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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인)맞은 십사만 사천名(명)
―주제본문 <계 7장. 14장>―
말세미말에 놓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들이 실상으로 나타나기 전에 각자 자기의
위치를 확보해야 할 것이며, 그러므로 금번 14만 4천을 같이 연구하여 우리도 이14만 4천의 반열은 물론이요
더 나아가 그 수에 가입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주석가들이 14만 4천은 이스라엘백성들로만 구성된 줄로 알아 이를 깊이 있게 다루질 않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7장에 기록된 14만 4천과 14장에 기록된 14만 4천인이 각기 다른 부류(사람)들로
알고 있는 성경신자들도 없잖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다 같이 연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사만 사천인의 정체.
우리는 144000人(인)들에 대한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때에 비로써 하나님존전과 신앙계 내에서도
어엿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僞 하여는 저들의 이마에 찍힌 문자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急先務(급선무)일 것입니다.
인장에 새겨진 문자
<계7:2~>
+ 2. 또 내가 보니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장을 가지고 동쪽에서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 ....3절 생략....
4. 그리고 나는 도장 찍힌 사람들의 수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144,000명이라고 들었습니다.+ <현대인>
위의 말씀을 다시 이르자면, 천사가 “하나님의 도장”을 가지고 12지파사람들 중에 각 지파마다 1만2천씩
인을 쳐 都合(도합)144,000명에게만 도장을 찍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선시 되어야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장이라고 했으니 저들의 이마에
어떠한 글자가 찍혀(쓰여)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가 풀어지면 50%는 정해로 들어선 것입니다.
여기서 깊은 생각 없이“하나님의 도장”이라하니, 저들의 이마에 의당 “여호와”라는 글자가
쓰여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면 이는 올바른 이해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물론 구약의 선진들은“여호와”라는 이름 외에는 알 수가 없겠지만,
그러나 인침은 종말에 이뤄진 사건이기에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찍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장문제도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서로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가 풀리면 우리의 믿음이 보다 더 구체적인 신앙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갈망을 보다 더 바르게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제본문 중에<계 7장>은 144,000인들의 정체성을 들어 낸 성구요,
주제본문<계14장>은 144,000인들의 행위와 그의 결과를 보여준 문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주제본문<계14장>에 들어서니 십사만 사천인의 이마에 아들의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되었기에 아들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써있다는 것입니다.
<계14:1>
+ 나는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144,000명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 또한 난해한 문제 중 하나로 생각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7장에 기록된 14만 4천과 14장 1절에 기록된14만 4천인들을 각기 다르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힘입어 이 문제의 답을 곧바로 말하자면, 저들의 이마에는 “예수”라고 하는 단어만
찍혀(쓰여)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이마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양의
이름 “예수”라고 하는 이름만 찍혀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으로도 읽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근거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단어의 이름은 곧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인 것입니다.
<계17:11>
+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위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아버지께서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아래 성구는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확실하게 지지해주시는 말씀 입니다.
<사9: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라고 하는 그 거룩하신 이름(聖號)은 곧 저희 죄에서 구원할<마1;21>뿐만 아니라, 위의 성구에서 보신바대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거룩하신 尊銜(존함)입니다. 또 그와 같은 맥락으로 성령의 이름도 예수인 것입니다.
<요14: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처럼 성령도 주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신바 되었기에 보혜사 성령의 이름도 “예수”인 것입니다. (성삼위이름“예수”편 參照 要)
그러므로 구약시대 때에 거룩한 선조들도 지금은 육을 벗고 죽어서 하나님이 따로 마련한 천성 즉<히11;16><히12;22~24>에 입성하셨기에 그들도 “예수”라는 이름이 성삼위의 이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마와 인침에 대한 이해. 이제 도장에 새겨진 이름이 밝혀졌으니 저들의 이마에 “예수”라는 글자가 찍혀 있어야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장을 저들의 이마에 찍었다는 것은 곧 세(3)가지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첫째는 이마(안)에 도장이 찍혔다는 것은 주인의 소유물임을 강하게 나타내는 동시에 이는 차별된 표식이요,
그러므로 특별한 용도로 쓰시겠다는 의도로 봐야할 것입니다.
둘째는 외형적인 면에서는, 군인들처럼 자기의 신분인 계급장을 자신의 제일 높은 위치가 되는 이마에 부착하여 타인으로부터 식별이 쉽도록 하는 것처럼, 우리도 나의 신분증인 “예수”라는 그 이름을 최대한 높고 밝은 곳에 즉 이마에 부착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이름을 높이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셋째는 인침에 대한 방법일 것입니다.
저들의 이마에 시뻘건 인장으로냐, 아니면 청색스탬프식이냐 그도 아니라면 레이저식이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영체이기 때문에 사물을 사용치 않았음을 누구나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인침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가져야할 것인가!!....이는 참으로 난해한 문제가 아니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침에 대한 직답을 말하자면 (((주~예수여~~)))라고 부르짖는 것이 곧 인침을 받았다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곧 도장은 당사자의 이름을 文字化(문자화)한 것이요, 그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은 곧
도장을 소리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14만4천수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다만 그들의 대(반)열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가 14만4천수에 가입되려면 주님의 이름을 끝까지 잡고 죽임(순교)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해야 14만 4천인에 가입될 것입니다.
*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에는 도장을 이마 안에 찍었다라고 번역된 것을 보면 이는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뇌에 주입시켰다 로 이해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14만4천인의 실상. 14만4천인의 실상은 곧 자기들의 이마에 찍혀진 그 이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들로써 所謂(소위)말하는바 그들을 두고 殉敎者(순교자)들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는 계시록14장입니다. <계시록7장>에서는 문제를 제시하셨고 이 14장은 14만4천인들의 정체를 밝히 드러낸 해독장입니다.
성경에서의 문제는 성경으로만 답을 찾아 제시할 때 정해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계14:11.12>
+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말세에는 666짐승의 우상에게 절(경배)을 거절하고 또 이마와 손에 666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14만4천인들은 자신들의 이마에 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상태로 주 예수그리스도의 최 측근에 서있다는 것은 죽음을 맞으면서까지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 이름을 위해 인내심을 발휘할 때입니다.
14만4천은 실제의 수.
140,000인(명)이라는 숫자는 여타의 교단들이 말하는 상징수가 아니라 實數(실수)인 것이며,
반면 하나님의 갈망대로 순교한 자들의 숫자인 것입니다.
이 14만4천인의 수는 하나님이 딱히 定하여 세어놓은 計數(계수)입니다.
이 수는 더도 들도 아니어야합니다.
이제 저들이 어디서 산출되며 왜 정수인가 하는 것을 아래성구에서 살펴봅니다.
<계6;9~11>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대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 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 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저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윗글을 풀어 줄이면,
‘세상 심판이 더딤은, 살육당한 순교자의 수가 아직 차지 않아서’라고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자기백성을 사단에게 내주어 무작정 살육당하는 것을 한도 끝도 없이 지켜볼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그 수가 차질 않아서 기다리실 뿐입니다.
그 수는 천년세계(신천지)에서 꼭 필수요건적인 수라서 그러한 것입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의 문제는, 하나님은 순교의 수를 과연 몇 명으로 정하셨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그러나 그에 대한 숫자라면 이는 지금까지 다루어온 주제가 144,000명이기 때문에 생각이나 계산이 필요 없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순교의 수는 14만 4천명인 것입니다.
이 순교의 수, 즉 14만 4천인이 차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심판이 더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쯤에서 침례교단은 물론이요 그 외 여러 교단의 교도들이 저에게 항의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 교단들이 천주교와 싸워 순교자의 수가 약 5천만 명이 넘는데, 그러면 왜
하나님이 세상심판을 안하시느냐.”라고 이의제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교단들이 진리복음을 오판한데서 비롯된 항의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위하여 순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를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침례교인들의 순교는, 보상 없는 죽음 즉 浪死(낭사=쓸데없는 죽음)를 당한 것입니다.
집총거부. 수혈거부. 세례(침례)와 또는 안식일준수와 절기와 먹고 마시는 것 등등을 위하여 죽는 것들은
모두다 浪死에 해당한 죽음일 뿐입니다.
<행21;13>
+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할 때 이것이 바른 순교인 것입니다.
<마19:29>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할 때 나의 보상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140,000인의 구성요원. 12지파에 가입된 이방인. 우리는 12지파하면 통상 야곱의 열두(12)아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계시록에는 아들하나가 탈락되고 대신 야곱의 손자 므낫세가 대타로
등용되었음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요셉에 대한 성구를 자세히 눈여겨보면 우리 이방인들도 12지파에 가입될 수 있는
밑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므낫세가 가입된 의미.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이요, 야곱의 손자입니다.
요셉은 마치 예수님처럼 자기들의 형제들로부터 이방상인에게 銀(은)20개에 팔려 이방 땅 애굽에서
모진고생(옥고)끝에 이방신을 섬기는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여 얻은 아들이 므낫세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손자 므낫세가 지금 야곱의 아들반열에 가입된 것입니다.
<창41:45>
+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창41:51>
+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창48:5>
+ 내가 이 곳으로 오기 전에 이집트에서 너에게 태어난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아들이다.
내가 그들을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은 아들로 삼겠다.+ (현대인성경)
이 므낫세는 열두 아들들과는 格과 質的인 面에서 상당한 차이점을 엿볼 수가 있음을 알 것입니다.
므낫세의 이러한 과정들은 오늘날 우리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 그림입니다.
이 므낫세의 그림은 곧, 먼 훗날 이방인도 본방의 14만 4천 중 한 귀퉁이에 참여 할 餘分(여분)을
하나님이 配慮(배려)하신 鳥瞰圖(조감도)였습니다.
<롬2;28.29>
+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은 동일한 유대인들이요 우리 이방인들은 영적 므낫세 지파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영적이요 의미론적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갈3;29>
+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도 아브라함과 야곱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영적 므낫세 지파라도 1만 2천수에 가입되려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를 해야 1만2천수에
가입되는 것입니다.
오해하기 쉬운 성구.
<계14:3>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救贖(구속)의 유형들. 여기서 문제는 救贖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통상 구속이라고 하면 이는 죄 사함이라는 의미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14만 4천인들이
죄 사함을 받은 자로만 간주한 나머지 급기야는 이 14만 4천인을 상징의 수로 치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속 즉, 땅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가 왜 14만 4천인 밖에 없겠느냐 하는 항의일 것입니다.
그러면 구속이라는 단어부터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구속하면 네 가지(4)종류의 구속이 있는 것입니다.
1). 죄에서 구속 <골1:14> => 죄 사함(중생=의인)
2). 몸의 구속 <롬8;23> => 몸의 변화(신령체)
3). 땅의 구속 <계14;> => 휴거(천년왕국 첫 단계)
4). 사람가운데서 구속<계14;> 첫 열매(순교자)
위의 네 항목을 해명해봅니다.
첫 번째 항목 ; 1). 죄에서 구속 <골1:14> => 죄 사함
<엡1:7>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救贖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죄에서 구출되면 아래와 같이 자유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골2:16>
+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安息日(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두 번째 항목. 2). 몸의 구속 <롬8;23> => 몸의 변화
<롬8:23>
+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몸의 구속이라 함은,
<롬8:23>
+ 성령을 받고 장래의 영광을 미리 맛본 그리스도인조차도 고통과 고난에서 놓여나기 위해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한 권리를 받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두 번 다시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새 몸을 주실 것입니다.+ <현대어>
세 번째 항목. 3). 땅의 구속 <계14;> => 휴거
<계14:3>
+ 그 십사만 사천 명은 옥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는 땅으로 부터 救出(구출)된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공동번역>
상기<공동번역>의 어감으로는, 죄로부터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救出 된”이라는 문자를 봐서는, 이를 땅으로부터 분리, 또는 땅으로부터 탈출로 읽혀지니, 이는 召天(소천)내지 携擧(휴거)된 자를 두고 이른 말씀으로 이해를 가져야 이것이 정독이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작성될 때는 휴거 또는 소천이라는 단어가 없기에 “땅으로부터 救出 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땅으로 부터 구출 이라는 단어는, 땅과 분리입니다.
<살전4:17>.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마지막항목. 4). 사람가운데서 구속<계14;> 첫 열매 => 순교
<느10:37>.
+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첫 열매는 먼저 드려진 자로써 이는 순교자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찌 순교자를 일반성도와 구분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는 종말 즉 휴거직전에 환난이 있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때 信仰界(신앙계)를 네 부류로 구분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다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환난을 가져다줄 가해 자이며,
둘째는 상대적으로 환난을 받을 피해자들(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셋째는 환난을 피하려고 배도 배반하는 자가 있으며,
마지막은 환난의 가해를 방관하는 무리입니다.
그러나 방관자는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亞流(아류)일 뿐입니다.
이 환난을 통과하는 중에 성도들도 두 부류로써,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는가하면,
반면 죽음에 버금가는 환난을 격고 살아남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 것인가가 어렴풋이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순교자들의 상급은 무엇일까를 상고해봅니다....
<롬8:18>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계13:10>
+ 투옥을 당할 운명에 있는 聖徒(성도)는 잡혀 끌려갈 것이며 사형에 처해질 운명을 타고난 聖徒는
사형 집행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인내와 믿음을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현대어>
<계22: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14:13>
+ 또 나는 바로 내 머리 위에서 "기록하라. 드디어 주님을 위하여 순교를 당한 사람들이 보상받을 때가 왔다"고 외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도 "그렇다. 그들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모든 수고와 시련에서 벗어나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착한 행실이 영원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현대어>
<계20;4~6>
+ 4. 또 나는 높은 이들이 앉는 자리에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것 때문에 목이 잘린 사람들의 영혼과 그 악한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 받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5.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지나갈 때까지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6. 첫 번째 부활에 든 사람들은 복이 있으며 거룩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두 번째 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현대어>
천년세계에서 왕 노릇을 할 자(사람)들은 환난 전 휴거 자들이 아니라 666짐승들에게
살육당한 성도들인 것입니다.
이제 환난 전 휴거 론은 재고해야할 것입니다.
((( 주 예수여~~ 오늘도 우리로부터 그 이름 찬미 받으시옵소서.~~ )))
말세에는 또 다시 이름전쟁으로써 666짐승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이름과 싸울 준비를
단단히 각오하셔야할 것입니다.
신앙계의 대표적인 무리들. 계시록은 종말 후 천년왕국에서 일어날 사건들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어느 무리에 속하여 있는지를 확인해 보자는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먼저 24보좌가 있고, 또 목 베임을 받은 14만4천명이 있고, 그리고 사람이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사람들은 어느 무리에 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휴거가 환난 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단을 도와주는 이적행위임을 아셔야할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 론은 사단이 핑크빛 아래 잠들게 하는 마약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주~ 예수여~~
오늘도 그 아름다운 이름, 우리로부터 영광 받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