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의 알기쉬운 주역 제31회>
제31: 말숨과 우숨 그리고 기쁨의 바다
중풍손重風巽(57) 중택태重澤兌(58)
♣ 개요 : 우숨(윗숨, 웃음)의 기쁨과 생명이 충만한 삶
◆ 중풍손重風巽의 상징은 바람이고 중택태重澤兌는 바다 또는 호수이다. 바람을 풍風 또는 기氣라고 한다. 풍風이란 글자는 본래 상상의 동물인 봉황의 그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늘의 봉황새가 날개를 움직이면 바람이 일어난다. 임금의 상징이 봉황이다. 임금의 말은 세상을 교화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 풍風으로부터 교화나 풍속 또는 풍조를 뜻하는 말이 나왔다.
성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세상을 교화하여 바로잡는 것을 왕도정치라 한다다. 공자는 정치의 원리를 묻는 제자에게 대답하길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은 풀”이라 하였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덕이 베풀어지면 백성들은 모두 그 바람에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만물이 소생하여 일어나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면 만물이 스러져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바람에도 이런 음양의 기운이 있다. 천지가 음양의 기를 가지고 만물을 다스리듯이 성인은 덕의 바람으로 만물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신라시대 최치원(857-?)은 우리나라에 풍류風流라는 현묘한 도가 있다고 하였다. 그 도道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가르침으로써 접화군생接化群生 한다고 하였다.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의미에 대하여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서로 사귀고 영접한다는 접接, 교화하고 변화된다는 화化, 그리고 뭇 생명이 모여 함께 사는 군생群生이다. 서로 영접하고 만나서 교화가 되고 변화가 되어 이상적인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길을 접화군생이라 한다.
풍류의 도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삼교를 포함한 가르침인데 그 풍류를 만나야 교화가 되고 변화가 되어 뭇 생명이 함께 모여 이상세계를 이루고 산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봉황의 날개와 울음소리에서 비롯되는 하늘의 풍류를 만나는 일이다. 풍류에 접해야 성인聖人으로 변화가 되고 성인이 되어야 교화를 할 수 있고 교화된 사람들이 모여야 이상적인 생명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민족이 이어온 이런 이상理想은 조선 말기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의 동학사상으로 표출되고 이어서 다석 류영모(1890-1981)의 ‘한’ 사상 또는 ‘귀일歸一’ 사상으로 계승되었다.
바람은 보이지 않게 우주에 가득 찬 것, 어디에나 있는 것, 무소부재無所不在한 것, 어디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은 하나지 둘이 아니다. 또 바람의 특징은 어디나 스며들고 어디나 들어간다고 하여 손입巽入이라 한다. 겸손한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도 스며든다. 손巽에는 들어간다, 유순하고 겸손하다는 뜻이 있다.
우주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바람인데 바람이 불어야 바람을 느낀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바람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의 숨을 느끼면 된다. 숨이 곧 바람의 흐름이다. 들숨과 날숨을 느끼며 우주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이다.
바람을 우주의 기운이라 하여 기氣라고 한다. 우주는 온통 기氣로 채워져 있다. 바람보다 더 근원적인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기운이 있어서 바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주도 기氣로 가득 차 있고 우리의 몸에도 기氣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이런 기氣에 대해 사색하는 것을 기철학氣哲學이라 한다. 조선시대 서화담徐花潭(1489-1546)이 대표적인 기철학자다. 온 우주가 기氣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이퇴계李退溪(1501-1570)는 우주와 자연보다는 인간의 마음과 주체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사색하였다. 기철학에서는 이理를 만물 변화의 원리로서 기氣의 속성으로 보는데 퇴계는 도덕의 주체로서 천리天理로 파악하였다. 성리학에서 이처럼 기철학과 이기철학이라는 두 갈래의 흐름이 있다. 그런데 다석 류영모(1890-1981)의 한 사상 또는 귀일사상은 이런 흐름을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없이계신 하나님’ 신앙 안에서 과학과 윤리와 영성을 종합한다.
바람이라는 우리말의 발음은 범어의 브라만Brahman과 닮았다. 브라만도 바람을 뜻하는 말이다. 우주의 바람 또는 우주의 원리를 브라만이라 한다. 그리고 개개의 생명인 숨을 아트만이라 한다. 인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사상이다. 범梵이란 브라만Brahman이요 아我는 아트만Atman으로 숨을 뜻한다. 밖에 있으면 바람이고 안에 들어오면 숨이 된다. 하나가 되는 바람과 숨의 관계를 깨닫자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숨을 프뉴마Pneuma라 하여 성령으로 상징한다. 프뉴마에는 바람이라는 뜻과 성령이라는 뜻이 있다. 인도에서 브라만과 아트만이라 하여 그 하나됨을 강조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성령과 기도의 일치를 말한다. 오순절 사건이 중요한 것은 성령과 기도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석 류영모는 성령을 우숨이라 하였다. 위에서 주시는 숨이 진리의 성령인데 성령을 받으면 법열의 기쁨으로 웃음이 저절로 터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숨 쉬는 것을 넘어 말숨을 쉬어야 하고 말숨의 말씀 사색을 넘어 성령과 통하는 우숨을 쉬고 법열의 기쁨으로 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숨을 쉬며 진리와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 우숨이다.
인간이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어떻게 합치되어 사느냐는 것을 추구하는 힌두교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만나서 진리와 하나가 되자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어느 문화 속에서나 이처럼 개별적 자아를 넘어 우주와 하나가 되려는 영적 갈망이 있다. 동양에서는 그것을 천인합일이라 하는데 유교의 경전인 중용에서는 천명天命과 성性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한다. 인도에서는 바람과 숨이라 하는데 유교는 천명과 성이라 한 것이다.
천명은 하늘의 명령이며 성은 인간에 내재해 있는 본성이다. 천명은 초월해 있는 것이요 본성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초월과 내재가 합치는 것을 중용에서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진리를 깨닫는 사건이다. 진리를 깨닫는 순간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기쁨을 전해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도 없다. 주역의 목적도 그 법열의 기쁨을 전하여 모두가 기쁨이 충만한 생명으로 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풍손은 진리를 깨닫는 법열을 말하는 것이고 중택태는 기쁨이 충만한 생명의 세계를 말하자는 것이다.
2024.5.7. 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