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부 산문 최우수상>
날마다 숨 쉬는 순간 마다
이 달 형 베네딕또 (선화동 성당)
잔잔한 파도 사이로 이따금씩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고깃배 의 분주한 모습이 한 조각 그림처럼 마음 속 깊이 스며든다. 엊그제 내린 겨울비로 맑은 하늘의 싱그러운 햇살이 가득한, 눈부신 오후 한나절이 그리운 고향의 뜰악처럼 너무 따사롭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점심 식사를 우럭 매운탕으로 포식 하고 나니 온 몸이 나른하고 눈꺼풀이 무겁게만 느껴지고 따스한 햇살 아래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갑자기 눈이 시리도록 부시다고 느끼면서 “소장님, 소장님, 정신 차려요 괜찬으세요?” 마치 꿈결처럼 아스라이 들려오는 소리에 나 자신도 놀라 조심스레 마음을 가다듬으며 두 눈을 떴다, 온 몸이 돌기둥처럼 무겁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으면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버린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머리는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혼미 해지고 전신이 전기에 감전이 되고 있는 것 같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긴 한숨을 쉬어보았다, 가슴이 압박해 오는 듯 답답했다. 온 힘을 다 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반신을 누군가에 안긴 채 온 몸이 허수아비처럼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대 여섯 사람의 얼굴이 하늘을 가린 채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아니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순간이었다.
아!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아마도 무슨 큰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조이며 꽁꽁 얼어붙은 작은 가슴에 폭풍처럼 엄습해 온다, 이대로 불구의 몸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혀 힘없이 눈을 감았다. 119, 119, 하는 누군가의 소리가 귓전에 맴돌면서 다시 의식을 잠시 잃은듯하다.
건설회사 현장 소장으로 보령시 오천면 도로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비가 내린 후라서 땅 바닦은 수렁처럼 질고 발 디딜 틈조차 없이 험악했다, 마땅히 앉을 곳을 찿다가 눈에 들어온 화물 트럭,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화물 트럭 위로 올라갔다, 트럭에는 크레인으로 운반해야 하는 무겁고 엄청나게 큰 강관이 실려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앉아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바람도 잠이 들고 포근한 날씨라서 햇살을 받으며 마시는 커피가 운치 있는 어느 카페처럼 느껴졌다. 행복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작업하는 모습도 한 눈에 지켜 볼 수 있고 바다가 펼쳐진 최상의 자리였다. 공사도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어 한결 마음이 흐믓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작업하던 포크레인이 강관에 걸려 있는 와이어를 치는 바람에 내 몸은 강관을 타고 하늘을 향해 붕 떠오른다고 느끼며 잠시 의식을 잃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 었고 내 몸을 패대기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커다란 충격을 먼 기억처럼 느끼면서 정신을 잃은듯하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펼쳐진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뼘 남짓 한 곳에 강관과 나란히 누워 있었고 약 4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바닦은 옥수수 밭이었는데 옥수수를 벤 후라서 예리한 창끝처럼 잘라낸 옥수수 대가 고슴도치처럼 하늘을 향해 나를 삼켜 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솟아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움직일 수 조차 없는 몸이지만 온 힘을 모으기 위해 안간 힘을 써 보았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됬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순간은 솔직히 하느님을 원망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죽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했다. 갑자기 공포 속으로 한없이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벌을 받았는가 하면서도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난생 처음으로 들것에 몸이 실렸다.
손발이 차가와지는 걸 느끼면서 무거운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때 성모님께서 두 팔을 벌린 채 따스한 미소로 나를 감싸 않으셨다,
성모님 뒤에는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나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너무나 따스한 숨결을 느끼며 내 몸은 한 없이 어디론가 빠져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깜짝 놀라 두 눈을 떴다, 하느님의 은총인가, 성모님께서 나를 품에 않으셨는데...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에는 비교적 마음이 편안 했다,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묵주기도를 몇 단 바치고 나니 병원에 도착했다.
함께 동행 하던 동료 직원에게 일단 집에는 알리지 말고 상황을 보면서 기다려 보자고 당부를 하면서도 가족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마음 가득히 메웠다, 보고싶었다, 놀라고 걱정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이대로 잘못 된다면 우리 가족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더욱 초조해 졌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성모님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시간이 흘렀다, 너무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지쳐 버린 영혼 위에서 잠시 잠이 든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기뻐 소리치는 소리가 놀란 나의 가슴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적이야 기적, 이건 정말 기적 이래, 아무 이상이 없대, 하더니 내게로 달려와 내 손을 잡으면서 야! 나도 성당 다녀야 되겠다,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냥 타박상만 있대요 하면서 울먹였다. 그제 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 몸에 긴장이 풀리고 이 곳 저 곳이 아프고 쑤신다는 걸 알았다
순간 마태오 복음 28장,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신 말씀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주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신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주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성모님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위해 빌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현장 때문에 레지오도 퇴단 했는데 이제 레지오에 다시 입단해서 성모님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봉사도 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고 외쳤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다, 가족들이 더욱 더 보고 싶어졌다.
10여일 정도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다, 응치와 좌측 다리가 아파서 간신히 걸었지만 2주 후부터 부드러워 지고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하여 한 달 정도 지나니 완쾌 되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최소한 중상, 강관 밑으로 떨어졌으면 사망을 부정 할 수 없는 사고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건 기적이야 라고들 이야기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적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은총이다, 예수 그리그도의 자비다, 성령께서 보살펴 주신 사랑이었다. 성모님께서 그 험악한 옥수수 등컬에서 성모님의 치맛자락 으로 떨어지는 나를 감싸 안아 주신거야, 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게 믿는다 주님의 은총을, 성모님의 사랑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떨어진 자리에만 옥수수 등컬이 없었다, 신비스러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정말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이 사고를 통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랑과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고, 찬미와 영광을 드린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통회하고 회개했다.
불과 삼 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단칸방에서 네 가족이 힘겹게 살고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추위와 더위와 또 가난과 싸워가면서도 우리는 항상 기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며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남 부럽지 않게 넓은 집에서 나름대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들었던 시절의 기쁨, 그 감사가 나도 모르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는 걸 이제 서야 깨달았다.
말로만 임마누엘 하느님,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총, 자비, 평화, 기쁨, 감사 했지만 형식적인 삶 속에서 마치 바리새인처럼 그리고 교만 가득한 하나의 인간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의 마디마디 에서 마음의 답답함을 느꼈다.
나 자신이 삶을 바꿀 수 만 있다면 최선을 다 해 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나는 남달리 욕심도 많고 자존심도 강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내 가슴에 품어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생각을 바꾸자 모든 것이 내 것이고, 내 능력 내 힘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모든 것은 하느님 것이고 나는 주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진리 앞에 온 몸과 마음 모두를 주 하느님께 맡기겠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내 기준 내 중심으로 살아가던 모든 행동들이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떤 삶이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게 되는지를 깊이 묵상했다.
나의 그릇된 나쁜 모든 습관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죄악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죽었던 영혼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오늘의 나를 사랑하며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감사 하며 찬미와 영광을 드린다.
내일은 보다 나은 나 자신이 되어 주님 안에서 살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심에 감사드리는 내가 되기 위해 기도드린다.
평화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함께 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이 두 가지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항상 기뻐하게 하소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날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 주 하느님께 감사하게 하소서.