려고 합니다.
한 성읍을 점령하는 방법 중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마주 보는 토성을 쌓는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같은 높이에서 싸울 수 있기에 점령하기 좋은 방법입니다.
1차 유대 로마 전쟁 때인 서기 70년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로마 총독이 저항하는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체납된 속주세를 받으려 예루살렘 성전에 쳐들어가 17달란트의 금화를 몰수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몰수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신성한 성전을 더럽힌 행위에 분노하여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폭동은 대규모 반란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에 로마 황제는 무려 4개 군단을 투입하였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성읍은 무너졌는데, 당시 가나안에 살던 유대인 240만 명 중 절반 가까운 110만 명이 살육당하거나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점령으로 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유대인의 봉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열심당원’들은 유대 사막 동쪽 절벽 위 요새 마사다에서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해 960명이 로마제국에 대항했습니다. 이미 2년 전에 ‘유대 정복기념 주화’까지 만들어 쓰던 로마제국으로서는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10군단에 마사다를 함락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72년 10군단이 마사다로 진군해 왔습니다(로마군 9000명과 노역에 동원된 유대인 포로 6000명 등 1만5000명). 그러나 마사다의 유대인들은 놀랍게도 10군단과 맞서 2년이나 버팁니다. 마사다에 저장된 엄청난 양의 식량과 물, 무기는 그들의 마지막 버팀목이었습니다. 마사다를 포위한 로마군은 벼랑 위에서 내려다보며 활을 쏘아대는 반란군을 쉽게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때 로마군이 택한 방법이 인공 능선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6000명의 유대인 노예들이 공사를 맡았습니다. 마사다의 열심당원들은 차마 동족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었습니다.
능선이 완성되자 투석기에서 날아간 돌들과 불화살은 마사다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 구름다리를 놓고 성안으로 쳐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유대인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남자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산 채로 로마군에 잡히면 노예가 될 것이고, 우리의 아내들은 저들에게 욕을 당할 것입니다. 명예롭게 자유인으로 죽자”고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물과 요새를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곡식 창고는 남겨두었습니다. 우리가 자결한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열망 때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먼저 남자들이 가족들을 죽이고, 남자 10명 가운데 한 명을 뽑아 그가 나머지를 죽이고 마지막 한 사람 ‘벤 야이르’가 자결하여 서기 73년 4월 15일 마사다에서 저항하던 960여 명 가운데 2명의 여자와 5명의 어린이만이 살아남고 모두 숨졌습니다. 벤 야이르는 유대 율법에서 엄하게 금하고, 있는 자살을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미루지 않고 마지막에 자결하여 죗값을 혼자 감당했습니다. 이 저항정신을 기리고자, 지금도 이스라엘 사관생도들은 임관식을 할 때 마사다에서 한다고 합니다.
요압의 군대가 쌓은 토성이 거의 완성하자, 아벨 성은 파괴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세바’는 불량배일뿐 군대를 지휘할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의 등장>
이때 한 ‘지혜로운 여인’이 등장합니다.
16~17절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성경에서 ‘지혜로운 여인’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인’을 뜻합니다. 모든 상황에 하나님을 대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인은 정말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요압을 깨우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요압에게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해 가까이 온 요압에게 성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합니다.
18~19절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첫째 아벨이 유서 깊은 지혜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은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라는 속담으로 말을 시작합니다. 아벨이 옛날부터 지혜 전이 있는 도시로 이곳에 지혜로운 조언을 듣기 위해 많이들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끝내었다’는 말은 그곳에서 조언을 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아벨이란 도시는 지혜가 매우 깊고 풍부하고 유용하며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아벨을 공격하는 것은 잘못임을 일깨웁니다.
둘째로, 자신은 평화를 사랑하고, 이스라엘의 왕(다윗)에게 충성하는 자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현재 다윗 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으로, 아벨 성을 무너뜨릴 경우 다윗 왕권을 지지하는 사람도 큰 해를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읍을 ‘어머니 같은 성읍’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보호의 상징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는 것을 상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즉 이스라엘의 각 성읍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어머니 같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아벨은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곳에 살도록 정해 주신 곳이므로 함부로 파괴하거나 빼앗거나 팔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 성을 파괴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20:10~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성읍을 공격할 때의 규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규례는 “그 성읍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화해를 시도할 것이며 만일 상대가 화해를 원하면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은 여호와의 율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에만 골몰하는 요압에게 그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직언한 것입니다.
<요압의 대답과 제안>
이 ‘지혜로운 여인’의 말에 요압은 매우 당황하였습니다.
20~21절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요압은 ‘무조건 힘으로 아벨 성을 무너뜨려야 되겠다’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반란의 주모자인 세바만 넘겨주면 떠나겠다고 협상합니다. 무조건 공격하여 다 죽이려던 요압이 세바만 넘겨주면 물러가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입니다. 압살롬과 아마사도 죽이는 등 다윗의 명령도 무시하던 요압이 아벨의 여인의 지혜롭고 권위 있는 말에 승복하고 한발 물러선 것입니다.
<세바의 죽음>
이에 아벨의 여인은 요압의 협상을 받아들여 세바의 머리를 성벽에서 던져주겠다고 약속합니다.
22절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그 후의 사건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갔다” 말을 통해 그 여인은 지혜로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인의 말에 설득당한 성읍 사람들이 마침내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요압은 성읍에서 물러가고 아벨은 무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아벨의 지혜로운 여인으로 인해 요압은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었고, 아벨은 전쟁과 살육과 파괴를 피할 수 있었으며, 다윗 왕은 자신의 백성을 학살하였다는 악평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세바를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제압하고 다시 다윗 왕권을 든든히 세우게 됩니다.
<조직 개편하는 다윗>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다윗은 정계개편을 실시합니다
23-26절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24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요압이 다시 군대장관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이는 다윗도 어쩔 수 없는 그의 위세를 짐작케 합니다. 한편, 이전 관료조직(8:15-18)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부역을 관장할 ‘감역관’(“노동자 집단의 감독”)이 새로 세워진 것과 다윗의 아들들 대신 야일 사람 ‘이라’가 대신이 된 것입니다. 감역관을 세웠다는 것은 정복 전쟁의 성공으로 국가사업이 확장되었음을 뜻하고, 아들들을 대신으로 세우지 않은 것은 국가사업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아들들의 권한을 축소했음을 뜻합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우는 교훈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신분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바의 난이 평정되는 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것은 아벨 성의 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당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여자는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평범한 아벨성의 한 여인이 당대 최고의 야심가인 요압을 설복하고, 반란 세력의 주장인 세바의 목을 자르도록 설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성을 구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평안을 가져온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혜로써 자기가 속한 가정이나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한 여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드보라나 시스라를 죽인 헤벨의 아내 야엘이 그러하며(삿4장 참고), 아비멜렉에게 맷돌 윗짝을 내리던져 죽인 데베스의 여인도 그러합니다(삿9:53). 또 나발의 망언에 분노한 다윗의 감정적인 복수와 살인을 막았던 아비가일도 그런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신분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유명한 자든, 무명한 자든, 높은 자든 낮은 자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들은 신분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당신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택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부어 당신의 사역을 감당케 하십니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을 때마다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셨는데,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왼손잡이 사사 에훗’(삿3:15, ‘오늘 손에 장애가 있는 자’란 의미), 소를 모는 목축업자 삼갈(삿3:31), 여선지자 드브라(삿4:4), 겁 많고 의심 많은 기드온(삿6:36~40) 등 연약하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어부를 비롯한 당시의 신분 낮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마4:18~19 ‘사람 낚는 어부’).
바울도 육신에 가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고후12:7).
그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고전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약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강하다고 교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십자가를 자랑하며, 주의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든 저와 여러분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실 것입니다.
둘째, 죄의 뿌리를 뽑으면 온몸이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세바 한 사람이 아벨 성에서 제거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필요한 피를 흘리지 않고도 평화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닫혀진 성읍과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는 그 성벽 안에 숨어 있는 세바와 같습니다.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의 뿌리를 제거한다면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교회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아간의 범죄로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고 고통을 당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서 아간을 제거한 후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수7~8장).
초대교회 고린도교회 안에 온갖 음행과 탐용, 우상숭배로 신앙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며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5:13) 명령하였습니다.
셋째, 범죄한 자는 약해지지만 의를 행하는 자는 항상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 다윗은 정개개편을 단행합니다. 이때 요압은 다시 군대장관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마도 다윗은 원하지 않았지만, 그의 위세를 어쩌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요압과 은밀하게 공모하여 우리아를 살해한 적이 있습니다(11:14~17).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는 요압에게 강경한 자세를 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요압이 다윗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다윗과 같은 영웅조차도 범죄하게 될 때 자신의 신하(조카)에 불과한 요압에게 휘둘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에는 어땠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그의 마음은 항상 담대했습니다.
시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시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28:1)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지속되는 죄와의 싸움에서 이겨, 범죄하기 이전에 다윗이 가졌던 당당함과 담대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한 여인의 지혜와 용기에 의해 이스라엘의 성읍이 안전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를 되찾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이 ‘지혜로운 여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 10명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10명의 믿음의 의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가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항상 경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저와 여러분 때문에 가정에, 교회에, 그리고 여러분이 속해 있는 모든 공동체에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