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B 와 S
오 병 섭
OBS는 나의 이름 영문자 이니셜이다. 어느 날 나는 OBS라고 써놓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이름이 술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는 Beer맥주, S는 Sojoo소주의 머리글자라는 사실, 더불어 성 OH에서 감탄사까지 발견하였다. 그 때부터 내 가슴에는 취한 듯 휘청거리고 싶은 욕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결국 B 와 S는 나의 연인이 되었다.
B와의 인연은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던 때 맺어졌다. 몰래 숨겨서 품고 온 친구의 가슴팍에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매끈한 몸매와 이국적인 모습. 컵 속으로 흘러들 때 연거푸 피어오르는 공기방울은 신비로운 묘기였다. 나는 흠뻑 빨려들고 있었다. 그 하얀 방울을 입안에서 굴려 보고 싶었다. 엉겁결에 빼앗아 버린 입술. 혀끝에 닿자 방울들은 와! 소리를 내며 내 몸속으로 달려들어 왔다. 순간 나의 모든 생각들이 멈추어 버렸다. 그녀가 내 몸속에 달려들어 왔지만, 내가 그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화끈거리며 타오르는 열정을 더는 주체 할 수 없어 그녀에게 몸을 맡기는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일이 잊혀져 갈 무렵, 너나할 것 없이 사랑으로 속병 앓던 악동들에게 낮선 S가 찾아 왔다. B는 감각적인 몸매가 매력이었다면, S는 깔끔하고 청순함이 매력이었다. 그녀의 살결은 너무도 맑고 영롱하였다. 내가 그리던 연인의 모습이었다. 성격은 어찌도 불같던지. 그의 순정을 빼앗던 순간의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다. 긴장된 혀끝을 내밀자, 그 끝을 타고 들어오는 쏘는 그 전율. 순식간에 입안은 열기로 가득 찼다.그녀의 뜨거운 숨결은 희열로 들끓게 했다. 몇 번의 거듭된 우리의 얼얼한 입맞춤.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그녀는 나를 가슴으로 끌어 당겼다. 나의 가슴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긴 포옹. 난 그냥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와 그들과의 사랑은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B와 나누는 수작이 무르익으면, S를 불렀다. 결국 우리는 혼숙을 하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뻔뻔스런 일을 서슴없이 저질러 버린 것이었다. 이런 일을 치르고 난 다음 날 새벽엔 몸은 심한 통증으로 괴로웠고, 마음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들의 사랑은 치명적인 관계로 빠져 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의 상황을 아시고서 실망의 표정을 애써 감추려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난 아버지의 의중에 어깃장을 뿌리칠 수 없었다.아버지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고등학교 진학문제도 그랬다. 인문계에 진학하여 법관이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고집스럽게도 공업계를 택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고쳐지지 않았다. 난 아버지를 여러 번 실망시켰다.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나의 순탄한 직장생활에 이젠 안심이다라고 여기실 때, 난 직장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 날 난 B와S를 불러 그녀들의 육체에 탐닉했다. 그날 밤 그들의 육체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아버지의 성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셨다. 아버지의 성난 모습은 날 내리치셨다. 나는 소리쳤다.'아버지, 그래도 내 갈 길을 갈래요'.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갈래요. 지치면 쉬었다가고, 그래도 지치면,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며 내 길을 갈래요.
나의 불효는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왔다. 둘째아들 휘가 사춘기를 넘고 있을 때, 그와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겨 감정이 폭발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듣지도 아니 하고 주먹질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그런 감정의 골은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내 곁에서 멀어져갔다.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무려 3년 동안. 군 입대 소식마저도 아내를 통해서 들었다. 또 2년이 그렇게 흘렀다.
혹독한 바람이 불던 겨울 밤, 아들놈이 몹시 보고 싶었다. 또한, 그의 고생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의 심한 가슴앓이의 통증이 비로소 내 가슴속으로 전이되었다. 철원 청성부대 최전방 지오피 초소로 면회를 갔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하얗게 에워싸여 있었고, 우리는 서벅거리며 포옹을 했다. 난 아이의 가슴앓이를 껴안은 것이었다. 얼마만의 포옹인가! 얼마만큼이나 풀렸을까. 매서운 바람을 등에 지고 초소를 내려왔다.
몇 달 후, 아들이 휴가를 왔다.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 보였다. 우리는 서로 겸연쩍게 웃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입을 떼 듯 아들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제대와 동시에 곧바로 복학을 권유했고, 그의 장래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외로워했던 긴 시간동안 B와 S는 내 곁에 있어 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누가 나를 달래 주었을까. 그리고 어울려 주었을까. 그 어느 날 밤, 나는 휘청거리며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불렀다. 서럽게. '아버지!'. 하늘에는 별들만이 총총했다.
모 닝 글 로 리
오 병 섭
지난주,전주를 찾았다. 매년 한 두 번은 내려가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하숙집 아주머니를 뵙기 위해서 였다. 어머니처럼 여겨진 분이시다, 벌써 일흔 나이를 넘기셨고 아저씨도 몇 해 전 돌아가셨다. 그 무렵에 태어났던 막내도 지난해 결혼하여 구미에 살고 있으며, 홀로 생활하고 계셨다. 전화로 연락은 하고 지냈만 이번에는 하룻밤을 거기에서 머물고 싶어서 였다.
나는 고등학교 3년을 줄곧 한 집에서 하숙을 했다. 두레박 우물이 있고, 조그만 텃밭과 앞산에는 과수원이 있었다. 텃밭 가장자리에 피던 나팔꽃의 넝쿨은 나의 사춘기를 타고 오르며 일렁이게 했다. 담장을 휘감고 피었다. 나팔꽃속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나의 사춘기도 거기에 피어 있었다.
나팔꽃, 여름날 아침에게 생기를 불러주는 꽃이다. 이슬이 맺혀있는 모습은 더욱 영롱하고 청순해 보인다.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색시 시침띄운 입술 같기도 하다. 어린 덩굴손은 여린 바람에 담벽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앙증 스럽다.아침에 그 꽃을 만나면 진군나팔소리에 따라 하늘을 향해 행진하고 싶은 충동을 주기도 한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환해지며 맑아진다.꽃 이름 모닝글로리(Morning glory),아침영광처럼.
마루에 걸터 앉아 앞산을 바라보았다.고향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아주머니의 음식솜씨도 여전하셨다.맛갈스런 식사와 함께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가족들의 안부, 살아가는 이런저런 사연들이 오갔다. 자연히 그때 그 마을 살 때 이웃에 살던 분들의 소식은 무르익고 있었다. 처음 나를 교회로 데려간 황씨 댁 둘째 딸 근황도 물었다. 벌써 많은 시간은 우리들의 사이를 떼어 두고 있었다.강산이 두번도 더 변할만큼.시간은 덧없다. 그 덧없음이 그리움인가.지나간 시간으로 인하여 가슴아리를 한다.시간의 힘이란 과거가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하던가.
문득, 우리 옆방에 세 들어 살았던 새댁 소식으로 화제는 바뀌고 있었다. 뜻밖의 설레임이 스쳐 지나갔다.무심한 듯 했지만,내 가슴은 고동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머물러 있던 그 누나가 아니었던가. 순창 어느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누나가 이웃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보고 싶었다.
나팔꽃이 피는 텃밭 옆방에 살았던 누나, 그때 나는 그 옆방 벽 하나를 두고 한 지붕 아래 살았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고, 누나는 신혼이었다. 처음에는 그를 아주머니라 했고, 어른들은 새댁이라고 불렀다. 얼마 후 친근해지면서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는 훤칠한 키와 오똑한 콧날이 아름다웠다.그때 내 눈에는 누나는 나팔꽃처럼 찬란했다. 눈에는 총기가 흘렀고 입술엔 자주빛 미소가 피었다. 할아버지께 한학을 배워 예의 바르고 겸손했다. 우리 세 학생을 동생처럼 대해 주었다. 우리는 누나 앞을 서성거렸던 적도 많았으며, 서로 관심을 끌기 위해 시샘을 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야단을 맞을 일을 일으켜 버렸다. 누나 집 부채에 낙서를 했던 것이다. "누나네 것" 이라고 쓴 것을 "누나내 것"이라고 흘려 써놓은 것이 화근이었다.어찌 네것이냐며 호된 야단을 맞았다.그후 그 행위에 대한 파장은 너무도 컷으며,오랜 시간을 공범의식으로 머물러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은 나의 욕망도 숨어있었지 않았나 싶다.우리는 누나때문에 가슴 설레는 시간을 보냈던 것 이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도 했고, 서로 시샘하는 생활 속에서 이성의 눈을 뜨이기 시작하였다.가슴속에 욕망을 키워 가던 때였다. 여름밤에는 복숭아밭에 서리도 하며 호기심으로 설레이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누나 신방을 훔쳐 듣는 것은 더욱 짜릿한 일이었다. 우리 방과 누나의 사이는 허름한 벽 하나 뿐, 방음시설은 허술했다. 때로는 오순도순 다정한 음성과 어느때는 야릇한 웃음소리도 나팔꽃 줄기를 타고 담을 넘듯 틈새로 비집고 넘었다. 텃밭에 핀 나팔꽃이 담을 넘나들 듯 상상의 날개는 누나 방을 넘나들며 날았다.
숨겨져 있던 나의 욕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어느 날, 누이와 나팔꽃씨를 따게 되었다. 담벽을 오를때 누이는 내 등을 받쳐 주기도하며, 손목도 잡아주는 것이었다.설레임도, 즐거움도 씨앗과 함께 따 모았다. 뜨락은 종일 설레고 들떠 있었다. 누나의 치마 자락은 가득했다.그런데,왠일일까.발을 헛딛어 치마자락의 씨앗들을 쏟아버린 것이다.잠에서 번뜻 정신을 차렸을 때 꿈이었는 것을 알았다.이미 현실앞에 나의 하체는 공기빠진 풍선처럼 되어 있었다.이미 선을 넘어 범람해 버린 것이다. 나의 청소년기는 서글펐다.숨겨둔 나의 비밀일 뿐이다.그후 누나앞에서 얼굴을 들고 바라보지도 못하였고,마주치지 아니 하였다.
지금 누나는 할머니 될 준비를 하고 있단다. 그때 태어났던 딸이 결혼하여 출산준비를 하고 있다 한다. 덧없는 시간이 밉다. 시간은 머물러 주지 않는다.거슬러 올라갈수 없는 일이다.지금 당장이라도 보고 싶다.지금 부를까 했을때 그러지 말라고 했다.내가 간직한 그의 모습을 흩트러 뜨리지 않기 위하여, 나는 태연한 척하며 외면을 했다. 아저씨도 지병으로 불편하시 단다. 지금도 힘들게 살림을 꾸려가신다는 누이. 우리는 늘상 누나는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말했었는데.
오늘 아침 아주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지난번 일부러 와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연거퍼 하신다. 넌지시 누나에게 내 이야기 전해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누나는 자기를 기억해 주는 사람도 있느냐며 기뻐하더란다. 누나의 웃음 짓는 그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늘상 그리움 속에 산다. 산다는 것은 그리움, 어울림, 헤어짐이다.그 중에서 그리움은 첫 번째일 것 같다. 그리움은 즐거움을 주고 생활의 활력을 준다. 그리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다. 허나, 그리움은 물방울 같다. 망울져 있을 때 아름답고, 잡으러 가면 흩어져 버린다. "세상에 나를 찾는 사람도 있구나"누나의 그 음성을 가슴속에 넣고 삭여본다.
모닝 글로리! 아침 나팔꽃처럼 아름답게 웃는 누나, 내 가슴에 살아 있는 누나, 시간이 지나도,내 감정이 잦아 지다라도 그 누나에게 아침의 아름다운 영광은 피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