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로 사회 ‘인물 난’
1991년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되던 시점에서 종로구 관내 저명인사 분포도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21개 동사무소를 직접 다니면서 동 주민 중 유명 인사들을 조사한 것인데, 참으로 많은 저명인사들이 살고 있었다. 가회동 윤보선 전 대통령을 위시해서 사직동에 전직 국회의장과 전직 대법원장 그리고 지역 곳곳에 장. 차관과 여러 공공기관장 등 수많은 전직 관료들과 함께 전직 육군 참모총장 등 육해공군 전직 장성들도 곳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세종로동에는 이병철 그룹 총수 가족과 청운동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외에도 명륜동 효성그룹과 신문로 쌍용그룹, 가회동 삼환기업 등 국내 유수 재벌들의 집들이 사방에 있었다. 평창동과 혜화동에는 판, 검사 및 변호사들과 대학교수들을 위시해서 유명 예술인을 포함한 연예인도 대거 살았다.
그 당시 종로구 인구는 약 25만 명이었는데 약 500여 명이 저명인사였으니까 주민 500명당 1명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었던 셈이다. 유명인이 차고 넘친 것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OB 내각’을 구성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과연 대한민국 1번지요, 서울의 심장부였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현재 인구조차 15만명도 안되는 상태에서 종로의 수많은 저명인사는 대부분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상주하고 있는 인사들도 있지만 나이 들어 작고하고 아니면 강남구나 타지로 이사를 가면서 종로의 인물들은 점점 고갈되는 수준이다. 종로의 빛바랜 초상화를 연상시키는 가운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종로구 지역 인사들도 점점 찾기 힘들다는 속 사정이다.
여기서 종로 지역 인사들이라고 하는 것은 종로 자치 시대 이후 종로의 여러 단체나 협의회를 이끌던 지도자들이다. 민주평통자문회의 종로협의회와 종로문화원 등 준공공기관을 비롯해서 새마을운동협의회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과 같은 국민운동단체, 그리고 종로체육회 등 체육 동호인 모임, 종로상공회와 종로공영회 등 여러 직능 및 자생단체들을 이끌던 회장 또는 임원진을 말한다.
민선 구청장과 종로구의회 의원들이 종로 자치를 중추적으로 리드한다면 이들 단체장과 협의회장 그리고 여러 직능 및 자생단체장들이 저마다 일익을 담당하면서 민.관 합동의 수레바퀴 역할로 종로 사회를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인사들이 고갈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1991년 지방자치 실시 초기부터 2010년도까지는 그런대로 단체장과 협의회장을 수행할 인사들이 남아돌았다. 워낙 인물들이 많았던 지역이었던 만큼 전통적 토착 주도 세력들로부터 배출된 인사가 물밑 경쟁까지 벌이는 실정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 토착 세력이 지방자치 세력에게 종로 주도권을 빼앗긴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종로 사회는 점차 침체의 늪으로 빠지면서 2022년 제8대 민선 구청장이 출범한 지금, 종로 사회를 이끌고 갈 인물들이 마땅치 않은 실정에 이른 것이다. 이른바 ‘인물 난’인 것이다. 새로운 구청장 시대를 맞아 새로운 단체장과 협의회장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평가다. 특정 정파 일색에서 벗어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작업이 난망스럽다는 것이다. 단체장은 물론이고 단체 사무국장감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참으로 심각한 미래 종로 과제가 노정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배경에는 우선 첫째로 종로 토착 주도 세력이 그동안 후배 양성을 안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채 후배 양성을 배타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2010년 이후 종로 주도권을 잡은 신흥자치세력이 특정 정파에 따른 ‘진영 놀이’에 매몰되어 그들만의 종로 사회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민선 종로구청장 세 번을 역임하면서 가산주의적 종로자치 사회를 특정 지역 중심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로인한 소외와 상대적 박탈감은 의외로 크게 작용됐음이 이제야 비로소 드러나는 형세인 것이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파레토는 대표적 엘리트주의자인데, 그는 사회와 단체의 발전은 소수의 엘리트가 주도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파레토의 원칙’은 경제학에도 나오지만 한, 두 명의 리더가 있어야 모임도 활성화된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종로에 새로운 지도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불행스런 일이다. 시대가 변한 탓도 있다. 요즘 자기 돈 써가면서 단체장을 하는 시대도 아닌 듯하다. 적어도 1년에 1천만 원 이상의 회비를 내야 하고, 또한 회원 경조사비까지 합치면 적어도 2천만 원 정도를 출연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선뜻 단체를 맡지도 않은 시대다. 예전처럼 회원과 주민의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지방자치 선거에서 정당 공천에 크게 인센티브를 얻는 것도 아닌 실정에서 그러한 봉사를 요구하는 것도 일면 무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기대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종로 사회의 원재료인 주민의 단체가 영속하는 한 지도자는 필수다. 전통의 담지로 이어져 온 현재를 과거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 종로 사회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시 인물들을 발굴해야 한다. 기득권층의 아집을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들을 찾는데 모두가 나서야 한다. 종로가 지금 답답하고 우울한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인물 난’ 일환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