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리에서
여기는 우성면 상서리입니다.
주말이면 부모님을 찾아뵙습니다.
나는 텃밭에서 육묘를 심는 중입니다.
밤새 새벽까지 보슬비가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환한 햇볕 한 움큼 쏟아내길래 어머니와 아버지가 쓰시는 안방 침대를 분리해서 대청소하기로 맘먹고 침대 위 이불을 걷었더니 그 부피가 산더미로 대책이 없어 궁시렁거리자 엄마가 내 편 되어 아버지 흠을 뜯기 시작했다
글쎄 말여 호랑이 담요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아버지가 홈쇼핑에서 돈 주고 산겨 노인네 쓸데없는 데는 돈을 저렇게 막 쓴다야 나는 무거워서 싫은디 아버지는 좋댜 배를 눌러줘야 잠이 온다더라야 근디 영 잠을 못 주무셔, 안 온댜
가만히 보니 침대 머리가 북향을 두고 있음을 발견하고 동쪽으로 바꿔야겠다 싶어 매트리스를 들춰내 보니 버선 한 짝 옷핀 하나 먼지 구더기가 시루떡처럼 쌓여 있다 집 지어 드린 지 6년이 흘렀으니 그간 함께 공생공존하며 다정했겠지 그렇잖아도 내가 옮기고 싶었는디 기운이 없어 엄두가 나야지, 니가 해주니까 좋다야 아버지의 음성이 들릴 듯 말 듯
엄마, 이것들 이제 모두 버려요 목화 솜이불이 무겁기만 하지 요즘 누가 이걸 덮어요 얇고 가벼워도 따뜻한 양모 이불 덮고 주무셔요 추울 것 같아도 몸에 착 달라붙어 절대 춥지 않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어젯밤 잠을 잘 주무셨단다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서 개운하시단다 배고프니 밥도 먹어야겠다며 보채신다 다행이다 곡기를 거르지 않으셔야 기운이 날 텐데 목소리에 힘이 있는 걸 보니 몸 회복이 좋아진 모양이다
“영미야, 정안으로 고추 모 사러 가자. 아버지 차가 없어서 그랴. 언능 후딱 갔다 와.” 어머니의 말씀에 자동차 시동을 걸었네
“아버지 뭐더러 그걸 거기다 심을라 그래유? 기운 없으시다면서유? 풀도 못 뽑겄다믄서유?” 일부러 약 올리며 핀잔을 주었네
“그럼 어쩌냐. 돈도 없고 심어서 먹고 살아야지. 물가가 좀 올랐간디. 아녀 지금 심어놔야 먹고 살어.”
늙은 부모님 힘이 솟으니까 밭으로 나가고 싶어 떼쓰는 건 줄 이미 다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