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탁발이 사라진 이유는?
2600여 년 전 부처님 당시로 되돌아가보자.
마을까지 걸어간 부처님과 제자들은 공양물을 탁발한다.
그렇게 탁발한 음식은 정오가 되기 전 다 먹어야 했다.
시간이 넘어서면 애써 탁발을 했어도 먹을 수 없도록 율장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해는 저물고 천둥 치는 험한 날씨에 한 비구가 임신한 장자부인의 집에 걸식을 하러 갔다. 부인은 비에 젖은 비구를 보고 놀라 낙태를 하게 됐다. 이때의 교훈이 율로 자리 잡았다.
탁발이라는 것은 청빈을 수단으로 삼는 수행자의 생활수단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탁발하는 스님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은 1964년에 탁발을 폐지시켰다.
불교의 전통으로야 기본적인 생활방식에 해당되겠지만, 우리 정서상 구걸로 비춰져 승려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율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해야 하는 한 증거다.
부처님 당시에 이미 이런 과정을 통해 변천된 율도 있다.
당시 인도 스님들이 입었던 가사는 떨어진 천을 주워와 손수 기워 만든 옷이다.
처음에는 시체를 싸던 옷을 주워서 만들거나, 버려진 옷을 주워 괴색으로 물들여 입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때 나온 이름이 '분소의'(糞掃衣)다.
율장에 의하면, 두개골로 된 발우를 들고 다 떨어진 분소의를 입은 비구가 마을에 걸식하러 갔다. 이번에도 포태한 여인을 놀라게 했다. 이웃들이 비구를 비난하게 됐다.
사실을 듣게 된 부처님은 해골로 만든 발우와 분소의로 온몸을 감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후 제자들은 의복을 깨끗하게 빨아서 정갈하게 갖추어 입게 되었고, 신도가 새 천을 공양하면 받아 입는 것도 허용했다. 불교의 계율사다.
탁발은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정주생활하고 중국에서는 총림이 생겨 자급자족하는 방식으로 바뀐 뒤에도 주요한 수행법으로 남아있었다.
한국불교에서도 1964년 조계종에서 공식적으로 금지할 때 까지 오랜 전통으로 내려왔다. 〈조선불교통사〉는 1900년대 초까지의 탁발 풍습이 기록돼 있다. ‘걸식 탁발시에는 공인된 증서를 휴대해야한다“라고 했다.
탁발을 하고자 하면 스승 및 도반의 연대서명을 받아 본사에 청원하고 면허 증서를 휴대하고서야 탁발할 수 있다. 또 스무살 미만은 허가 하지 않았으며, 면허를 받은 사람 풍기와 법의를 문란케 하면 면허를 완전히 박탈한다고 했다.
탁발 시에는 사법(寺法)에 정해진 옷차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의 정해진 법식이 어떤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였다.
〈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탁발을 행할 때 예절이 있어 발우를 항상 왼쪽 어깨에 두어야하며, 탁발을 하러 나갈 때 청나라 사람인 영악석수도인(靈岳石樹道人)의 걸식게(乞食偈)를 외운다. 연로한 비구와 함께 가야한다. 만약 함께 할 사람이 없으면 갈 수 있는 곳을 알아야한다는 등 〈사분율〉이나 〈사미율의〉에 나오는 내용과 비슷한 규정이 들어있다.
1964년 조계종은 종단차원에서 탁발을 금지했다.
이유는 스님들의 위의를 해치고 탁발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악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불교통사〉에는 “조선의 동량승 가운데 목탁을 치며 수행자처럼 천수주를 독송하는 자가 있으며, 동발을 치며 회심곡을 부르는 자가 있으니 이는 몸과 마음의 빈궁함만을 꾀하는 것이라 속된 말로 땡땡이란 말은 동발의 소리로서 그를 이름한 것으로 이는 신라 대안대안(大安大安)의 유풍이다”라고 했다.
사회의 경제수단이 쌀 등 현물중심에서 화폐경제로 옮아간 것도 탁발이 사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탁발이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해도 시골 등지에서는 20여년간 더 계속됐다. 신도수가 많지않은 산골이나 시골의 작은 절에서 양식을 조달하기 위해서나 마을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끊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금지됐던 탁발은 1996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불교의 사회참여 조성 기금마련을 위해 대대적으로 탁발운동을 펼친 뒤 탁발은 종종 중요한 종교행사가 되기도 했다. 중앙승가대 총학생회는 비구니 기숙사 마련과 학교 발전기금 모금을 목적으로 탁발행사를 한 적이 있으며, 동국대 경주캠퍼스 석림회 법사단도 ‘강원 산불 이재민과 불우이웃 돕기 자비의 탁발’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탁발은 일회성 행사에 그친 이벤트였다.
탁발이란게 스님들의 수행의 목적 이라면 언제든지 하겠습니다
근데 지금은 기분이 썩 좋지가 않군요 내가 시주를 하여 저 스님이 수행을 더욱 열심히 하실까 하는 생각까지 한답니다
그냥 법복을 입었기에 욕하지도 않고 부처님 제자라 생각하고 흘려 보냅니다
우리 불교는 대승불교다. 보살행이 목표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해탈을 꿈꾸는 것이 한국 불교의 전통적 목표다.
보살계는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
보살계의 실천은 자신의 인격적 완성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눈을 돌려 그들의 완성까지 목표로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선한 행위를 실천하도록 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보살행은 지혜의 완성으로 마무리됩니다.
시주하면서 기분이 좋지않으면 절대 시주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받는사람, 주는사람, 주는 물건, 이 세가지가 다 청청해야 진정한 보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