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해외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이 USB메모리(이동식 디스크)라는 아주 작은 칩에 모두 담겨졌다. 두께 3밀리에 세로 큰 길이가 5센티도 채 안 되는 작은 칩에 담긴 것이 무려 이백 개도 넘는 필름 곽의 양에 해당되고 이를 펼칠 것이면 수천 장의 사진이 쏟아진다. 수천의 애쓴 시간이 고작 이것인가.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이를 우리는 디지털이라 부른다. 디지털은 우리를 빠르고 간단하며 편리한 세상에 살도록 하였다.
수동카메라를 대신하는 디카말고도 테이프 대신 MP3 플레이어와 CD로 음악을 듣고 일기장이나 플래너로 시간과 정보를 관리하는 대신 컴퓨터나 PDA 같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다. PC게임이 흔하고 사전도 전자사전이 대신한다. 판타지 소설과 영상의 글이 성행하니 이제 책이나 LP판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디지털이 홍수를 이루면서 과거 값나가고 그지없이 소중하였던 것들이 귀찮고 쓸모없는 천덕꾸러기로 변하거나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추억 속으로 파묻히고 말 아날로그.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 현재의 사는 이야기는 짧고 다들 그 시절로 돌아간다. 야 ! 그게 뭐였지. 그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간 양 눈들이 반짝인다. 왜 구시장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빵 집말이야? 나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데 불쑥 한 아이가 답을 한다. 거기 프린스제과였잖아. 형부 될 사람이 언니 꼬드길 때 언니가 나 데리고 나가서 잊지 못해. 학교밑창 살던 애들 기억나니.
현실을 말할 때는 저마다 위치한 대로 생각도 틀리고 말도 딴판인데 그 시절로 가서는 금세 하나가 된다. 동네를 주름잡던 깡패 출신도 국회의원도 한자리에 앉아 오손도손 흥겹기만 한 그 시절의 향수다. 수십 년의 공백이 일시에 채워지는 그 시절의 이야기, 이는 못살던 시절의 순박함을 누구나 지녀서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보면 인생에 있어서 그리움처럼 좋은 선물도 없다. 친구는 변하였지만 그리움은 그대로 남아 돈독한 의미를 전한다.
그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밴 그날의 모임은 또 한편의 그리움을 만들었다. 애틋한 감정이 여간 그리운 것이 아닌 요즘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내가 제일 아쉽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진첩이다. 앨범이 디지털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이것처럼 디지털의 큰 피해를 본 대상도 없다. 한 시절 입학 때나 졸업 때 으레 선물로 받았던 것이 앨범이다.
소중하였던 시간을 따로 담을 보금자리로 그만한 것은 없었다. 사진 찍는 일도 흔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찍은 사진은 엄선되어 곳에 정중히 모셨다. 그리고는 예쁜 주석을 달거나 네 잎 크로바 토끼풀에 단풍잎까지 끼워 귀중한 순간들을 늘 곱고 새롭도록 비다듬었다. 문득 떠오르는 귀중한 순간들. 그 시간 속으로 향한다. 초라하고 순박한 그때의 모습에 놀라고 청순한 젊은 한때의 모습에 다시 반하고 다정하였던 한때의 모습에 눈물이 나고 즐거웠던 때의 광경에 다시 감격하고 위로를 삼는다.
수더분한 삶의 애틋한 정서가 그 속에 그대로 멈춰서 있다. 과거는 늘 현재의 거울이다. 자랑삼아 꺼내 보여주었던 것도 남몰래 바라보았던 것도 바로 앨범이었다. 사랑의 웨딩드레스나 준수한 학사모는 그곳에서 아늑하였으며 큰 기쁨의 자리였다. 옆집 사는 형은 해군에 입대하여 찍은 사진들을 늘 끼고 다녔다. 뱀을 치켜들고 선 자신의 모습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던 형. 세라복을 입고 함정 옆에 서 한껏 폼을 잡았던 형의 모습이 그립기만하다.
빛바랜 사진첩은 단지 시간의 기억만이 아닌 마음의 소중함이 채워진 그리움의 집이다. 단물나는 사진이지만 이쯤이면 열권의 시집과 같으며 자서전과 다를 바 없다. 삶의 본태를 자연 떠올리는 철인이 되고 추억의 오솔길을 다소곳이 밟는 그 시절의 배우가 된다.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정성과 소중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진은 웹의 이미지로서 컴퓨터 안에서 편한 모습으로 흔하게 굴러다닐 뿐이다.
좋은 기술로 아무리 포토샵으로 미더운 곳을 예쁘게 고치고 전자앨범을 만들고 플래시로 여러 가지 효과를 주어도 과거 앨범이 내게 주었던 기분이 안 난다. `0과 1`을 조합한 신호로 나타낸 디지털에 갇힌 시간은 단지 키 하나로 불쑥 나타난 한 이미지일 뿐 그리움으로 구출이 아니 되는 것이다.
내 몸이 아날로그 형이라 동병상련으로서 그러한지 음영하며 구도가 촌스럽고 아무리 고치고싶어도 고쳐지지 않는 반쯤은 구겨지고 찢겨진 색 바랜 그 시절의 아날로그 사진이 여전히 값지고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그리움을 실었던 추억의 앨범은 이제 그 자체가 그렇게 아스라한 그리움으로 스스로 남았다.
***디지털이란 연속적인 아날로그 신호를 `0과 1`의 이진법의 수치에 대응시켜서 개별적인 수량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아날로그란 전압이나 전류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람의 목소리와 같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신호가 바로 아날로그 형태이며 그 양을 계량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바늘이 돌아가는 시계를 아날로그시계, 숫자가 나타나는 시계를 디지털시계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세상을 이러한 두 가지의 형태의 방식으로 반영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나는 아날로그에 대해 무한한 향수를 느낀다. 디지털의 편리함에 만족해하면서도 아날로그는 버리고 싶지가 않다. 아마도 이는 우선 내 몸이 아날로그 성이라 그러할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이 눈치 빠른 신호를 가진다하여도 사람의 촉촉한 감성을 신호화한다는 것은 무리이지 싶다. 비오는 날을 첨단의 기술로서 완벽하게 나타나게 할지 모르지만 비를 맞는 감성을 `0과 1`을 조합한 신호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디지털은 받아들이는 어느 신호가 단지 중요하고 이에 반응할 뿐이다. 로봇이 목석연함이듯 디지털이 바로 그런 존재물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질의 포맷이 있다하여도 LP가 갖는 따스함이 디지털에는 없다. 디지털카메라가 간편하고 편리하지만 제품에 따른 특성이나 아날로그가 가지는 색감에는 못 미친다. 제품이 갖는 고유성을 디지털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숫자로 나타내는 시계는 정확하고 편리하지만 녀석은 배터리가 중요할 뿐 주인의 손길이 필요하지가 않다. 그러기에 주인과 같이 호흡을 하지 않는다. 따른 정성이 필요 없는 것이다. 아날로그는 정성을 담은 애틋함이 있으며 그 시절의 그리움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이렇게 대변을 해보지만 아날로그가 디지털처럼 편리하지 못하고 정확성에서도 밀려나 점점 주위에서 사라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